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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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봤지만 역시 큰 집이라 사소하게 감탄하며 은결은 벨을 눌렀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곧 문이 열리며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세연이었다. 그녀는 약간 수줍고 아주 반가운 웃음을 보이며 은결을 정원을 거쳐 집안으로 안내했다.
집 안에는 세연네에서 집안일 돌봐주고 있는 몇 사람을 제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과거 몇 번 이 집에 들리며 은결도 얼굴을 어느 정도 익힌 사람들이었다. 아주머니이거나 아저씨인 그들은 은결과 눈이 마주칠 때 옅게 웃어보이곤 했다. 그 옅음에 담긴 의미는 그러나 옅지 않았던 듯,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세연의 얼굴을 수줍게 상기되었고, 은결도 따라 쑥스러움을 느꼈다. 곧 두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세연이 침대에 앉으며 은결이 들고 온 봉투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뭐야?”
“과자를 구워봤어. 음- 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은결이 그러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세연은 약간 애매한 표정을 보였다. 은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가 하나 빠졌거든. 아프진 않았는데, 상한 이가 있었던 것 같아. 이는 매일 열심히 닦았는데... 혹시 더 그런 게 있을지 모르니 병원에 가기 전 까지는 딱딱한 걸 씹는 건 하는 건 피하려고.”
“저런. 유감인걸.”
“-헤헤, 하지만 한 두 개 정도는, 역시 괜찮겠지?”
어리게 웃으며 세연은 은결이 내민 봉투를 받아 고운 손길로 내용물을 뒤척여 과자를 하나 꺼냈다. 정갈하게 정리된 별 모양의 과자였다. 드문드문 크게 박힌 초콜릿 조각이 풍미를 더했다.
“아마도.”
은결은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마치 허락이라도 되는 양, 세연은 들고 있던 과자를 입안으로 옮겼다. 이어서 귀엽게 입을 오물거렸다. 세연은 곧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녀는 은결의 과자를 품평했다.
“음! 역시 맛있어.”
“만든 보람이 있군.”
은결이 만족한 표정을 보이자 세연은 불만스레 입을 삐죽인다.
“치, 하지만 이래선 평생 가도 너한테 내가 만든 걸 먹여주고 ‘맛있다’는 소린 못 들을 거 같아. 남자가 이런 거 너무 잘하는 것도 밉상이라는 것도 좀 알아 둬.”
“아냐. 그렇게 입이 까다롭진 않은걸.”
“이런 걸 먹여놓고 ‘맛있다’고 말하면 그게 다 ‘맛있다’로 들릴 줄 알아? 뻔히 네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아는데. 다 인사치례지. 나는 네가 ‘맛있다’고 정말로 감탄하는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거야.”
은결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민성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에게 ‘너는 정말 대단해’ 하고 이야기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는데. 자신은 정말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건 대단한 게 아냐.’ 차갑게, 스스로를 찢어내는 칼처럼 엄격하게, 민성은 말했다. 기표와 기의가 일치되지 않는 세계에서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렇지 않다.’는 말은 무력할 뿐인 것 같았다.
“은결? 무슨 생각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냐.”
은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피한다. 세연은 그가 대답하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읽고 가슴이 죄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나와 자신을 공유하지 않는다. 거기서 큰 파도처럼 불안이 넓고 빠르게 세계에 퍼져나간다. 이 거부가 다른 부정으로, 나무의 뿌리가 흙을 파헤치며 연결되듯 연결된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그래서 의미는 끝없이 부정되고 덧칠되며 지워졌다 다시 채워짐으로서 결국 무지로만 귀결되는 것 같다. 세연은 조금 어렵게 그런 감정을 떨쳐내며 묻는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 온 거야? 어제 전화 받았을 때는, 헤헤, 무척 기뻤지만 사실 조금 놀라기도 했거든.”
잠시 은결은 당황한다. 무어라 답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은결이 오늘 세연을 찾은 이유는 간단하지만 복잡했다. 간단하다는 것은 ‘헤어짐’을 통보하러 왔기 때문이고, 복잡하다는 것은 그 ‘헤어짐’의 이유가 그녀가 싫은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빌고,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은결은 세연이 아프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녀가 고통 받지 않기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모순이 대답의 갈 길을 잠시 막았다. 하지만 막힌 골목은 잠시였다. 가야할 길은 분명했기에, 망설임과 주저는 곧 시리게 뚫어진 길로 대체된다.
“실은-”
어렵게 자신을 설득하며 말을 시작한 은결은 자신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을 뚜렷하게 느끼며 입을 연다. 이상하게 깊은 언어가 물질적인 무게를 가진 마냥 툭툭 떨어지며 방안에 퍼져나갔다. 세연은 계속 그의 말을 기다린다.
“-오늘로 너와 헤ㅇ-”
‘-ㅓ지려고 해.’ 얼마 안 되는 강철이 거대한 생명을 소멸시키는 검이 되듯, 얼마 안 되는 기호가 모여 만들어지는 잔인한 관념의 칼날. 하지만 은결은 그 잔인함을 완성하지 못한다. 결계가 방을 덮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공격이 그를 엄습한다. 은결은 몸을 뒤로 물리며 역장(이라 이야기 되던 것)을 펼친다. 에너지의 격류가 가슴팍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뒤따라 날아든 파괴의 창칼이 역장에 막혀 산산이 흩어진다. 흩어진 에너지가 공간에 머물며 한동안 계속 으르렁거린다. 은결은 분노해 외친다.
“무슨 짓이지!”
“개새끼야! 거기서 조금만 더 지껄이면 살도 죽도 못하게 만들어주마! 피부의 겉가죽을 뜯어내고 사지를 바스라뜨린 다음, 눈알에 말뚝을 박고, 상처를 소금에 절여 주마!”
분노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세연-푸른 이빨이 은결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의 양손에 파직거리는 전격은 용틀임하는 힘의 크기를 증명하고 있었다. 은결은 그의 맹렬한 살기를 느끼고 당혹감과 짜증스러움을 느꼈다.
“너-”
“닥쳐 씨팔 새끼야! 혓바닥을 잘라 씹어 먹어버릴 테다!”
그러나 푸른 이빨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손을 휘두른다. 좁은 방안이 에너지에 삼켜지며 가장 화려한 ‘죽음’의 광경을 드러낸다. 파직, 파직! 파작! 포식자의 트림 같은 스파크 소리가 단속적으로 이어지며 빛이 사라진다. 하지만 은결과 푸른 이빨은, 물론 둘 다 상처하나 없이 무사했다. 방안 역시 약간 어지럽혀진 것을 제하면 상하지 않았다. 은결은 방의 상태를 보고 푸른 이빨이 강대한 살의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능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판단하고 다시 대화를 시도한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너 같은 병신이 감히- 주제에 걸맞지 않은 짓을 하기 때문이다!”
“주제에 걸맞지 않다니?”
“너, 이 계집애와 헤어지려고 했지? 그 따위 짜증나는 꼴을 보고만 있으라고! 그 따위 짓을 하는 꼴을! 너 따위가!”
살의가 에너지와 함께 용틀임한다. 정말로 씹어 죽이기라도 할 듯한 사나운 눈빛으로 푸른 이빨은 은결을 바라본다. 은결은 황당함을 느낀다. 그의 갑작스런 이 공격이 자신과 세연이 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니, 푸른 이빨이 조금, 아니 상당히 광기와 친한 신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없앨 수밖에 없는가.’ 은결은 내심 한숨 섞인 결론을 내리고 기대 없이 항변한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냐! 그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이건 모두 네 잘못이다! 네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와 이런 관계를 가졌을 이유가 없어!”
하지만 은결의 생각과 달리 푸른 이빨은 거기서 우뚝, 움직임을 멈춘다. 그는 으득, 하고 주변에 크게 들릴 정도로 과격하게 이를 갈면서 은결을 향해 회한을 섞어 증오스레 지껄인다.
“그래... 최초로 미친 짓을 한 것은 나였지. 너 같은 쓰레기와-”
‘인정, 했다?’
단순히 ‘미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푸른 이빨을 한층 알 수 없었다. 푸른 이빨은 눈을 감고 양손을 꽉 쥔다. 파르르- 하고 푸른 이빨이 차지한 세연의 몸이 잘게 떨린다. 바다를 떠다니는 빙하가 수면 아래 진실한 모습을 숨기고 있듯, 크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그의 움직임 속에서 크나큰 감정의 격류가 저절로 읽혔다. 대체 뭘까? 은결은 당황과 의문을 동시에 느끼며 그를 계속 바라봤다. 결국 푸른 이빨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좆병신아. 거래를 하자.”
“거래?”
“그렇다. 거래. 하- 내가 이런 더러운 말을 직접 사용하게 될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군. 그러나 굴욕적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으니... 크으!”
“무슨 거래?”
“너 같은 정신병자라도 이해하기 쉬운 아주 쉽고 확실한 거래다. 너는 잃는 것 없이 얻기만 하는, 어처구니 없는 거래지. 아무리 네가 좆병신에 뇌수가 썩어 문드러진 쪼다새끼라고 해도 이 거래에는 눈깔을 뒤집고 침을 흘리리라 장담한다.”
“서론이 길군.”
은결이 말했다. 푸른 이빨은 짜증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한숨을 쉰다. 어지간히 거래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의 성격이라면 거래에 앞서 뜸을 들이는 짓을 할 리가 없다. 은결은 거래 자체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푸른 이빨 씩이나 되는 존재가 갑자기 거래를 제안했다는 현상은 흥미로웠다. 저렇게나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있으면서 굳이 거래를 하려고 한다는 모순. 왜? 그가 제안할 거래는 무엇이고, 그 거래를 통해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을 무엇일까?
창날 같은 살기를 은결에게 향하며, 푸른 이빨은 못 견딜 걸 토해내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한다.
“-내 제안은 간단하다. 앞으로 평생, 이 계집과 연인으로 지내라.”
*초기 설정에 푸른 이빨은 성별이 여자였고, 은결에게 들러붙어 아웅다웅 싸우고 지내고, 성격도 지금보다 온화한, 말하자면 히로인 중 하나 였던 시절이 있었던 건 전에 이야기 했었습니다만, 지금도 그러길 바라시는 분들이 꽤 많이 보이는군요.
*성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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