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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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남자 한 명과 소녀 한 명. 은결과 쿠로사카가 대치한 그노시스트는 그 둘이 전부였다. 조용하고 차가운 기도. 그러나 좌중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무게가 있다고, 쿠로사카는 느꼈다. 은결은 고공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를 향해 물었다.
“무엇을 노리는 거지?”
“우리가 노리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지.”
그노시스트의 수장, 마스터라 불리던 남자는 평온한 얼굴로 은결을 바라보며 답한다. ‘언제나 하나였지.’ 마음이 공명한다. 은결은 그것을 견뎌내며 얼굴을 찌푸린다.
“당신들이 하려는 것은, 자칫하면 모든 것을 끝장내게 돼.”
마스터는 피식 웃는다.
“지루한 비판이군. 지루한 비판에는 지루한 답변을 돌려주는 게 정석이겠지. 우리가 성공하면 비루한 세계를 넘어서서, 모든 이들이 다시금 진정한 신과 대면할 수 있게 되겠지. 우리가 틀렸다면, 그저 아무도 모르게 모든 것이 사라질 뿐이네. 심지어 그 일을 시행한 자들조차 자신들의 사라짐을 인식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그 소멸은 실은 소멸조차 아니네. 그래서 실패한다고 해도 아무 것도 잃는 게 없는 셈이지. 결국 성공하면 지상의 가장 거대한 영광조차 하찮은 영광을 얻고, 실패해도 아무 것도 잃어버리는 게 없다는 말이네. 아무 것도 잃을 것 없이, 얻을 가능성만 고려해도 된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쿠로사카는 순간적으로 혼란을 느낀다. 인식되는 것만이 실재한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마스터의 지금 발언은 쉽게 논박하기 힘든 종류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은결은 그의 말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간단하게 반론한다.
“파스칼의 논법을 베낀 말장난이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당신은 그저 확실성의 한계 너머에 있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야.”
파스칼의 논법은 일종의 신에 대한 증명이며, 신앙에 대한 권고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신이 있다면, 신을 믿는 이는 천국에 갈 것이고, 믿지 않는 이는 지옥에 갈 것이다. 만일 신이 없다면, 신을 믿든, 안 믿든 그저 사라질 뿐이다. 그러니 일단 믿는 게 합리적이다. 신을 믿는 다면 운이 좋을 경우 천국이고, 믿지 않으면 운이 좋더라도 그저 사라질 뿐이니까. 마스터는 만족스러운 듯 희미하게 웃는다.
“믿음은 확실성의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논리는 확실성의 한계 내에 있을 뿐이네. 그것이 비록 자네가 말한 것 처럼 파스칼의 변주에 불과하더라도, 파스칼의 변주라는 것이 이 주장을 부정할 근거는 못 되는 셈이지.”
“그러나 ‘신’이 있다고 해도 당신이 말하는 신일 까닭은 또한 없는 시점에서, 다시 당신의 말은 말할 가치가 없는 ‘헛소리’가 될 수 있을 뿐이야.”
은결의 답은 틈을 두지 않고 날아온다. 마스터는 그러한 순발력 있는 은결의 말이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주먹을 쥐어 입에 대고 쿡쿡거리며 은결을 칭찬했다.
“자네는 정말 똑똑하군. 정말로, 정말로 말야.”
그리고 마스터는 고개를 다시 들고 은결을 바라본다.
“어쨌거나 안심해도 좋네. 지금 우리는 과거처럼 과격한 방법을 추구하고 있진 않네. 답은 하나일지라도, 방법은 여러 가지이기 마련이니 말이니. 그래서 지금 노리는 것은 그저 자네 한 사람일 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마스터는 걸음을 딛는다. 딛는 순간, 그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은결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마치 순간이동 같았다. 그러나 은결은 이것이 순간이동이 아니라 관성을 거의 무시하다시피한 가공할만한 순간가속, 순간정지임임을 알아챈다. 은결은 새삼스레 그의 강함에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으-”
“은결!”
쿠로사카가 다급하게, 한 박자 늦은 타이밍으로 키리야미를 찔러온다. 마스터는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쿠로사카의 검은 갑자기 보이지 않는 실에 묶인 것 처럼 움직임이 우뚝 정지한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위로 당기는 거대한 힘을 느낀다. 시선을 위로 돌리니 이리세가 자신보다 약간 더 높은 곳에서 천을 잡고 당기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녀는 쿠로사카를 보며 상큼하게 웃는다.
“(그쪽의 상대는 나겠지.)”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향해 날아간다. 마스터는 힐끗 그런 전투의 양상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은결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럼 이쪽도 시작해 볼까.”
은결이 주먹을 날렸다. 역장에 휘감긴 주먹이 대기를 찢어발기는 속도로 날았다. 마스터는 한 발자국을 움직여 그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은결의 주먹을 휘감던 역장이 앞으로 뻗어나가더니 뒤로 돌아 마스터를 향해 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그때, 은결은 허리를 돌리며 낮게 마스터의 하체를 노리고 발을 걷어차고 있었다. 이중 공격. 마스터는 어느 것도 막지 않았다. 뻗어나간 은결의 역장은 그의 목덜미 바로 앞에 이르러 쾅! 소리를 내며 막혔다. 그의 역장이 은결의 역장을 막아낸 것이다. 마스터는 은결을 바라보며 기쁜 얼굴로 말했다.
“후후. 발전했군.”
“당신 덕분에!”
은결은 답하며 뒤로 물러났다. 먼저 형성되었던 역장이 사라졌다. 수면으로 떨어져 내린 것 처럼, 은결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힘의 기색이 무수히 발생하며 탄환처럼 뻗어 마스터를 덮친다. 마스터는 기쁜 표정을 보이며 손을 한바퀴 돌린다. 은결의 모든 공격이 그가 형성한 역장이 막혀 사라진다.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은 자세로 손만 조용하게 거두곤 은결을 향해 그윽하게 말한다.
“좋아. 상상했다는 말이군.”
“--상상했지!”
씹어 토하듯 답했다. 그리고 은결은 한 쪽 손을 뻗는다. 힘이 팔 주변으로 모여들더니 변형을 이루며 마스터를 향해 뻗어나간다. 단순한 직선 공격이 아니었다. 각 공격의 목표로 하는 위치와 방향, 속도가 각각 달랐다. 한 순간에 마스터의 전신이 포위당한 셈이다. 그리고 각 역장의 첨단은 어느 것 하나 없이 분자 하나, 둘 정도의 면적 밖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극단적인 속도가 극단적인 힘의 집중과 함께 날았다.
“후후후- 역시.”
마스터는 기쁜 웃음을 흘리며 처음으로 빠르게 발을 밟았다. 그는 몸을 뒤로 물리며 손을 떨쳐냈다. 소용없다! 은결은 내심 외쳤다. 기대한 대로 그가 형성한 역장이 자신의 역장을 막지 못하고 관통당하는 감촉이 느껴졌다. 극단적인 힘의 집중을 이룬 만큼 어지간한 역장으로는 방어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쿠콰콰콰쾅! 거대한 폭음이 연속적으로 나며 은결의 팔을 뒤로 튕겨진다. 마스터의 역장이 폭발하면서 자신이 형성해 돌진시키던 무수한 역장이, 소멸되었고 그 반동이 고스란히 팔에 돌아온 탓이다.
“웃...!”
충격에 저릿한 팔을 잡으며 은결은 서둘러 뒤로 물러난다. 마스터는 처음과 같이 여유로운 태도로 허공에 서서 은결을 바라본다. 은결은 이를 악물고, 다시 그를 향해 달려간다.
쿠로사카는 상체를 뒤로 젖힌다. 힘의 줄기가 아슬아슬하게 옷 위로 스쳐 지나간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몸을 들어올리지 않고, 대신 역장을 제거해 몸을 아래로 뜰어뜨린 다음 다시 역장을 형성해 대각선으로 차고 올라가며 이리세를 노린다. 이리세는 높은 곳에서 쿠로사카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휘두른다.
역장의 탄환이 무수히 발생해 쿠로사카를 노린다. 쿠로사카는 칼을 거꾸로 잡고 양 손을 모아 작게 중얼거린다. 그녀의 주변으로 전법이 발생하며 회전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마침내 쿠로사카를 감싸는 구와 같은 형상이 된다. 그 위로 이리세의 공격이 쏟아진다. 콰콰콰콰쾅! 육중한 충격음이 연속해서 이어지지만 쿠로사카의 방어를 뚫지 못한다. 차갑게 공격을 계속하던 이리세의 표정에 처음으로 이채가 스친다.
“(불과 얼마 전에 싸웠던 이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강해졌군요.)”
말하는 도중에도 그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에너지가 역장이 되어 짜여지고, 짜여진 역장이 쿠로사카를 향해 짖쳐든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이 쿠로사카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구는 곧 이리세의 정면에 까지 짖쳐들었고, 공격의 순간이 되어 쿠로사카를 감싸던 구가 사라지며 그녀의 검이 이리세를 향해 날아든다.
“(흥!)”
이리세는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 한 손을 뻗어 쿠로사카의 검격을 받는다. 키이잉! 예리한 충돌음이 나며 키리야미의 날이 이리세의 손앞에서 희미하게 떨리면서 멈춰선다. 쿠로사카는 자신이 그녀를 검격의 범위 안으로 넣을 수 있었던 것이 절반 이상 이리세가 노렸던 바라는 것을 이해한다. 재빠르게 역장을 밟고 몸을 띄운다. 그러나 늦었다. 쾅! 복부를 역장이 찔렀다. 몸을 보호하고 있던 술식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가 파직, 거리며 그 모습이 흐려진다.
“......”
쿠로사카는 겨우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이리세와 거리를 둔 곳에 선다. 굳건하게. 무너지지 않을 산맥처럼. 그러나 양손으로 키리야미를 쥔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전황을 살피는 표정으로, 어울리지 않는 핏줄기가 입술 끝을 타고 흐른다. 방금 복부에 한방 먹은 것이 내장을 울렸던 모양이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어둡게 그녀를 지배했다. 지난번 싸움에 비해 적지 않은 성장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일대 일로 리리스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쿠로사카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 싸움은 일종의 전초전, 혹은 탐색전 같은 것이니까. 그리고 이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이미 함정에 빠졌다는 증거다. 쿠로사카는 힐끗, 은결을 바라본다. 그는 막, 마스터와 떨어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은결도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은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사카는 몸을 날려 은결의 옆에 섰다. “(괜찮아?)” “(괜찮아.)” 작게 이야기가 교환됐다. 이리세는 그 모습을 눈살을 찌푸리며 보았다가 느긋하게 마스터의 옆으로 가서 시립했다. 먼저, 마스터가 말했다.
“묘하게 여유롭군. 혹시 이 도시에 펼쳐져 있는 결계를 믿고 있는 건가?”
“...그래.”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는 그가 도천시에 들어오고 나서 작성되었다. 그가 이 결계를 알아보았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결계의 상세한 효과 같은 것은 알 리가 없으니까.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대단한 결계다. 논리구조라는 것은 관념적이기도 하지만 흔히 시공간적인 것이기 마련인데, 이 결계를 구성하고 있는 논리적 구조는 시공간적 특성을 극소화해서 언제, 어디서든 펼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논리구조가 관념적이라는 것은 1다음에 2가, 2다음에 3이, 3다음에 4가, 4가 다시 1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논리를 말한다. 이 논리적 구조는 실질적인 형상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것이 시공간적인 논리구조라는 것은 그것이 1, 2, 3, 4와 같은 논리적인 순서가 시공간 가운데 구현될 때, 가령 사각형과 같은 구조를 흔히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가장 시공간적인 논리구조는 대표적으로는 건축이 있다. 거대 건물의 건축은 철저하게 위치와 시간의 문제에 따른 논리적인 해결을 밟아감으로서 가능해지는 작업이다.
결계는 흔히 관념적인 순서를 가지면서 동시에 시공간적인 구조를 가진다. 그러니까 그것은 숫자가 등차로 진행되는 것과 같은 관념적인 논리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건축물과 같은 엄격한 시공간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오망성과 같은 특수한 상징기호들이 많은 결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행의 진이 시공간적인 특성을 거의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이러한 특정한 형상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결계가 펼쳐졌다는 것을 말한다. 수백명의 술자가 이 결계를 차례대로,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형성했지만, 그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제약은 전혀 없었다. 물론 현실에 힘이 구현되어야 한다는 조건에 제약된 순간 순수하게 관념적인 논리구조의 결계일 수는 없다. 그러나 힘이 현실에 드러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는 시공간적 제약의 최저선에 걸쳐진 채 이루어진 결계가 지금 도천시를 덮고 있는 결계다.
“이런 결계라면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고, 실제로 빠져들었고 말았군. 그래도 이런 결계에 우리를 빠뜨린 정도로 안심한다는 것은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네.”
“그건 당신이 이 결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지.”
은결은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
마스터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손뼉을 친다. 그러자 도천시 전역에서 엄청난 사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은결과 쿠로사카는 경악한다. 이 사기는- 명백한 사념체였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백, 이백?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다. 어쩌면 천을 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개개 사기의 농밀함이라니! 하나하나가 숙련된 술자가 굳은 각오를 해야만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괴물들이다. 마스터는 경악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렇다곤 해도, 이쪽의 준비를 모르는 것은 그쪽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상황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네만.”
은결은 이를 악문다.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80명에 달하는 술자들이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된 듯하다.
*이번 화는 김! 그리고 푸른하늘 아니고, 푸른거울님 감사.
*저는 역시 이 글이 어렵지 않다고 여깁니다. 완결되고 시간 좀 흐르면 다들 어렵지 않게 이해하시게 되라라 봅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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