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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61화 (261/300)

#   262-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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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은결을 행복하게 할 거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면서도 고통 받았습니다. 능력이 있으면서 침묵하는 ‘은결’은 고통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그를 훨씬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할 말이 곤궁했던 쿠로사카는 우선 시간을 벌자는 생각에 그렇게 말문을 튼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녀가 생각하는 은결에 대한 인상과도 맞닿은 평가였다. 그녀는 은결이 이 일을 그만둠으로서 ‘행복’을 얻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은결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녀의 내심을 읽었다는 듯이 수행은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는 쓰으- 하고 가볍게 숨을 들이키면서 몸을 슬쩍 앞으로 내민다. 허리 위에서 이루어진 몇 센티 정도의 작은 움직임- 은 쿠로사카에게 당장 눈사태처럼 크게 느껴진다. 등줄기가 저절로 움찔, 떨리며 반응한다. 그는 소녀의 반응을 보면서 웃는 얼굴로 심술궂게 이야기한다.

“(좋은 지적이지만 아쉽군. 상상력을 키우도록 하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음을 서늘하게 베어내는 말의 차분한 발도에 쿠로사카는 희미한 식은땀 같은 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나 수행은 그것으로 끝이었다는 듯이 답 없이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양손을 모아 턱을 거기 기댄다.

“(은결은 내가 알기로만 최근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네. 그 아이의 성품과 그노시스트의 힘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아이가 겪었던 위기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겠지. 이 일은 물론 애초부터 꽤 위험도가 높지만, 최근에는 지나치게 그 정도가 높아졌네. 더구나 그 가운데 한 위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은결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할 경우 정신적으로 파탄지경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지. 사실 은결이가 여기까지 위기를 겪은 데는 어느 정도 그 아이의 성품도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하는데 말야. 이래서는 악순환이지. 나는 그래서 그 아이를 이 일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싶네.

때문에 계속 이 세계에 그 아이를 묶어둘만한 말뚝이 될 만한 자네와는 좀 떨어져 있었으면 하고, 이 점에 대해 협조를 얻고 싶네. 어쩌면 이는 자네가 지적한대로 이것은 도리어 은결을 슬프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까지 은결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살펴보면 억지로라도 그만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한 사람의 부모로서, 내가 은결이 지극히 높은 육체적, 정신적 죽음의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도록 놓아두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다시 쿠로사카의 말문이 막힌다. 확실히 은결은 여러 번 죽을 뻔 했다. 대부분이 절망적인 성격의 위기였다.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종류의. 특히 아담의 언어와 접촉했을 때는 수행이 미리 읽지 않았다면 은결은 틀림없이 ‘해체’,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죽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하는 이상,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일반적인 부모라면 본인의 의사와 완전히 무관하게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더구나 은결은 심각한 후유증을 안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자칫하면 어떤 종류의 육체적 장애도 비견하기 힘든 종류의 치명적인 것이 될 우려가 있다. 수행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리고, 왜 자네를 설득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도 의문이군. 자네는, 은결의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떨어져 있어 달라는 요청에 그토록 반발해야만 하나?)”

“(저는-)”

‘무엇이기에’ 비수 같은 말이다. 마음이 쑤시듯 아프다. 은결과 자신의 관계는 무엇인가? 평생을 같이 하기로 한 부부인가? 아니다. 미래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혼약잔가? 아니다. 하다못해, 사랑을 키워나가기로 약속한 연인인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은결을 아주 좋아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저것뿐이잖아.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었다가 힘차게 답한다.

“(-은결의 친구입니다.)”

“(...은결이는 좋은 친구를 뒀군.)”

꽤 아픈 곳을 찔렀을 텐데 도리어 당찬 쿠로사카를 보면서 수행은 조금 놀란 표정을 보인다. 좀 치사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도 굴하지 않다니. 수행은 약간 아쉽다고 느낀다. 은결이가 이 아이와 8년 일찍 만났더라면. 그는 눈을 살짝 떴다가 감는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자. 과거를 아쉬워해 봐야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설령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해도 8년 전 은결을 8년 전 쿠로사카가 감당할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는 말을 계속한다.

“(그래서 가능한 일찍 은결을 이 일에서 물러서게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네. 잃어야할 것은 적을수록 좋을 테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추억이라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생기면 슬플 거라는 말이네. 나는 은결을 이 일에서 물러서도록 하기 위해 기억의 일부를 봉하고 다시 재구성할 생각이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은 모두 봉인되겠지.)”

“(-그런!)”

쿠로사카는 깨닫는 동시에 경악한다. 확실히 기억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앞서 제기했던 문제, 은결의 성품상 힘이 있으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에게 ‘행복’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모를 테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광범위한 기억에의 관여는- 마음이 심하게 헝클어졌다. 수행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착찹하게 말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대규모의 작업은 아닐 거네. 정체성의 차원에서 격변이 일어나지도 않을 테고. 내가 은결에게 하려는 작업은 우리가 사념체를 상대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인식지평에서의 관여와 큰 차이가 없네. 조금 더 대규모의, 조금 더 복잡한 작업일 뿐이지.)”

“(그는 10년 이상 이 일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할리가!)”

“(십 년 이상 해 왔지.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야. 지난 시간 은결이 이 일을 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면을 한다는 정도의 일밖에 되지 않지. 그래서 그 일이 품는 개인적인 내면의 복잡한 쌓임은 아무런 문제 거리도 되지 않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단지, 알맹이의 포장을 바꾸는 정도의 일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긴 시간인데!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가 있습니까!)”

쿠로사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행이 엄청난 천재라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10년이 넘을 정도의 초장기 기억을 문제없이 다룰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녀가 듣기에 그것은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만큼 엄청난 작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은결에게는, 이제까지 친구가 없었으니까.)”

수행은 쿠로사카의 반발을 부수고 답한다. 피가 배어나오는 듯한 대답이다. 쿠로사카는 숨이 막혔다. 그의 표정이 정말로 슬퍼 보인다고 느낀다. 어떤 후회, 어떤 아쉬움, 어떤 아픔. 마음이 마음에 엉켜 차마 직시할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미안함’을 말하는 듯한 표정. 어떤 수행은 설명을 계속한다.

“(은결이 이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한 내면을 나눌 수 있었던 상대는 극히 희소하네. 나와 아버지도... 아마 내면을 나눈 상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이렇게 되면 기억의 구조는 매우 단순해지네. 기억이 복잡해지는 것은 개별 기억과 개별 기억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으로서 그것들이 확실한 차이를 가지고 구조적으로 연결될 때인데, 그 차이는 흔히 타자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네. 바로 그 타자가 지금 이 순간의 기억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을 관계를 통해 요구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나 사념체와 상대하는 일에 관련해서 은결에게는 그런 개별 기억 사이의 확실하고 큰 차이를 만들어 낼만한 타인이 없었지. 그래서 큰 위험 없이 간단히 바꿀 수 있네. 물론 완전할 수는 없지. 포장을 바꾸면 아마 몇 가지 이가 안 맞물리는 위화감은 있을 거네. 그러나 대단한 것은 아니야. 그 위화감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기억에 맞춰 재구성될 테고. 인식은 저열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편리하지.)”

수행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낸다. 쿠로사카는 그의 말이 가능하고, 또한 옳다고 느낀다. 아마 기술적으로 수행은 지금 이야기 한 모든 것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패배감 같은 것 가운데서 성마른 지푸라기를 잡는 것처럼 묻는다.

“(은결은, 그 계획에 찬성했습니까?)”

“(가장 큰 난관이네. 계속 설득할 생각이지만 쉽지 않겠지. 이 세계가 ‘견딜만’ 한 이상 결코 이 계획에 찬성하지 않을거네. 때문에 자네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지. 그 아이가 스스로 원해서 이 일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은결은 지금 이 세계를 잊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그는 어쩌면 진실로 웃으며 지낼 수 있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이 말에 동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 마음을 치고 나온다. 부정하고 싶은 결론에 심장에 격렬하게 뛰었다.

불현듯, ‘마음’, 이 생각났다.

그 소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읽었던가 하는 것이 한 줄기 섬광에 담겨 기억났다. 어떤 아픔을 견디고, 어떤 수고를 넘어서, 마침내 겨우 한 줌을 쥐고서, 그 바보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기억났다. 그 한줌의 허전함과 가슴 벅찬 소중함에 쓴 한숨을 쉬어 보았기에, ‘망설이지 않고 굴러 떨어질 거야!’라고 호언할 수 있던 것을 기억했다. 시시한 사명의 후계자라도 좋았는데, 시선의 노예이면서 시선의 주인이라고 득의양양하게 지냈어도 좋았는데.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다시 그 길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다름 아닌 ‘은결’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겨우 쥔 한 줌이 이렇게 있듯이, 그도 틀림없이 그렇게 쥔 한 줌이 있을 텐데. 그들 고통과 엮여, 겨우 쥔, 자신이 쥔 것 보다 훨씬 서글프기에 아름다운, 그런 한줌이 있을 텐데.

“(저는, 그 계획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쿠로사카는 차분하게 주장한다. 수행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는 쿠로사카의 어조에서 이제 설득은 통하지 않으리라고 직감한다.

“(그에게서 아프게 얻어내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때문에 은결에게 그 고통이 단지 고통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만의 진주 같은 것을 만들어 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폐기해선 안 된다고 믿습니다.)”

‘아프게 얻어내는 작은 것의 소중함’ 수행은 작게 그 말을 중얼거린다. 노 페인, 노 게인. 흔한 말이 아닌가. 그는 그 말을 짖눌러 보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뚜렷하고 굳은 눈길이 그것을 막는다. 아, 어쩔 수 없군. 인정하자. 이 아이는 지금을 회피하려 흔한 경구를 입에 담는 게 아니다. 정말로 아파봤고, 그래서 쥐어봤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아이는 실제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네.)”

“(제가 은결에게 이 세계를 ‘견딜만한’ 것으로 바꿀지도 모르는 것이 싫다고 하셨지요. 저는 은결을 돕겠습니다. 제가 그에게 이 세계를 ‘견딜만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할만한’ 것이나 ‘보람찬’ 것으로 바꾸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고 믿습니다.)”

쿠로사카의 답은 강인하다.

*실버스푼님의 추천에 감사! 소모적인 소란이 있었던 것은 유감이었습니다. 저도 황당한 소릴 들었군요. 몇 가지 만화적 문법을 사용한 부분이 있다고 밝힌 이상 일본 색을 띄었다고 읽힐만한 부분은 있습니다만, 거기서 일본색의 근거로 제시한 게 참 황당했습니다.

*슈로대 신작 나온 거 해봐야 하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남! ㅠㅠ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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