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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88화 (288/300)

#   289-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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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도천시에서,

길을 걷던 사람이 갑자기 멈췄다.

텔레비전을 보며 침대 위에서 낄낄대던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식당에서 젓가락을 곤혹스레 사용하던 사람이 굳은 얼굴로 식기를 놓았다.

대형매장에서 큰 카트를 끌고 쇼핑을 하던 사람이 멈췄다.

절에서 명상을 하던 사람이 눈을 떴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던 사람의 평화롭던 눈살이 깊게 찌푸려졌다.

따스하게 공원에서 햇살을 쬐던 노인이 건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를 설득하던 노인이 짜증과 당혹이 섞인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소 귀 대신 경을 듣던 소녀가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초조하게 한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후우- 후우-”

은결은 긴장한 숨을 내밭으며 정면을 바라본다. 대지가 먼 곳에서 하늘과 만나고 있었다. 신발을 신지 않은 그의 발아래에는 도천시가 넓게 펼쳐져 있고, 바람은 등을 떠밀듯 강하게 불어온다. 시선으로는 포착되지 않지만 은결은 느끼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빠르지만, 올 것이 왔다. 은결은 그들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결계를 작성한다.

관념 가운데 기호를 작성하고, 거기 맞춰 에너지를 운동시킨 다음, 그는 양손을 넓게 펼친다. 웅- 하고 은결의 내부가 울린다. 외부에서 감지할 수 없는 지극히 내밀한 울림이다. 그것은 그 내밀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노시스트가 탐지할 수 없도록 수행이 특별히 준비한 힘의 운용방식이다. 그것은 신호가 되어 곧장 도천시 전역으로 전달되었고, 이 신호를 기다리던 이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순번에 맞춰 기호를 외부로 현현시켰다. 그것이 완료되었을 때, 에너지의 흐름이 그 기호를 순서대로 관통하며 도천시 전역을 덮는 거대하고 강력한 결계를 형성시켰다.

‘됐다.’

긴장으로 인해 계속 거친 숨을 쉬며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각적으로는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결계는 엄존하며, 자신의 예상이 옳다면 이 결계는 그노시스트들을 큰 곤경에 빠뜨릴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리면 된다. 은결은 긴장을 숨죽이기 위한 심호흡을 한다. 머리 속은 결계를 유지하기 위한 복잡한 계산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어려운 부분은 미리 받았던 자료를 보고 기호를 작성해 힘의 유동을 패턴화 시켜 놓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긴장이 가라앉자, 자신의 몸속을 들락거리는 힘의 유동이 느껴졌다. 거대하고도, 마치 달라붙어 전신을 핥고 있는 듯한 기이한 느낌의 힘이었다. 세포 한 조각 한 조각이 구속당하고 있는 것 처럼 야릇한 속박이 느껴졌다. 자신은 이 힘의 운동을 위한 통로라기보다 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르리라 싶었다.

‘그게 그거 인 것 같지만...’

그때 그림자 하나가 은결의 옆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중력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운동은, 그러나 은결의 바로 옆에 진을 형성해 그위에 부드럽게 착지함으로서 정지했다. 무읖을 꿇엇다가 서서히 일어나는 모습이 눈부시다. 가녀린 허리에 긴 검을 차고 있는 지극히 아름다운 소녀. 은결은 반사적으로 반가운 얼굴을 하고 말한다. “(유리에.)” 그녀는 약간 흐트러진 머리칼은 기품 있게 정리하면서 은결을 보며 그윽하지만 강하게 웃었다.

“(역장, 하나 부탁해도 괜찮겠지?)”

“(아, 응.)”

은결은 서둘러 그녀의 발밑에 역장을 형성한다. 이런 고공에서 전투를 자유로이 수행할 수 있는 술법은 역장을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쿠로사카도 익숙하지 않은 진법을 작성해 잠시간 고공에 몸을 고정시켰던 것에 불과하다.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몸을 고공에서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마워.)”

쿠로사카는 자신이 작성했던 기호를 지우고 그 위에 올라섰다. 투명한 역장은 분명한 물리력을 지니고 그녀의 몸을 받았다. 고무 위를 밟은 듯한 자신의 진과는 다른 딱딱함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은결은 약간 걱정스레 말한다.

“(이번 전투는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진을 형성하는 분들 가운데 사분지 일 정도는 직접전투를 위한 기호를 담당하고 있어. 일시적이지만 그들은 이런 고공에서의 전투도 자유로울 거야. 굳이 네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걱정해 주는 거야?)”

쿠로사카는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물어본다. 은결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는 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답한다.

“(그래.)”

“(고마워.)”

장난스러웠던 쿠로사카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린다. 은결은 그녀의 표정에서 무슨 말을 해도 그녀가 이 전투에서 발을 빼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 고마웠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약간 한숨 같은 것을 쉬었다가 한 쪽 손을 뻗어 쿠로사카를 향해 힘을 발휘한다. 쿠로사카는 자신의 발목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힘을 느낀다.

“(이건?)”

“(한 동안 역장을 네 뜻대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내가 하는 것 처럼 복잡한 응용은 불가능하지만, 고공에서 언제든 발판을 만들 수는 있어.)”

“(너, 정말 굉장해 졌구나...)”

쿠로사카는 자신의 의지로 역장을 형성해 보고 감탄한다. 그 계통의 기호체계를 전혀 모르는 이가 의지만으로 술식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힘과 기호의 구성을 타인의 몸에 이식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은결은 한 마디만 한다.

“(조심해.)”

“(너야말로 다치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긴장을 억누르는 장난스런 격려를 하며 쿠로사카는 은결의 발치로 시선을 둔다. 흰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이 보일 뿐,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신발은?)”

“(음, 집에서 급하게 빠져 나오느라.)”

은결은 답한다. 쿠로사카는 그 답이 어딘가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항도 아니었기에 쿠로사카도 더 묻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말이 끊어지고 긴장감이 먼 곳의 파도처럼 서서히 높이를 더해갔다. 곧, 물결의 정점에서 들끓던 포말이 터지는 것 처럼, 은결은 작고 뚜렷하게 말했다.

“(--온다.)”

문장의 생략된 부분은 이러하다. ‘그노시스트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수행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페이지를 덮었다. 투박하게 제본된 책은 수십 년은 된 듯 낡아 있었다. 거친 인쇄로 낡은 표지 위에 찍혀진 제목은 ‘파블로프는 우리의 희망일 수 있는가?’였다. 수행 자신이 20년도 전에 적었던 길진 않지만 치밀하고 복잡한,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글이었다. 덮여진 글의 옆에는 이번에 새로 출판하게 된 자신의 소책자가 놓여져 있다.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한동안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불투명한 유리를 넘어 산란되어 들어오던 하찮은 빛들이 뚜렷하고 깊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찾아들었고, 가을의 서늘하고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행은 그 하늘을 계속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책장을 바라봤다. 다양한 언어로 인쇄된 무수한 책들이었다. 수행은 그 책들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했다. 산화되어 가는 종이의 내음이 짙은 향수처럼 폐부를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

그는 다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눈길은 서늘하고 슬펐다.

*추천해 주신 맑은하늘님 감사~

*짧다. 그래도 장면 전환 상 어쩔 수 없음!

*제가 호러에 좀 약해서 콘뎀은 못하겠고, 구공기나 할까 합니다. 남자라면 광선검! 오랜만에 건 퍼레이드 마치도 해보고 싶군요. 전에 할 때는 현란무답 되는 데만 열심이었는데, a+엔딩도 보고 싶음. 근데 조건을 모른다는 게 문제. 참고로 건 퍼레이드는 바람피다가 칼침을 맞아 죽을 수도 있는 훌륭한 자유도를 가진 게임입니다.(...) 린다큐브도 그렇고, 알파시스템도 독특한 제작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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