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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24화 (224/300)

#   225-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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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하자마자, 팔목을 냅다 들이 내밀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소녀가 있다. 그녀의 팔목에는 예쁜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감탄이 조롱 같은 것과 섞여 터졌다.

“나도 못 지겠다! 뭐 그런 거야? 예쁘긴 하다만.”

“그런 거지. 세연처럼 걸이가 좋으면 그걸로 태연하게 지내겠지만, 아무래도 그렇진 못하니 부족한 걸이에 채우는 장신구라도 고급으로 바꿔 광을 내 보아야 하지 않겠어?”

“아- 나도 체면이 있지, 이렇게 되면 나도 하나 마련해야 하겠는걸.”

“나도나도.”

소녀들은 함께 꺄르르 웃었다. 바람을 타고 전염되는 듯한 가볍고 발랄한 웃음이었다. 친구들의 소란을 세연은 정겨운, 하지만 약간은 유감스런 웃음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제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는 그런 모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서였을 텐데. 라고.

“...그런 일이 어제 있었지.”

점심시간. 밥 먹으면서 방금 민성이 친구들에게 한 이야기는 어제 중국 증시처럼 폭등해서 돌아온 잔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자기는 새로운 생물학상의 진전을 이루어내고자 노력하는 집의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착한 마음에-이런 걸 은결은 뭐라고 했더라? 무슨 의지라고 했는데?- 설거지 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돌아온 것은 꾸지람이라니, 무지무지 억울한 일이었다.

“니가 잘못했네. 부모님께 거역하다니!”

“음. 니가 잘못했어. 불효자 같으니!”

“그럼. 니가 잘못한 거고 말고. 어머니 말씀처럼 하라는 공부나 해. 통하지도 않는 뻐꾸기 열심히 날린다고 목구멍 붓지 말고.”

착한 동물원 삼총사는 우울한 얼굴의 민성을 그렇게 위로했다. 이건 꽤 효과가 있어서, 우울하게 가라앉던 민성의 얼굴이 단번에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이것들이!’라고 타오르는 민성을 보며 동물원 삼총사는 다시 낄낄거리며 즐겁게 웃었다. 민성은 이를 갈며 은결에게 시선을 돌린다.

“은결,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흥. 니들 의견은 필요 없어. 은결만 내 편이면 게임 셋이니까! 카드로 치면 조커라고. 찌질한 하트 원, 투, 쓰리 모여 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

돌아온 답변에 민성은 만족한 얼굴로 은결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꽉 잡으며 동물원 삼총사에게 선전포고 하듯이 말했다. 세 사람은 그런 민성의 대응에 분하다는 표정을 했다. 확실히 민성의 말 대로였다. 유감스럽지만 은결은 숫자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여우의 표정은 조금 미묘했다. 민성은 그렇게 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우는 요즘 은결에 대해 조금- 뭐라고 할까, 단어 선정이 어렵다. 아, 이거다. 좀 까칠까칠 하게 군다. 꺼칠꺼칠이 좋을까? 민성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도 화해 안 하고 지나간 거야?”

은결이 민성의 생각을 끊고 묻는다. 민성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저앉듯 털썩 앉으면서 그의 질문에 답한다.

“아, 응. 그냥 냉전 상태였지. 아주 죽겠다니까. 집안 꼴도 꼴이지만, 집안의 대기가 싸- 한게, 완전 가시방석이라니까. 겨우 설거지 같은 거 가지고, 어른답지 못하게. 그렇지 않냐?”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지.”

은결은 가볍게 웃는 얼굴로 말한다. 민성은 답을 기대하며 의례적인 물음을 돌린다.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여우가 끼어든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벤야민이지? 이미 우리는 무수한 사소한 것들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변모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걸. 심지어 유명인사가 씹던 껌조차 매물로 거래되는 시대에 무언가가 사실은 사소하다고 말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와, 훌륭!”

은결은 칭찬한다. 그의 칭찬에 여우는 가슴이 두근 하고, 뛴다고 느낀다. 마치 높아지는 것 같은 감각이다. 그것을 흔히 이야기 되는 감정들 가운데 어디에 소속시키면 좋을까? 어디에? 그러니까, 어디에? 여우가 그것을 찾는 사이 은결이 흥미진진하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왜 그것이 사소하지 않게 되었는지 설명해 보겠어?”

은결의 눈동자는 밝고 순결하다. 그 눈빛을 보며 여우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낀다. 왜 사소하지 않게 되냐고? 그야- 그야- 설명하기 어렵다. 알고 있는데, 자신도 몇 번이나 겪은 일인데. 사실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인데. 그런 사소함이 얼마나 많은 경우 거대하고 치명적인 것으로 발전해 버리고 말던가. 그렇지만 그것을 정리해서 특정한 말로 바꾸는 것은 할 수가 없다. 그것은 겨우 이미지처럼 떠돌 뿐이다.

“왜냐하면- 그야, 자존심 싸움이니까...”

말 꼬리가 죽어간다. 은결은 유감스런 얼굴을 한다. 그의 유감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며 여우는 지금까지 느끼던 감각이 한 번에 사라지며 다른 감각에 휩싸이는 것을 느낀다. 그 감각의 이름은 잘 알고 있다. 여우는 감정을 삼키듯 침을 꿀꺽 삼킨다. 옆에 앉아 있던 고릴라가 여우의 어깨에 굵은 손을 올리며 조언한다.

“낄낄, 아무리 니가 잘 나가도 은결한테 들이대면 안 되지.”

“그럼. 안 되고 말고.”

늑대가 동조한다.

“암!!”

팔짱을 끼며 민성이 참여한다. 처음 당했던 복수를 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절친한 친우들의 삼단 콤보에 여우는 좌절한다. 은결은 곤란한 얼굴로, 하지만 따스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사막 가운데 드물게 남은 옥지가 엷게 확장되어 가는 듯한 감각이다.

“그런데-”

늑대가 여우를 놀리던 것을 그만두고 은결을 바라본다. 은결은 답을 말할 준비를 한다. 쓰고, 다시 쓴 답이지만, 하지만 피할 수 없고, 마주보아야만 하는 답이다. 욕망은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가, 가지치기는?”

수줍고 긴장된 얼굴로 늑대는 전혀 다른 것을 묻는다. 은결도 무척이나 드물게 말을 더듬거리며 답을 회피한다. 준비한 답은 끓는 물에 던져 넣은 각설탕처럼 녹아 사라진다. 질문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 사태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타자다. 그리고 늑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고하기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걸 기회라며 고릴라가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

“(유리에.)”

쿠로사카의 어깨가 흠칫, 하고 크게 떨리는 것을 은결은 명확하게 봤다. 간이라도 떨어진 사람처럼 놀라고 있다. 은결은 숨을 죽이고 웃는다. 강건하고 뚜렷한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귀엽고 우습다.

-캉!

이제 은결은 웃지 않는다. 물론 쿠로사카가 지금 보여준 모습은 우습지만, 그리고 무척이나 귀엽지만, 비록 그렇다고 해도 발밑에 키리야미가 날아와 꽂혀 있는 판에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담대하지는 못하다. 은결은 웃던 것을 목을 고르기 위한 가벼운 기침이었던 양 ‘큼큼’거리는 것이고 바꾸어 보인다.

쿠로사카는 화난 얼굴로 은결 앞에 다가와 말 없이 키리야미를 뽑아든다. 걸어와서 검을 뽑아 허리춤에 수납한다는 간단한 행위 가운데 담긴 의미는 깨끗해서, 둔치인 은결에게도 ‘또 웃으면 화낸다.’ 는 그녀의 암시가 명확하게 읽혔다.

“(미안)”

은결은 사과한다.

“(알면 하지 마.)”

“(그래도 널 놀리려고 그런 건 아냐. 정말로 귀엽다고 느꼈었거든. 그리고 네가 보이는 태도가 확실히 가까워 졌구나, 뭐 그런 걸 느끼게 해줬던 것도 기뻤고. 그러니까, 음, 너무 화내지 마.)”

쿠로사카는 얼굴로 열기가 몰려오려는 것을 느낀다. 이 왕따 인생 10년차는 사람과 사귀는 걸 못해본 탓인지 보통은 쉽게 못할 말을 이렇게 쉽게 하고야 만다. 이 짜증나는 둔탱이(아-주 많이 때리고 싶다.)는 일반적으로 그런 말을 이성에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담게 되는지 상상이나 해 봤을까? 안 해 봤겠지. 그래서 더 쉽게 왕따가 되는 걸 테고. 할 말 못할 말을 잘 못 가린다. 밥 먹는데 먹던 밥 체할 것 같은 얘기를 숨 쉬듯이 자연스레 꺼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설마 집에서도 그러는 걸까?

“(아아, 요즘은... 음, 그래. 참 괜찮은 것 같아. 음. 좋아.)”

쿠로사카의 속내는 모르고 은결은 성큼 앞으로 나서 탁 트인 가을 하늘과 시선을 마주하며, 넓게 가슴을 펴고 말한다. 그의 모습을 등 뒤에서 바라보며 쿠로사카는 여우를 생각하며 확인하듯이 묻는다.

“(하지만 상상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겠지?)”

“(그야, 물론이지.)”

고개를 돌려 웃는 얼굴로 쿠로사카와 시선을 마주하며, 은결은 그녀의 말을 긍정한다. 상상이 기쁜 것만 일 리 없다. 그런 것은 상상이 아니다. 공상이고, 자위다. 상상은 언제나 거기 고통을 수반한다. 괄호 친 세상에서 뻗어가는 상상은 드물지 않게 고통에 뿌리를 내린다. 그렇기에 추악하거나 잔인하거나, 끔직하거나, 흉악한 것들도 예술이란 이름의 거울로 우리에게 귀환한다. 은결은 그것을 안다. 아주 잘 안다.

-희미한 두근거림.

*넷카마 노릇도, 로맨스 소설도 해보면 재밌겠다는 것에 불과하니 기대하지 마세요. 쓰고 싶은 글은 수십 개도 넘습니다. 구현해 보고 싶은 캐릭터와 소재, 주제는 참 많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운데 하나 정도 완결하는 게 한계겠죠.

*금강문주님이 유료 연재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지만 이제 완결도 다 된 글이고, 사실 유료 연재해서 1/3 이나 조회수가 유지될까 싶기도 해서 그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자책으로 만드는 것은 완결 후에 해 보고 싶네요. 혹시 개인지로 만든 이후에 이 글을 원하시는 분이 생기면 그런 분들에게 좋겠죠. 개인지가 무산될 경우도 전자북으로나마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고.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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