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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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마지막 답안 확인이 끝났다. 은결은 정말로 만점을 받았다. 실제 점수는 늑대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무의미한 점수였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모두 그럴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천재니까. 그는 천재니까 저렇게 뛰어나고, 저렇게 독특하다. 그래. 천재니까. 아무도 거기 다른 설명을 붙이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만점의 이유로 ‘천재’라면 충분하지 않아? 저 녀석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민성은 서늘하고 허탈한 마음을 느끼며 스러진 말의 조각을 어렵게 주워 모았다.
“-그럼 시험도 끝났고, 오늘은 다들 같이 어디 놀러라도 갈까?”
은결이 맑게 웃는 얼굴로 제안했다. 민성은 그의 얼굴을 보면서 문득 최근(정말 최근!) 그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고 느낀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는 언제나 울적해 보였다. 민성은 희미하게 웃는다. 이제 너는 정말 흠결이 없군. 그래서 ‘은결’인가.
“미안.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시간을 못 내겠어.”
민성은 은결의 제안을 거절한다. 은결은 아쉬운 얼굴로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쿠로사카와 여우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아침에 그는 분명히 오늘 시험이 끝나면 무얼 하러 갈 것인지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었었는데. 하지만 고릴라와 늑대는 이해하는 듯, 별 말이 없었다. 무언가 말을 꺼낼까 하던 여우는 고릴라의 눈짓에 물러서고 만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민성은 쿠로사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야기’였던지는 듣지 못했지만, 사실 묻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 그 결과도 이어진 것들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다. (피폭, 침몰 당했으리라.)그러니 그가 오늘 웃으며 지낼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 미안하지만 나도 빠질래. 다 같이 가지도 못 하는데 끼어봐야 뭐 하겠냐.”
늑대가 어느 정도는 반가워 보이는 인상으로 이어서 은결의 제안을 거절한다. “아, 그래.” 은결은 약간 아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여우와, 고릴라와, 쿠로사카다. 그들의 시선을 보고 은결은 희미한 두근거림을 느낀다. “너희는?” 말을 꺼내고 그는 그 희미한 두근거림이 ‘불안’에서, 그래서 ‘공포’와도 밀접하게 닿은 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느낀다. 고릴라가 성큼 한 걸음 중앙으로 들어서며 대답을 제지한다.
“이왕이면 토요일이나 맞춰서 다 같이 가자. 떨어져서 놀아봐야 맥 빠지잖아.”
“응. 그게 좋겠지.”
은결은 어딘가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며 답한다. 여우와 쿠로사카도 동의한다.
“시험 잘 쳤어?”
지나치는 가을바람을 이마로 느끼며 은결은 뒷좌석을 향해 물었다. 어깨 너머로 V자를 그리고 있는 고운 손이 불쑥 뛰쳐나온다. 은결은 피식 웃는다. 어제 안 어울리게 방에 틀어벅혀 열심히 공부하더니 그만큼 잘 친 모양이다.
“오빠는?”
바람에 갈리는 목소리가 응답하며 뛰쳐나온다.
“나는 평소처럼 쳤지.”
평소처럼. 반은 거짓말이다. 기록되는 점수는 그럴지라도, 이번 시험을 은결은 평범하게 치지 않았다. 그는 조작되지 않은 진실을 몇몇의 친구들에게 전했다.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그것은 쓸쓸함이었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실은 쓸쓸했다.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문득 미래가 갑작스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오빠, 정말로 요즘 증명사진 없어?”
“글쎄다. 그런데 아직도 찾고 있었어?”
“그냥, 재미잖아.”
“음-”
은결은 재미라는데 어떠냐 싶어 최근 증명사진이 남은 게 있는가 생각했다. 그는 이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한 곳 생각해 냈고, 동생에게 알려줬다.
“-혹시 올해 초에 찍었던 게 부엌 쪽 서랍장에 있을지도 몰라.”
“알았어. 그나저나, 시험도 끝났는데, 주말에 같이 놀러나 가자.”
“음, 약속이 있어서 곤란해.”
“약속?”
“친구들하고.”
은결은 고릴라와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며 답한다. 오늘은 민성이 평소와는 달리 기운도 없어 보이고 볼일도 있었던 모양이라 기껏 제안했던 것이 깨지고 말았지만, 토요일에는 함께 어딘가로 놀러가 보고 싶었다. 신선한 기분과 기대에 가슴이 찬다. 그들과는 몇 번이고 함께 놀았지만, 그때 은결은 자기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었으니까. 미래는 조금 감탄한 표정을 한다.
“헤에- 요즘 오빠 친구들하고 주말에 놀러가는 일 굉장히 많은 거 알아?”
“음, 그런가?”
은결은 입가를 곤혹스레 무너뜨린다. 사실 방학 이후로 그가 외출을 자주 한 것은 대부분 세연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기에 핑계거리로 친구를 댄 것일 뿐이었다. 미래가 알고 있는 만큼은 자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그녀의 놀라움은 진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은결은 기쁨을 느낀다.
“지난주에도 친구 만난다고 나가서 한참 늦게 돼서 돌아왔잖아. 뭐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는 건 좋은 일이니 이건 동생으로서도 막을 수가 없군. 선심 썼다. 방학 때 이자 붙여서 받아야지! 잘 놀다 와.”
뒤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래는 은결의 등을 팡팡 쳤다. 은결은 나름 밝은 얼굴로 “응.” 하고 대답을 한다. 그는 자전거의 페달은 세게 밟는다. 이유도 맥락도 없이 ‘상상하도록 하게.’ 하고 그노시스트가 했던 말이 뇌리로 떠오른다. 나는, 상상하고 있는가? 은결은 자문한다. “상상하고 있어.” 은결은 이를 문다.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상상력이 부족했습니다.” 그 웃음을, 은결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상상한다면, 또 상상한다면, 그리고 상상한다면- 그 미소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발아래 펼쳐지던 빛의 여울, 그래서 욕망의 여울. -은 언제나 아득하니 넓기만 했는데.
민성은 가방을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의자에 몸을 싣는다. 삐꺽- 하는 이지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그는 한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서 한숨을 쉰다. 은결에게는 일이 있다고 하고 제안을 거절했지만 물론 그런 것은 거짓말이다. 일 따위는 없다. 평소라면 이쪽에서 일을 만들어 그 녀석을 끌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민성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다. 마음이 어둡고 무겁다. 누가 나쁜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굳이 나쁜 사람을 꼽는다면 자신이 나빴다. 잘 알고 있었다. 은결을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했다. 그 녀석은 왕따였다. 도와주려고 했다. 나름 정의로운 마음에 두고볼 수는 없었던 탓이다. 그런 종류의 왕따는 입지가 강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도와주기만 하면 해소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정도 역할은 얼마든지 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은결은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렸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움을 잘 했다. 그때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그러고도 은결은 계속해서 왕따였다. 그의 입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잘라 말해서, 열등한 인간이었다. 그가 정말 열등한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그렇게 보는 이가 있다면 본인보다도 자신이 먼저 화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인정하는 내 친구를 너 따위가 감히! 그러니까, 그가 열등하다는 것은 자신에 대비해 적어도 열등한 점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점이 비록 더 많을지라도. 하지만 그는 사실 천재였고, 쿠로사카는 그 녀석을 좋아한다고 한다. 쓰리고 비참하다.
민성은 눈을 뜨고 의자를 돌려 책상을 바라본다. 흐트러진 책이 늘어서 있다. 그는 손을 뻗어 흩어진 책의 무더기 가운데 한 권을 꺼낸다. ‘마음’이라는 책이다. 은결의 도움으로 쿠로사카와 함께 나름 깊게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걸작소설이다.
“후.”
그는 무미한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쉰다. 무척이나 싱숭생숭하다. 민성은 은결의 점수를 확인하고 산산이 부서지던 자신의 이야기를 겨우 주워 모아 하나의 결론으로 만들었다. ‘마음에 나오는 선생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 진실이다. 전과목 만점이라는 점수를 앞에 두고, 민성은 그렇게 뇌까리고자 했다. 자신은 틀림없이 은결을... 상당히 좋아한다. 그 녀석은 멋지다. 단지 혐기성 생물이 산소를 만드는 식물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은결이 선량하다. 아니다. 가질 거 다 가진 녀석이 이런데서 아닌 척 뭐하는 꼴이야. ‘천재’주제에. 그러니 어쩌면 굉장히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의도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래서 민성은 결심한다.
*케인첼 님의 추천에 감사! 노력해서 쓰겠습니다.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아 확실히 이야기 해 두려 합니다. 이 글은 2부 구성을 한 편에 몽땅 담는 걸로 구성을 바꾼 것으로, 이글의 2부는 존재하지 않고, 주제도 같이 완결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식의 2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있어봐야 패러럴 월드 개념으로나 가능합니다.
*성원이나...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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