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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79화 (279/300)

#   280-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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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빌딩 위에 은결은 눈을 감고 서 있다. 그의 양손은 그러나 쉬지 않고 있다. 그는 관념 가운데 기호를 연결해 구조를 형성하고, 거기 에너지를 흘려보내 시스템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었다. 쭉 해오고 있듯, 이번에 얻은 정보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양손의 바쁜 움직임은 기호의 전환과,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한 상상 속의 동작들이었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은결은 스스로가 구현한 관념의 산물에 압도되고 있었다.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知), 지, 그리고 지. 광대한 지의 건축물. 어떤 것은 그 자체로는 거의 쓸모가 없었고, 어떤 것은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실용성이 있었다. 그러나 쓸모의 유무와 무관하게 그것들은 모두 최고의 천재가 자아낸 지의 비단결이었다. 기호를 다루는 자로서 이것들을 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희열을 피하기 힘들 정도의. 자연히 은결은 괴로움을 잊기 위해 일에 열중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싶었던 것들의 파편도 조금이나마 맞춰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은결은 상상 속에 펼쳤던 기호의 세계를 물리고 음- 하고 새로이 종합해낸 정보를 토대로 추리를 시작한다.

‘-두 가지 정도의 정말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아버지는 추진했었던 것 같다. 둘 모두 현자의 돌에 관련된 실험인 것 같은데, 하나는 현자의 돌에 관련되었다는 것 외에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고,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그 제어에 관계된 것 같은걸...’

맞춰진 파편은 그런 것들이었다. 후자의 주된 골격은 공감주술적 특성을 띄게 되는 거대한 힘의 제어에 관련된 것으로 보였다. 공감주술적이라 하면 접촉이나 형태상의 유사함을 통해 본체의 속성이 이물에게 옮아간다는 사고를 말한다. 고대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사고방식으로서 사태를 종합하고자 하는 이성의 게슈탈트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프레이져 이후 ‘이쪽’ 세계에서도 접촉이나 형태상의 유사함을 통해 힘이나 효과의 전염을 노리는 ‘공감주술’이란 카테고리로 구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힘이 자기조직화를 통해 확장함으로서 주변을 ‘오염’시키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니, 역시 아버지는 나 따위는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천재다...’

은결은 한숨을 쉰다. 고안된 방법은 안티필드를 발생시켜 자기조직화-확장을 동시 진행하는 힘의 진행을 막아내는 것이다. 힘이 물질과 접촉하는 장(場)을 반장(反場)과 접촉시킴으로서 파장의 전달조차 불가능한 진공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게 기본적인 골자였다. 반물질을 보관하는 방법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완전하고 안정적인 안티필드를 발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수준이 너무 엄청나... 이 이하가 된다면 기껏해야 땜질수준일까... 이래서는 아무리 아버지라도 힘들다.’

은결이 조각을 맞춰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이것이 현자의 돌과 관계되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이런 힘이 필요한 현상 자체가 극히 희귀하고, 모든 것을 삼키는 힘이라는 것이 현자의 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수행이 여러 번 닥친 위기 상황에서도 완고하게 현자의 돌을 사용하길 거부하고, 역장의 진실한 정체를 은결에게서 숨겨온 것 이유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염이 어떤 것이고, 정말 위험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이 정보대로라면 긴급시에 제어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은결이 도저히 읽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다른 아버지의 프로젝트가 현자의 돌과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이상과 같은 추리에 연관해 생각할 때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일 뿐,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등비로증가함을고려할때오차1%는내계획에서지나치게크다.’ 이 문장이 거기 그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정도만이 실질적으로 발견해낸 자료였지만, 거기서 무언가 도출할 수는 없었다.

‘......’

사고가 막히자 현실이 돌아왔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도시의 밤을 닮은 끈적끈적한 우울함에 마음이 속박된다. 생각해야만 하는, 그러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우울했던 은결의 얼굴도 이내 조금 밝아진다. 칙칙한 밤의 저편에서 다가오는 소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쿠로사카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념체를 맡겠다고, 은결에게는 하던 일을 하라고 했다. 실제로 일이 다급한 면이 있었기에 은결은 고맙게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쿠로사카는 곧 건물의 옥상에 가벼운 착지음을 내며 내려섰다. 그녀는 은결에게 이해를 은결은 맑게 웃어 그녀를 맞았다.

“(유리에 어서와.)”

“(그래.)”

쿠로사카는 마주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건강한 그녀의 웃음을 보면서 은결은 저절로 ‘다행이다.’하는 마음을 품는다. 요 며칠간 그녀는 그간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였다. 은결은 타인을 읽는데 둔하지만 그녀의 태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민성과 늑대에 관련해 자신의 탓이 크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이 되어 쿠로사카는 아침부터 밝은 표정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간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죄책감 같은 것을 떨친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기쁘다. 은결은 정말로 그녀가 자신 때문에 아파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표정이 어딘지 작위적인 것 같긴 하지만...’

은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같은 것을 되씹어 보지만 곧 떨치고 만다. 눈치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느낌’따위를 신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가 강인한 웃음을 통해 손을 내밀며 보여주던 것- 그것을 신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어땠어?)”

“(문제가 될 만한 사념체는 없었어. 우리가 아니어도 이미 이곳에는 많은 이들이 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가볍게 답한 쿠로사카는 은결에게 묻는다.

“(그런데 은결.)”

“(왜?)”

“(이번 주 토요일에 데이트 하자.)”

앞뒤가 제거된 갑작스런 이야기였다. 은결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다.

“(에-)”

“(싫어?)”

“(그- 런건 아니지만 선약이- 있어서...)”

이번 주 토요일에도 세연과 만나기로 먼저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쿠로사카는 은결의 얼굴을 밝게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주저없이 이야기했다.

“(깨버려.)”

“(그럴수는...)”

은결은 한층 당황하며 거절한다. 그의 당황에는 의혹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녀 자신이 직접, 뚜렷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그리고 매너에 반하게 부탁을 해온다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왜 그러는 것일까? 오늘 아침부터 보여줬던 밝은 표정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은결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쿠로사카가 말한다.

그의 생각을 막는 것 같은 어투였다.

“(한 번쯤은, 괜찮잖아?)”

눈길과 눈길이 마주쳤다. 은결은 그녀의 눈빛이 슬프게 호소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눈빛의 무게에 거절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알았어.)”

“(고마워.)”

쿠로사카는 해맑게 웃는다. 은결은 그녀의 웃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왜 쿠로사카가 갑자기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데서, 은결은 자신의 이 선택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고 느낀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쿠로사카는 쑥스러워 하는 은결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슬프게 중얼거린다. 힘차게 강한 표정을 내보이고 있지만, 속마음은 슬프고 아프다. 언제 지금의 이 모습이 무너지고, 어리고 연약한 소녀처럼 훌쩍 거리게 될지 모를 것 같다. 은결의 모습을 볼 때마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사지가 휘감기는 것 갼年? 그런 주제에 그가 짊어진 것을 ‘보람찬’ 것으로 바꾸어 보겠다니, 그 얼마나 큰 오만이었던 것일까.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러니까-’

더 이상 오만과 무지로 그를 상처 입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잘못을 범하자.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인정함으로서 무력에 마음을 접어, 그에게 자신의 죄 어린 슬픔을 이야기하자.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그렇게 마음을 잡고, 그녀는 힘을 짜내어 당당히 걷고, 굳건하게 웃는다. 사랑하는 소녀가 아니라 강철의 여신처럼 굴강하게.

쿠로사카는 은결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는 은결에 대한 자신의 잘못과 무지와 오만을 견디기 힘들었다.

*글 접고 푹 쉬고 싶음. 하지만 이 글 끝내도 서브라임 있으니 쉬는 거 하곤 여기서 알파센타우리 만큼 거리가 있다는. 후-

*그러니 성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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