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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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클루스란 여러 방식으로 이해되던 개념이다. 가령 유럽 중세에 호문클루스란 정자 속에 들어있는 작은 인간이란 개념으로 흔히 사용되어 왔다. 연금의 역사에서 그 개념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거기서 호문클루스는 태초의 인간이란 의미다. 태초의 인간이란 아담과 이브를 뜻한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면, 금기를 범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다. 깨끗하고 순결한 인간. 때문에 호문클루스는 금기를 범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가 가졌던 원초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호문클루스와 아담의 언어는 같은 결과의 다른 두 모습인 셈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술법이 발전되고, 적어도 이론의 측면에서 (궁극적인 면에서 신학적일 수는 있지만) 주관적인 면들이 사라지면서 보편성을 띈 과학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개념은 유지되었다. 술법이 세상을 구성하는 사대(四大)보다도 아래에 있을 궁극적인 원리에까지 가 닿을 수 있다면, 호문클루스와 아담의 언어는 비록 종교적인 이름을 가지고는 있을지라도 그와는 무관하게 실제로 가능한 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어떤 궁극적인 원리를 통해 그들 결과가 파생되는 것이라 보았기에 개념의 세밀한 내용은 달라졌어도 큰 맥락과 외양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는 박수행이 자신의 기호 이론을 발표함으로서 겨우 파괴되었던, 최근까지도 주류였던 이야기다.
-그녀가 정말 호문클루스라면, 우리에게는 이길 승산이 없다. 후우, 후우, 하고 긴장된 숨을 쉬면서, 은결은 호문클루스에 대한 자신의 아는 바를 되새긴다. 가령 그들은 죽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푸른 이빨에게 배를 꿰뚫리고도 리리스는 멀쩡하다. 단지 회복이 빠르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은결은 묘하게 자신이 침착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그 침착을 더듬어 올라가면서 왜 자신이 침착한지를 깨닫는다.
‘그렇지만 아버지보다 약하다.’
그녀는 강하지만, 전성기의 수행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은결은 이를 물면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강력했던 아버지도,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버지보다 강할리 없는 그녀를 이길 수 없을 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저들이 이전 보여주었던 아담의 언어도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리리스 역시 완전한 호문클루스일리는 없다.
“(어째서 그노시스트가 은결을 노리지?)”
긴장된 대치 가운데 쿠로사카가 묻는다. 리리스는 그녀를 분한 듯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본어로 말한다.
“(네게 답할 이유는 없어.)”
그녀의 발음은 완벽하다. 지금도 모든 종류의 언어에 대한 시냅스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태어나서 한동안 모든 언어에 대해 열려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특정한 언어에 따라 뇌가 고착된다. 쿠로사카는 물론 그런 데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약간 화난 표정을 짓는다. 은결이 참여한다.
“그러면, 역시 아버지 때문?”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 그러나 네가 더 중요해.”
“영광이지만, 기뻐할 순 없군. 물러가 주지 않겠어? 너와... 싸우고 싶진 않아.”
“나 역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너는- 아냐. 지금은 상관없지. 나와 함께 네가 간다면, 나는 이곳에 아무런 용무도 없어. 우리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그 말에 가슴이 진탕되는 것을 겨우 억누르면서 은결은 단호함을 담아 말을 되돌린다. 리리스는 한숨을 쉰다.
“그렇다면 나 역시 물러설 수는 없어.”
그리고 리리스는 다시 공간을 지배한다. 셋의 등골로 싸늘한 전율이 흐른다. 역시 엄청난 힘이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은 것 같다. 에너지의 지구력이라면 은결도, 푸른 이빨도 최고수준이지만 그녀 정도는 아니다. 이 역시 그녀가 ‘호문클루스’라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마 그러하리라. 어쨌건 이대로라면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은결을 비롯해 셋이 내심 확신하고 있는 어두운 결론이다. 은결은 주먹을 뒤로 당기며 숨을 쉰다. 하지만,
한 가지,
“푸른 이빨!”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게 와!”
푸른 이빨은 짜증스런 표정을 보였다가 이내 킬킬대며 웃는다. 그는 은결의 의중을 파악했다. 뭐 몇 번 해봤던 일이다.
“좋아. 이번엔 짜증스럽지만 협력해 주지. 저 계집에겐 당한 것도 있고! 한 판 벌여 볼까.”
“아니! 너는 그냥 들어와. 모든 힘은 내가 통제한다.”
“이 씨발병신새끼가 뭐!”
“역장을 사용할 수 없는 너로서는 확실한 우세를 얻을 수 없어!”
“크-!”
분노하던 푸른 이빨은 거기서 입을 다문다. 확실히 역장을 사용할 수 없는 이상 그녀를 상대하기는 힘들다. 역장은 상대하기 버거울 만큼 그 응용도가 자유로운 기술이다. 대부분의 술법은 특정한 상황에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걸려 있지만, 역장은 시작부터 그런 제약을 없애고 시작한다. 자유로 시작해서 자유로 끝나는 기술이다. 이번에 은결은 쿠로사카를 부른다.
“유리에-”
쿠로사카가 은결을 돌아본다. 은결은 짤막하게 말한다.
“-세연을 부탁해.”
그리고 그는 리리스를 향해 뛰쳐나간다. 동시에, 푸른이빨의 동체가 인형처럼 쓰러지며 대지로 추락한다. 쿠로사카는 얼른 그녀를 받는다. 푸른 이빨이 섬세하게 힘을 운용해 벌써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손상이 없지만, 옷가지는 엉망인 소녀. 쿠로사카는 정신을 잃은 세연을 바라본다. 역시 아름다운 소녀다. 특히 온화해 보이는 인상에서 약간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또한 은결을 좋아하고, 또한, 형식상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그와 사귀고 있다. 아무래도 마음이 쓰리다. 그녀는 약하게 한숨을 쉰다.
“......”
곧 그녀를 대지에 안착하고 위를 올려다본다. 은결과 리리스의 전투가 막 시작되고 있다. 지금, 어마어마하게 강대한 힘이 은결에게서 느껴지고 있다. 리리스를 간단히 넘어서는 초거력이다.
은결은 새삼 놀란다. 푸른 이빨의 자아가 자신에게로 들어오자 내부에 굳어있던 힘의 덩어리들이 한 순간에 용해되며 전체 가운데 융합되었다. 그 에너지의 총량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다. 이전에도 체험한 적이 있지만, 역시 경이적이다. 이 힘이라면, 비록 호문클루스라고는 해도 리리스를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은결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에 리리스의 얼굴에서는 아름다움 이외에 짙은 긴장이 함께 느껴지고 있었다.
은결은, 순식간에 리리스의 앞에 도달했고, 짤막한 기합과 함께 리리스에게 주먹을 날린다. 리리스는 손을 들어 그것을 막는다. 이전과 같이 역장을 교묘하게 활용하기는 힘들었다. 은결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고, 역장의 운용이 지극히 직선적이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속도와 힘은 기교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공간적인, 시간적인 극도의 압축이 기교를 통한 힘의 분산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콰앙!!
주변이 울리면서, 리리스는 뒤로 튕겨나간다. 에너지의 총량에서 은결이 압도적으로 위라는 증거다. 우세를 확인하고 은결의 머릿속에서 푸른 이빨은 쾌재를 부른다. 그의 킬킬거리는 웃음을 머릿속에서 들으며 은결은 멈추지 않는다. 튕겨나가면서 리리스는 공간을 끌어모으듯 양손을 펼쳤다가 당긴다. 무수한 역장의 바늘이 은결을 덥친다. 은결은 양 팔을 들어 옆으로 펼치며 역장을 형성해 그 모든 공격을 간단히 막아낸다. 이어서 그는 리리스를 향해 뛰쳐들어간다. 지구중력탈출속도에 준하는 속도다. 리리스가 그를 맞아 발을 든다.
-쿠앙!
역장과 역장이 충돌하며 충돌음이 인다. 신들의 싸움 같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분출이다. 그러나 동등한 힘은 아니다. 은결이 훨씬 우위다. 결국 으직, 소리가 나며 리리스의 발이 부러진다. 그녀의 발은, 그러나 수수깡처럼 부러지자 마자 원형을 회복했고, 리리스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다시 뒤로 튕겨나가며 자세를 잡는다.
‘이래서는 끝이 없겠군. 찢어죽여. 그러면 불사신이고 나발이고 없어!’ 푸른 이빨이 제안한다. ‘닥쳐.’ 은결은 간단히 답해주고 리리스를 쫒는다. 리리스가 손을 뻗어 은결을 공격한다. 힘의 덩어리들이 은결을 노리고 날지만, 은결이 자신의 앞에 형성시킨 역장의 방어막을 어느 것 하나 뚫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결국 은결은 리리스의 앞에 도착한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리리스는 비명없이 입술을 물고 뒤로 총알처럼 튕겨나간다.
-콰앙!
그리고 그녀는 대지와 충돌한다. 은결은 그 앞에 내리며 말한다.
“너는 이길 수 없어... 떠나도록 해.”
리리스는 더렵혀진 몰골로, 하지만 여전히 지치지 않은 기색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 없어.”
‘것 보라니까 이 병신아! 죽여! 죽이라고!’ 머릿속에서 열받은 푸른 이빨이 발광을 한다. 당장이라도 자아를 침식한 다음, 주도권을 빼앗고 저질러 버리고 싶다는 기세다. 그러나 은결은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하려고 한다.
그 순간, 푸른 이빨이 정말로 은결의 자아를 잠식한다. ‘못 봐주겠군! 이 병신새끼!’ 오래는 차지할 수 없지만, 시건방진 계집하나 찢어 죽이는 데는 충분하다. 그리고 푸른이빨은 은결의 몸을 순식간에 차지하곤 리리스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플라즈마가 작렬하며 리리스를 노린다. 역장이 아니기 때문에 리리스로서는 비교적 상대하기 쉽지만, 그래도 ‘비교적’일 뿐이다. 초근거리에서 리리스는 이런 힘을 상대하지 못한다.
-꾸르릉!!
벼락이 수백 개쯤 떨어지는 웅장한 소리가 나고, 빛이 동공을 태워버릴 것 처럼 작열했다. 그리고 침묵이 돌아왔다.
“으-!”
푸른 이빨은 저절로 신음소리를 낸다. 그의 주먹 앞에는 언제 등장했던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중년의 남자였다. 고귀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보이는, 그런 남자였다. 그는 방금 푸른 이빨의 공격을 아무 것도 아닌 양 받아넘겼다. 믿을 수 없이 강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리리스는 그의 옆에서 부복한 채,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먼치킨을 좋아합니다. 그건 먼치킨이야 말로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죠.
*연말이 되니 좀 찌질한 기분이 고개를 쳐 두네요. 성원을 합시다!
*올해 읽은 소설 몇 소개.
1.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 박상륭 단편집. 뭐 더 필요합니까?
2.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 문장이 좋음. 번역소설로 이런 느낌 받기 힘든데.
3.바야돌리드 논쟁 - 왜 선량한 자들은 패배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분명히 양쪽 모두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는데.
4.광골의 꿈 - 언페어한 미스터리 소설. 하지만 퍼즐 맞추는 재미는 일품.
5.남한산성 - 문장이 하악하악.
제가 소설은 몇 작품 안 봐서 더 꼽기는 힘들었습니다.
영화 - 트랜스포머
게임 - 슈로대W, 슈로대OGS, 영전6-3
올해 게임은 슈로대만 한 것 같은 기분; 그러고 보니 슈로대 신작 나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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