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290화 (290/300)

#   291-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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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당황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검고 거대한 안개 같은 것에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곳을 덮친다. 쿠앙! 소음이 넓게 펼쳐지며 아스팔트와 바위, 모래가 주변으로 산산이 튀어오른다. 따로 결계를 작성할 사이도 없이 이루어진 기습이었다. 다행히 주변에 인적은 드물었고, 기세에 비해 대지의 파괴도 사소했다. 아마 이 도시에 이미 펼쳐져 있는 결계가 어느 정도는 통상적인 격리결계의 역할을 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박수행이란 이름을 언제나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역시 이름에 값하는 천재라고- 생각이 이어지기 전에 뒤에서 또 무언가 덮친다. 그는 높이 뛴다. 그가 있던 자리로 또 다시 검은 사념체가 날아든다. 둘. 그는 근처의 빌딩 옥상에 가볍게 착지한 뒤 하늘을 본다. 소년과, 소녀와 중년의 사내가 보인다. 그는 이를 악문다. 이래서는 연락이 오더라고 전력으로서 저 곳에 참여할 수가 없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은 결계를 통해 힘을 강화한 지금이라 해도 상대할 수 있을지 확신을 할 수 없는 괴물들이다.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꺼낸다. 멜로디의 변화가 전혀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가 리듬을 타고 라틴어의 문장을 세계에 흘린다. ‘성가’다.

여자는 품에서 부적을 날린다. 그것들은 허공에서 질서정연하게 횡으로 선다. 거기 검은 사념체가 달려와 충돌한다. 쿠웅! 부적이 흔들린다. 양끝의 부적이 불타 재가 된다. 방금 충격에너지를 채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 파괴될 때 까지는 여유가 있다. 그녀는 허공에 점을 찍듯 손을 움직인다. 점이 둘을 넘어서면서 점과 점이 연결되며 형상을 이룬다. 그것이 명확한 결계가 되어 힘을 소환하기 바로 직전, 그녀를 또 다른 검은 사념체가 삼켜버리고 만다. 그러나 찢어져 흩날리는 것은 그녀의 몸이 아니라 종이다. 몸 바꾸기의 술법이다. 그러나 그 습격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여자는 옆구리를 안은 채 서 있다. 그녀가 거머쥔 옆구리로부터 새빨간 피가 배어나온다. 쉽지 않다, 고 그녀는 직감한다. 전투요원이 아니지만, 이래서는 결계를 유지하기조차 버거울지도 모른다.

가사를 입은 대머리의 중이 소탈한 흙집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그는 손님으로 이곳에 찾아왔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뜨고 밖으로 나선다. 중은 눈살을 찌푸린다. 절의 상공으로, 이곳에 침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념체들이 보인다. 하나하나가 보기 힘들만큼 강대하다. 간단한 자의식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그는 박수행을 돕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고, 그 가운데서도 전투를 돕기 위해 참여했지만 사정을 보아하니 그럴 수가 없게 된 듯 하다. 설마 그들이 이런 일까지 가능했으리라곤. 하고 중은 한숨을 쉰다. 박수행의 저력이 수수께끼였던 만큼, 그노시스트의 저력 역시 수수께끼였던 모양이다.

소녀는 울다 지쳐 잠들었다. 길고 뚜렷한 눈물이었다. 흐름이 마음을 담듯 분명했고, 투명함이 마음을 설명하듯 순결했다. 눈물에 젖은 침대 시트는 채 마르지 않았다. 잠든 소녀의 몸속에서 다른 자의식이 분노하며 휘청거리고 있다. 그는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그는 오만했지만, 또한 강해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변화 또한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많은 사념체들. 하찮고 더러운 마음의 찌꺼기들. 추악하고 비루한 인간들의 산물. 그런 것들이 바퀴벌레처럼 이 도시에 들끓고 있다. 이 집은 인간 같지 않은 자의 솜씨로 철저하게 보호되어 있었지만 그따위 것들은 문제거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도시의 상공에는 자신을 구속해 지배하려 했던 자가 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두려움, 그리고 분노, 그리고 슬픔, 그리고 좌절. 그는 일찍이 맛보지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너울에 자신이 물들어 있는 것을 느낀다.

민성은 베란다 문을 열고 몸을 앞으로 내민다. 강한 바람이 몸을 때리며 유리창 너머로 밝게 보이던 하늘이 한층 분명하게 느껴진다. 하늘은 맑았고, 태양빛은 밝았다. 보통 때라면 마음도 같이 맑을 터이고, 집안에 빈둥거리느니 밖으로 나가자고 친구 놈들에게 전화라도 한 통 때렸을 터인데, 이상하게 이런 화창한 날씨에도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외출’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친구’와 외출을 한다는 것은 그저 불편할 뿐이었다. 그리고 같이 나가고 싶은 친구는, 사실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멀리까지 보이는 시내의 도로변 까지, 이상하게 한적하다. 평일의 오전 보다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걸음은 쫒기는 것 처럼 바쁠 뿐이다.

“...음.”

마음이 어릿하게 무너진다. 민성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요한 일을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그것이면 충분한 법이다. 그는 뱀 허물처럼 빠져나온 이불을 정성 들여 개고, 곤충 허물 같은 옷가지를 접고, 주변에 널려진 만화책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책상으로 간다. 노트와 필기도구와 문제집과 책들이 쓰레기 하치장의 언덕들 처럼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민성은 느릿한 손길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한다. 공책, 필기도구, 교과서, 문제집, 그리고-

“.....”

민성의 손길이 한 책을 잡고 잠시 멈춘다. ‘마음’이라는 타이틀이 인쇄된 소설책이다. 결국은 ‘마음’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참혹하지 않은가.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다. 어릿하던 마음은 한 순간에 폭풍우를 맞이한 산길처럼 진창이 된다. 무얼 복잡하게 생각한단 말인가. 그는 마음을 한 순간에 단절시키고, 그 책을 다른 평범한 책들처럼 책장에 꽂아 넣음으로서 흔들림을 정리한다. ‘나는 잘못 한 게 없어.’ 자신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목소리. 그러나 말하지 않는 마음은 뚜렷하게 그 말의 진의를 바라보고 있다.

“음, 청소 끝.”

책상을 정리하고, 간단히 바닥을 쓸어 쓰레기를 버린 다음, 민성은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걸치고 양 손을 허리에 두며 만족스레 말한다. 그는 자신의 방을 바라본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자신의 방 같지 않게 깔끔하다. 아아, 좋군.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는다. TV나 볼까. 리모콘을 쥐어 전원을 켠다. 브라운관에 전원이 들어오며 화면이 비친다.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그는 한 동안 그것을 본다. 민성은 때때로 웃음 짓는다. 한 순간 ‘재미없다.’ 압도적인 무력감이 그를 엄습한다. 그는 TV를 꺼버린다.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본다. 뭔가 잘못 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질척하다. 막 장마가 끝난 시골길을 운동화를 신고 한참을 걸은 것 같은 기분이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니지만 달라붙어서 놓아주질 않는다. 가벼운 두통, 드문드문 시린 이,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 그런 것들의 확장판 같은 것이 마음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그런 불편함을 떨칠만한, 얼마든지 집중할 수 있을만한 뭔가를 하고 싶다고 느낀다.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라던가, 만화라던가, 영화라던가- 소설, 소설은 이상하게 마음에 가 닿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소리내어 이야기 하지 않지만, 민성은 어릿한 거부감이 ‘공포’ 같은 것에 꽤 닮은 불쾌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디보자, 하고 호러영화의 중간에 채널을 바꾸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바꾼다.

-딩동.

차임벨 소리가 난다. 민성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현관으로 간다. 거기서 인터폰을 들고 “예, 누구세요.” 하고 물어본다. 밖에 성치된 카메라를 통해 벨을 누른 사람의 얼굴이 회색으로 비춰든다. 세 사람이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큰 몸집의 청년이 하나, 작은 몸집의 청년이 둘. 정면에 서 있는 것은 몸집이 큰 청년이었다. 색이 선명하지 않고, 화질이 뛰어나지 않아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큰 몸집의 청년은 얼굴이 약간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는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여!”

고릴라, 늑대, 여우였다. 민성의 놀란 가슴이 두근, 하고 크게 뛰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수행은 아버지와 통화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좋지 않구나. 이래서는 은결이가 위험하다. 이정도로 강력한 사념체를 도천시에 이렇게나 많이 심어 놓았으리라곤...”

그노시스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상정외의 상황이다.

“어떻게 사람을 뺄 수는 없습니까. 열 명 정도만 참여해 준다면 은결이가 몸을 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르겠다. 그노시스트가 내놓은 사념체가 너무 강한데다 보통 사람들 역시 보게 되면 공격하고 있다. 놈들의 수효가 너무 많고 넓게 분산되어 있어 어느 구역이라도 빼놓을 수 있을지... 이런 상황에서 전투인원을 10명이나 빼내는 것은 힘들다. 더구나 결계 자체의 유지에 투입된 이들은 전체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그들 또한 구해야 하지 않느냐. 그만한 전력이면 어지간한 카미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하니 투입해야 할 곳이 많다. 어쨌거나 최소한의 여유라도 얻게 되면 곧장 은결에게 보낼 계획이다.”

“...안타깝군요.”

낮게, 수행은 말한다. 할아버지는 그 말이 울음, 혹은 비명과 닮았다고 느낀다. 박수행. 그것은 자신이 지어준 아들의 이름이지만 역사에 깊게 각인되어 결코 지워질리 없는 일등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떤 적도 그 앞에서는 서 있을 수 없었고, 어떤 힘도 그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랬던 강자가, 지금은 무력하게 아들의 위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떤 비감이 그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언어를 포기한다.

“...내게도 더는 여유가 없구나. 이만 끊어야 하겠다.”

그리고 거대한 전투의 소음과 동시에 소리가 끊어진다. 수행은 휴대폰을 끊고 자신의 팔에 채워진 나무 팔찌를 건조하게 매만진다. 은결이 만들어 세연이라는 소녀에게 주었던 바로 그 팔찌였다. 수행은 창문 밖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푸른 하늘 어딘가에, 은결은 지금 싸우고 있을 터였다.

*이 글의 캐릭터들은 특별히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은결이 저를 모델로 했을리 또한 없죠. 고릴라, 늑대, 여우, 민성 등의 캐릭터가 어떤 전형성을 대표하고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 여우랑 닮았으리라 싶습니다. 음!

*파스칼의 논리는 파스칼의 것으로 그것이 기독교 일반을 대표한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이익의 문제로 신앙을 설명한다고 해서 싫어하는 신학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맑은거울님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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