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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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연인으로 지내라고?”
은결은 당황했다. 세연 때문에 분노한 푸른 이빨이니 그에 관계된 제안을 해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평생 연인’이라니. ‘결혼해라’는 말보다 과격하다. ‘결혼’은 적어도 ‘평생’이 의무화되지는 않는다. 푸른 이빨은 이를 갈면서 자신의 발언을 확인한다.
“그래! 더 정확히는 이 계집이 너를 원하지 않게 될 때 까지다. 이것만 해도 짜증스런 거래다! 이 계집은 너 따위 병신과 지내기에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까우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군. 평생 이 계집과 연인으로 지내는 것이 ‘제안’이라니! 네놈이 무언갈 내 놓아야 올바른 계산이 되는 것인데!”
은결은 반론하지 않았다. 어쩌면 푸른 이빨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세연은 아름답고 선하며, 현명하기까지 한 여성이다. ‘사랑’이 신을 만든다. 세연은 그런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러 매력에 무관하게 은결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는 못한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한 세상에서, 가치, 혹은 가치라고 여겨지는 것은 언제나 타자에 의해 최종적으로 구성되거나 인식될 뿐이다.
‘손이 그러하듯이.’
은결은 속으로 차갑게 비명을 지른다. 아프다. 그는 두 손을 확인하듯 꽉 쥔다. 잉- 하고 오랜만에 시야가 흔들린다. 세연을 상처 입혀야 한다는 사태의 무게가 다른 여러 생각들에 뒤섞여 거대한 압력으로 다가온다. 은결은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며 그 압력을 견뎌낸다. 자기에게 집중되어 무게를 더하는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은결은 조용하게 대화를 다음으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내가 받게 될 것은 무엇이지?”
“네가 받을 것은-”
푸른 이빨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끊는다. 은결은 차분하게 기다린다. 그는 증오와 주저와 갈등이 좁은 타자의 얼굴 가운데 그득하게 드러나는 것을 본다. 다시금 의문스레 여겨진다. 저렇게 싫어하면서, 해야 한다는 자체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는다. 푸른 이빨이 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푸른 이빨과 같은 카미가- 인간을? 다시금 믿어지지 않았다. 푸른 이빨은 다시 한 숨을 쉬고, 겨우 말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내 힘이다. 그것을, 모두 넘겨주지.”
“--!!”
경악에 정신이 펄쩍 뛴다. 자신의 힘을 ‘모두’ 주겠다고? 힘에 대한 그의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은결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포기한다고? 은결에게 잠재한 푸른 이빨의 힘이 가지는 가치는 불문가지다. 전성기의 수행이라도 그 정도의 힘을 다루었을지는 의문스럽다. 은결은 이것이 그가 내놓을 수 있는 최대의 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푸른 이빨은 놀라는 은결의 모습을 보며 불쾌하게 콧소리를 낸다.
“-흥. 역시 회가 동하는 모양이지? 네가 이 계집이 원하는 만큼 함께 있어 주는 것,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이 계집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 이것을 지켜 준다면, 나는 기꺼이 네가 가지고 있는 내 나머지 힘 모두를 해방해 네게 주지. 네놈이 그노시스트라고 불리는 짜증스런 개새끼들과 싸우려 한다면, 내 힘은 커다란 도움이 될 거다.”
은결은 떠보기로 한다.
“어떻게, 믿지? 지난번과 같이 내 몸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
순식간에 시야가 하얗게 물든다. 꽈르릉! 꽈르릉! 거대한 에너지의 폭류가 푸른 이빨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밀어내려는 듯이 분출됐다.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이 노골적인 살기가 열처럼 느껴졌다. 빛의 중심에서, 푸른 이빨은 험상궂게 일그러진 형상으로 은결을 향해 포효한다.
“-닥쳐라! 나는 너희들 인간과 같이 하찮고 천박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신이며 위대한 자로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발언한 것에 대해 책임진다! 너 따위 쓰레기가 의심해 좋을 만큼 내 발언은 가볍지 않다!”
“으-”
우르르르-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은 거대한 분노가 서서히 저물고 주변 광경은 다시 정상을 찾는다. 세연의 방은, 지금 소동에도 조금 흐트러졌을 뿐, 이번에도 전혀 상하지 않았다. 은결은 감탄한다. 그노시스트의 결계를 술자가 모르도록 꿰뚫었던 때에 이미 증명된 것이지만, 푸른 이빨은 술자로서도 역시 초일류다. 아마 자신이라도 저런 힘을 이렇게 난폭하게 분출시키고 주변에 전혀 상처가 없도록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푸른 이빨은 여전한 분노가 머문 표정으로, 그러나 차분하게 은결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러나, 네 말에도 일리가 있겠지. 그게 의심된다면, 내가 작업할 시간 동안 그 알 수 없는 힘을 작동시켜 놓아도 좋다. 그렇게 해 둔다면 믿을 수 있겠지?”
어딘가 쓸쓸하고 슬픈 목소리였다. 은결은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향하는 대상이 자신이거나 푸른 이빨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이야기가 운반하는 쓴맛은 모두 세연을 위한 것이리라 싶었다. 거기에 와서 은결은 푸른 이빨이 정말로 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저렇게 오만하고 강대한 존재가 하찮은 인간을 위해 여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은결은 진정으로 그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강대하고 오만한 존재는 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답은 없어도 좋았다. 은결은 지금 진심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따스함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가라앉은 마음이 갈등을 진화하고, 세계의 모습을 진정시킨다. 이제 푸른이빨이 자신을 도운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할까?”
푸른 이빨은 말한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은결을 보며, 그는 그것이 제안을 받아들인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황당한 장면이었다. 은결은 고개를 저었다. 푸른 이빨은 분노한다. 얇은 대륙판이 진정시키고 있던 들끓는 마그마의 용틀임처럼, 푸른 이빨은 이성이 아득하게 끊어지는 분노를 느낀다. ‘내 제안을 네가 감히--’ 이때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마음이 있다. 네가 감히 이 계집을 울리겠다고! 치고 들어오는 분노는 다른 이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네가-!!!”
힘이, 힘이, 힘이, 힘이, 그리고 힘이! 힘이 목표가 가기도 전에 다른 힘이 도달하고, 그 힘이 목표에 가 닿기도 전에 힘이 폭발했다. 힘과 힘의 연합이 순수한 분노의 결정이 되어 은결을 집어먹기 위해 달려든다. 은결은 그 거대한 분노의 연합을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든다. ‘상상하도록 하게.’ 그리고 역장이라고 불리던 것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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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무런 변화 없이, 한 줌의 소리도 없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에너지의 물결이 해소되었다. 전율. 푸른 이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이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건 한 번도 접해 본적이 없다. 아니다! 한 번 접한 적이 있다. 그노시스트의 수장이라 자칭하던 자. 그자가, 이런 힘을 사용했었다.
푸른 이빨은 자신의 존재자체가 지금 은결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공포- 가 떠오르려다 저물고 만다. 이 개새끼 앞에서 ‘공포’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감히 이 아이를 능멸하려는 저 개자식에게는! 네게 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이 아이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외에 방법은 없는데? 차마 그럴 수는- 은결은 갈등하는 푸른 이빨을 향해 웃는다.
“다행이야.”
“뭐?”
“나는 당신을 없애고 싶지 않았으니까.”
“너-”
“당신이 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알았어. 하지만, 이것은 역시 그녀와 나 사이의 문제일 뿐이야.”
은결은 자상하게 웃는다. 그의 얼굴을 보며 푸른 이빨은 짜증과 분노를 새삼 느낀다. 그러나 푸른 이빨은 이제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은결은, 저 좆병신은 자신의 존재를 손아귀에 올려놓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신의 제안이 그에게 거의 무의미하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푸른 이빨은 얼마 남지 않은 의미의 영역에서 확인 차 질문을 골라 던진다.
“빌어먹을! 그건 대체 뭐지?”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상상력일 뿐이지.”
“미치광이 같은 소릴!”
“하하, 그야 당신이 말하는 대로 나는 미쳤으니까.”
은결은 서늘하게 웃는다. 푸른 이빨은 그의 웃음이 못 견디도록 불쾌했다. 그리고 계집아이를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못 견디게 참혹했다. ‘그러니까 사랑인 것 같다.’ 와 같은 말을 그토록 절절하게 중얼거리던 계집인데, 그 절절한 마음은 이제 무참하게 꺾여야만 한다. 계집아이가 이 병신의 몸짓 하나에도 부여하고, 부정하고, 자아내고, 의심하고, 무서워하던 무수한 의미들도 같이 꺾여 나가야 한다. 미간을 찡그리고 푸른 이빨은 다시 물어본다.
“혹시 키리야미의 후계자인 계집 때문이냐?”
“...그녀와는, 상관없어.”
살짝 당황하며 답하는 은결을 보며 푸른 이빨은 키리야미의 후계자를 미리 찢어 죽여 두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아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특별히 생각해둔 상대도 없다는 말일 텐데, 꼭 그래야 하나? 네 아비도 교미 상대로 이 계집아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는데. 물론 이 계집아이도 장래 교미 상대로 너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음, 미안하지만.”
‘교미’에 조금 당황하며 은결은 거절한다.
“후-”
왜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런 하찮은 계집 하나의 마음에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인간 따위는 모두 짐승에 불과한데. 푸른 이빨은 한숨을 쉰다. 그리고 푸른 이빨은 다시 세연의 속으로 침잠한다.
은결은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세연을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푸른 이빨이 조종하던 그녀의 표정은 단숨에 온화한 인상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자신의 눈이 은결의 눈과 마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얼굴이 목까지 빨갛게 물든다. 은결은 그 모습을 보고 잠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런 다음, 말한다.
“세연 양.”
세연에게 은결의 목소리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추천 주신 가바크 님에게 감사! 그리고 인정투쟁은 그 광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명제는 아니죠. 하하.
*푸른이빨이 쿠로사카를 습격했으면 어떤 분이 끈질기게 원했던 고어데이즈 삘이 났을지도 모르겠군요.(...)
*골골골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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