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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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은결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였다. 빨래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저녁거리를 사서 준비를 하고, 미래와 시시한 잡담을 나누며 놀아주고. 어떤 마음의 혼란도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기에, 그의 행위도 마음의 고통이 아닌 현실의 상황에 따를 뿐이었다. 일상에서 일어지는 일상. 관성으로 짜여가는 행위. 거기 마음의 고통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 시간 가운데, 수행은 은결에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방에 좀 들려줄 것을 부탁했다.
설거지를 끝낸 은결은 노크를 하고 아버지의 방문을 연다. 그윽한 책의 내음이 전신을 맞이한다. 어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아늑함에 은결은 눈가로 핑- 뜨거운 것이 도는 것을 느낀다. 무수한 책과 늘어선 스크랩, 그리고 메모장과 인쇄지. 깊게 익은 학의 정취 같은 것이 족하게 느껴진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던 수행은 의자에서 내려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거기 앉거라.”
은결은 아버지의 앞에 정좌를 했다. 아들의 단정한 얼굴을 보면서 수행은 쓸쓸하고 자상한 표정을 보였다.
“너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네게 한 가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지.”
“무엇입니까?”
수행은 ‘음-’하고 약간 긴 침음을 낸 다음, 주저없는 목소리로 단정해서 말한다.
“그들의 일이, 그러니까 그노시스트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이 일을 그만두지 않겠으냐?”
“갑자기, 그게 무슨...”
은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이건 너무 당황스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행은 은결의 당황에 아랑곳 없이 말을 재촉한다.
“생각해 보거라. 갑자기가 아니다. 올해 들어서 너는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고, 그 가운데 ‘기적적’이란 수식을 붙여 마땅한 죽음의 위기도 적어도 두 번을 넘겼다. 그리고 그노시스트와의 대결은 그 위기에 한 번을 더 추가해야 할 위험한 것일 가능성이 높지. 무엇보다, 너는 이미 대단히 위험한 폭탄을 몸속에 내장하고 있다.”
이제 은결은 이 이야기가 ‘쉽지 않다.’ 는 점을 이해한다. 아버지는, 수행은 진심이었다. 그는 얼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충고의 어조를 섞어 은결에게 은퇴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특히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폭탄’이다. 그것이 만물일여의 잔재인 이상, 언제 너의 정신을 붕괴시킬지도 모르거니와, 어떤 현실의 가치도 우습게 만들게 된다.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네게는 무가치하거나 한갓 쓰레기 같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라면... 은결아, 네게는 ‘행복’이란 단어가 단순한 관념상의 존재다. 너는 앞으로 영원히 행복이란 상태를 맛보지 못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로서, 네가 그런 꼴을 겪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구나.”
“그렇지만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제가 만물일여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은결은 의문을 던진다. 수행은 동의한다.
“물론이다. 이 일을 단순히 그만두는 것으로 그런 상태가 극복될 수 있는 거라면,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극복할 수 있겠지. 나는 좀 더 특수한 방식으로 너를 이 일에서 물러서게 만들 생각이다.”
“무엇입니까?”
“네 모든 능력을 네 기억의 일부와 함께... 봉인하는 것이지.”
“일부, 입니까?”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되는구나. 나는 내 기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만, 네가 아는 이가 늘어나고, 그들과의 교류가 깊어질수록 기억의 조작이 네 정체성을 깊게 건드리게 되는 결과는 피할 수 없다. 지금이라면, 너를 거의 온전한 너인 채로 이 일에서 물러서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가지게 되는 세계는 만물일여를 넘어설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네 기억을 막고, 네 능력을 막아 네가 접하는 세계가 아름다울 리는 없다. 여전히 비루하고 추악하겠지. 그렇지만 너는 그 비루하고 추악한 세계에 대해 다른 사름들처럼 온전하게 ‘체념’할 수 있을게다. 너는 무기력할 개인일 뿐이니까. 그 체념 위에서 때때로 보이는 아름다움에 기뻐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많은 이들이 그리하는 것처럼.”
은결은 침묵한다. 그리고 위의 그득한 음식을 토해내는 것 처럼 숨을 토하며, 아버지에게 어렵게 반론한다.
“그것은, 도피처럼- 들립니다.”
수행은 즉각 이야기한다.
“나는 실존과 자유를 쉽게 입에 올리는 자들을 경멸한다. 실존, 혹은 자유는 삶의 방식 이거나 삶의 목표라는 최소한 두 가지의 층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쫒아야 하는 것은 삶의 목표라는 측면으로서의 자유이거나 실존이다. '방식(method)'으로서는 아니다. 물론 그것들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삶의 방식으로서 강하게 추구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비참일 뿐이다.”
은결은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자유, 혹은 실존. 그것은 행위와 책임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것이 강력하게 주장 될 때, 이는 역설적으로 개인을 고양시키기보다 끝없는 비참의 질곡으로 몰아간다. 논리는 간단하다. ‘지금 너의 현실은 모두 과거 너의 행위의 결과일 뿐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야 했던 한 선량한 청년의 비극도 그저 불을 지른 자신의 책임이었을 뿐이다. 누구도 잘못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해했을 뿐이다. 그래서 자유와 실존이라는 말은 체제수호를 위한 방패막이 되어 나약한 개인을 고통으로 몰아간다.
“더구나, 그것이 설령 그것이 도피라 해도, 왜 그 도피가 나쁘다는 것이냐? 우리 실존의 기반은 기억일 뿐이지만, 너 역시 잘 알듯, 그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인상의 집결일 뿐이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계속해서 왜곡될뿐더러 심지어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을 제거해 버린다. 인식이 저열하고, 그러하기에 인식으로 성립된 우리의 정체성이란 세계 역시 저열할 뿐이다. 그것은 그저 효율적으로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확실하지도 않은 지반위에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를 것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도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냐? 왜 그런 것을 네가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수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냐?”
어느 정도는 경멸적인 느낌마저 드는 어조로 수행은 설명한다. 은결은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며, 불현듯 어떤 장면이 정신을 엄습하는 것을 느낀다. “모두들 상상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절망 앞에서 아버지는 아름답게 웃었다. 어떤 슬픔이 고운 모래 위에 뿌린 와인처럼 빨갛게 스며나간다. 그래서 파블로프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고, 연대를 위해 아버지 당신이 제시해야 했던 이름은 ‘아탁’이었습니까.
“저-”
입을 열고, 은결은 스스로 놀란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가슴은 높게 뛰고 감정은 폭풍처럼 휘돈다. 은결은 자신의 깊은 부분이 아버지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눈앞이 흔들리고 이명이 시끄럽게 감돈다. 인식되는 모든 것이 그저 추악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을 향해 자신이 크게 지껄인다. 아버지 말이 옳아. 왜냐하면, 민성이 오늘 자신에게 와서 “더는 아는 척 하지 말자.” 고 말했으니까. 여우는 ‘네가 나를 창조했다고!’ 고 이야기 했으니까. 그러고도 여우는 ‘네 편’이라고 이야기 했으니까. 그렇게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이니까. 있었던 적도 없던 역사는 박살났으니까. 인식은 저열하고, 글라우콘의 질문은 대답된 적이 없으며, 선하기에 승리하는 게 아니라 팃폴텟이기에 승리하는 것이니까.
주인 혹은 노예. 어쨌거나 결국 승리하는 것은 ‘타자’니까.
“-는-”
은결은 자신의 손을 서로 부여잡고 민감하게 느끼면서 겨우 말의 서두를 뗀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턱으로 따라 흐르는 것을 느낀다. 속이 심하게 메스꺼웠다. 수행은 은결의 변화를 보면서도 차분하게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 다음, 은결은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언젠가 친구들과,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들에게 동성애가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로서 ‘친절한 게이 삼촌’ 이론을, 이야기 해 줬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단지 그것만을, 이야기 해 줬습니다. 그들이 인정받아야 하는, 정말 중요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
수행은 가만히 듣는다. 은결은 자조적인 미소를 베어물며 말을 계속한다.
“그들이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그것을 ‘좋아’ 하며 거기서 ‘행복’을 찾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불필요하거나 하찮은 치장거리에 불과합니다. 친절한 게이 삼촌?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그 따위 것을 통해 그들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친절한 게이 삼촌은 그들을 ‘설명’ 하는 이론이지 ‘정당화’하는 이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친절한 게이 삼촌이 ‘정당화’를 위한 이론이 될 때, 다른 억압받는 이들 가운데 그들의 존재가 전체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이들은 영원히 정당화 될 수 없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지만, 저는 이야기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야기하기 싫었습니다. 비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논리를 말하는 것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달 내에 끝내고 싶은데,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음;
*누구일까요 님의 의문제기에 대충격!
*님들아 성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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