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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57화 (257/300)

#   258-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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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맛있는 음식으로 한 차례 풍성했고, 조화롭게 이어지는 젓가락질 사이의 이야기로 다시 한 번 풍성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오늘 있었던 시험이었다. 무척 예쁘고 귀여운 인상의 소녀가 다양한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어느 문제가 어떠했고, 어느 문제는 어떠했는데, 운이 나빠서 틀렸다는 등의, 그런 이야기였다. 주변의 어른들과 소녀의 오빠는 그녀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 교환학생은 어땠어?”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할 만큼 했던지, 소녀- 미래는 냅다 화제를 전환시켰다. 막 김치 한 조각을 집어가던 은결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미래의 얼굴을 보고-동생의 얼굴에는 타오르는 열의 같은 것이 읽혔다-답했다.

“오늘 점수는, 그러니까 293점일 꺼야.”

“음-”

미래는 약하게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1점 밖에 앞서지 못했다. 이래서는 언제 역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동점이나 아슬아슬한 승리는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미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감탄을 입에 올린다.

“역시 그 아이도 공부를 잘 하는 모양이구나.”

“예. 유리에의 학업 성적은 무척 뛰어납니다. 대단하지요.”

은결의 답은 담담하다. 미래가 볼을 부루퉁하게 불리고 ‘나는!’이라고 치고 들어오려는 데 그에 앞서 수행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시선을 던진다.

“유리에?”

“예. 그게 왜...? 아.”

아버지의 질문이 다름이 아닌 ‘유리에’라는 호칭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은결은 슬쩍 볼을 붉힌다. 수행의 미간이 옅게 찌푸려진다. 할아버지는 희미하게 웃는다. 사정을 모르는 미래는 그저 눈썹으로 곡선을 그리고 이마에 ‘?’를 떠올릴 뿐이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친한 또래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지.”

할아버지는 그윽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만족스런 끄덕임은 닻을 끌어올리는 힘찬 손길 같아 부담스럽다. 마음 깊게 침잠시켜둔 기억의 한 장면이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키며 날것으로 새삼 뛰쳐나오려 든다. 아아, 안되겠다. “으-” 은결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린다. 결국 박차고 뛰어나온 그때의 기억에 심장이 고양이 걸음마냥 격렬하게 뛴다. 도둑맞은 거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첫 키스였던 것 같다. 미래는 갑작스런 오라비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안하게 느껴진다.

“오늘 왔단 말이지...”

수행은 중얼거린다. 은결이 희미한 말의 파편을 주워섬기며 아버지를 향한다.

“...뭔가?”

“아무 것도 아니다. 다시 식사나 하자꾸나.”

그리고 수행은 다시 수저와 젓가락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 동작은 몇 번 반복되기 전에 다시 할아버지의 말에 잠시 중단된다.

“그런데, 전에 이야기 했던 것은 어찌 되었느냐?”

“내일이나 모레쯤으로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좋구나.”

수행이 묻는다.

“전에 이야기 했던 거라니요?”

“아아, 그 아이를 집에 한 번 초대하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기도 했고, 앞으로도 끊기 힘든 인연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집에 들른 적은 없는 것 같아 항상 섭섭했지.”

“으음.”

그는 불편한 듯 미간을 찡그린다.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는 장난스레 싱긋 웃는다. 드물게 보이는 ‘승자의 표정’같은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맥락을 파악하던 미래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확인차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설마 그 교환학생인가 하는 언니가 우리 집에 온다는 말인가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답했다. 미래 대충격.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 맞을 줄이야!

오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이 시작되고, 어제처럼 은결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모두 정답이었다. 이로서 실제 기록될 점수는 어찌되었든 은결이 얻을 수 있었던 진짜 점수는 600점, 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의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새삼 감탄했다. 은결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어때!”하고 어제처럼 어울리지 않는 잘난척을 해 보였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치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정말로 ‘잘났’기 때문이다. 잘난 녀석이 잘났다고 하는데 이죽거려봐야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니까. 그 잘난체의 목적이 설령 온전히 ‘농담’에만 가 있었던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6과목 600점이라. 좀 비현실적이다. 이왕 황당할 거면 592점 이런 게 훨씬 더 현실감이 있겠다. 어떻게 저런 점수가 가능하지?”

고릴라가 반쯤은 어이가 없다는 느낌을 담아, 허- 하고 숨을 뱉고는 감상을 입에 올린다. 아쉬운 듯 이어진 “올백은 초등학생 때나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라는 사족에 주변은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했다. 6과목 600점이라니. 과장이 지나치면 리얼리티를 잃기 마련인데, 이 현실 같지 않은 점수가 현실이니 따질 수도 없다. 고릴라가 일행 중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여우에게 물었다.

“넌 몇 점이냐?”

“522점”

“헤- 너도 상당한데. 성적 좀 올랐겠다?”

“뭐 좀 그렇지. 은결 덕분인 면도 커. 그 녀석이 사실 자극이 많이 됐거든.”

여우는 득의양양하게 뻐긴다. 민성은 그 말을 듣고 쓰게 얼굴을 찌푸린다. “자극, 이라...” 입안에서 삼키는 중얼거림이 마음의 공허를 향한다. 나는 몇 점이었지?

“늑대 너는?”

“나, 나는 450 조금, 넘기지.”

늑대는 약간 어색하게 점수를 밝힌다.

“은결이 조작한 점수가 그 정도라던데.”

여우가 폐수를 흘리는 듯한 태도로 무감정하게 올린 이야기에 늑대가 일순 표정을 찡그린다. 고릴라가 폐활량을 자랑하는 것 같이 진한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다더라. 일주일 전만해도 우리 가운데서는 은결이냐 늑대냐 하고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는데, 진실을 보자니 이거 원. 하여간 꼴이 뭐냐. 나는 400도 아슬아슬한데.”

“그렇게 좌절할 필요야. 그런 마음을 자양분 삼아 발전해 나가면 되는 거지. 뭐, 넘어설 순 없더라도 친구라는 게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뭐 그런 정도로 말야. 이러니저러니 해 봐야 그 녀석이 사실을 밝힌 건 우리들뿐이잖아. 다음 시험부터 공부 좀 봐달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거고 말야.”

여우가 충고삼아 이야기 한다. 고릴라는 약하게 위안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까나.”

“말 같은 소릴 해. 친구에 성적이 무슨 관계야.”

늑대가 욱하는 목소리로 쏘고 들어온다. 여우는 고개를 젓는다.

“관계없긴. 까고 얘기해서, 신경 안 쓰여? 솔직히 말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잖아. 은결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우리랑 함께 있어도, 우리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다고. 자기가 얼마나 바보 같고 한심한지 바로 느껴지니까. 솔직히 이제까지 그걸 무시할 수 있었던 것도 유일하게 은결 성적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점 때문 아냐? 우리 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그저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나다시피 하니까.”

“--쳇.”

늑대는 무언가 반론하고 싶은 듯 감정이 응어리진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보지만 결국 그렇게 대화를 끝맺고 만다. 여우의 말이 옳다는 것을, 도무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친구사이에는 진실함이 최고라고 되뇌여봐도,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그렇게 받아주지 않는다. 입바른 ‘가치’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남들이 인정하기에 나도 인정하는 가치들이 나의 상을 만들어 그와 나를 비교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걸 넘어서서 쥔 것 만이 진짜 가치인 것만 같다.

“......”

늑대와 여우의 입씨름을 옆에서 들으며 민성은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물게 무거운 민성의 표정에는 역설되게도 아득한 무력감이 함께 읽힌다.

*익명으로 이 글을 후원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선뜻 후원해 주시는 분도 있고 하니 역시 글을 잘못 쓴 건 아닌 듯 해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추천해 주신 흐르는 눈, 가현님, 좀 애매한 추천을 해 주신 진아님께도 감사~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해도 이미 완결이 코앞이네요. ㅋ~ 뭐 유종의 미를 잘 거두도록 노력!

*읽는 분이 쿠로사카를 좋아한다면 그게 평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연 좋아하시는 분들이 독특한 거겠죠. 세연은 장래 은결균 이펙트와 푸른이빨 이펙트의 조합으로 몇 년 뒤에는 아주 멋진 캐릭터가 될 예정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소 때와 열 받았을 때의 갭이 어마어마한 캐릭터죠. 구현되지 못해 좀 아까움. 뭐 지금도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은결과 접촉하는 양이 적다는 게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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