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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65화 (265/300)

#   266-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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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기를 가르고,

주먹이 사념체를 관통한다.

사념체가 마음을 관통한다.

“---”

은결은 입술을 문다. 술식이 전개되고, 사념체는 소멸된다. 은결은 근처의 건물 옥상에 내려서며 사념체를 쳤던 주먹을 쥐락펴락 하며 심호흡을 한다. 괜찮았다. 견딜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정기적으로 활동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

은결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쿠로사카가 뒤쫒아 그의 곁에 선다.

“(왜 그래?)”

“(아냐, 아무 것도.)”

웃음으로 걱정을 불식시키고, 은결은 고개를 내리고서 손을 다시 쥐었다 편다. 그러면서 방금 보았던 하늘을 마음에서 눈앞으로 되새긴다. 여전히 별빛은 멸망하고, 혼탁한 질감의 어둠이 무겁게 깔린 하늘이었다. 은결은 별빛 없는 그 하늘을 보면서, 나선을 생각했다. 저 아래에서 저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장대하고 장대한 나선을. 정, 이거나 반, 이고, 합이 되지만, 합이 된 정은 다시 반, 을 만나고. 하지만 그 나선이 결국 치솟고자 하는 것이 무한에 대해서라면, 그 나선은 목적도 출발점도 없는 것이고, 목적도 출발도 없는 나선은 단순한 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그러나 차마 다람쥐에 빗댈 수는 없는 자존심이 그 다람쥐를 ‘시지포스’라는 슬픈 이의 모습으로 은유하도록 할 뿐이지 않을까.

시두리- 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없는 나락을 드러내기 위한 전설에 집착해 다람쥐이거나, 바퀴벌레이거나, 미생물이거나, 쓰레기이거나, 하찮은 다른 그 무엇도 상관 없을 텐데, 무의미 자체를 위해 ‘시지포스’라는 고품한 은유의 대상을 준비하고 마는 가련함- 은 곧장 아버지가 이야기 해 준 시두리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길가메시여, 무모한 짓을 하지 마시오. 죽음은 인간의 운명,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다만 함으로서 행복을 찾아야 할 뿐이오. 맛있는 술과 음식을 맛보고, 아내를 품에 안고, 아이의 손을 잡아주시오. 은결은 이불의 먼지를 털듯이 마음을 털고 쿠로사카에게로 맑은 눈을 돌린다.

“(토요일 날, 너도 괜찮겠지?)”

“(괜찮아.)”

쿠로사카는 성큼 대답한다. 은결은 만족한다. 쓸데없는(쓸데없다니!) 생각은 그만두자.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도 소용없다. 친구들과 조금 더 웃을 수 있기를. 세연을 구하고, 푸른 이빨을... ‘해결’하고, 그리고 그노시스트의 위협을 아무 일 없이 처리해 낼 수 있기를 원하며, 그것에 맞춰 행동하자. 신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일 뿐이 아닌가.

“(앞으로도, 친구들이 생겼으면 좋겠어.)”

이어서 은결은 약하지만 확실한 열망을 담아 이야기 한다.

“(그렇게 될 거야.)”

쿠로사카는 은결을 응원한다. 은결은 고마움에 웃는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의 상상력이 그녀의 말에 대해 조소를 되돌리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은결이 비교적 학교에 일찍 도착했다. 미래가 일찍 일어나준 덕분이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한 은결은 시험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데 다해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이 뒤섞여 한결 어수선한 교실에서 여우와 늑대, 그리고 고릴라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렇게 됐지.”

은결이 이야기를 끝났지만 아무도 빈정거리며 받아주지 않았다. 고릴라는 무언가 위압된 표정으로 “그랬어?”라고 담백하게 답할 뿐이었다. 늑대는 “그래.” 하고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여우는 비교적 열의를 가지고 은결의 이야기에 참여했지만 거기에는 과거 보여주던 자연스러움이 탈색되어 있다고, 은결은 느꼈다.

“반응들이 시원찮네. 나름 꽤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너도 마찬가지지. 평소에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 쪽이었잖아. 갑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상해. 뭐 평소에도 한 번 입을 열면 연설문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늑대가 시니컬하게 말한다. 은결은 당황하며 묻는다.

“이, 이상해?”

“이상해.”

여우가 은결을 변호한다.

“이상하면 어때. 사람이 고정된 것도 아니고, 바꿔나갈 수도 있는 거지. 나는 지금 은결이 평소보다 더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련하실까요. 하여간 찌질한 책벌레라고 알았던 녀석이 갑자기 사실은 천재라고 밝히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냐.”

늑대는 냉소적으로 여우에게 답하며 사감을 담아 뒷말을 덧붙인다, “야, 들을라.” 여우가 불쾌한 표정을 보인다. 늑대는 다분히 과장된 동작으로 “아, 이런.” 이라고 말하며 은결에게 사과한다. “미안.” 그리고 위로이거나 변명으로 들리지 않는 위로이거나 변명을 붙인다. “그래도 아무도 우리 이야길 진지하게 듣진 않을 거야. 걱정 마. 네가 사실은 천재라니, 누가 믿겠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도 아무도 안 믿을걸.” 은결보다 여우가 도리어 불쾌한 표정을 보인다. 은결이 늑대에게 묻는다.

“으음... 혹시 화난 거야?”

“화? 화는 무슨 화.”

늑대는 손을 내저으며 은결의 물음을 부정한다. 은결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늑대는 마치 화난 것 같았다. 하지만 왜 화가 난 것인지,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섣불리 말을 걸었다가 그의 화를 더 부추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은 서늘하게 안정된 부분이 있어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놔둬. 평소 저 녀석 너를 자기 레벨로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다 뻥이었다고 하니까 혼자 열 받아서 저러는 거야. 뭐 좀 식으면 괜찮아 지겠지.”

여우가 흥, 하고 냉소적인 분석을 하며 설명한다. 늑대의 양 눈썹 끝이 올라간다. “뭐야!” 여우는 도리어 조소한다. “그럼 틀리냐. 요새 괜히 은결 이야기만 나오면 히스테리면서. 요샌 그걸 열폭(열등감 폭발)이라고 한다지?” 갈등이 과열될 양상을 보인다. 조용히 있던 고릴라가 몸을 반쯤 세우며 끼어든다. “야야, 그만해라.” 고릴라의 중재에 두 사람은 물러선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은결은 마음 속으로 ‘뭐야?’ 하고 중얼거린다. 어지러움과 구토감이 희미한 색으로 주변을 잠식한다. 큰 각오로서 내딛은 걸음으로 얻고자 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8년 전의 기억이 현재에 겹쳐진다. 어린 그들은 마찬가지로 어린 은결을 향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재수 없는 새끼! 뒈져버려!’ 그들의 증오는 진짜였다. 그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기꺼이 은결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은 기꺼이 산 것들을 해체해 죽이며 희희낙락 웃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기꺼이 타자의 고통을 자신들을 위한 기쁨으로 삼아 희희낙락 웃을 수 있다. 공포스러운 순수. 그러나 그 순수가 품는 공포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어떤 교육도 그것을 지우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 어떤 계기만 있으면 선량한 누군가는 악마로 돌변한다. 고로, 파블로프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고, 계몽은 언제나 실패 한다.

‘알고 있어.’

몸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향하면서 숨을 쉰다. 산소와 질소의 조합이 폐부로 들어서며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마음이 안정되자 인식되는 세계의 모습은 평소와 같은 것으로 바뀐다. ‘괜찮아. 하고 은결은 자신을 위로하는 말을 자신에게 들려준다.

이어서 ‘드르륵’ 하고 교실 뒷문이 열린다. “여어.” 하고 고릴라가 손을 들고 먼저 인사한다. 다른 이들도 따라서 시선을 돌리고 인사를 한다. 맞은편에서 인사가 돌아온다. 민성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지만, 웃음기는 평소보다 한결 덜한 모습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자기 저리에 들어 짐을 정리하고 일행이 앉아 있는 곳으로 온다. 은결이 그를 맞는다.

“어제 갔던 건 잘 됐어?”

“그렇지 않아도 그걸로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

민성은 말한다. 서늘한 태도로, 서늘한 표정으로. 민성은 이런 아이였던가. 그렇지 않아. 훨씬 밝았는데. 언제든 주변의 긴장을 풀고, 메말랐던 웃음의 수원에 물을 불어넣던, 그런 놀라운 재능을 가진 아이였는데. 나는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못 가질 것 같은, 그런 재능의 소유자였는데. 은결은 불길함을 느끼며 웃는 얼굴을 보인다.

“응? 뭐야?”

“오해하진 말고 들어줘. 앞으로는 모르는 척 하고 지내자.”

갑작스런 민성의 말에 은결은 발밑이 무너진다고 느낀다. ‘괜찮아.’ 절벽에 뿌리를 막은 잡초를 잡아 몸을 지탱하듯, 다시 그 말을 자신에게 들려준다. 조롱이 폭풍처럼 돌아온다. ‘괜찮아?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걸까. 이런 게 괜찮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 밖에 되지 않잖아. 괜찮을 리가 없어. 정확하게 이야기하자. 이런 건 끔찍하다고 하는 거야.’ 은결은 자신의 말에 대한 자신의 반박이 더할 나위 없이 올바르다고 느낀다.

*지드님의 꼽사리 추천에 감사!

*이 글은 독자분들의 성원에 큰 힘을 얻어 쭉 쓰여 왔지만 동시에 독자분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상당히 거리를 둔 채 그저 계획한 대로만 쓴 글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건데 역시 그게 옳았다고 여깁니다.

*패러럴월드 판 짤막한 외전, 같은 건 고려를 해 보고 있습니다. 가령 명량대학생은결 초반 이야기라거나. 이름은 히카루 긴이로(輝銀色) 라거나.(ㅋㅋㅋ) 아, 너무 가명 삘 난다. 푸른 이빨과 지내며 어른이 된 세연 이야기 이런 것도 간단하게 생각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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