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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66화 (266/300)

#   267-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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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은 은결의 얼굴을 본다. 그의 표정은 굳었다. 선량하게 미소 짓던 얼굴 그대로, 굳어 있다. 혈액 대신 석고를 혈관에 흐르게 해, 그것을 말린 듯한 분위기다. 그는 은결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러나 결국 동결된 마비의 시간을 헤치고 은결이 입을 연다.

“무슨, 농담이야?”

민성은 그의 묻는 얼굴을 보면서 느낀다. 여기서 ‘농담이었어.’라고 한 마디 말을 하기만 하면 모든 상황을 종결될 것이다. 사실은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 알겠지만 없었던 일로 덮이리라. 그러나 민성은 여기 와서 자신의 말을 뒤로 물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무덤덤하기에 잔인한 어투로 선량하게 굳은 미소의 기대를 박살낸다.

“농담 아냐. 앞으로는 모르는 척 하고 지내자.”

결국 은결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민성은 그의 변화한 표정을 보면서 추리한다. 저 얼굴이 표현하는 감정은 분노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어째서, 지?”

‘어째서?’ 라. 그는 은결의 물음을 곱씹으며 자신의 마음을 반추한다. 마음. 그리고 마음의 한 가운에 들러붙은 어둠과 그 모든 어둠이 모여 가운데 피워내고 있는 빛을 본다. 그 빛의 이름은 ‘기쁨’이거나 ‘쾌감’이다. 마음이 따스하다는 것은 개소리다. 그건 본래 참혹한 것 같다. 짤막한 간격을 둔 다음, 민성은 말한다.

“네가 나쁜 건 아냐. . 굳이 나쁘고 옳다 고를 나누고자 한다면 내가 나쁘겠지만, 나는 내가 나쁜 거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아.”

“그건, 물음에 대한, 답이, 아냐.”

끊어지는 은결의 말은 마치 숨이 부족한 환자의 헐떡임 같이 들렸다. 민성은 자신의 마음에 들러붙은 어둠과, 그 어둠이 피워내는 꽃을 확실하게 바라본다. 은결은 고통 받고 있다. 그의 고통은 내게 연유하고 있다. 기쁘다. 그의 슬퍼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로 기쁘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나는 마음에 나오는 ‘선생님’과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

은결은 순식간에 그의 말을 이해한다. 이해했기 때문에 그에게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선생님’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아. 그것은 얼마나 명료하고 깨끗한 말인가. 선생님은 왜 그 꼴이 되었지? 친구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존경했기 때문에 그를 넘어서고 싶었다. 그의 의미를 자신의 의미로 받아들였기에, 그래서 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았기에, 결국 타자의 욕망은 욕망이었기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반한다.

보다 못한 여우가 나선다.

“너 그게 대체-”

“닥쳐! 내 심정을 네가 알아?!”

민성은 험상궂게 말하며 여우의 말을 자른다. 여우는 답하지 못하고 물러선다.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알기’ 때문이다. 긴장된 이 파국적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민성의 말 하나하나가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고 느꼈다. ‘선생님’ 꼴이 되고 싶지 않아. 사실은 은결이 ‘나’를 만들었다. 지금 내가 옳다고, 지금 내가 하고 싶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은 사실 은결에게서 온 것들이다. 그의 시선이 나를 만들었다. 도저히 그를 넘어설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차라리 포기할 수 있게 해 주면 고마울 텐데, 그는 그렇게도 해 주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넘어섰더라? 그는 이제어야 그걸 확실히 해 주었다. 그래서 여우는 어쩌면 민성을 막고자 했던 것은 은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을 한다.

민성은 다시 시선을 은결에게 돌리고,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본다. ‘기쁘’다. 이 기쁨이 얼마 가지 않아 환한 자기모멸로, 자기 경멸로 넘어가 기쁨 이상의 고통으로 되돌아 올 것임은 뻔히 알지만, 그래도 기쁨은 멈출 수가 없다. 그는 ‘나’ 때문에 상처 입었다. 그는 ‘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그것은 이후 되돌아올 것들을 뻔히 앎에도 멈출 수가 없는 ‘기쁨’의 한 형태다. 고소하다. 통쾌하다. 꼴좋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토록 확실하게 아는데도, 마음의 한 추한 면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은결과는 이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민성은 한 숨을 쉰 다음 다시 말한다.

“음, 뭐라고 할까. 나는 말야, 이래봬도 나 자신에 대해서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 자기 입으로 이런 말 하면 웃기게 들릴지 몰라도, 공부 같은 건 잘 못해도 그런 건 다른 걸로 커버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지. 가령, 나 싸움 너만큼은 아니지만 잘 한다? 그러니까 너를 도우러 갈 수 있었던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는 굉장해.”

“그만둬. 네가 나를 칭찬하면 입 발린 예의라는 게 너무 뻔해서 도리어 내가 비참해 지니까. 정말 굉장한 건 너지 내가 아냐. 너에 비교하면 나는 시시하고 하찮지. 설령 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나는 네 그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세상의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런 건 굉장한 게 아냐.”

민성은 피식 웃으며 은결의 말을 거절한다. ‘너에 비교하면’ 쓰디쓴 말이었다. 은결은 그렇게 생각할 것 없다고 길고 긴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욕망은 너의 욕망이 되어야 한다고. 타자의 욕망을 욕망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민성의 서늘하고 자조적인 얼굴에서 그런 길고 긴 이야기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기’에 ‘비참’으로 환원되리라는 것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말을 막았다. 말의 무력함을 절감하는 은결에게 민성은 말을 잇는다.

“그런데, 요즘 너를 보면 그게 안 돼. 나 자신이 비참해지고 초라해져서, 도무지 예전처럼 웃을 수가 없어. 뭐 전부터 그런 건 조금씩 있었던 것 같았는데 괜찮았거든. 그런데 네가 갑자기 ‘천재’ 이러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나름 자부심이란 걸 가지고 살아왔는데 말야, 네 앞에서는 하나도 남아나는 게 없어.”

민성은 숨을 쉰다. 한 숨을 쉰다. 다시 뒷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선다. 그린 듯이 아름다운 한 소녀다. 쿠로사카 유리에. 민성은 그녀를 보면서 다시 마음 한 구석이 심각하게 엉키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이 녀석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녀가 이 녀석을, 이 녀석을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고? 대체... 어떻게? 그래서 다시 말한다.

“나는, 네가 굉장히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해. 착하고, 능력 있고.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네가 미워. 아니, 미워하는 게 아니고, 좋아하기도 하는데. 아, 제기랄!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하여간, 좋지만 네가 정말 미워. 너는 좋은 녀석이고, 너는 굉장히 많은 면에서 멋진 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뻔하게, 정말 뻔하게 아는데, 그런데 네가 너무 싫어. 아마, 아닌 척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래서는 ‘선생님’꼴이 될 것 같아.”

교실에 들어선 즉시 쿠로사카는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말없이 상황 한 구석에 서서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솔직히 얘기할게. 내가 이렇게 지금 너한테 이야기하는 거 듣는 게 괴롭지? 나는 네가 괴로워하는걸 보면서 굉장히 기뻐. 한심하고 추한 생각이란 건 알아.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걸. 이런 이야기를 하며 기쁨을 느끼는 건 내 의지가 아냐. 너를 보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비참했던 것처럼 말야.”

쿠로사카는 마음속으로 ‘어-’하는 신음을 흘린다. 이것은 대체?! 무언가 심각하게, 아주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그녀는 은결을 본다. 굳은 채, 질린 얼굴로, 말없이 민성의 말을 듣는다. 쿠로사카는 직감적으로 지금 그가 상처 없이 피를 흘리고 있다고 안다. 자조적인 웃음을 담아 그는 말을 계속한다.

“그리고, 계속 아닌 척 너와 함께 지내면 언젠가 이런 추한 부분이 응축되었다가 폭발하고 말 것 같아. 그게 정말 무서워. 이런 열등감과 비참함이 계속, 계속 응축되다가 언젠가 ‘쾅!’하고 터지면 그건 정말 큰 배신일지도 몰라. 뒤에서 칼을 꽂는, 말야. 그때 정말 내가 ‘선생님’과 거의 같은 꼴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딨어?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어?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너와 있으면 내가 계속 나쁜 놈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 못 봐주게 추악한 쪼다고, 병신이고, 그런 거 말야. 나는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도리어 꽤 착하다고 자부해. 적어도 왕따가 되어 괴롭힘 당하는 반 친구가 있으면 주저 없이 도와주러 갈 수 있을 정도는 됐었으니까. 나는 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 그러니까-”

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더는 아는 체 하지 말자.”

민성은 등을 돌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지독한 침묵이 이어졌다. 감히 그 침묵을 끊어낸 것은 늑대였다. 그는 은결 앞에 서서 “후-” 하고 한숨을 쉬고, 자신의 머리를 멋쩍게 긁으며 말했다.

“민성이 녀석 하는 말 들어보니까... 나도 그랬던 것 같아. 괜히 히스테리 부려서 미안. 그냥 앞으로는 모르는 체 하고 지내자.”

“그-”

은결은 막힌 말문을 어떻게든 뚫어 말을 건네보려 하지만 늑대는 그저 무심히 등을 돌려 멀어질 뿐이다.

*곧 설이군요.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천재에 미소녀의 사랑도 받는 주인공이니 좀 굴러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좀 불쌍하긴 하군요. 쯔쯧.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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