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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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도천시의 사념체를 막기 위해 도심을 배회하던 두 사람은 그날 별다른 기색이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하고 빌딩의 한 옥상에 내렸다.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 가운데 은결은 아버지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간략하게 전했다.
“(결국, 네 아버지가 방법을 강구할 때 까지 이쪽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
“(이쪽도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냐. 적어도 내가 있는 한, 그들 역시 아담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 달리 기대할만한 것이 있어.)”
“(기대할만한 게 있다고?)”
“(진식은 거의 해체되었어. 앞으로 이주면 완전히 해결되겠지. 그렇지만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속도를 낸다면 이번 주 중에 모두 해석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아버지의 봉인된 기록을 읽을 수 있겠지. 그러면 그 가운데서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야기 하면서 은결은 문득 역장을 생각했다. 숨을 쉬듯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역장이지만, 그것의 다르고 거대한 가능성은 그노시스트들이 보여주고서야 알았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무수한 가능성들이 그 가운데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쿠로사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결에게 물었다.
“(그런거라면 네 아버지께 직접 알려 달라고 하는 게 어때?)”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은 현자의 돌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아버지가 그걸 내게 허락하실 리가 없어.)”
약간 망설이다가 은결은 답했다. 쿠로사카는 단번에 왜 수행이 그러한 선택을 하는지 이해한다. 그녀는 해변에 은결과 함께 있었고, 현자의 돌과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힘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도 보았다. 확실히,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 심지어 그노시스트보다. 그들은 겨우 은결을 데려가려 할 뿐이다. 그러나 현자의 돌은 자칫하면 그를 해체시킬 것이다. 쿠로사카는 눈썹을 올리고 분한 목소리를 낸다.
“(그런 거라면, 나도 용납하지 않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나는 그저 무력하지 않을 만한 힘을 바랄 뿐이야.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를 깔볼 수 없을 정도의. 나는 바보가 아냐. 그러니까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아.)”
은결은 따스한 웃음으로 그녀의 말을 받는다. 쿠로사카는 ‘아니, 너는 바보야!’라고 쏘아주고 싶다고 느낀다. 그런 바보 같음을 포함해서, 어쩌면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긴 하지만,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어 은결은 누구를 향한다고 할 것도 없이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더한다.
“(그리고, 어쨌든 진식은 해석해야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쿠로사카도 할 말이 없었다. 푸른 이빨에 관련된 문제만 생각하더라도 그 진식은 확실히 한 번 해제될 필요가 있다. 세연이란 아가씨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푸른 이빨을 제거하기 위해서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연-‘푸른 이빨-’ 이라. 쿠로사카는 마음을 마음으로 지우고, 키리야미의 손잡이를 강하게 쥔다. 그리고 입안에서 인연 깊은 이름을 중얼거려본다. 그는 왜 그날 은결을 도와준걸까? 그가 아니었다면 은결은 확실히 영지주의자들에게로 건너갔을 것이다. 도무지 모를 일이다. 도무지 모를 일이어서, 생각이 막혔다.
“......”
은결도 마찬가지로 푸른 이빨을 생각했다. 그는 왜 자신을 도와주었던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그는 떠나가면서 증오에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고 말하지 말라고, 그러면 아가리를 찢어버릴 거라고. 그 증오에서 거짓을 읽을 수는 없었다. 모를 일이다. 그의 도움은 정말로 큰 것이었고, 그만큼 푸른 이빨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마지막에 얼마든지 소멸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왜 증오하는 상대를 도우려 한 것일까? 무지에 은결은 한 숨을 쉬었고, 에너지가 기호와 함께 응집한 손을 허공에 올린다.
‘그렇지만...’
그리고 손에서 힘과 기호를 풀어내 공간 가운데 확장한다. 거대한 진식이 드러났다. 대부분이 해석되었지만 여전히 핵심의 얼마간이 해석되지 않은 채 남은 진식이다. 그는 그것을 풀며 생각한다. 그래도 푸른 이빨은 적이고, 없애야할 것이라고.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 덜컥, 걸리지만, 그래도 다른 수는 없다고. 마음을 굳건하게 다잡고 그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기호를 해석한다.
“......”
한동안 말없이 쿠로사카는 은결의 진식을 해석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인 것 마냥 평이한 하루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위험한 꿈은 엄연한 현실로서 미래에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 은결이 하고 있는 것도 그 엄연히 도사리고 있는 미래를 위한 지금의 대비이기도 하지 않은가. 쿠로사카는 생각한다. 지금과 미래. 생각은 어느덧 ‘시선’에 가 닿는다. -그 시선에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하나 되어 멈춰서는 것이 아닐까. 주인이 되거나 노예가 되거나. 모든 행위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니까. 마음이 무겁고 껄끄럽게 짓눌러진다.
“(저기 말야.)”
은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의아한 얼굴을 쿠로사카에게 보여준다. 그의 손은 시선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일부터 시험이잖아?)”
넌지시, 쿠로사카는 말문을 연다. 은결의 손이 멈춘다.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한다. “아, 아아.” 당황해서 갈라진 목소리다. 은결은 “응. 그래 시험이야.” 라고 여전히 갈라진 목소리로 답한다. 무의미한 대답이라는 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다. 그는 무의미를 자각하면서 혼란을 느낀다.
그래. 내일은 시험이지.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해.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 테고, 다음 시대의 높은 ‘계급’을 얻겠지. ‘계급’이라. 학이 어떻게 계급의 구조가 되더라? 이걸 설명하는 개념이 파워엘리트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비투스? 어떤 거였지? 둘 다 아니었던가? 나는 그것들을 자세하게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계급을 만드는 직접적인 축적부터 이야기 하자. 그 축적의 이름은 자본이다. 표면화된 외화의 물질적 상징은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 것은 ‘화폐다.’ 모든 사용가치를 포기하고 교환가치만을 얻음으로서 만물을 자기 앞에 불러들이는 상품의 왕이 된 기호화된 노동. 그는 뚜쟁이일 뿐이지만, 유일하고 위대한 뚜쟁이니까 아무도 거역하지 못해. 그러니까 어른들은 슬퍼. 잃어버렸기 때문에 숫자를 좋아하는 게 아냐. 잔혹하게 알게 되었을 뿐이야. 그들이라고 장미를, 그리고 여우를 좋아하지 못 할리는 없잖아. 단지 외화가-
“(괜찮겠어?)”
혼란스러워 하는 은결을 향해 쿠로사카가 걱정스레 묻는다. 은결은 그녀의 말에 현실로 돌아오며, 회피하기를 그만둔다. 결국 대답은 이루어져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침묵의 권리조차 없지 않은가.
“(...솔직히, 좀 무서워.)”
은결은 아릿하게 답한다.
여우를, 만난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 하지만 괜찮아. 걱정하지 마. 너는 그저 요령이 없을 뿐인걸.)”
“(응...)”
쿠로사카의 위로에 은결은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감스럽지만 그녀의 위로는 은결에게 닿지 못한다. 은결이 여우를 만남에 있어 가장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제 그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식을 알고 있지도 못하다.
“......”
은결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혼탁해서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 마치 이 시대 같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 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은결은 입안에서 작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언제 하늘이 길을 보여준 적이 있기는 했던가. 하늘은 아무 것도 보여준 적이 없다. 인간이 보는 것은 언제나 인간일 뿐이었다.
세연은 침대에 누운 채 고운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다.
토요일 날, 은결과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비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리고 옷도 바뀐 것 같았다. 틀림없이 같은 옷이긴 했지만 좀 더 새것 같았다. 마치 막 산 것 같은 제품이었다. 비는 시간에 대해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봤지만, 아저씨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다. 어디 세게 부딪힌 후유증처럼 몸 어딘가가 살짝 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은 은결 때문이었다. 은결을 생각하고, 그녀는 우울해 하고 있었다. 토요일 날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마음에 각인 된 것처럼 새겨져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은결의 이야기가 타당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의 이야기에 동감할 수 없었다. 그의 세계는 올바를지 모르지만, 너무 차갑다.
겸손하게 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차갑게 걷고 싶진 않았다.
*20화 정도면 완결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글쓰기는 지속적인 취미로 삼기엔 아무래도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니 적어도 안정될 때까지는 계속하긴 힘들겠죠. 아니면 연재 속도가 대폭 늦어지든가. 원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먹고사니즘!!(...) 그래서 타자가 개인의 실존을 장악하는 법이죠. 모든 개인은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교환가치를 확보해야 하고, 교환가치는 오직 타자의 인정으로서만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미가 소중해지죠. 그러한 타자의 인정이 없더라도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무척 드문 ‘실존’의 영역이니까. 물론 아예 타자가 필요 없는 건 아닙니다. 전자에 타자가 ‘반드시’의 영역이라면 후자에서는 ‘있으면 좋은’이랄까.
*그러니까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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