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219화 (219/300)

#   220-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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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

부지런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은결은 물었다. 그의 뒤에서 미래가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나른하게 답했다.

“몰라. 아웅. 하여간 악몽이었던 것 같아. 잠을 다 설쳤네. 피부에 안 좋은데. 하여간 지각하면 안 되니까 얼른 가.”

은결은 한숨을 쉰다.

“누구 때문에 지각의 위기에 처했는데...”

잠을 설친 덕분에 미래는 오늘 늦게 일어났고, 반쯤 잠에 취한 채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평소보다 늦게 준비를 끝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 시점은 이미 상당히 위험했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그 정도 희생은 당연히 감수해야지!”

날카롭다기 보다는 흉악한 반론이 당장 돌아온다. 사랑을 저당잡고 행하는 협박은 아무래도 강력하다. 물화될 수 없는 가치는 수치를 거절하기 때문에 언제나 궁극적으로 노리는 지점은 ‘무한’이 된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과 ‘희생’을 갈망하는 지고의 탐식자다.

“아, 예. 그러세요.”

그래서 은결은 굽신굽신 거리는 시늉을 하며 미래의 말을 따른다. 미래는 만족한 듯 뒤에서 웃다가 시계를 바라본다. 금세 만족하던 그녀의 얼굴이 초조해진다.

“오빠, 5분밖에 안 남았어.”

은결은 한 숨을 쉰다. 시간이 없다. 흔한 현실이 오늘 아침 자신의 현실이 되어 등장했다. 휴대폰, 세탁기,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진공청소기, 오븐, 자전거, 알람.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해주는 그 무수한 기기를 가지고, 결국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5분이라. 빡빡한데. 어쩔 수 없지. 안 떨어지게 꽉 잡아.”

미래는 은결의 허리를 꽉 잡는다. 은결은 한결 힘차게 페달은 밟는다. 가을 대기의 차가움이 동복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은결은 성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교실은 평소에 비교해 많이 조용했다. 시험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은결 일당은 언제나 그러하듯 모이던 자리에 모여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 이제 오냐.”

“교문은 넘긴 거 보니 간신히 세이프였던 모양이군.”

일당은 시시덕거리며 은결을 맞이한다. 시험 기간이라곤 해도 큰 변화는 없는 모습이다. 다른 녀석들은 원래 아침 시간까지 할애하며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였고, 쿠로사카야 워낙 우등생이라 그렇다 쳐도, 여우가 여전히 성경을 잡고 있는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네가 늦잠은 잤을 리 없고, 네 동생이구나.”

민성이 정답을 맞췄다.

“음, 정답. 오늘 미래가 좀 늦어서.”

은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그는 거기 가방을 올려 두고 가벼운 자세로 다시 친구들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고릴라가 상기된 얼굴로 채근한다.

“큼, 그- 네 동생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어, 어떻게 됐어?”

“아, 미안. 어렵네. 하지만 계속 이야기는 하고 있으니까 기다려줘.”

고릴라는 좌절한다. 이어서 늑대가 참여한다.

“나, 나는!”

“이, 이번 주말에 연락이 오기로 돼 있어.”

“그래...”

은결의 대답을 듣고 늑대는 실망해서 물러난다. 은결은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 자체는 거짓말이 아니지만 성과가 너무 나쁘기 때문이다. 그는 부담스런 화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두 사람을 피해 민성 쪽으로 간다. 보아하니 민성은 여전히 쿠로사카와 ‘마음’에 대해 필담을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힐끗 연습장을 본다.

-선생님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양면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었지. 그러니까 마음이란 단정적으로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역시 그 글의 주제였던 것 같아.

-그것은 일반적이고 좋은 이해지만 표피적인 것에 그치고 있다고 생각해. 왜 선생님이 주인공과 친밀해지길 꺼려했던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럴까.

‘어.’ 은결은 쿠로사카의 글에서 놀라움을 느낀다. 저것은 쿠로사카의 ‘마음’에 대한 이해인 걸까? 어제도 그녀의 해석에서 흥미로움을 느꼈지만 그것들이 이런 방식으로 맞물려 간다면, 그건- 은결의 눈으로 생기 같은 것이 감돈다. 그는 쿠로사카를 바라보며 기쁜 듯이 묻는다.

“(너도 이렇게 읽은거야?)”

“(아, 그래. 그렇게 읽혔어.)”

머뭇거리며 쿠로사카는 긍정한다. 사실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은결 본인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무겁게 다가온 그 뼈?아니었다면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려 그 이야기와 합치시켜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새삼 그 소설을 읽어 이해해 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쁜걸. 마음을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지 못했는데. 하지만 나는 역시 물질에서 비롯하는 마음의 악에 대한 소세키의 제시는 본질의 겉에 가면을 씌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선생님이 사촌여동생과의 결혼을 거절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나잖아.)”

“(응.)”

쿠로사카는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은 초반에 물질의 문제에서 선생님이 배신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주인공의 처지와 연관시킨다. 그러나 거기서 악의 문제가 생겨난다고 단순히 해석할 경우, 정말로 중요한 사건, 즉, 선생님이 자신의 친구를 자살로 몰아넣는 사건을 해석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한 사건들은 본질을 숨기기 위한 장막이거나 본질 그 자체가 변명되어 나타한 양태들이다. 몇 번이고 기표의 숲을 헤메, 보이지 않은 기의를 어렵사리 꿰메어 그렇게 맞물리는데 겨우 성공했다. 은결이 그것을 알아준다는 것은 기뻤다.

“(하지만 그렇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네 지도의 힘이 컸지.)”

“(내, 내가 그런 일을 했던가?)”

은결은 쑥스럽게 말한다. 쿠로사카는 분하다고 느낀다. 자신에게는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왔던 말이, 은결에게는 기억조차 못할 만큼 사소한 것이었다니. 그렇지만 그 분함을 그녀는 이내 지운다. 그녀 자신도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은결을 앞으로 걸어 나오도록 했었다. 아무도 자신의 행위가 타자에 가 닿아 이루게 되는 의미의 진정한 형태를 알 수는 없다. 그런 정도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물론 은결이 모르고 있는 이유는 좀 더 근본적이다. 그는 당시 푸른 이빨이었으니까. 기표와 기의와 기호와 정답과 오해와. 해석을 둘러싼 무대 위의 배우들은 끝없이 바쁘다. 무한의 세미오시스. 정박점은 언제 끼어들어야 할지 모른 채 갈팡지팡 하고 있을 뿐이다.

“여보세요.”

은결은 옆구리를 쿡-! 하고 매섭게 찌르는 손가락의 감촉에 화들짝 시선을 돌린다. 민성이 게슴츠레한, 이면에 불꽃같은 것을 감춘 눈길로 은결을 바라보고 있다. 은결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한다.

"음, 미안."

누구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좋아하는 여성 앞에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셨는지?”

민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다. 은결이 일부러 초를 치는게 아니라는 것은 그도 안다.

“마음에 대한 쿠로사카의 해석과 내 해석이 비슷했거든. 그래서 잠시 비교를 해 봤어.”

“너랑 비슷했어?”

민성의 얼굴이 구겨진다. 쿠로사카의 이야기가 은결과 비슷하다니! 은결은 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아아. 젠장. 그러면 그저 숙이고 들어가야 하겠구만. 괜히 계속 내 감상을 밀고 나가다간 아무래도 좋은 꼴은 못 보겠으니.”

민성은 개버로우의 타이밍임을 직감하고 물러서기로 한다. 좀 멋진 모습 보여주면서 뻐꾸기 날리려고 책 읽은 거지 괜히 자기주장 내세우다가 피박살 나려고 읽은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수지타산이 지나치게 안 맞는다.

“그럴 필요 없어.”

여우가 끼어든다.

“응?”

“은결의 이야기라고 언제나 다 옳은 건 아냐. 언제든 틀릴 수 있는 거라고. 더구나 문학 작품의 감상이잖아. 각자의 이해와 감상이 다 있을 수 있는거야. 왜 그걸 은결이 이야기 했다고 해서 포기해. 그런 건 옳지 않아.”

그는 강한 어조로 주장한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인다. 여우는 요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논술 학원에 다닌 덕분일까? 이리세와 알게 된 덕분?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성이 주체성의 가장 큰 발걸음이다.

“그래. 여우 말이 맞아. 네가 적은 건 일반적이고 좋은 해석이야. 버릴 이유는 없어. 네가 납득하지 못한 이해인데도 누군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 좋은 감상의 태도가 아닐 거야. 우리는 자신을 위해 예술을 접하는 거지 누군가를 위해 예술을 접하는 것은 아니니까. 최소한 네가 납득한 이후에 네 이해를 바꾸던가 버리도록 해.”

“크, 큼. 알았어. 그렇게 할게.”

민성은 고개를 끄덕인다. 쿠로사카는 좀 당혹한 얼굴로 어딘가 기뻐하고 있는 표정의 은결을 바라본 다음 여우를 잠시 바라본다. 그는 석연치 않은-마치 분해하는- 표정으로 은결을 보다가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끙끙거리며 성경을 읽는다.

*밀키문 님의 게시물 밑에 ‘슈퍼철학대전’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면 수행이 닥치고 최강이군요. 공격 무기명은 ‘통일기호이론’ 이고, 논리력(공격력)9999 이렇게. 하지만 이해될 가능성(명중률)이 1% 이하겠죠. 물론 수행은 설명(명중)이 400이기 때문에 의외로 천재 피트가 없는 자코들도 이해하고 괴멸(설득)될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때때로 이런 망상 해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글이 가볍다고 느껴지시면 제가 저런 대화와 장면을 왜 사용했을까? 라고 의문스레 여기면서 읽어보세요. 저는 장면의 낭비를 거의 없이 글을 쓰기 때문에 의외로 풍성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지난화에서 수행과 할아버지의 대화는 마지막 수행이 ‘성’으로 할아버지를 협박하는데, 물론 수행은 그 협박이 따지면 사실은 무의미하고 피할 방법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기표에 담기는 기의를 욕망에 따라 조종함으로서 기호를 지배하는 행위죠. 때문에 지난화의 개그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결락으로 욕망이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개그를 통해 나타내는 장면이었던 거죠!!!(뻥)

*장면 낭비 없이 글을 쓰는 건 사실임.

*여러분 모두 성원!!! 성원님 부르는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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