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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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은 힐끗 은결과 이리세를 바라보고 나서 말한다. 그는 술법으로 순식간에 의사를 전달한다.
-시간이 없으니 닥치고 따라라. 내가 저 계집을 상대할테니, 니년이 좆병신을 맡아라. 같이 출발한다.
그리고 푸른 이빨은 반론을 허용하지 않고 손을 놓는다. 쿠로사카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결국 푸른 이빨의 의견에 따르기로 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중요한 것은 은결을 구하는 것이다. 다른 것들은 미뤄둬도 상관없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가의 피를 소매로 훔치며 키리야미를 줍는다. 힘이 다시 육체를 관통한다. 그녀는 단단히 자세를 잡는다. 푸른 이빨은 그녀를 보고 조롱같이 싸늘한 웃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출발한다.
이리세는 눈살을 찌푸린다. 다가오는 힘이 느껴진다. 더는 움직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렐릭 급 아티팩트의 정당한 후계자라고는 해도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 저력이다. 하지만 그를 영지의 권역으로 끌어들이는 이 중요한 순간에 방해라니. 역시 죽여야 했던 걸까. 이리세는 고개를 젓는다. 은결을 회유해야 한단 걸 생각하면 그것도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긴 하다. 그녀는 은결을 향해 내뻗은 손을 거두지 않고 다른 손을 펼쳐 역장을 형성한다. 그녀를 상대하는 것은 은결이 자신의 손을 잡은 뒤라도 충분하다.
힘의 기척과, 역장이 충돌한다. 쿠앙!! 그녀는 그 충돌에 맞춰 역장을 변환해 그녀를 구속하고, 구속에 이어 공격해 무력화 시키려 한다. 이리세의 얼굴이 경악에 변화한다. 감지하지 못했던 강대한 힘의 갑작스런 출현에 그녀의 시도는 실패한다.
“익!”
이제 늦었다. 역장을 돌파하고, 쿠로사카가 달려온다. 다시 역장을 형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쿠로사카의 속도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리세는 최소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몸을 돌리며 힘을 집중한다. 역장을 펼치지 못한 상태로 키리야미를 상대하는 것은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부담스런 일이다. 키리야미만한 보물은 세계를 다 뒤져도 얼마 없다.
-그리고, 몸을 굳히고 방어 자세를 취한 이리세의 옆으로 쿠로사카가 지나간다. 이리세가 당혹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는 달리던 기세를 전혀 줄이지 않고, 아니,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것 처럼 한결 힘을 더하여, 거대한 힘으로 축구공을 차듯 은결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발길질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결연하다.
꾸웅-!
술법으로 보호받던 그녀의 운동화가 마침내 그 충격에는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며 재가 된다. 지지대가 된 대지 역시 술법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힘의 흐름을 따르는 균열을 선명하게 남기며 박살난다. 은결은 “크억!” 하는 격한 비명을 토하며 아득한 높이 까지, 아득한 속도로 날아간다.
잔뜩 긴장했던 이리세는 다소 당황하며 쿠로사카를 제지하고 은결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한다. 그녀의 뒤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손을 돌려 역장을 형성한다. 동공을 태워버릴 것 같은 강렬한 빛이 역장의 앞에서 머물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도심의 어둠을 배경으로 잔혹한 표정의 미녀가 떠 있다.
“한눈팔지 마라, 쌍년아.”
이리세는 분노한다. 그녀는 단숨에 소녀의 정체를 간파했고, 저것이 완결까지 한 걸음이 남았을 뿐인 모든 행사를 무효로 돌렸음을 통찰한다. 하긴 그녀의 감각을 이토록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얼마나 드물던가. 저것의 정체를 읽어내는데 특별한 통찰은 필요하지 않다. 그녀는 사자의 포효처럼 힘을 끌어올린다. 이리세의 주변이 밝아지고, 아름다운 옷가지와 머리카락이 그 힘의 율동을 따라 불꽃처럼 흔들린다.
“세계가 흘린 관념의 찌꺼기 따위가 감히...!”
푸른이빨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느껴지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으로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좆병신의 아비처럼 무언가 비상식적이고 거의 이질적이라 할 만한 힘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계집 역시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육화된 신의 잔재 같은 느낌이다. 푸른 이빨은 그 느낌을 껌처럼 되풀이해 감각해 보며 손을 뻗는다.
“니미 씨팔년이 어른을 몰라보고!”
꽈릉! 열에 대기가 폭발하는 굉음이 나며 빛이 번쩍인다. 그 힘은 그러나 역장에 막히고, 이리세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인다. 쿠웅! 콰앙! 소리와 빛만이 시간과 공간을 채운다. 결계가 없다면 과장 없이 산 하나둘 정도는 무너뜨릴 전투다.
“쿨럭!”
바닥에 추락한 은결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기침을 한다. 피가 섞인 기침이다. 속이 완전히 박살났다가 복구되고 있었다. 그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엉거주춤 자세를 잡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직 상황파악도 채 되지 않았다. 꽤 덜어진 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정도는 알겠지만--- 다가오는 그림자가 느껴진다. 한쪽은 운동화를 신고 있지만, 다른 쪽은 벌거벗은 소녀의 발이다. 고통에 취한 눈길로 은결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소녀가 보인다. 아아. 그녀가 나를 찬 거구나. 은결은 깨닫는다.
“쿠로사카...”
은결은 그녀의 성을 중얼거린다. 쿠로사카는 허리를 숙여 은결의 멱살을 거머쥐어 들어올린다. 은결은 마치 줄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딸려 올라온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타오르는 것 같은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은결은 말문이 막힌다. 그녀가 멀고, 그녀가 두렵다. 불과 몇십 분 전의 친숙하던 소녀는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외친다.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벼락처럼 꽂힌다. 은결은 횡설수설한다.
“쿠, 쿠로사카, 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나는, 그저, 웃으면서, 거짓 없이 그냥, 정말로 그냥,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도, 할 수 없었어... 나는 보지 않았어. 보지 않으려고 했어...”
그의 횡성수설을 들으며, 쿠로사카는 가슴이 아프다고 느낀다. 그의 할아버지가 10년이라고 얘기했다. 그가 말할 친구조차 얻지 못했던 것이.
“그, 그렇지만 소용없었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나는 보고 싶지 않았어. 보여지기도 싫었어. 그래서, 아래에 서지도 않았어. 위에 서지도 않았어. 그저, 그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텅빈 자리에 서 있었어. 하지만, 여우는 그것조차 아니라고 했어. 그 녀석은 차라리 내가 저 높은 곳에 있었다면 웃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시선이 없었을 거라고 했어!”
은결은 그녀의 슬프게 굳은 표정을 보고 한층 움츠려든다. 그녀의 시선이 무섭다. 결국 시선이 무서웠다. 어딜 가더라도, 시선은 있었다. 내가 어쨌든 상관없이 시선은 세계를 지배했다.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이니까. 고통에 마음이 불탄다.
“미, 미안, 네 말이 맞았어. 네가 옳아. 나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어. 상상해야 한다고 네게 이야기 해 놓고, 사실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걸 상상하게 되면 내게는 달리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걸. 아니야. 그 이상이야. 겨우, 겨우 얻었던 걸 다시금 버려야 하니까. 그러니까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야. 어느 곳도,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 타자는 어디든 있었고, 타자는 무엇이든 지배했지. 그러면 어디로, 내게 갈 곳이 어디에 있는 거지?”
“(그게 그들과 손을 잡을 이유는 되지 못해.)”
쿠로사카는 침착한 목소리로 결론짓는다. 은결은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말이 정답이고, 다른 것은 없다. 그건 일에 일을 더하면 이가 된다는 것과 같은 종류의 대답이다. 그러나 세상에 일에 일을 더하면 이가 된다는 것 또한 어디 감히 절대적이란 말인가! 은결은 드물게 외친다.
“이리세는, 내게 갈 곳을 주겠다고 했어! 위든, 아래든, 중간이든 상관없이 설 수 있는 곳을. 그런 곳을 원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거야?!”
쿠로사카는 그것이 주장이기보다 비명이라고 느낀다. 그녀는 이를 간다. 뿌드득. 여러 가지에 화가 난다. 그녀는 은결을 한층 강하게 당기며 그 비명에 답한다.
“(아무도 네게 신을 바라지 않아! 실수 했다면 고쳐! 잘못 했다면 사과해! 부족하다면 노력해! 그거면 충분하잖아!)”
“으-”
은결은 그녀의 강건함에 압도된다. 쿠로사카는 그 강건함에 열기를 더해 은결에게 외친다.
“(아무도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고! 바라보여지고 싶지도 않았다고! 뻔뻔한 소리 하지 마! 너는 네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모르지! 네 곁에서 너와 이야기를 하면서, 너와 친해진 사람들이 너를 선망하지 않길 바란다고?! 그런 게 가능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진 주제에! 그렇게 많이 가진 것을 어느 것 하나 귀중하게 여기지 않지! 전부다 초개같이 버릴 수 있지! 너를 알고 나서도 너를 시기하지 말라니! 그렇게 빛나는 주제에, 우리보고 눈부셔 하지 말라니!)”
은결은 그녀의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역시 내가 가지고 있던 길은 하나 뿐이었구나. 피할 수 없다면, 그저 소통을 거절하고, 쓸쓸함을 친구삼아, 삐뚤거리며 걸어가야 했었던 거구나. 나 같은 녀석에게 친구란 그 얼마나 큰 사치이고 오만이었던가.
“그렇다면, 나는-”
그러나 쿠로사카는 그 결론을 용서하지 않는다.
“(닥치고 내 말을 들어! 나는 네가 싫었어! 그 초연함! 그 능력! 제기랄! 나는 평생가도 너 처럼 될 수 없다는 건 너와 함께 하는 날이 쌓일수록 분명했지! 아무리 아등바등 올라가도 어깨조차 마주해 주지도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의 초조감 따위 너는 전혀 모르겠지! 너 때문에 그리고 보지 않아도 좋았을 많은 것들을 보았고, 몰라도 좋았을 무수한 것들을 알았지! 그냥, 무미건조해도 좋았어! 시시한 사명의 후계자였어도 좋았어! 그래도 나는 행복했어. 나는 노예였지만, 주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어! 그런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라고! 그 모든 게 너 때문이야! 하지만, 신이 있어 내게 너를 모를 때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쿠로사카는 말을 끊는다. ‘마음’을 생각한다. 읽고, 읽고, 다시 읽어, 결국 읽어낸 한 권의 소설. 닿을 수 없는 아득함이, 헤칠 수 없는 복잡함이, 아릿하던 상이- 높아지고, 단순해지고, 명료해지고, 선명해지고, 그래서, 결국 올라선 정상에서 볼 수 있었던 이야기의 분명함은 시선 없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어찌할 수 없기에 나의 이야기였다. 어찌할 수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마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심호흡을 하고 외친다.
“(-나는 결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거야! 비탈에서 굴러 만신창이가 될 것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올라가길 멈추지 않을 거야! 너는 어때!?)”
강인한 쿠로사카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그리움을 불러내는 자상함을 담는다. 그녀의 눈빛과 이야기에 은결은 심장에 지펴지는 불길 같은 것을 느낀다. 그것은 곧장 희미한 소금냄새와 시원한 바람으로 이어진다. 마들렌느 과자의 맛이 이끌어내는 기억 같다. 책은 책이고, 세계는 세계인 것 같아. 그 다음에 나는 뭐라고 했지?
‘-쿠로사카, 하지만, 하지만 말야, 그래도 나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은결은 자신의 이야기를 견디지 못하고 이를 문다. 숨이 막힐 것 처럼 가슴이 징- 떨린다. 설명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그를 휘감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러나 은결은 여전히 그녀의 이야기를 긍정할 수 없다. 모두 다 실패했으니까. 여우는 창조를 거절하는 시선에 의해 창조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저 도무지 부정할 수 없게 쿠로사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은결은 자신의 차가운 손을 부정하듯 억지로 꽉 쥐면서, 결국 이겨낼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쿠로사카... 너는 정말로 강하구나...”
나는 강한가? 쿠로사카는 은결의 말에 스스로 자문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리어 정 반대였다. 세상의 무수한 사소함에 마음을 졸이고, 자신을 구성하는 무수한 욕망에 곁눈질을 하고 마는, 시시한 인간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랬던 자신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돌이키건데 그것도 시시한 이유일 뿐이었다. 쿠로사카는 그 시시함에 피식 웃는다. 그리고 은결을 당긴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그의 입술을 마주한다. 짧은 시간이 지난다. 쿠로사카와 은결의 얼굴이 멀어진다.
“(그렇지 않아. 나는, 그저 너를 좋아하는 것 뿐이야.)”
쿠로사카는 대지에 남은 마지막 영원의 상징처럼 웃으며 말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브 크리!
*고비님의 추천에 감사~
*푸른 이빨 인기가 많군요. 이번엔 별 등장도 안 했는데. 그리고 쿠로사카 멋쟁이. 은결한테는 아깝군요.
*연말이고 하니 슬슬 ‘올해의’ 시리즈를 정리해 봐야 하겠습니다. 뭐 대부분 책이고, 게임이나 영화가 체면치례로 붙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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