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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74화 (274/300)

#   275-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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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웃고 난 뒤의 데이트는 무척 즐거웠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민감하게 느끼며 은결은 그 시간을 즐겼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설 무렵에 헤어질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은결은 세연과 함께 헤어질 그날의 마지막 길을 걸었다.

“다행이야.”

길을 걷던 중간에 갑작스레 세연이 말을 꺼냈다. 은결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뭐가 다행이야?”

“오늘 처음 만났을 때, 너 불안하고 우울한 인상이었거든.”

“...그랬나?”

은결은 자신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볼의 감촉이 새삼스럽다. 요 며칠간 있었던 아프고 괴로운 일들이 저절로 얼굴에 드러나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다시금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쑤시는 것처럼 아픈 이들이다. 그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신을 연출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마음의 아픔은 육체의 행동 사이로 상처 입은 나무가 수액을 흘리듯 흘러내리고 있었겠지. 마음은 하찮고 가소롭고 끔찍하지만, 그래도 육체와 떨어져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세연은 수줍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슬쩍 끄덕인다.

“응. 그랬어. 뭐 네가 울적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던 건 한 두 번 그랬던 게 아니지만 오늘은 좀 유독 그렇다는 인상이었어. 뭐 그것도 내가 그냥 그렇게 보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거 보니까 좋다. 헤헤.”

“...그래.”

은결은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떠오른 괴로움의 기억들에 쓰게 침식되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웃음 그 자체이기도 했다. 오늘 은결은 세연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즐겁게 웃을 수 있었고, 그 즐거움은 여전히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었다. 그는 물이 흘러넘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세연에게 사의를 표한다.

“고마워. 네 덕분이야.”

“에? 에이, 내가 뭘.”

얼굴을 붉히며 세연은 손을 내저었다. 은결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고마워.”

“우...”

말문이 막힌 채, 세연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녀는 은결이 말하는 ‘고마움’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 박물관에 갔을 때 갑자기 웃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은결에게 왜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알 수’가 없다. 문득 세연은 ‘아-’ 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다. 이해가 이렇게 다시 수수께끼를 낳았다. 현상은 무수한 해석의 갈래를 가지고 그 중 어느 것이 정답인가는 안개에 가려진 신비다.

“그리고-”

이어서 은결은 걸음을 멈췄다. 세계가 변했다. 세연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다. 이어 그녀는 다른 존재가 된다. 거칠고, 광포하고, 요염하고, 섬뜩하고, 위엄차고,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

“-좀 볼까.”

“씹새끼야. 무슨 용무지. 네 꼴을 보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거든. 제발 좀 그냥 꺼져주지 않겠냐.”

등장하자마자,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은결에게 배고픈 맹수처럼 으르렁거린다. 은결은 위축됨 없이 묻는다.

“그럴 수는 없어. 알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때 너는 나를 왜 도왔지?”

“하, 도움을 받고도 지랄이네, 이 좆병신 새끼는. 고맙다고 그 더러운 모가지를 잘라 내놓아도 걷어차 똥통에 처박아 버릴 판에 어디서 잘난 척이야!”

푸른 이빨은 이를 간다. 그의 양 손에서 무시무시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은결에 대한 그의 적의를 설명한다.

“그러니까, 알아야 하겠다는 거야.”

-은결은 이를 물고 말한다. 결단의 때는 임박했고, 마지막까지 이 위험한 존재의 진의를 알아내어야만 한다. 은결은 이 앎에 대한 욕구에 당혹과 망설임을 함께 담고 있다. 푸른 이빨은 지워져야만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은인이고, 세연은-- 안타까움에 마음이 타들어간다.

“---크으!!”

푸른 이빨은 자신에게 당당히 맞서는 은결의 모습을 보며 타오르는 분노에 견디기 힘듬을 느낀다. 그를 둘러싼 전격은 한층 강해져서, 근처 일대의 대기가 막대한 전하에 잠식당하고 있다. 결계가 에너지의 운동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무수한 이들이 무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은결은 더욱 물러설 수 없게 된다. 그는 왜 이런 거대한 적의를 가지고도, 존재의 소멸이라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도와주었던가.

“네게-”

푸른 이빨은 입을 연다. 열면서 거의 맛본 적이 없는 감정이 마음이 짙게 채색하는 것을 느낀다. 이런 마음의 형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데, 자신의 것이 된 그 마음의 형태는 비참하고 분하다. 그는 눈앞에 서 있는 개새끼를 본다. 재수 없는 그의 모습을 본다. 그 썩어빠진 정신을 생각한다.

----!!

다시, 견뎌내기 힘든 분노가 피어오른다. 왜 그랬을까. 이 쓰레기의 몸을 차지했을 때, ‘후회’스런 일을 하고 말았다. 이 계집애를 저 쓰레기와 엮어 놓았다.

“-알려줄-”

이 쓰레기와! 이 병신과! 당장 손톱에 찢어 죽이고 싶은 저 새끼를! 살아있는 주제에 살아있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 주제에 죽지도 않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썩은 뇌수 속에 품고서 찌질거리며 흘리고 다니는! 그래서 이 불쌍한 계집년은 어처구니없게도 무감한 시체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대하는지도 모르고 이 병신을 향해 ‘그래도 사랑인 것 같다.’ 따위의 마음을 품는다!

“-필요는 없다!”

우르릉! 일대가 전격에 휘감긴다. 은결은 큰 충격을 받으며 발걸음을 뒤로 물린다. 예리한 살의에 전신이 민감하게 달아올랐고, 다음을 대비해 자세를 잡았지만, 전격이 저문 공간에서 푸른 이빨은 여전히 서 있는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행동, 다음 공격으로 그는 전환하지 않는다.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도무지, 모르겠군.”

은결은 한숨처럼 중얼거린다. 그는 지금 푸른 이빨이 보여주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의를 가지지만 공격하지 않고, 증오에 치를 떨지만 목숨을 구해준다. 어떤 논리가 그런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자신이 가지지 못한 퍼즐의 결락은 어떤 것일까?

“크- 역시 더러운 기분이군. 너와 더 상대할 마음은 없다!”

이를 갈며 중얼거리고는 푸른 이빨은 세연은 속으로 침잠해 버린다. 인격이 순식간에 바뀌었고 결계도 동시에 해체되었다. 세연은 자신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은결을 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보인다. “무슨 일 있었어?” 은결은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의 놀람을 감싸며 답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리고 세연의 곁에 섰다.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고, 곧 헤어질 곳에 이르렀다.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오르며 세연은 은결을 본다.

“다음 주에 또 봐.”

“응.”

간략한 인사가 느긋한 미소와 함께 교환되었다. 탕. 하고 차문은 아쉽게 닫혔고, 투명한 차문 너머로 계속 시선을 보내면서 세연은 멀어졌다. 은결은 그녀가 탄 차를 바라보면서 오늘 그녀가 보여줬던 새로움을 곱씹었다.

“사랑... 이라.”

대기조차 잠든 것 처럼 짙은 정적에 감싸인 어둠 가운데, 은결은 집을 나섰다. 극한까지 은밀성을 올린 지금 은결의 동작은 초고도의 술법이나 현대과학의 최정수를 동원해도 발견해낼 수 없을 정도다. 정지한 세계에 흘러드는 분자의 파편과도 같았다. 그는 그런 걸음으로 뒤뜰로 향했고, 창고에 닿았다. 그는 창고의 주변에 결계를 형성해 실행했고, 그런 다음 문을 열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어두운 침묵 속에서 아버지가 봉인한 레코딩 스퀘어는 버려진 쓰레기처럼 뒹굴고 있었다. 은결은 그것은 조심스레 주워 올려 양 손으로 쥐었다.

“후우-”

은결은 낮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고, 제어되지 못한 긴장에 양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의 흐름은 명확했다. 육체가 보여주는 마음의 모습에 은결은 한결 확실하게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는 긴장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반년 가까이 준비했던 일이다. 푸른 이빨과 세연의 문제, 그노시스트를 능가할 힘, 혹은 최소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도 이 일은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서-’ 이 일은 필요했다.

뜻을 결정한 은결은 눈을 감고 진식을 마음으로 떠올렸다. 이어 에너지를 유동시키며 영창했다. 그의 발밑으로 푸른 진식이 떠올랐고, 이어서 지극히 복잡한,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거나 우주를 구성하는 것 처럼 보이는 3차원적인 진이 허공에 생겨났다.

웅- 하고 대기가 떨렸다. 은결이 쥐고 있는 육각형의 각 면 위로 지극히 세밀한 선으로 이루어진 진이 공명하여 나타났다. 은결은 조심스럽게 양 손을 레코딩 스퀘어에서 떼어냈다. 아무런 지지대가 없음에도 스퀘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허공에 고청된 채 빛을 뿌리며 정지해 있었다. 은결은 양 손을 넓게 펼친 다음, 무언가를 감싸듯이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허공에 떠올라 있던 거대하고 복잡한 진이 움직이더니 상자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운동하기 시작했다. 그 운동은 다시 상자에 떠오른 진과 공명했다. 퍼즐의 조각, 조각이 맞물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퍼즐이 맞춰졌을 때 상자는 은결의 앞에 원의 형상을 떠올린다.

“......”

은결은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움직여 봤다. 쥐어봤다. 펼쳐봤다. 까딱여봤다. 꺾어봤다. 굽혀봤다. 모아봤다. 멈춰봤다.

은결은 잠시간 눈을 감았다. 짧은 침묵 다음에 눈을 떴다. 그리고 손을 들어 떠오른 원 위에 손바닥을 찍었다. 진이 빛을 내며 반응한다. 모든 프로텍터는 해제되었다. 그리고 은결은 정보의 격류가 뇌를 강타하는 것을 느낀다.

*너무 연재가 빨라서 읽기 힘들다는 분들도 계신 듯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일주일에 하나 정도로 연재 하면 많은 분들이 더 좋아할까요? 하하하.

*이달 내에 완결하고 싶었는데, 아아- 힘들겠습니다.

*리플을 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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