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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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방안에 은결은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다. 아버지와 마주 앉은 은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맞은 편 수행의 얼굴도 침중하니 무겁다. 두 사람은 방금 전 까지 그노시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표정에서 읽히는 무거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좋을까요?”
생각을 거듭하는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수행에게 은결이 물었다.
“달리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있느냐?”
“저를 도와준 쿠로사카가 알고 있습니다만, 미리 부탁해서 이세에 알리는 것은 막도록 했습니다.”
수행은 ‘쿠로사카라.’ 하고 자주 듣게 되는 소녀의 이름은 어딘가 껄끄럽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는 이내 소녀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아들의 지금 이야기에 집중한다.
“좋은 선택이다. 이세에 알려진다면 필연적으로 세계 전체에 알려지겠지. 그들은 나와도 불화했다. 그노시스트의 재등장이라고 하면 무의미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일 우려가 높다.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아마 얻는 것 없이 많은 피가 흐를 테지. 그노시스트들이 과거와 같이 과격한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일단은 조용히 하는 쪽이 즣을게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시작한 수행은 거기서 일단 말꼬리를 흐린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개개의 상황에 대한 판단보다 근본적인 사태에 대한 해결책임을 그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엉켰다. 결국 수행은 아픈 한숨을 쉬며 고백하듯 말한다.
“그들을, 특히 그 수장을 막는 것은, 현재로선 방법이 없구나. 네 말이 사실이라면 세계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없다. 있다고 하면 너 뿐이겠지만 그건 위험이 너무 크구나...”
“아버지의 진으로도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하다. 단순히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걸려들 가능성이 너무 낮고, 설령 걸려들더라도 그들에게는 어떤 진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건 네가 가지고 있는 힘과 같은 것이지.”
“아...”
은결은 깨닫고 신음을 흘린다. 그들은 아담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세상을 구성하는 질서를 조정하는 힘이 아니다. 그 질서를 질서로서 작동하게 하는 메타오더(meta order)에 직접 링크되어 발현하는 힘이다. 그것은 같은 종류의 힘이 아니고서는 상대할 수 없다.
“그들이 너를 노리는 것도 아마 그 부분과 관계가 되겠지.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는 알려진 바로는 네가 유일하다. 폐인이 된 나는 이제 단순한 이론가일 뿐이지.”
수행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은결은 그것 뿐은 아니었다고 느낀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리리스가, 그리고 그 수장이 하는 이야기들은 그런 것을 느끼게 한다. ‘상상하도록 하게.’ 어쩐지 따스하고, 그러나 거절해야 할 가슴 아픈 유대. 은결은 그들에게서 누구보다 가까운 연대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보다, 괜찮으냐?”
갑자기, 수행이 조심스럽게, 안쓰럽게 물었다. 은결은 당황했다.
“예?”
“그들을 너를 회유하려 들었다는 것은 네 정신적인 약점을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만물일여’의 의식을 일깨우게 되겠지. 견디기 쉽지 않았을텐데.”
은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일부러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이 지금 아버지의 말에 자극되어 구토가 치솟듯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눈앞의 시상이 흐려지며, 잉잉 거리는 이명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은결은 이를 악 물었고, 눈을 잠시간 꽈악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조용하게,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줄 수도 없구나. 미안하다.”
수행은 쓰디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아들을 향해 말했다. 현실적으로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노시스트에 대항할 카드가 없음을 알기에 은결은 희미하게 웃으며 아버지의 고뇌를 받았다.
“이런 정도의 일은 언제나 각오했던 바입니다. 이를 악물고 버텨볼 뿐입니다.”
“이를 악물고 버티기라...”
수행은 아들의 뒷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나 거기서 다 말을 무어라 추가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실무적인 위로로 돌아간다.
“가능한 빨리 그들을 상대할 방법을 강구해보도록 하마. 너를 중심으로 한 초대형의 진식을 새로 만든다면 그들이 아담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해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야 말로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마.”
수행은 아들의 걱정을 편안한 얼굴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무엇이냐?”
물음을 꺼낸 은결은 우물쭈물거린다.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일은 참 드문 일이어서 수행은 의아함을 느낀다. 하지만 은결은 쓴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행은 결코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게 아니라고 느꼈지만 채근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그러냐.”고 답했다. 이어 두 사람은 친근한 미소를 교환했고, 은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된 방에서 수행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상상하라고 했단 말이지...”
그는 불편하게, 아니 불쾌하게 중얼거린다.
방을 나서자 거실에는 미래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은결을 보자 피어나는 꽃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반겼다.
“아, 오빠!”
“시험이 내일모렌데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
“괜찮아! 미래는 성실해서 아등바등 안 해도 일등 할 수 있어.”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며 미래는 콧대 높게 답했다. 꽤 얄미운 모습이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은결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어서 미래는 고양이처럼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은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 갔다 온 거야? 이렇게 늦게까지?”
“만날 사람이 좀 있어서.”
“수상한데-”
눈을 갸름하게 좁히며 미래는 목소리를 깔았다. 은결은 미래 옆에 앉으며 무의미하게 브라운관에 시선을 던졌다. 무수한 비참들이 무의미하거나 왜곡된 상이 되어 무수한 사람들의 앞으로 전달되는 메마른 기호의 상자.
“수상할 거 없어. 그리고 정말로 수상하면 동생으로서 등 좀 떠밀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음- 나는 내가 인정한 사람 아니면 오빠랑 사귀는 꼴 못 볼 것 같아. 뭐, 대신에 오빠도 오빠가 마음에 안 들면 내 주변에 치근덕대는 인종들 쫒아내면 되잖아. 주먹도 세겠다. 헤헤. 안 그래?”
단호하게 돌아온 대답에 은결은 그 ‘인정’의 범주가 문득 궁금했다. 과거사를 돌이켜 보자면 세연도, 유리에도 미래의 ‘인정’의 범주에는 도무지 못 미치는 것 같던데, 과연 어떤 여자가 그 ‘인정’에 해당된다는 것일까? 그 두 명을 한참 넘어서는 아가씨여야 한다고 한다면 그런 아가씨가 있을 리는 없으니 그냥 혼자 살라는 말과 같지 않을까?
“그걸 할 말이라고... 관두자.”
은결은 한 마디 더 붙여볼까 하다가, 이 역시도 과거를 뒤적여 볼 때 이걸로 동생과 이야기 해 봐야 아무 건질 건덕지가 없을 듯 싶어 그저 한숨으로 대화를 끝냈다.
“후훗. 아, 하나 오빠 보여줄게 있다.”
“뭔데?”
그리고 미래는 품에서 분홍색의 귀여운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서 자기의 증명사진 한 장과 웬 투명한 종이 쪼가리 같은 것을 꺼냈다. 보통 사람 얼굴에서 가죽을 벗겨내 근육을 드러내 보이도록 한 해부도 같은 얼굴 그림이었다.
“그거 황금 마스크 아냐?”
“어? 아네. 시시하게. 하여간 잘 봐.”
불만스러운 듯 미래는 툴툴 거리더니 마스크를 자기 증명사진에 대고 맞췄다. 투명한 얼굴의 상이 미래의 얼굴 위에서 거의 완전한 일치상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은결 앞에게 보여주며 그녀는 부족한 가슴을 내밀었다.
“대단하지? 딱 맞는다구!”
“헤. 진짜네.”
은결은 조금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마스크는 스티븐 마코트가 만든 수학적인 이상의 얼굴상으로, 오각형 두 개를 비틀어 겹쳐 만든 십각형에서 모든 선을 연결해 거기서 얼굴을 읽어낸다. 오각형은 황금비를 정적인 도형상으로 드러낸 형태이기 때문에 그걸 겹쳐 만든 얼굴상은 자연스럽게 모든 부분이 완벽한 황금비를 이룬다. 미래의 증명사진은 거기에 거의 완벽하게 맞춰져 있었다.
“오빠는 여기에 맞을만한 남는 사진 없어? 증명사진 사이즈가 딱이거든. 어쩌면 오빠도 잘 맞지 않을까 싶은데.”
다시금 자랑스럽게 은결에게 사진과 마스크 상을 받으며 미래는 물었다.
“글세. 하지만 있어도 굳이 그런데다 얼굴 대 보고 싶진 않은데. 그리고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그거 맞아도 미남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던데.”
“뭐 어때. 재미잖아.”
미래는 유감스러운 듯 툴툴거렸다. 그녀에게 은결은 피식, 웃음을 보여주며 시선을 천정으로 올린다. 무의미한 천정으로 두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연과 유리에다. 언젠가 세연에게도 황금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황금비율 마스크라. 그녀들도 아마, 그래, 거의 확실하게 그 상에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두 소녀는 모두, 자신을 좋아한다고 한다.
*키라님의 추천에 감사! 낚시 스킬이 결여된 것이 조금 유감이었습니다.(...)
*세연과 미래는 각각 적어도 한 장씩 중요한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쿠로사카는 이제 카드를 다 사용했죠. 게임의 행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황금비율 마스크는 실제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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