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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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란 도둑질이다.’ 라는 유명한 선언은 숙고할만한 진리를 담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구하게 되는 재화로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노동력을 팔지 않겠다는 선택은 불가능하고, 이러한 강제적인 거래는 반드시 고용하는 측에서 ‘착취’의 성격을 가지도록 하기 때문이다.(이상적인 계약의 차원에서만도 그러하다.) 하지만 재산의 문제를 여기서 그칠 경우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재산이 설령 도둑질이라 해도, 우리는 그것을 폐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세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재산의 부도덕함을 외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의 극복을 이야기해야 한다. 재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화폐 분석’이 필요해진다. 화폐는 재산의 가장 중심 되는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재화는 결국 화폐로 환원됨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화폐는 두 가지 측면으로 판단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중개를 거쳐 드러난 자기 노동의 외화된 산물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담보되는 아이콘이라는 측면이다. 우선은 화폐가 소외에 대한 대응물로서 페티쉬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집으로 돌아온 은결은 방을 뒤져 예전에 적었던 글을 기록해 두고 있던 공책을 꺼냈고, 책상에 앉아 조용한 눈길로 적었던 글을 바라봤다. 8세던가, 9세던가 하는, 어쨌거나 10세도되기 전의 어린 시절 적은 글이기 때문에 약간 치기어련 면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 통찰은 유효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비록 어린아이가 적은 글이이라고 하지만, 그 어린아이는 거인의 어깨를 타고 텍스트를 적었다. 은결은 그리움과 창피함 같은 것이 뒤섞인 웃음으로 슬몃 보이고는 페이지를 넘긴다. 오밀조밀 빽빽한 글이 이어지고 있다. 몇 페이지고 길게 이어지는 분석을 넘어서 한 주제의 끝을 바라본다.
-...이렇게 화폐는 소외된 내가 내 자신의 직접적인 외화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자 외화에 대한 간접적인 대응물로서 작동하게 된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라는 자기 재산에 대한 사람들의 무수하고도 애절한 한 마디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결국 화폐는 화폐일 뿐, 그것은 외화 그 자체가 아니다. 화폐가 노동의 외화로서 작동하게 될 때 그 노동은 질적인 측면을 제거 당함으로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며, 그 소외는 결국 자아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진실한 자아의 성장은 물화될 수 없는 노동의 질적인 측면을 대자적으로 파악함으로서 가능해 지지만, 아무런 질적 특성이 없는 화폐가 노동의 대상이 될 때 노동은 완전히 양적인 것이 될 뿐이고, 그것은 반드시 타자에게 자신을 기대게 하는 나약한 자아로 귀결될 수 있을 뿐이다. 가령 말 못할 고생을 하며 모은 돈 100만원은 간악한 투기로 번 200만원의 절반에 불과한 가치만을 반드시 담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사용된 수단은 무의미하다. 이는 질적인 측면이 제거된 양적인 것은 타자의 인정에 의해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화폐는 본질적으로 타자에 의존하는 양(量)의 아이콘인 때문이다...
그리고 분석은 화폐의 타자 의존적 성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소논문 형식의 글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아마포’에서 시작하는 분석의 전개가 헛웃음을 나오게 하는 치기와 그리움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단단하고, 완고하고, 깊고, 아름다웠다. 이제는 깊은 상흔과 함께 사라진 시대. 분석의 내용은 꽤 복잡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압축하기는 힘든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어렵게 주제만을 간취해 본다면 그것은 화폐가 가치 있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무수한 타자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처음 분석과 이어지며 노동이 화폐로 환원되면 사람의 존재 가치는 그 자체가 타자에 의존해서만 성립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아무로 존엄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존엄 그 자체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 되었다. 그 뒤로는 그 존엄의 문제를 다시 처음 제시했던 ‘재산이란 도둑질이다’라는 문제와 연결해 분석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은결은 더 읽지 않고 공책을 덮는다. 그는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재산이란 도둑질이다.’라는 선언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표와 기의의 연결이 완전히 자의적인 것이지만 그 연결을 담보하는 것이 공통체이기에 아무도 그 자의성을 또한 자의적인 결정으로 바꿀 수 없듯이, 누군가 재산의 부도덕함을 외쳐 그것을 폐기한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한, 그 재산의 가치는 폐기될 수 없다. 결국 화폐를 극복한다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타자에 의해 성립하는 주체’라는 문제 그 자체를 극복한다는 점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극복되지 않는 한, 어떤 생산력의 발달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 기술 복제가 아우라를 폐기하지 못했듯이.
“타자... 라.”
낡은 공책을 다시 서랍에 넣으며 은결은 중얼거린다. 가능할까? 그는 얽히는 마음 가운데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은 아프다. 못 견디게.
저녁 식사를 끝낸 민성은 자기 방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는 들려오는 낡은 시절의 멜로디의 들으며 방안에서 아무에게 보이지 않고 전화를 할 수 있는 휴대폰은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 눈치 보면서 전화해야 했다면 집에서 007 첩보 작전이라도 펼쳐야 했을 테고, 그걸 해낸다고 해도 그 전화가 꼭 연결되리란 보장도 없다. 지금은 어쨌거나 화사에 있을 시간도 아니지 않은가. 잡 생각을 하던 중에 곧 “민성이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빠. 그만 싸우고 화해 좀 해요. 진짜 내가 못 살겠다!”
민성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쏘아 보낸다. 민성의 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응대한다.
“아, 나야 그러고 싶지. 하지만 네 엄마가 저러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이게 대체 뭐예요? 부엌 봤어요? 이건 뭐...”
“자존심에 나이가 어딨냐!”
민성의 아버지가 항변한다. 하지만 민성은 설령 자존심에는 나이가 없어도 싸울 주제에는 나이가 있다고 여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거지는 내일 모래 50을 바라보는(용돈 깎일 표현) 사람들이 으르렁 거리며 싸울만한 주제는 아니다.
“그럼 하다못해 다른 방법으로 좀 싸우면 안 되겠어요? 하필이면 설거지가지고 싸워서. 집이 무슨 오수집합소 같아요. 이젠 집안에 썩은 내가 풀풀 나고 있을 지경이고!”
“음... 솔직히 설거지 하는 것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거기 걸린 게 크지 않니. 먼저 설거지 하는 사람이 지는 꼴이 되는데, 어쩔 수가 없지.”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는 데는 역시 강하게 나갈 수 없는 모양이다. 민성의 아버지는 조금 미안한 어조로 아들에게 말했다. 그걸 붙잡아 민성은 애절하게 부탁한다.
“아무 것도 아니면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좀 다른 거 가지고 싸우면 안 되겠어요? 내가 설거지 할 테니까.”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그리고 설거지 자체는 정말 어찌되도 좋은 거긴 하지만 리스크가 좀 있어야 이런 게임도 언젠가 끝이 나지. 그런 거라도 없으면 니 엄마하고 나하고 평생 이러다 갈지도 모른다?”
“으...”
반쯤 협박이 섞인 말에 민성의 말이 막힌다. 깨끗한 집에서 초장기간 냉전이 일어나는 것 보다는, 역시 좀 썩은 내가 나더라도 얼른 화해하는 것이 더 낫다. 민성의 아버지는 진중하게 선언한다.
“그러니까 부엌은 건드리지 마. 니 엄마가 어떻게든 하겠지. 이상.”
그리고 휴대폰은 딸깍. 민성은 허전한 휴대폰을 한숨을 쉬며 떼어낸다. 아버지의 말하는 투에 여유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주 내에 이 환장할 상황이 종료되기는 그른 모양이다. 그는 침대 위에 몸을 던진다. 출렁, 하고 스프링과 매트가 그의 몸을 받는다. 시트의 깨끗한 감촉을 느끼면서 민성을 눈을 감았다.
‘설거지 따위 아무 것도 아닌데 말야...’
다시 한숨이 나온다. 설거지가 중요한 것은 거기 두 사람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설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중요하지 않은 것을 방치함으로서 집안 꼴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 처참한 꼴이 되어 간다는 데서 민성은 깊은 우울함을 느낀다. 저런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싸우지 말고 그냥 누가 확 숙이고 들어가 버리면 될 텐데.
하기야 그건 어려우리라. 그렇게 자신을 숙이는 것이 쉽다면 세상의 소란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자신을 상대에 대해 낮추고 싶어 하지 않는다. 최소한 동등한 곳에 서 있고 싶다. 누군가의 아래에 선다면 그는 반드시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저 높은 곳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다.
“에휴...”
안 어울리는 생각을 하다가, 또 무의미한 한숨을 민성은 쉰다. 그리고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 다음 책상에 가 앉는다. 어쨌든 다음 주가 시험이니 공부를 해야 한다. 어제는 소설을 읽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그럭저럭 재밌긴 했지만.
오늘도 푸른 이빨은 스토커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그녀의 일기를 읽는 것이다.
-개인이 세계와 관계하는 모든 양식은 ‘외화’라는 표현으로 정리 될 수 있지 않을까. 외화란 결국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개인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이 ‘이름’과 ‘의미’를 연결한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이 외화에서 ‘즉자’ 상태에 있던 사물이나 사태가 ‘대자’상태로 전환된다. 이 대자 상태의 사물이나 사태에서 개인은 자신을 바라보고, 성립시키고, 강화한다. 진실로 중요한 의미는 이 곳에서 생긴다. 꿋꿋한 자기 자신은 여기서만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기심이란 자기애가 부족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란 말은 진실이다. 자기자신에게 자신감이 없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원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나도 소중하게 여겨서 그들을 배려하지 않고 나도 가짐으로서 자신의 나약함을 보충하려 한다. 그러한 나약함에 대한 보상, 혹은 보조를 원하는 행위가 결국은 이기심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친구들이 기껏 팔찌 가지고 자랑하는 걸 보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나는 친구들이 모두 자기애에 충만했으면 좋겠다. 은결처럼. 헤헤.♥
글의 내용은 마지막의 하트만큼이나 카미를 어처구니가 없게 만들었다. 그 병신 새끼가 자기애에 충만해 있다고? 연애를 하면 눈이 먼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푸른 이빨은 적지 않은 인간을 알지만 그 병신처럼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종자를 모른다. 그는 최소한의 자기 존중조차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경멸하고 짓밟는다. 그런 주제에 왜 살아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 정신병자 보다는 뒷간의 똥 덩어리가 도리어 세상에 있을 자격이 있다. 똥덩어리는 적어도 자기 존재를 경멸하지는 않는다. 그런 죽어 마땅한 병신이 자기애에 충만해 있다니.
“아, 씨발, 기분 좆같네.”
아득아득 이를 갈며 푸른 이빨은 중얼거린다. 그 병신 새끼를 앞에 데려다 놓고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패 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다. 그는 분노에 양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다가 세연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를 본다. 은결이 만들어준 그 팔찌다.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계집의 친구들이 자랑한답시고 차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댈 수도 없이 추하다. 그런 것을 이 계집은 보물처럼 소중히 생각한다. 왜냐하면 ‘병신새끼가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쳐다본다 하는 것은, 이 계집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 팔찌에 대한 그녀의 의견은 어디서든 당당하다.
“크---!!!”
다시 분노가 치솟는다. 울화가 터져서 미칠 지경이다.
*9292님의 응원에 감사!
*그러고보니 내일이 수능이군요. 이 글 보시는 분들 가운데 수능 치시는 분 있으면 좋은 성과 있길 바랍니다.
*사람이 우울할 때 별 특별한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냥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면 우울한 거지. 제 경험에 따르면 이럴 때 공부를 하면 좋은 자기 위로가 됩니다. 물론 설득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요령 피우면서 시간만 때우면 안 되고, 꾸준하게, 오랜 시간, 성실하게 공부를 하면 굉장히 좋은 위로가 됩니다. 자기자신에게 ‘이렇게 성실하게 하고 있잖아.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학생 때나 통하는 방법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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