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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59화 (259/300)

#   260-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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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막 담긴 쿠키의 향은 달콤했다. 거친 세월을 다감하게 품은 손길로 수행은 그것을 하나 물었다. 그는 입 안에서 쿠키 조각을 씹으며 맛을 음미했고, 이내 만족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좋군. 자네도 들게.)”

수행의 맞은 편에, 뻣뻣하게 등을 펴고 정좌해 앉아 있던 쿠로사카는 약간 떨리는 손길에 스스로 놀라면서 쿠키를 하나 쥐고 물었다. 쿠키가 조각났고, 입안에서 바스라졌다. 그리고 곱게 부서지는 쿠키는 촘촘히 박힌 초콜릿의 달콤함과 다른 밀도와 온도, 그리고 막으로 녹으며 상쾌한 감각의 조화를 맞춰나갔다. 하나 둘, 하나 둘. 잘 훈련된 군대의 거열식 같은 맛의 걸음걸이. 바하의 푸가. 과연. 이라고, 쿠로사카도 평가했다. 자신의 온 신경이 다른 곳에 갈 여유가 없이 긴장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음에도, 쿠키의 맛은 원래의 색을 잃지 않았다. 소외됨 없기에 어디서도 온존되는 압도적인 개성.

“(마음에 든 것 같군.)”

수행은 이어 자신의 잔에 차 포트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따뜻하고 불그스름한 물줄기를 타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쿠키의 달콤한 향에 고운 꽃향기가 섞인다. 쿠로사카가 오늘 선물로 들고 온 자스민 차였다. 은결이 식사를 끝내고 간소하게 초콜릿 쿠키를 만든 것도 그녀의 이 선물 때문이다. 수행은 이내, 달칵, 하고 차 포트를 들고 쿠로사카를 바라본다. 쿠로사카는 황급하게 자신의 잔을 든다. 미미하게 떨리는 찻잔, 그리고 팔의 움직임이 선명하다. 외부로 드러난 긴장. 바보같이! 쿠로사카는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 살짝 입술을 문다. 차가 찻잔에 그득해졌다.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찻잔을 물리며 입술에 대어본다. 따스한 차가 그득히 머금어 진다. 입안의 달콤한 맛을 씻어내며 콧속으로 향기가 파고든다. 쿠로사카는 차를 삼키며 느낀다.

지독하게, 밀도가 높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박수행이라는 이름에 ‘경외’ 같은 것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에게서는 그윽한 기품과 가공할만한 지성, 온화한 성품이 함께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폐인이 되어버린 이 왜소한 남자에게 이렇게까지 짙은 외경심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왜? 그녀는 문득 깨닫는다. 아아, 나는 그가 박수행이기 때문에 긴장하는 게 아니야. 그가 ‘은결’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전설적인 천재로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은결’의 아버지로서, 박수행이 무서웠다. 몸이 마음을 다라 긴장의 선율을 울린다. 그렇지만 괜찮아. 그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은결과 관련되어 있지만, 내가 은결을 좋아한다는 것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긴장할 이유는 없어.

과자를 한입 베고,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 오래된 예술 영화의 느긋한 캐릭터 묘사처럼 차분하게, 그리고 수행은 입을 연다.

“(일본으로 떠나지 않았더군.)”

쿠로사카는 충격을 받는다. 월요일 아침, 그녀는 일본에서 날아온 식신을 받는다. 그것은 허공에 귀(歸) 자를 그리고 사라졌다.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권유가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쿠로사카는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녀는 묻는다.

“(그 일에 관계하고 계셨습니까?)”

“(자네에게 빌렸던 그노시스트의 패를 개인적인 분석과 의견을 덧붙여 일본으로 보냈네. 물론 분석과 의견에 필요에 따른 적당한 가감은 있었네만, 위험성에 대해서는 꽤 절절하게 설명했지. 나는 그들이 자네처럼 뛰어나고 중요한 인재를 이런 위험한 지역에서 위험한 일을 하도록 놔두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네. 늦어도 이번 주 월요일에는 떠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렇게 오래 남아있는군.)”

“(......)”

쿠로사카는 답하지 않는 가운데 확실하게 깨닫는다. 이 사람은, 나를 좋게 보고 있지 않다. 가슴이 조이는 것처럼 아프다. 무얼 잘못한 걸까? 역시 처음 만남이 어그러졌던 것이 문제인걸까. 그렇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실, 그 차는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선물라고 할 만한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제가 왜 아직 한국에 남아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겸할 것입니다.)”

그리고 쿠로사카는 품에서 잘려있던 종이를 하나 꺼내 허공으로 돌린다. 말려졌던 종이가 하늘하늘 증력에 당겨 내려앉기 시작했고, 쿠로사카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다.

키리야미가- 밀려나온다.

키리야미가- 수납된다.

빠져나오고 들어가는 동작은 하나처럼 부드러웠다. 검은 마치 빠져나오거나 다시 들어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정지한 듯 한 동작이 끝나자마자 중력을 타고 떨어지던 종이는 산비탈을 타고 미끄러지듯 똑같은 크기의 종이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래 거의 투명할 만큼 얇아졌다. 우선 한 장, 그리고 두 장, 다시 세 장, 이어서 네 장-

-모두 열장이었다.

수행의 미간이 불편하게 좁혀진다.

“(얼마 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이것을 증명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서 학교에 늦어야만 했습니다.)”

“(축하하네. 자네는 그 검의 후계자가 아니라 진정한 ‘주인’이었군. 내가 알기론 두 세기만인가. 그것도 스물도 되지 않은 소녀라. 기뻐할 이들이 적지 않겠지.)”

수행은 한숨을 섞어 말한다. 종이 한 장을 열장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의 신속하고 빠른 솜씨.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강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그녀가 다른 의식이나 시기를 기다릴 이유 없이 독자적인 자결권을 가진 키리야미의 ‘주인’임을 말한다. 사실상 그녀는 이제 자기 집안의 당주다.

“(그래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알겠네. 이제 일본에서 자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누가 감히 키리야미의 진정한 주인에게 ‘명령’을 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선물이라는 건가?)”

왜라니? 이 천재 중의 천재가 정말 모르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쿠로사카는 자신을 향하며 때때로 수행이 보이던 불편한 표정들을 상기해낸다. 이미지 하나하나가 숨결을 억누르는 중압이 되어 검게 달라붙는다. 그녀는 그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다. 은결에게 정면으로 고백했던 것처럼. 흥! 하고, 굳세게.

“(저는 이 힘으로 은결을 돕고자 합니다. 때문에-)”

“(고맙네. 하지만 무의미하지.)”

수행은 그녀의 결의를 산산조각 내겠다는 듯이, 단칼에 베어버리겠다는 듯이, 가볍고 담백한 말로서 말을 자른다. 이어서 그는 관에 못을 박는 장의사처럼 단정한다.

“(돌아가게.)”

쿠로사카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명확한 갈등이 도리어 긴장을 해소하며, 뜨거운 부드러움으로 정신과 몸을 진정시켜준다. 깨끗한 이곳과 저곳을 나눔은 중심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모두 부차적인 것으로 소외시켜 버린다. 괜찮아. 나는 자유롭고,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어. 나는 은결을 도울 거야. 그건 은결의 아버지라도, 설령 그 멍청이 본인이라도 막을 수 없어. 쿠로사카의 마음이 스스로 이야기한다.

“(은결에게서, 그노시스트에 대항한 진을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진의 중핵에 은결이 있을 것을 생각해도 그 외에 필요한 인원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은 한숨을 쉰다. 그는 그는 우울함 같은 것이 약간은 깃들어 있는 목소리로 쿠로사카에게 묻는다.

“(자네는 은결이를 좋아하는 군. 그렇지?)”

“(그-)”

쿠로사카의 말문이 막힌다. 그렇지만 말이 막을 수 없는 감정은 새빨갛게 전신을 타고 오른다. 볼이 화끈하게 붉어지는 것이 스스로 느껴질 정도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수행은 씁쓸하게 웃음 짓는다. 그 웃음을 보며 쿠로사카는 숨길 수 없다고 깨닫는다.

“(...그렇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게.)”

쓴웃음을 입가에서 지우지 않고, 수행은 어렵게 고백하는 그녀의 말에 냉혹하게 응답한다. 쿠로사카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핏기가 빠진다. 마음이 고통으로 균열소리를 내는 것을 그녀는 뚜렷하게 듣는다.

“(왜 저를 싫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자네를 위한 것이지. 자네가 아무리 강하고, 키리야미까지 쥐고 있다고 해도, 정면으로 그노시스트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용이지. 키리야미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위치를 생각할 때, 돌아가라는 것일 뿐이네. 만에 하나를 생각하기에 자네의 가능성과 위치는 너무 소중하고 크네. 나는 그것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군.)”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직감은 때로 논리를 초월해 진실에 가 닿고, 쿠로사카는 그 진실을 손안에 쥔 상태다. 그 진실의 내용은 ‘그는 나를 싫어한다.’였다. 때문에 논리적인 수행의 말은 비논리적인 쿠로사카를 설득하지 못한다.

“(저는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고집부리지 말게.)”

“(또한, 아무도 저에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

수행은 천정을 올려다본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서 있는다. 안타까운 자연이 그에게서 느껴진다고 쿠로사카는 느낀다. 어딘가 인간 없이 쓸쓸한 자연의 한 곳. 메마른 사막의 거대한 바위. 극한의 혹한에 마련된 거대한 빙산, 한 점 빛 없는 심해의 균열. 압도적이지만 관계할 길이 없기에 무의미한 것들. 결국 수행은 고개를 내린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군. 나는 자네가 싫네.)”

쿠로사카는 마음의 지반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살짝이지만, 눈시울로 치미는 열기도 느낀다. 알고 있었지만 저 외경스런 천재가, 자신이 좋아하는 소년의 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가혹하게 규정하는 부정적인 가치의 범주를 내려친다. 철썩, 하고 재단된 쿠로사카의 가치는 ‘싫다’다. 나를 향하는 그의 시선은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시선으로 환원되는데. 그럼 이 가치에 대한 가격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무차별 곡선이 그려낼 수 없는 이 가치의 가격은- 쿠로사카는 마음을 잡고 묻는다.

“(처음의, 그 일- 때문입니까?)”

“(그렇진 않네. 좋게 생각할 수는 없지만, 자네를 계속 원망하고 그것으로 평가할 정도로 옹졸하지는 않지.)”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수행은 다시 한 숨을 쉰다. 그리고 쓸쓸하게 이야기한다.

“(...자네가 이 세계의 사람이기 때문이지.)”

*농담이 농담이 아니었군요. 수행 욕 많이 얻어먹을 것 같다.

*현자의 돌이니 아담의 언어니 하는 훨씬 엄청난 것도 나왔는데 겨우(...)마하 40에 놀라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역시 명확히 수치화 되는 현상이 리얼리티를 얻기 쉬운 모양입니다.

*게쁘리님 댓글에 폭소.

인용문

새삼 녀석이 두렵습니다. 아니 부러운지도.. 아니 부러운데..

후, 돈이 최고야. 헉, 애인이 갑부... 이런 좌절이다.

*이글 끝나면 제가 따로 아무 설명 한해도 제공되는 사건이나 정보가 무의미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인내하는 독자 분을 많이 얻을 수 있겠죠. 그것도 꽤 기쁨.

*성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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