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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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진에서 손을 뗀다. 피로한 정신을 돌이키며 “후-”하는 긴 숨을 쉰다. 이틀? 아니면 사흘? 시험이 끝날 무렵이면 길게 끌어온 작업을 모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봉인된 아버지의 연구를 읽을 수 있으리라. 그걸 생각하면 은결은 가슴이 두근두근 뜀을 느낀다. 하지말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는 배덕감과 혹시 찾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초조, 그리고 지고한 천재의 공부를 금단 없이 접할 수 있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마음의 이야기는 한꺼번에 일어나 통일된 서사를 부정하며 자아를 분열시킨다. 긍정 하거나 부정하며, 초조하거나, 느긋하며. 그는 어깨를 움직여 긴장된 근육을 풀며 고개를 돌린다. 쿠로사카가 서 있었다.
“(수고했어.)”
“(모레- 정도면 끝날 것 같아.)”
“(드디어 끝이군. 네가 이 작업을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날까 싶었는데.)”
“(기다려줘서 고마워.)”
?좋아서 기다린 건 아니었으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선택할 수 없었을 뿐이니까. 선택할 수 있었다면 기다리지 않았을 테지.)”
쓰게 웃으며 쿠로사카가 답했다. 그녀는 그 웃음 사이로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마음이 타오르는 것처럼 벅차오르다가 으쓱하니 조인다. 그 동안 하나라도 건졌을까? 그래. 얻은 것은 확실히 있다. 많진 않은 것 같지만. 한 줌이나 될까? 그러나 손안에 쥐어진 한줌은 비탈에서 굴러 떨어지며 겨우 긁어모은 것들이다. 긍정하고 싶지 않던 것들을 긍정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바라보며 겨우 얻어낸. 싫었던 시간을 거쳐 손에 쥐게 된 것들을 돌이켜 보는 것은 쑥스럽지만 소중한 일인 것 같았다. 그것들이 모두 그노시스트로 인해 파괴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검은 중압의 무게에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답답함에 쿠로사카는 입을 연다.
“(그노시스트들은 어째서 그렇게 강한 걸까?)”
“(그들은... 상식에 제약되지 않는다고 해. 신과 영지를 제외한 모든 것은 가소로울 뿐이지. 우리가 감히 딛지 못하는 곳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딛어. 그들은 비상식적이지만, 가장 순결한 선의 그래서 지의 종사자이기도 해.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 강한 이유라고, 과거 아버지가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어.)”
‘상상하도록 하게.’ 그노시스트의 수장이 했던 말에 그의 입가에 물렸던 미소의 상과 함께 거품처럼 마음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그는 역장을 사용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역장이 아니라고 한다. 역장이라는 이름은 역장이라고 구현되는 현상의 진정한 가능성과 의미를 제약하는 틀이라고, 그는 말했다. 개념은 특정한 현상을 분할하고, 현상의 한 측면을 부각시켜 드러내는 권력의 양태. 그러니까, ‘상상하도록 하게.’ 은결은 역장을 생각한다. 역장을 넘어선 역장. 마로니에 나무뿌리와 로캉탱- 머릿속이 핑핑 돌며 눈앞이 어질어질해진다. 은결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쿠로사카는 은결의 상태를 깨닫고 시간을 두었다가 그가 진정되는 모양새를 보이자 말한다.
“(...네 아버지의 연구 가운데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으면 좋겠군.)”
“(응. 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설령 없더라도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도 좋을 거야. 아버지도 그들을 대비한 진을 만들고 계시는 중이고. 현자의 돌의 기본술식을 응용한 진이라면 그들이라고 해도 대항 가능한 방법은 없어. 그리고 만일 설령 그게 때에 맞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정면승부로 그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치킨 레이스에는 자신이 있거든.)”
쿠로사카는 이마를 찌푸린다. 은결은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은 웃으며 말할 내용이 아니다. 정면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같이 ‘죽을’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은결이 한 말의 요지다. 그는 기꺼이 같이 ‘죽을’ 수 있다. 처음 자신과의 대결에서 보여주었듯이. 쿠로사카는 마음 한 곳이 둔중하게 아파 옴을 느낀다. 그것은 은결에 대한 안타까움이지만, 무력한 자신에 대한 질책 같기도 했다.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마. 너는 네 목숨에 미련이 없더라도, 너를 아끼는 사람은 많이 있으니까.)”
“(너도 포함해서?)”
은결은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슬쩍 쿠로사카를 놀린다. 그러나 그녀는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은결. 이 멍청이도 겨우 손안에 쥘 수 있었던 한 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한 줌 가운데 가장 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래서 도리어 은결이 당황했다. 그 모습을 속으로 조금 즐기며 쿠로사카는 말을 더한다.
“(네가 어떻게 되어 버리면 울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몸조심해.)”
낯빛 하나 안 바꾸고 저런 소릴 하다니! 저란 말을 할 성격도 아니고, 저런 말을 하면서 취할 태도도 아니었다. 그 지극한 언밸런스의 조합이 폭탄이 되어 은결의 마음을 난타한다. 이 멋드러진 아가씨는 연애도 굴강하게 할 모양이다. 도무지 이 주제로는 이야기를 계속 이끌어 나갈 자신이 없어서 은결은 서둘러 화제를 바꾼다.
“(크, 큼. 그런데 지난번 이야기 했던 거 말야, 내일쯤 방문했으면 하는데 어때?)”
“(그럴게.)”
쿠로사카는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시험 3일째. 오늘도 은결은 전 과목 만점을 받았다. 9과목 900점이었다. 이제 전과목 만점까지 내일 마지막 시험이 남았을 뿐이다.
쿠로사카는 근처의 그릇에서 음식을 한 점 집다가 놓친다. 긴장한 탓인지 평소처럼 젓가락질이 유연하지 못했다. 음식은 만든 이가 만든 이인만큼 어디하나 불만가질 구석이 없이 완벽했지만, 이렇게 긴장해서야 소화나 제대로 될지 걱정이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미래가 귀여운 태도로 지적했다.
“헤- 언니 ‘아직’도 젓가락질 못하나 봐요?”
“아- 그런 것은 아, 닌데.”
쿠로사카는 어색한 한국어로 답한다. 밝고 똘망똘망한, 확실히 ‘귀여운’ 태도였지만 이 소녀의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서는 보이지 않게 가시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쿠로사카는 생각했다. 이어서 그녀는 아마 가시가 있는 게 맞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 소녀가 자기 오빠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접촉하면서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접근하는 이성마다 ‘으르렁’ 거리며 경계를 하는 모양이었으니까. 주변에서는 약간 곤혹스러워 하는 은결을 제하고는 살짝 웃으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은결이가 자네를 ‘유리에’라고 부르는 모양이던데.)”
맞은편에서 쿠로사카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녀는 퍼뜩 시선을 돌린다. 수행이다. 그녀는 저절로 등이 펴지는 것을 느낀다. 자상한 인상의 저 중년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전후로 이 세계를 둘로 나누었다고 이야기될 정도의 천재다. 박수행. 그의 능력이 여전했더라면 그노시스트는 아무런 걱정거리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 얼마 전부터 그렇게 됐습니다.)”
“(친하게 지내고 있는 모양이군.)”
“(물론이죠. 그녀에게는 도움 받은 것도 많고.)”
은결이 끼어든다. “(아닙니다. 제가 도리어 도움을 받고 있을 따름입니다.)” 쿠로사카가 은결의 말을 받아서 설명했다. 두 사람의 교환되는 이야기를 듣고 수행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쿠로사카는 문득 수행의 표정이 불편해 보인다고 느꼈다가 그 생각을 떨친다.
한편 한국의, 한국 가정의, 한국인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국어를 사용하며 식사를 하던 미래는 갑자기 외국어로 의사소통 수단이 전환되자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며 에? 하고 일본어로 교환되는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대화에 참여했다. 물론 일본어였다. 글로벌한 가족이다.
“(어찌되었건 앞으로도 은결이와는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 저 녀석이 사람 사귀는데 서툴러서 걱정이었거든.)”
쿠로사카는 ‘예.’ 하고 답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답 이전에 수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래에게는 기쁘게도 한국어였다.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그녀도 자기 일이 있는 법이고, 곧 일본으로 돌아가 봐야 할 텐데. 아쉽지만 은결이와는 인연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드럽지만 단정적인 어투였다. 쿠로사카는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반만 맞았다. 일본에 돌아간다고 해서 친구관계를 유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천리길만리길도 아닌데다가 두 사람 모두 천리길만리길을 집 앞 슈퍼 갔다오듯 할 수 있는 인종들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요즘 세상에는 인터넷과 같은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있다. 그래서 수행의 말은 그녀에게 마치 ‘축객령’ 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그 점을 수행에게 말해볼까 고심하던 차에 미래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언니 일본으로 돌아가요?”
“아, 음, 겨, 울 방학 즈음에.”
“가족들도 다시 보고 좋겠네요!”
쿠로사카는 피식 웃는다. 이 작은 소녀의 말이 진정으로 품고 있는 의미가 ‘얼른 가세요!’ 임이 뚜렷하게 읽히는 것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씩이나 돼서 이렇게 오빠를 좋아하는 건 좀 문제다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식사는 그런 약간은 껄끄러운 긴장을 품은채 지속적인 대화와 함께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 은결이 일부러 마련한 음식들이 워낙 뛰어나 그런 정도의 긴장은 어려움 없이 녹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 되어 수행이 다시 쿠로사카에게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런데 오늘 시간이 있나? 가능하면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은데.)”
쿠로사카는 이것이 ‘이쪽 세계’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한다.
“(물론입니다.)”
“(내일도 시험인데, 미안하네.)”
“(아니요. 필요한 일이니까요.)”
“(고맙네.)”
수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릇의 마지막 밥 덩어리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면서 쿠로사카는 수행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얼지 생각해 봤다.
*피곤하다...
*지금 은결이 전력으로 달리면 마하 40은 나오겠죠.
*저는 길어 보인다고 억지로 속도를 내지도, 아쉽다고 늘이지도 않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계획한 대로만 적을 뿐이죠. 디테일한 부분에서야 차이가 나지만.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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