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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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놀랍군.”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스터는 정말로 놀란 얼굴을 한다. 그는 턱에 손을 가져다대고 흠- 하는 소리를 낸 다음 말을 이어간다.
“이 와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결계라니. 깨지는 것 까지는 기대치 않더라도 흔들림 정도는 기대했는데, 꿈적도 않는군. 틀림없이 결계를 구성하고 있는 인원의 대다수는 전투에 휘말려 정신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한번 형성되면 결계 자체가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는 구조인 모양이군. 정말이지, 굉장하다. 하지만-”
이어서 그가 바라보는 것은 은결이다.
“-진의 중핵을 무력화 시킨다면 결국은 어쩔 수 없겠지.”
마스터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음을 내 딛는다. ‘역시 읽었구나!’ 은결은 황급히 양 팔을 모은다. 거대한 힘이 그를 강타한다. 팔을 감싼 옷이 스스로 일어나듯이 헤지며 실밥이 일어나고, 천조각이 잘게 주변에 날린다. “큭!” 억눌린 신음이 저절로 흐르며 은결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은결!)”
한박자 늦게, 쿠로사카가 반응한다. 그녀의 검이 마스터를 향한다. 해방된 키리야미의 예리한 힘이 세상을 향해 포효한다. 거침없는 참격은, 그러나 목표에 가 닿지 못하고 키아앙! 하는 귀가 에일 듯 따가운 진동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멈춘다. 이리세다.
“네가 두 사람을 방해하도록 할 수는 없지.”
쿠로사카는 눈을 찌푸리고 키리야미를 거둔다. 이어 호흡을 정리하고, 이리세를 향해 몸을 띄운다. 이리세는 춤을 초청받은 소녀처럼 기품있는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며 쿠로사카를 맞이한다. 이어서, 무시무시한 에너지들이 격돌하기 시작한다.
“후후.”
힐끗, 두 소녀의 바라본 다음, 마스터는 뒷짐을 지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주먹을 쥔다. 은결은 섬뜩한 위기감을 느낀다. 그는 발을 굴려 서둘러 그 곳에서 벗어난다. 그가 있던 공간이 압착된다. 그 압축이 일정선을 넘었을 때, 기이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으로 진동을 흘린다. 마스터는 시선을 올려 은결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한 발자국 움직인다.
“크-”
은결이 움찔, 몸을 떨고 자신이 있던 자리를 피하고자 하기도 전에 눈앞에 마스터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빙그레 웃는 얼굴로 은결의 복부를 손으로 민다. 느린 동작이지만 은결은 피하지 못한다. 마스터의 역장이 도망갈 길을 이미 봉쇄하고 있다. “흑!” 은결은 토하는 것 처럼 말을 흘리며 가볍게 뒤로 밀려난다. 이어서 입으로 왈칵,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전력차는 분명했다. 그러나 거기서 굴하지 않고 은결은 주먹을 내민다. 고통에 흔들리지 않고,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집중된 정신이 힘을 구현해 송곳 같은 일격을 마스터에게 날린다. 무수한 역장이 자신의 역장에 관통되는 느낌을 뚜렷하게 인식한다. 은결의 주먹은 마스터의 몸에까지 가 닿는다. 마스터는 발을 움직여 공격을 피하지만 그의 옷깃이 은결의 주먹에 스친다. 옷이 갈라졌고, 그 사이로 피 흘리는 상처가 보인다. 마스터는 그윽하게 웃는다.
“역시 훌륭하다.”
마스터는 팔을 휘젓는다. 은결은 마찬가지로 역장을 펼친다. 역장과 역장이 충돌한다. 곳곳에서, 그 충돌로 인한 소음이 세상을 뒤덮는다. 때때로 마찰로 인한 불꽃이 일어나고, 때때로 폭발로 인한 불꽃이 시야를 덮는다. 어렵게 싸움을 이어나가면서, 은결은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는 일단 마스터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 전신을 역장으로 감싸고 발을 박찬다. 몸이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그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이미 마련된 역장이 은결의 역장과 충돌한다. 그러나 이는 은결 역시도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어렵지 않게 그 역장을 돌파한다.
공간을 가르지르며, 쿠로사카와 이리세의 싸움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그녀에게서 과거 들렸던 소리 같은 것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이리세가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본다. 눈과 눈이 마주친다. 거기서 안타까움 같은 것이 읽어진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른 세계’를 주겠다고 했었다. 그 말은, 아마도 거짓이 아니다. 다른 세계. 시선이 사라진 세계- 혹은, 시선이 무의미한 세계.
이리세를 향해 또 다른 그림자가 돌진한다. 길고 검은 머리칼이 비단처럼 바람에 날린다. 이리세가 시선을 돌리고 역장을 펼쳐 그 공세를 막는다. 바람은 타던 검은 머릿결이 파도처럼 퍼지며 출렁인다. 키리야미의 날이 역장을 뚫기 위해 울부짖는다. 그러나 해방된 신기의 힘에도 쿠로사카의 열세는 분명했다. 그러나 맹렬한 소녀의 모습에 승산에 대한 계산은 비치지 않는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너를 좋아해. 그러니까. 굴러 떨어지길 주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미안. 속으로 은결은 이리세에게 말한다.
느려졌던 시간이 일시에 돌아오듯, 일시에 주변이 움직인다. 거대한 힘이 은결을 돌진해 친다. 쿠앙! 은결을 방어하던 역장이 풀린다. 본능적으로 다른 역장을 펼쳐 그 공격을 막아내지만, 속이 울리는 것은 막지 못한다. 초점을 잡을 수 없도록 시야가 맹렬하게 흔들린다. 이어서 은결은 어렵게 역장을 형성해 균형을 회복한다. 소매로 입가의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닦고, 고개를 든다. 멀지 않은 곳에 천천히 걸어오는 마스터가 보인다. 은결은 희미하게 웃는다. 쿠로사카만이 아니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후후, 자네만 순순히 우리와 함께 동행 해 준다면 더는 싸울 필요가 없네. 하지만 그렇게 해주진 않을 테지?”
“물론.”
“하지만 결국 우리와 함께 되겠지.”
“...망상이군.”
은결은 느릿하게 답한다. 피할 수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버티기라도 해야 했다. 버티고 버텨서, 최후까지 일어설 수 있다면, 승리자가 된다. 복잡하지 않다. 힘의 차이를 볼 때, 이길 수 없다고? 누가 감히 그렇게 단언한단 말인가. 그래서 은결은 피식 웃는다. 굴강한 눈빛으로 일어서면서 은결이 지어보인 웃음을 보고, 마스터 또한 웃고는 말한다.
“자네의 상상력이 부족할 뿐이지.”
그는 다시 움직인다.
진경은 품에서 부적을 한 웅큼 쥐어 주변으로 날린다. 부적은 자동적으로 형상을 이루더니 결계가 된다. 그 앞으로 달려든 사념체가 벽에 부닥친 것 처럼 쿵-! 하고 튼 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멈춘다. 진경이 양 손을 모아 간단한 영창을 한다. 부적이 반응하며 전격을 일으킨다. 사념체가 전격에 휘말리며 막대한 빛과 소리를 분출한다.
-크아아악! 용, 서 못-
사념체는 몸서리치며 비명을 내지른다. 단절적인 언어가 사념체의 지능 수준을 드러낸다. 부적이 하나하나 힘을 감당하다 못해 재가 되어 스러진다. 진경은 희미한 소름을 등줄기로 느낀다. 이만한 수준의 사념체가 좀 더 많은 사념과 생명력을 흡수하고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중 하나가 늑대인간이니 흡혈귀니 하는 전설속의 괴물들이다.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부린다니, 그노시스트들은 대체 얼마만한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세상의 ‘상식’을 가소롭게 여긴단 말인가.
“그쪽 상황은 어떤가?”
도원 스님이 진경의 옆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가사는 전체적으로 엉망이 되었고, 적지 않은 상처로 곳곳에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사념체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겨우 처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겨우 상대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이런 건 생각도 해 본적이 없으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도심에 일천 이상의 사념체를 숨기다니...”
도원스님은 얼굴을 찌푸린다.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굴곡이 한층 짙어지며 우울함을 이야기한다. 진경은 일부러 쾌할하게 그 말을 받는다.
“그렇지만 과거 수행 선배가 상대했던 녀석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위기도 넘어섰거늘, 하물며 이런 잔챙이들 쯤이야.”
“그 또한 그렇군.”
피식 웃으며 도워 스님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그 절대적인 강자 ‘수행’이 없네.’ 도원은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 진경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마 확실하게, 당시의 사념체도 이들의 짓이리라.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쿵-! 하고 큰 소리가 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술자가 사념체와 싸우고 있었다. 방금 소음은 그의 방어에 사념체의 돌진이 막힌 때문이다. 진경이 칼을 휘두르며 말한다.
“가 보시는 게?”
“먼저 이쪽을 처리하도록 하지. 방어 위주로 대처하고 있는 걸 봐선 결계의 유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술법이 잘 정리되어 있어 당장 급하진 않을 듯 하-”
도원이 말을 끝내지 못하는 것은 사념체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도로의 차를 공격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재 도천시에는 시 전역을 포괄하는 초거대 결계가 형성되어 있고, 거기에 다시 술자들이 자신들의 결계를 이차적으로 펼쳐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범위가 너무 넓은 만큼 인식지평에 관여하더라도 모든 이들을 전투 장소에서 떨어지도록 할 수는 없었다. 지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운전자만 해도 강박증에 가까운 심한 불길함을 느끼며 평소와는 달리 매우 복잡하게 운전해 전투지역을 통하지 않도록 여러 경로를 거쳤지만 결국 전투지역에 들어서고 말았다.
“으-”
도원 스님은 신음 소리를 흘리며 발을 박찬다. 그 사념체를 상대하던 술자도 깜짝 놀라며 방어를 풀고 운전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다. 그때였다. 자동차를 공격하려던 사념체는 방향을 돌려 술자를 공격한다. 완벽한 기습! 거멓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념체를 보며 술자는 죽음을 각오한다. 진경은 그때 독한 마음을 먹고 공격을 해체한다. 자신이 이미 형성해 놓은 부적결계를 날린다면 그를 구할 수 있다. 대신 적어도 자신의 팔 하나는 먹혀야 하겠지만. 그러나 목숨보다는 팔 하나가 싼 것은 분명하다.
“하앗!”
그는 인을 맺고 있던 손을 풀고 양 손을 사념체를 향해 이동시킨다. 허공에 펼쳐졌던 부적결계가 벼락같은 속도로 날아가 사념체를 강타하며 술자를 구한다. 그러나 진경의 전신은 사념체의 그림자에 덮였다. 그는 서둘러 발을 박차며 그 자리에서 피하려 하지만 사지의 하나 정도는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젠장! 그는 이를 악문다.
-꽈릉!
그러나 고통 대신 엄청난 소리가 동공을 태워버릴 것 같은 빛과 함께 했을 뿐이었다. 진경이 눈을 떴을 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에너지의 집결로 이루어진, 빛으로 된 존재였다. 오한이 들 정도로 강력하고, 위엄에 찬 강대한 존재였다. 진경과 싸우던 사념체는 물론, 자동차를 습격해 허점을 이끌어 냈던 사념체도 방금 분출된 에너지로 한 순간에 재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진경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대체! 그것은 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존재를 보며 중얼거린다.
“카미...!”
어떻게 된 것인가. 이것은, 제거 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곳의 술자들이 이 강대한 카미에 대한 대처에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푸른 이빨은 그들에게 힐끗 시선을 주고 말한다.
-네놈들은 다른 쓰레기들을 제거하러 가라. 저 위의 병신은 내가 직접 간다.
그리고 푸른 이빨은 먼 곳으로 날아간다. 가공할 만한 힘을 품은 그의 빛나는 몸이, 그를 직시하는 자들의 눈에 남게 되는 빛의 상흔처럼, 허공에 길고 뚜렷한 궤적을 그린다. 그의 빛나는 몸 끝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물이 하얗게 물들어 매달려 있었다.
*다른 작가 분들도 비슷하겠지만, 제가 글을 쓸 때 일차적으로 상정하게 되는 독자는 저 자신입니다. 이 글은 역시 그 무엇보다도, 제 취향이라는 거죠.
*리플을 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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