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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92화 (292/300)

#   293-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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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소매가 피를 흡수하는 흐릿한 감촉이 민감하게 느껴졌다. 눈앞에는 영원히 그러할 것처럼 마스터가 웃는 얼굴로 서 있다. 흔들리지 않는 그의 미소만큼 자신의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는 은결의 눈을 보고 말한다.

“아직도 버틸 수 있다는 거군.”

희미한 웃음을 섞어 마스터가 말했다. 은결은 답하지 않았다. 마스터는 잠시 은결을 보다가 걸음을 내딛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진다. 은결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며 역장을 펼쳐 전신을 감싸지만 눈앞에 마스터의 모습이 떠오르듯 나타나며 그 역장은 모두 파괴당한다. 핼쓱하게 질린 은결의 얼굴을 앞에 두고, 마스터는 이야기한다.

“시간을 끌면 이 상황이 호전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가?”

“큿!”

은결은 역장의 바늘을 만들어 마스터의 전신을 공격한다. 적어도 일천 이상의 바늘! 그 하나하가 모두 극단적으로 힘을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어지간한 역장이라면 간단히 관통해낼 터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스터를 둘러싼 역장의 첫 장조차 뚫지 못하고 막히고 만다. 은결은 자신에게만 들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이를 문다. 카미의 힘을 절반이나 흡수했음에도, 기술은 제쳐두고서라고 마스터와 비교해 힘의 절대량이 엄청나다는 이야기였다. 마스터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속삭이듯 은결에게 말한다.

“후후, 시간을 끌면 견딜 수 없는 세계가 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건가?”

은결은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낀다. 영혼의 심부를 망치로 내려치는 것 처럼 뜨겁고 무서운 말이었다. ‘더 나아질 것 같은가?’ 걷고 걸어서, 마침내 닿을 수 있는, 낫고, 낫고, 나은 세계가 있고, 또한 성취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은결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무력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낀다.

‘최면이구나!’

폭발하려는 감정을 억누르며 은결은 그의 말이 지금 엄청난 최면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넘치려고 하는 마음은 그의 말이 최면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설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최면효과를 동반했을 뿐, 그의 말 자체에 대해 반박할 언어를, 은결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결은 입안이 데일 것 처럼 뜨겁다고 느끼며 짙은 감정을 담은 말로 답한다.

“...생각해.”

“말과 뜻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드물지 않지만, 여기까지 훌륭하게 정반대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더 나아지리라고, 생각해.”

은결은 다시, 뚜렷하게 말한다. 정말로? 차디찬 자신이 자신에게 묻는다. ‘닥쳐!’ 은결은 자신의 마음을 향해 돌린다. 마스터는 어깨를 떨며 작게 웃는다. 쿡쿡. 그의 웃음을 은결은 순간 이해하기 어렵다.

“확실히, 불요불굴한 의지군. 리리스가 실패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움직인다. 은결도 움직인다. 손이 움직인다. 발이 움직인다. 움직임 마다, 역장이 뻗어 나온다. 세계를 위한 가장 거대한 건축을 하듯, 뻗어난 역장이 공간을 단절하고, 격리하고, 날아가고, 튀어오르며 온갖 운동을 한다. 역장과 역장이 얽히며 거친 마찰음을 내고, 불꽃을 튀기며, 폭발을 일으키고, 거대한 충격음을 낸다. 그러나 그 많은 운동이 일어난 것은 한 순간이라 해도 좋은 짧은 시간 동안이었기에, 해변을 때리는 파도가 무수한 포말의 터지는 소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저 한번으로 들리듯, 그것은 그저 한 순간의 압도적인 빛과, 거대한 폭음으로 환원될 뿐이었다. 그리고 정적이 돌아왔을 때, 마스터는 은결의 양 팔을 잡아 뒤로 꺽어 은결의 상체를 아래로 밀어 붙이고 있었다.

“-자네의 대답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군.”

“크윽-!”

은결은 안간힘을 써 보지만 잡힌 팔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잡힌 팔을 뜯어내거나 뼈를 부숴서 그 자리에서 탈출해 보고자 했지만, 역장으로 몸의 각부를 고정시킨 채 팔을 꺾고 있는 것이라 그런 것도 불가능했다. 들썩이는 은결의 상체를 억누르며 마스터는 차가운 눈으로 냉엄하게 말했다.

“저것들을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

도천시를 잠식하고 있는, 무수한 사념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야에 들어온 사념체의 모습은 곧장 그것이 품고 있는 사념이 되어 은결의 마음으로 날아왔다. 밉다.좋다.사랑한다.증오한다.분하다.기쁘다.이겼다.졌다.잘난척하긴.재수없어.퉤!피곤해.무능한주제에!억울해!아무도몰라줘.외로워.무서워.알고있다.몰라.다들우러러보겠지.꼴같잖군.너따위.예뻐라.못생겼어.멋진걸.돼지주제에.그얼굴로.네가하는데.굉장한걸... 욕망, 그리고 욕망들. 무수한 욕망들이 은결의 마음을 헤집었다. 끝이 없을 것 처럼, 그것들은 이어졌다.

“전설의 아들이여. 저것들의 부모는 굉장한 악당이나 특별히 사악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다. 저 추악함의 부모는 평범하고, 선량하다고 여겨지는 무수한 인간들일 뿐이지.”

은결은 욱- 하고 치미는 것을 느낀다. 그도 안다. 이것들은 특별한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었다. 평범한 누군가의 마음일 뿐이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었다. 여우가 그러했듯이. 늑대가 그러했듯이. 민성이 그러했듯이. 마스터는 계속 말한다.

“어째서, 가장 아름다운 별보다 빛나야 할 이들이 저런 쓰레기같이 추악한 것들에 둘러쌓여,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쓰레기의 배출구가 되어,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나?”

그것은- 은결은 마음속으로 희미하게 말한다. 마음을 스치는 무수한 욕망의 형태들이 욕망의 원형이 변주된 형태임을 이해한다. 바이올린의 현줄이 떨려 무한한 음색을 만들듯, 단순하고 끔찍한 한 가지 원리가 모든 것을 만든다. 마음을 지배하는 욕망은 그토록 단순하고, 마음을 지배하는 욕망은 그토록 끔찍하다. 은결은 이를 악문다. 그래서 손은 기껏해야 타자에 대한 굴종의 종국적인 양태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는- 이곳에서 멈춰 선다.

“그래도 네 대답은 여전히-”

정신이 꺾여질 것 처럼 무거운 순간에 압도적인 빛이 번쩍인다. 꽈릉!! 은결은 강력한 전격에 휘말리는 고통을 느끼지만 대신 몸이 자유롭게 된다. 휘청, 휘청 뒤로 움직이며, 겨우 역장을 형성에 주저앉는다. 하지만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약해졌을 뿐, 이 장소를 여전히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스터는 전투가 시작되고 아마 처음으로 불편한 표정을 보이며 손을 만지작거린다. 그의 폭이 넓은 옷은 소매가 타 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아래쪽에서 우리측이 불리하도록 국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던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해했다. 원인은 너였군.”

그의 시선이 가 있는 곳에는 빛나는 존재가 떠 있다. 은결도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있다. 사념체와 같은 관념체가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최강의 존재가 거기 있었다. 일신교의 전통에서 말하는 ‘신’은 아니지만 천사 내지는 사자라는 존재로서 포섭되고, 다신교의 전통 내에서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강대한 존재.

‘카미’였다.

“푸른이빨? 네가 어째서?”

은결은 황당한 표정을 묻는다. 푸른 이빨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왔다. 그것도 세연의 몸에 서 벗어나서. 본체인 상태로. 이것은 그가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답 대신 날아온 것은 웬 물건이었다. 은결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는다. 급히 나오느라 신지 못했던 자신의 신발이었다. 은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미를 바라본다. 그는 은결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거칠게 지껄인다.

-저 놈에게는 빚이 있다.

은결도 안다. 푸른 이빨을 봉인에서 해방시키고, 그 순간 잡아들이려고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노시스트였다고 한다. 그가 그노시스트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증오를 투쟁의 이유로 삼기에, 그들은 너무 강하다. 의아해하는 은결을 향해 푸른 이빨은 끔찍스러울 정도의 증오를 담아 외친다.

-힘도 없는 주제에 너는 왜 저 새끼와 직접 상대한 거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저들을 결정적인 곳 까지 끌어들일 수 없었으니까.”

-...또 울리면, 정말 죽여버린다! 이 개새끼야!

은결은 맥락없이 터져 나온 푸른 이빨의 외침에서 그가 이곳에 선 진의를 읽어낸다. 세연, 이다. ‘역시, 울었구나.’ 은결은 부푼 얼굴로 웃으며 자신을 보내주었던 소녀가 그 다음 보였을 울음을 생각한다. 가슴이 저릿저릿하게 아린다. ‘또 울리면, 정말 죽여버린다! 이 개새끼야!’ 푸른 이빨의 말이 깊다. 이어서 은결은 몸을 속박하고 있던 나머지 카미의 힘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용해되는 것을 느낀다. 어마어마한 힘이, 전신에 들끓기 시작한다. 모든 기맥이 완전히 열렸고, 힘은 그것을 타고 강물처럼 흐른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겨서 살아남아라.’ 은결은 이어지지 않은 푸른 이빨의 말이 그로서 완성되었음을 느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그의 말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로 답한다.

“...노력할게.”

그리고 둘은 마스터에 대치해 선다.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마스터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푸른 이빨을 향해 말한다.

“특별한 제의(祭儀) 없이 인간을 돕는 카미라니, 특이한 변종이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그리고 마스터는 은결을 본다. 은결은 그의 눈빛을 받고 긴장에 몸을 굳힌다. 그는 푸른 이빨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끝맺는다.

“무척 놀랍군.”

-니 사지가 찢어지는 꼴을 직접 보는 것은 한결 놀랍겠지. 이 병신새끼야!

푸른 이빨이 살벌하게 외친다. 마스터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너는 강하나 이 싸움에서는 하찮은 방해꾼에 불과하다. 네 힘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네 덕에 얻은 것이 적지 않으니, 더 이상 이 싸움에 참여하려 들지 않겠다면 그냥 보내주지. 가라.”

-씨발새끼야! 아가리 닥쳐라.

푸른이빨은 분노한 욕설과 함께 방전한다. 거대한 전격이 마스터를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스터의 앞에 펼쳐졌던 역장에 막혀 무의미하게 사라진다. 전격의 남은 비명 같은 미약한 스파크가 공기를 달궜다. 마스터는 불편한 표정으로 푸른 이빨을 바라보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은빛 패였다. 푸른 이빨의 몸이 굳는다. 그도 저것의 힘은 알고 있다. 은결도 긴장한다. 하지만 그는 '괜찮아!' 하고 푸른 이빨에게 자신의 말을 전한다. 자신이 읽은 것이 옳다면 이 결계는-

“그것이 대답이라면 별 수 없지. 이대로 보내기엔 네 힘이 지나치게 크다.”

마스터는 푸른 이빨이 도천시에 풀어놓은 자신의 사념체를 제거함으로서 전투의 국면을 전환시키고, 그로 인해 수행의 결계가 완전히 활성화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혹시 공명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설의 아들 근처에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작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다 다 망치는 우를 범할 수는 없었다. 또한 지금 등장한 카미가 전투에 가세하면 전설의 아들이 도망칠 경우 잡지 못할 우려가 있었다. 미리 없애 두는 것이 최선이다. 그는 패를 앞으로 내밀며 외친다. "사라져라." 무언가 엄청난 것이 세계를 장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마스터가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은결은 처음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보인다. 역시! 이 결계의 구조를 보고 예상했던 것이 맞았다! 은결은 마스터를 향해 외친다.

“이 거대한 결계가 기껏해야 당신들을 가두고 몇몇 술자를 강화시키는 수준에서 끝날거라고 생각했나? 틀렸어! 이 결계는 아담의 언어와 현자의 돌 같은, 근원, 그 자체로서 발현하는 일체의 힘을 막아내는 필드를 발생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해!”

그리고 은결은 발을 박차고 마스터에게 돌진한다. 쿠앙! 에너지의 전달이 억제된 결계 내에서도 대기가 견디지 못하고 충격파를 뿜어낸다. 마하 40은 가뿐히 넘어섰다. 은결이 운동한 공간내에 엄청난 마찰열이 발생해 그의 운동 궤적을 따라 가시광선이 일그러진다. 마치 아지렁이를 일정한 공간 내에 고정시켜 놓은 듯한 모습이다.

-쿠웅!

마스터는 은결을 막지만 그의 전력을 다한 몸통치기에 마스터가 펼쳤던 모든 결계가 박살나며 공격할 틈을 연다. 마스터는 서둘러 손을 움직여 은결의 동작에 대응하려 하지만 그의 손짓에 따른 아무런 힘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이 다시 찌푸려진다. 은결은 그가 방금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은결은 놓치지 않고 주먹을 내지른다. 헛나간 손을 타고 그의 주먹이 마스터의 복부를 찔렀다. 쿠앙! 폭발 소리가 나며 마스터가 뒤로 날렸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우뚝 서더니 피를 왈칵 토해낸다. "마스터!" 멀지 않은 곳에서 쿠로사카와 싸우며 상황을 살피던 이리세가 비명처럼 외친다. 그는 손을 뻗어 이리세에게 걱정하지 말라 표한다. 이어 마스터는 무서운 눈길로 은결을 노려본다. 그의 눈빛에 은결은 소름이 오싹오싹 돋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은결은 그 표정을 도리어 기쁘기 여기며 쾌활히 말한다.

“근원 그 자체가 발현될 수 없다는 것은, 당신과 나의 차이는 이제 기의 총용량일 뿐이란 말이야.”

*아라시엔 님의 추천에 감사. 굽신굽신.

*푸른 이빨 좋아하는 분들이 많군요. 그러고보니 이 글 보면서 이 녀석이 끝까지 갈 캐릭터란 걸 처음부터 눈치 채신 분들은 몇이나 되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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