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227화 (227/300)

#   228-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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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완벽한 그가 해석과 창작을 중단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세연은 그렇게 글을 섰고, 푸른 이빨은 그 글을 읽었다. ‘사랑’이라. 잘 알 수 없는 단어다. 기껏해야 교미를 위한 가장된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푸른 이빨은 그렇게 느낀다. 왜 그 환상에 저렇게 목메어야 하는 걸까? 하기야 ‘사랑’이란 걸 하는 인간들도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것은 더욱 ‘환상’이다. 푸른 이빨은 세연을 측은하게 생각한다.

민성은 침대 위에 눕는다. 어둠 가운데서 눈을 감지 않고 생각한다. ‘마음’에 대해서였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잡고 결국 끝가지 다 읽었다.

‘음-’

나름 세심하게 읽고, 쿠로사카의 이야기를 몇 가지 떠올리면서 본문에 겹친 결과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행동이 무척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그는 여관집 딸과 결혼하는 것으로 글에 나와 있다. 하지만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선생님은 그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관 주인과 그 딸은 선생님에 대해서 분명한 호의를 보여 왔음에도.

그것이 바뀐 것은 주인공이 그의 친구를 여관에 들여오게 되면서부터이다. 죽마고우인 그는 선생님이 거의 경외하는 대상이었다. 선생님은 거의 일부러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와 여관집 딸을 만나게 하고, 거기서 그와 여관집 딸 사이의 애틋한 분위기가 피어난다. 선생님은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친구가 없는 때를 틈타 여관주인에게 딸을 달라고 하고, 쾌히 허락을 얻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친구는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이후 누구도 책하지 않는 유서를 한 장 쓰고 자살한다.

‘......’

처음 읽을 때는 단순한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쿠로사카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옳다는 은결의 보증을 얻고, 다시 본문을 세심하게 읽어보니 그렇게 볼 수 없었다. 만일 단순한 삼각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어쨌거나 선생님과 여관집 딸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사랑, 혹은 호감이라 할 만한 것이 교류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도리어 그녀를 피하려한다. 시작은 모두 친구가 여관에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처음부터 존재하던 직선에 한 꼭짓점이 더해지면서 삼각형이 된 것이 아니다. 점 세 개가 모이는 순간, 삼각형이 형성되었다.

‘거 선생인가 뭔가 하는 작자 되게 마음에 안 드네.’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민성은 어둠 가운데서 얼굴을 찌푸린다. 선생이란 작자가 다 나빴다. 그냥 처음부터 그 여자가 좋다고 해버렸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삼각관계가 생기지도 않았을 테고, 그 자신이 존경하는 친우를 배신하지 않아도 좋았을 테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며 수십년을 살지 않았을 거고, 그 자신도 세상을 피하다 자살로 생을 끝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 선생이 나빴다.

‘하지만, 역시 모르겠구만.’

어둠속에서 그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쿠로사카는 이 글이 ‘시선’에 대한 걸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 전체 어디에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일까? 아니, 애당초, ‘시선’이라고 그녀가 말할 때 그 ‘시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생각은 더 뻗어가지 못한다. 생각을 기대어 걸쳐 뻗어볼만한 아무런 근거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저 막막한 어둠. 눈앞에 펼쳐진 세계와 같은 어둠. 민성은 한숨을 쉰다. 은결 그 녀석이 부럽다. 하기야, 책 가지고 끙끙거리는 것은 체질이 아니다. 부모님이 얼른 화해하길 바라며 잠이나 자는 수밖에.

그리고 잠에 물들며 흐려지는 정신으로 생각한다. 지금 아버지 어머니간의 분쟁은 선생님과 친구 간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는, 그런 황당한 생각을.

시험 공부를 끝낸 여우는 자정이 넘은 시각, 겨우 침대에 눕는다. 그는 침대의 스탠드를 끄지 않고 멍하니 손을 올려놓은 채, 그것을 바라보며 오늘 이리세에게 들은 말을 생각한다. 그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이이야기했다. ‘말씀’이었다. 말. 언어.

‘말씀은 로고스고, 로고스는 이성이라...’

말씀이 세계를 창조했다. 말씀만이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선악과. 곧 지혜과. 그렇다면 왜 선악과는 지혜과인가. 말씀이 이성이고,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성은 창조하는 능력이란 말일까? 하지만 그것이 선악과 지혜의 등치로 어떻게 이어진다는 것이지?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조가 말씀, 곧 ‘이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듣는 순간, 왜 선악과가 곧 지혜과인지 알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다만, 그것을 정명한 논리로 재구성해낼 수 없을 뿐이다. 거의 다 닿았다. 앎과, 판단과, 선악을 어떻게 연결하기만 하면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거야 말로 답 그 자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는걸.’

은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티 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그는 그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얼굴로. 가슴이 뛴다. 그렇지 않아. 너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너만큼, 아니 너 보다 많이 알 수 있다. 너는 그저 정말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먼저 출발했을 뿐이다. 내가 더 현명하다.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너를 쫒아 갈테다. 아무도 너를 인정하지 않아. 너는 그래서 쭉 왕따였잖아. 나는 왕따가 아냐. 나는 왕따가 아닌 체로 너를 쫒아가, 마침내 넘어설 테다. 모두 나를 인정할거야. 너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

전신이 뜨겁다. 고동치는 심장이 혈액을 운반한다. 고요 가운데 자신의 박동소리가 들린다. 그 박동은 리듬같이 몸 전체를 잉잉 떨리게 한다. 자기자신이 악기의 한 현줄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 떨림은 소리를 구성한다. 의미를 가진 소리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말로?’

여우는 스탠드를 끈다. 벼락처럼 어둠이 공간에 들이닥친다. 들리지 않았어. 나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너무 희미한 그 소리는 환청이거나 무의미한 피식거림에 불과하다. 여우는 눈을 감는다. 마음의 소란을 어둠을 데리고 진정시킨다.

“쯧쯧.”

아침, 미래를 보며 은결은 혀를 찬다. 미래는 귀엽게 혀를 살짝 내밀며 애교섞인 얼굴을 한다. 은결은 그저 한숨을 쉬고 자전거에 오른다. 미래가 활달한 동작으로 그 뒷자리를 차지한다.

“어제 늦잠이라도 잔거야?”

“음, 그런 건 아냐. 일찍 일어났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서 다시 자버린 게 문제지.”

“...자랑이다.”

은결은 한숨을 쉬며 패달을 밟는다. 자전거가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한다. 자전거에 실리는 바람의 차가움은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곧 이 쌀쌀함이 차가운 빙결의 고독으로 이어지리라. 모든 존재의 본래적인 모습. 은결은 그런 생각을 한다. 미래가 은결의 생각을 쌔고 말한다.

“후훗. 얼마 전에 휴대폰 얘기 했잖아? 오늘 일 덕분에 그게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어. 여러가지 기계를 사용해 일의 능률을 높여 여유시간을 늘리더라도 그렇게 남은 여유시간은 결국 모두 잠에 다시 투자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유로운 아침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거야. 어때, 내 생각이?”

“그- 뭐라고 할까, 그냥 좀 일찍 일어나면 안 되겠니?”

은결은 곤혹스런 얼굴로 한 마디 한다. 어쨌거나 하나도 잘한 게 없는 미래는 싱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음, 노력할게.”

“그래.”

은결은 만족한다. 만족하면서 방금 미래가 이야기 했던 잠의 비유를 생각한다. 황당하긴 했지만 재밌는 생각이었다. 타자가 주체를 결정하는 한, 모든 진보는 무의미하다. 그것은 기껏해야 굶주림을 없앴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 역시 매우 중요한 진보이지만, 그것만이 목적일 경우, 고통은 반대로 증가될 수 있다. 한국이나 미국, 일본, 유럽에도 사념체는 무수하게 등장한다. 그것들은 굶주림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중요한 것은 언제나 타자를 넘어서는데 있지 않을까? 미래에게는 타자가 잠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결정하는 타자는 무엇일까?

‘......’

은결은 그것을 해결하고 싶다고 느낀다. 자신은 언젠가 프루동의 ‘재산이란 도둑질이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글을 적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공부하면서 적은 글이다. 문득, 그 글을 다시 들춰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과거, 아주 옛날에, 그러니까 8살 때인가 9살 때 적었던 그 글을.

*완결내고 수정 끝나면 이 글은 지우거나 비밀글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니 완결 이후로도 여유는 꽤 있겠죠. 특히 수정작업 들어갈꺼 생각하면 거의 지옥. 저는 세밀하게 이것저것 파악하는데 약한 편이라.

*연재 끝나면 이 글도 쉽사리 잊혀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 좀 서글프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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