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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33화 (233/300)

#   234-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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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으, 으음...)”

쿠로사카는 어쩐지 얼굴을 엷게 붉히고 침음성을 흘린다. 은결은 왜 쿠로사카가 저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다음 주에 집에 한 번 찾아오지 않겠느냐는 소소한 초대이거늘, 뭐 대단한 제안이라도 받은 양 저러는 것일까. 은결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쿠로사카와 할아버지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아버지가 부담스러운가? 그럴지도 모른다. 박수행이란 이름은 크고 거대하다. 그런 거인의 아들과 그녀는 최악의 방식으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여러 사건을 거치며 그 일은 물에 흘려보낸 것으로 치고 있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초청자가 아버지였다면 몰라도 할아버지인 이상은 아버지가 불편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던가, 이 일에 대한 진지한 청산을 바라고 있다고 여기기 힘든 때문이리라. 은결은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

“(만일 부담스러우면...)”

그래서 은결은 그녀를 생각해 제안을 거절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려 했다. 어차피 친분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상대가 부담스럽게 여겨서는 아무런 보람이 없다. 하지만 은결이 망설이는 기색으로 말을 꺼내자 서둘러 쿠로사카는 은결의 말을 자르고 결단했다.

“(아니야. 갈게. 기껏 초대해 주셨는데.)”

“(응. 기대하고 있을게. 저녁 리퀘스트 있으면 말해. 준비해 놓을 테니까.)”

은결은 반갑게 웃었다. 그녀가 찾아와 준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친구를 집에 초대한다니, 얼마만의 일일까. 물론 세연도 몇 번인가 찾아와 주었지만 그건 친구라서 라기 보다는 주로 푸른 이빨과 연관된 것이었던 데다가, ‘부담 없는 사이’라는 것과는 지구에서 알파 센타우리 만큼의 거리가 있다. 사실 세연은 지금도 부담스럽다. 그녀의 강렬한 호의와 그에 대답해 주지 못하는 자신. 그 구도는 어쩔 수 없이 괴로우니까.

“(음, 맡길게. 나는, 요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은결의 웃는 얼굴을 보고 쿠로사카는 치솟는 간지러움을 느낀다. 수치와 기쁨이 기묘하게 뒤섞여 전신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은결은 여전히 맑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쿠로사카는 묘한 표정으로 은결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는 웃고 있다. 기쁜 모양이다. 아니,. 틀림없이 기뻐하고 있겠지. 쿠로사카는 묻는다.

“(기뻐?)”

“(유리에가 찾아와 준다는데, 기쁘지.)”

담담하게 은결은 답한다. 예상했던 답변이다. 저렇게 말해올걸 기대하고 일부러 찔러본 질문이니까. 하지만 역시 이렇게 노골적인 호의가 돌아오면 식은땀이 흐르게 창피하다.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눈치가 없으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토록 솔직해 질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인지 단점인지. 부럽게 여겨지는 한편, 또 때리고 싶다는 욕구도 치솟는다. 서둘러 은결은 말을 추가한다.

“(아, 그리고 말야, 이렇게 말하면 마치 상납을 바라는 것 같아서 껄끄러운데,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가능하면 선물 같은 걸 하나 사 왔으면 해.)”

“(선물?)”

쿠로사카는 감정을 추스르며 되묻는다.

“(하나 없으면 그걸로 화낼 인원이 약 하나 있거든.)”

은결은 약간 쑥스럽게 말한다.

“(아아...)”

쿠로사카는 그의 말에서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과의 대면에서 주로 까칠까칠했던 소녀다. 무척이나 귀엽고 아름답지만, 앳되고, 성질은 사나워 보이는, 그런 소녀였다. 은결의 동생으로, 이름은 틀림없이 미래라고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할 때의 그 미래. 이름이 미래인 덕분인지 미래를 기대하라고 현재의 발육 상태는 그 나이 때의 쿠로사카에 비길 것이 못 된다. 머리도 무척 좋은 것 같았지만, 워낙 그쪽 방면으로 특출난 인원이 가족 중에 둘 있어서 별 대단한 개성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본인이 들으면 화내겠지. 쿠로사카는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다.

“(알았어. 적당한 걸로 하나 마련해 갈게.)”

“(미안. 나중에 내가 그 값 줄게.)”

“(그럴 필요 없어. 다른 사람 집에 찾아가는데 선물을 사 들고 간다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평소 네게 신세 진 것도 있는걸.)”

“(응.)”

은결은 고개를 끄덕인다. 소소한 대화 가운데 만들어진 따스함 같은 것이, 마음으로 퍼진다. 친구들의 소중함을 솔직하게 인정한 이후 이런 온기는 메마른 세계에 스며들 듯 찾아와 준다. 그 전에는 억지로 아니라고 막고 있었는데. 참, 좋다. 달리 무어라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은결은 불안 같은 것 역시 같이 느낀다.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은결은 시선을 돌린다. 그는 쿠로사카를 바라보며 말한다.

“(큼, 그리고 대련 말인데, 이왕이면 좀 덜 과격하게 할 수 없을까?)”

오늘도 꽤 많이 맞았다. 솔직히, 많이 아프다. 작심하면 못 막을 것은 없지만 때때로 키리야미의 봉인 까지 풀어가며(틀림없다!) 덤벼오는데, 그걸 제대로 다 막아내려면 숨겨준 전력을 많이 드러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으니 얻어맞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의 공격을 맞으면 많이 아프다.

“(그래선 수련이 안 되잖아?)”

새하얗게 웃으며 쿠로사카는 말한다.

“(음...)”

은결은 쿠로사카가 절대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 은결은 한숨을 쉬며 의문스럽게 여긴다.

“...그러니까 그만 화해해요. 아빠도 사실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아빠한테 말해서 집에 들어오게 할 게요. 사실 따지고 보면 엄마도 그렇게 잘 한 건 아니잖아요. 아빠가 먼저 잘못한 거긴 하지만.”

민성은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어머니가 엄숙한 얼굴로 앉아 있다.

“휴.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런 걸로 싸워봐야 밥이 나오는 것도, 떡이 한 조각 나오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 그만둘 때가 됐지. 그깟 설거지가 뭐라고.”

민성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의 말을 긍정한다. 민성은 이야기가 잘 풀리자 신이 나서 떠벌인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빠 돌아오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받아 주는 거예요. 누가 잘했니 잘못 했니 또 따지지 말고. 아빠도 약속 어기고 설거지 못한 건 잘한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돌아오면 예전처럼 계속 해 줄 거라고 했어요.”

“알았다. 그렇게 하마.”

민성은 어머니는 웃으며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 역시 지금의 구도가 마음에 계속 걸렸다. 별 것 아닌 일임에 틀림없었는데, 질 수 없다는 생각이 계속 이런 시시한 일을 질질 끌도록 하고 있었다.

“그럼 아빠한테 전화해서 오늘은 들어오라고 연락해 놓을게요. 그리고 화해의 기념으로 저렇게 쌓여있는 식기는 제가 해결하도록 하죠.”

“후후,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우리 민성이가 어느새 이런 효자가 다 됐는걸.”

민성의 어머니는 웃는다. 그녀의 웃음을 쑥스럽게 받아들이며 민성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예리함으로 화제를 바꾼다.

“에이, 별 거 아녜요. 그런 의미로 용돈 좀-”

“그 얘기는 시험 성적 나오고 나서 다시 하자.”

부드럽던 어머니의 분위기가 단번에 빙하처럼 굳는다. 방어는 철벽이다. 어쩌면 철벽으로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

민성은 서글퍼 하며 부엌으로 향한다.

-달칵.

아버지에게도 이야기를 끝낸 민성은 휴대폰을 접으며 후- 하고 한숨을 쉰다. 이야기는 성공적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집은 정상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길게 끌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쉽게, 허무하리라만키 간단히 갈등은 해소됐다. 그만큼 설거지라는 사태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째서 이렇게 강력하게 사태를 결정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이런 것에 관련한 영화도 몇 개월 전에 봤었다. ‘엑스페리먼트’라고 하는, 어딘가 찝찝한 영화였다. 실화를 기초로 했다길래 은결에게 물어봤더니 그렇다면서 자세한 전모를 알려 줬다. 그때 그 녀석이 무어라 이야기 했더라? 주체니 타자니 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집의 우환이 해결되니 속이 다 후련하다.

“후, 나중에 은결 녀석한테 한 턱 쏴야 겠군.”

이 일을 해결하는데 그 녀석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은결은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여우가 전에 이야기 했던 것 처럼, 은결의 성적이 고만고만한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녀석이 되게 멍청하다는 것은 또한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았다. 아니, 멍청하다는 표현은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 뭐라고 할까... 잘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쨌거나 은결은 멍청한 것 같았다. 쪼다 같다고 느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령, 그렇게 많은 것을 갖추고 있는 주제에 그걸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다. 보통은 그 녀석이 갖추고 있는 것 중 하나만이라도 갖추고 있으면 반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요령이 너무너무 없다.

“음...”

은결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 민성은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책상으로 간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용돈도 용돈이지만, 어쨌거나 현직 고딩이 시험공부에 소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지난번 성적 정도는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끄응-”

기지개를 펴고 민성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부산하게 책과 공책을 살핀다. 책상에 앉자마자 이상하게 공부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 그것 견디고 책과 공책을 살피던 민성은 문득, 한 권의 책 위에 손을 멈춘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이다.

“......”

민성은 그 책을 들고 무성의하게 페이지를 넘긴다. 무성의하게 넘어가는 페이지 사이로 이 글의 내용들이 되새겨지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겹치고, 쿠로사카와 나누었던 필담의 조각조각이 기억나고, 은결의 이야기가 해줬던 이야기가 더해진다. 어라라, 하는 순간에 순간적인 영감 같은 것이 번뜩인다.

“아아. 그랬군.”

민성은 납득한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은결이, 그리고 쿠로사카가 ‘시선’이라고 했던지, 이제 민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후후후, 하고 만족스레 웃으면서 거만하게 한 마디를 추가한다.

“나 혹시 천재?”

*반위에 님이 또 다시 간판을 만들어 주셨기에 기쁜 마음으로 바꿔 봤습니다. 좋군요.

*개인지는 낸다면 195*140mm 규격에 500p정도의 양장본으로 5권 정도로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가격은 6만원 안쪽으로 하고 싶은데, 6만원 안쪽이 안 된다면 양장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석, 혹은 용어해설을 좀 달아볼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좀 많아서 따로 두껍게 한 권은 필요할 것 같은데다 그렇게 할 경우 중심이기에 등장할 수 없었던 것들이 도리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할 것 같아서 그건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런거 없으면 못 볼 정도로 어렵게 쓰지도 않았고, 본문 뜯어고치기도 바쁘고. 수행의 사설을 모아 뒤에 개제하는 정도로만 생각.

*확실히 겨울바른님 너무 늦음!

*날씨도 추운데(무슨 상관?) 응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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