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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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카와 헤어지고 홀로 집으로 향하는 길 도중에 은결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자전거는 타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는 미래를 태우고 자전거로 통학하지만 오늘은 여우의 일로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그냥 걸어 학교에 갔다. 미래는 투덜투덜 댔지만.
-시험, 잘 봤어?
은결이 대화하고 있는 이는 세연이었다.
“대단할건 없지만, 그럭저럭.”
그는 건성으로 답한다. 그녀에게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소중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그녀의 기억은 장래 수정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관계도 백지로 돌려야 한다. 지금의 관계는 필요에 의한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굳이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세연은 살짝 웃음기를 담고 친근하게 말한다.
-후후, 은결은 뭐든 잘 하는데 이상하게 시험은 못 친단 말야.
뭐든지라... 은결은 쓰게 그 말을 곱씹는다. 자신이 정말 뭐든지 잘 하는 인간이라면, 그건 자신이 누구보다도 현대적인 인간이라는 말뜻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현대적인 문명의 가장 비참한 특징은 개별분과의 최고성취가 모여 최악의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전체의 논리와 개체의 논리의 분열이다. 뭐든지 잘 하는 자신은, 사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은결은 마음을 떨치며 이야기의 끝을 잡는다.
“그러게. 세연 너는 어때? 너도 시험이잖아.”
-나? 나는, 음, 이번 시험은 성적이 무척 좋을 거 같아. 거의 틀림없이. 아, 전에 나빴다는 말은 아냐. 전에도 좋았어. 이번에는 훨씬 더 좋아질거란 말이지.
세연의 답은 당당하다. 거기 깃들여 읽혀지는 자신감의 농도는 상당하다. 자신의 어떤 정보가 얼마나 많이 그녀에게로 유입되었는지는 은결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마어마한 양일 것이고, 아마 그 자신이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과도 연관되어 그녀의 종합적인 이해력과 통찰, 응용력을 증대시켰을 것임은 분명하다. 아마 세연의 지적수준은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것을 이미 뛰어넘었을 것이다.
“헤. 대단한데.”
-그렇지? 은결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애인을 못 따라잡게 될 거야.
후훗, 하고 웃으며 세연은 속삭이듯 말했다.
“어, 그 말은 네가 나보다 앞에 있다는 게 벌써 확실하단 거야?”
-그럼!
“어련하실까요. 그런데 요즘 위화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아?”
농담어린 대화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은결은 조심스레 묻는다. 휴대폰 저편으로 돌아오는 세연의 목소리는 의아하다.
-위화감? 그런 건 없는데? 갑자기 왜?
“아니, 없으면 괜찮아.”
은결은 확인하고 안도한다. 푸른 이빨은 주입된 정보가 정체성 자체를 위협할 종류의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지난번 데이트 때 확인했듯 정보는 그 자체로 방향성을 가지고, 거대한 정보의 조직은 그것이 인식의 틀로 작동하기 때문에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일어나게 되면 정체성의 변화를 넘어서 일종의 정신분열로 이어질 우려를 가진다.
그래서 그녀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자아동일성이 해체 혹은 위협을 느낄 만큼 과거와 현재의 자신에 대한 결락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고, 이는 정보의 수용이 비교적 부드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분열증을 일으킬 우려는 없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아마 푸른 이빨이 뒤에서 손을 쓰고 있을 것이다.
“......”
세연과 푸른 이빨을 생각하니 마음이 묵직하니 무거웠다. 푸른 이빨을 없애고, 세연을 구하면 된다. 단순하게는, 그렇게 정리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정리해서 좋을 것인가, 하는 석연치 않은 의문이 계속해서 마음 가운데서 솟아오른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었다. 가장 어려운 때에,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나를 지우고, 하나를 얻는다. 시험지의 답안을 채우듯, 여러 문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과연 그런 것이 여기서도 좋은 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만일 그것이 답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대답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푸른 이빨은 어쨌거나 그 자체로 대단히 위험한 존재인데.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은결을 현실로 돌린다.
“아, 미안. 잠깐 생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이길래?
“정말로 세연이 너무 멀리 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그런 생각. 너무 똑똑해지면 같이하기 버겁잖아. 하하.”
농을 농으로 받아, 은결은 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침묵. 은결은 조금 당황한다. 무슨 말 실수라도 한 걸까? 그렇지만 이런 경우 흔히 그러하듯, 역시 그에게는 짚이는 것은 없다. “어, 저기-” 은결이 조심스럽게 무언가 말을 꺼내려 할 때, 겨우 대답이 돌아온다.
-아냐... 그런 거, 아냐.
“응?”
무거운, 대답이었다. 은결은 당황한다.
-사실은 말야... 갑자기 굉장히 바보가 된 것 같아. 정말로 똑똑하고 현명하다면, 알고 싶은 걸 알아야 할 텐데, 요즘엔 알고 싶은걸 도무지 모르겠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아닌 것 같아서, 도무지... 그래서, 날이 갈수록 바보가 되는 것 같아.
“무슨, 일이라고 있는 거야?”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당초-
‘-초’의 뒤로 이어져야할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말문이 막힌 것 처럼 시끄러운 전자의 대기만이 생생히 느껴진다. 우웅, 하는 공기의 떨림이 그 전자의 소란에 실려 그녀가 차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거대한 사고가 목구멍을 막은 것일까? 아니면 말로 짜낼 수 없는 공허의 사념에 지배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은결은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지금 그녀가 도저히 그 뒷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지금 그녀를 구성하는 정보의 많은 것은 사실 자신의 것이고, 그래서 아마 세연의 제일가는 이해는 자신일 거라고, 은결은 추리한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듯 세연을 위로한다.
“괜찮아. 말 하지 마.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얘기하도록 해. 언제든 들어줄게.”
-으, 응. 고마워.
“그보다 내일도 시험 잘 쳐.”
-응. 너도.
“노력할게.”
의례적인 마지막 말을 교환하고 은결은 수화기를 조용하게 덮는다.
차안에서, 세연은 막 끊어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울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 은결과 이야기 했던 것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특히 마음에 깊게 남는 것은 ‘같이하기 버겁잖아.’라는 말이었다. 그는 모른다. 자신이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딛어야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후-”
작게 한숨을 쉬고, 자동차의 천정을 올려다본다. 일관되게 무미건조한 천정이다. 변화 없는 상. 알고 싶은 것이 저런 것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세연은 속으로 말하고서, 곧 고개를 흔든다. 그녀는 정말 알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 알고 싶은 것이 설령 저러한 무미건조한 상으로 굳어져 버린다고 해서 지금의 무지가 극복되어, 대상에 대한 이해로 가닿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해체되고, 지의 자리에 무지가 들어서며, 질서 대신 혼란이 자리하는 이 난해한 질곡을, 그래서 이해를 위해 도무지 안심할 수 없는, 끝없는 집중과 독서, 마침내 숭배 같은 독법이 필요하게 되는 그 현상이, 겨우 상의 굳음으로 극복될 것 같지 않았다. 원래의 의미는 괄호 가운데서 언제나 해체되는 법이고, 거기에 들어서는 새 의미는 무한한 줄을 서고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바보가 된 것 같아.”
세연은 약간 슬프게 중얼거린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세상은 이렇게 혼란스럽지 않았는데. 그것의 대부분은 질서도 아니고 무질서도 아닌 무의미한 상으로서 받아들여졌는데. 그것은 나의 움벨트가 아니었다. 내가 갈 필요도 없고, 그들이 내게 오지도 않는. 지금은 그럴 수가 없고, 그럴 수가 없어서, 무수한 것들이 ‘의미’로서 다가온다. 세상이 이토록 넓고 복잡하다는 것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하늘의 달빛과 그 아래 걸어가는 자 조차도 거대한 그물코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그 무한한 의미의 궁극에는-
-‘은결’이 있었다.
*재밌는 글을 쓰는 건 기본입니다. 가능하면 한 10년 뒤에도 ‘살아’있을 수 있는 글이 쓰고 싶습니다. 놀이삼아 글 쓰는 놈이 말할 만한 포부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만.
*세연이 가진 카드는 주제와의 연관이라는 면에서 쿠로사카의 그것보다 다섯 배는 강력합니다. 연출도 다섯 배는 약하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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