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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15화 (215/300)

#   216-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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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다. 세연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식기 소리 가운데,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먹는 것이라기보다는 수다인 것처럼 보였다.

“짠! 어때? 멋지지?”

식사하던 도중, 갑자기 수저를 식기 위에 놓아두고서 단발머리의 소녀가 팔목을 내밀어 보였다. 동복의 소매가 위로 끌어올려지며 그녀의 팔목이 드러났고, 빛이 반짝였다. 그녀의 팔목에는 황금색으로 가늘게 빛나는 둥근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이렇다할 장식 없이 원형으로 된 팔찌는 가녀린 모티브를 수없이 연결해 만들어진 금속의 띠와 함께 아름답게 빛을 쪼개고 있었다. 극히 단순하지만 동작에 따른 팔찌와 금속실의 움직임이 조화되어 무척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장신구였다.

“와, 괜찮다. 어디서 샀어?”

“후후, 비밀! 이거 꽤 비쌌단 말야.”

“흥, 대 놓고 내보이지도 못할 걸 학교에 차고 오면 뭐하니.”

“계집애, 시샘하기는. 그럼 맨날 교복 입고 다닌다고 사복도 안 사리? 이런 것도 사 두면서 패션 센스를 키워야 하는 거야. 부러우면 부럽다고 그냥 말로 해. 혹시 어디서 샀는지 알려줄지도 모르잖아?”

콧대를 높이며 소녀가 주변의 질시에 응대했다. 괜시리 한층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그녀의 팔목을 따라 팔찌는 짤랑짤랑 희미한 소리를 내며 아름답게 빛을 냈다. 옆의 여자아이가 분한 표정을 보였다.

“이 앙큼한 계집애가 수험이란 현실 앞에 억눌렀던 욕망을 깨어나게 만드네. 그리고 아서라.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다고, 세연 앞에서 그런 거 자랑하면 너만 꼴불견이야.”

“그래. 본판도 멋지지만, 그런 거 제대로 사기 시작하면 학교 다 뒤져봐야 우리 세연이 한테 게임이 될 애가 어딨겠어.”

세연 옆에 있던 소녀가 앞선 말을 받아 허리를 들어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고는 세연의 얼굴선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세연은 미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물론 집이 부자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연은 그녀의 스킨쉽을 조금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저었다.

“얘들은... 아냐. 군것질도 마음 졸이면서 하는데.”

“알았어. 알았어. 그리고 세연은 반칙이니까 꺼내지 마. 그보다,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이번 주말에는 다 같이 옷이라도 사러 가지 않을래? 엄마잡지 보니까 요즘 유행하는 코디를 쫙 소개해 놨던데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좀 있더라구.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 보이고.”

단발머리 소녀가 손을 내저으며 항복한다. 그녀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런저런 장신구를 내보이거나 하면서 자신이 한발 앞서가 있다는 것을 즐거울 수 있지만, 세연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녀는 무척 특별해서, 애초에 경쟁심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만큼 멋스럽지 않다거나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별로 유감스럽거나 분한 일이 아니다.

“음, 나는-”

“뭐야, 설마 낭군님과 약속이라도 있어서 우리하고는 같이 못 놀겠다는거야?”

“와, 벌서 배신? 너무 한다. 약속은 일요일로 미뤄도 되잖아. 너도 빠지지 말고 같이 가자. 솔직히 너랑 가면 손해보는 거 네가 아니라 우리다. 너!”

“으, 응. 알았어.”

세연은 매서운 친구들의 공세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특별한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있었어도 뒤로 미뤘어야 할 판국이다.

그렇게 끄덕이면서, 그녀는 문득 유행에 대해 생각한다.

‘유행에 따른다는 것은, 저들의 기호를 나의 기호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어서, 유행에 앞서 간다는 것과, 유행에 늦게 따른다는 것을 생각한다.

‘유행에 앞서는 이들은 쉽게 자랑스러워하는데, 그건 유행이라는 기표가 ‘멋스러움’이라는 기의를 보장하기 때문일까? 그러면 결국 유행에 따르는 이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을 향하는 저 모든 시선을 향한...’

그리고 세연은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무언가 이어지던 것이 끊어진다. 그저 자신이 생각해도 고운 손만이 시야에 그득하다. 은결과 쌍으로 맞추어, 반지 같은 것을 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포근하게 든다. 그렇게 한다면, 그 무참한 무수함 가운데서, 그와 나를 연결하는 하나의 표식이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합일, 혹은 하나. 그리고 투사. 명료함. 떠도는 개념들이 어지럽다.

“휴우.”

은결은 깊게 숨을 내쉰다. 좋은 대련이었다. 비록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섬세함에 허를 찔리지 않고 대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쿠로사카는 키리야미를 허리춤의 검집에 넣고, 늘상 의례적으로 하던 말을 은결에게 말한다.

“(수고했어.)”

“(응. 너도.)”

그리고 은결은 몸을 돌린다. 아직 그가 허공에 띄워놓은 진식은 그 복잡하고도 휘황한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쿠로사카는 언제나 저 진식에서 어떤 아득함을 느낀다. 저 진식의 복잡함에 대해, 그리고 그 복잡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석해 내는 은결에 대해. 이어 은결이 다시 해독을 시작하려 할때, 쿠로사카가 입을 연다.

“(아, 잠깐만, 음-)”

“(무슨 일이야, 답지 않게?)”

그녀답지 않게 약간 망설이는 어투에 의아해 하며 은결은 몸을 돌려 쿠로사카를 바라본다. 쿠로사카는 계속 말을 머뭇거리다가, 가을을 닮은 한숨을 쉬고, 가을을 닮은 어투로 조심스럽게 은결에게 이야기한다.

“(그게, 음, 혹시 너 요즘 여우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여우가? 여우가 왜. 잘 지내고 있건만.)”

은결은 단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내 생각에는...)”

은결이 해독하는 진법이 눈에 띈다. 이어지려던 말이 멈춰진다. 마음을 ‘시선에 대한 걸작’이라고 이야기 해 준 것은 다른 누가 아닌 은결이라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래. 은결이 이야기 해 주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만난 다른 어떤 사람도, 자신이 읽은 다른 어떤 책에서도,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그렇게 해석하지는 않았다. 오직, 은결 만이었다. 저렇게 먼 곳에서. 저 진법이 자신에게 그러하듯이. 무의미하리라. 쿠로사카는 고개를 흔든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는데, 괜찮겠어?)”

“(답할 수 있는 거라면야.)”

은결은 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쿠로사카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부담스러워서 질문을 다른 것을 바꾸긴 했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입으로 직접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물론 은결은 무척 멍청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전혀 모를 것이다. 그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상한 뜨거움이 이면에서 짜증스레 치솟으려고 했다. 근원에 잠재한 폭력에 대한 갈구 같달까? 쿠로사카는 으흠, 하고 그런 마음을 잠재우고서 질문을 꺼낸다.

“(너, 전에는 동물원 삼총사라던가, 민성 같은 아이들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때?)”

“(에?)”

은결은 조금 당혹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질문 내용이 내용이니 만큼 당연한 태도이리라.

“(요즘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보는 거야. 지금도... 그래?)”

“(크, 큼... 음.)”

답변을 재촉하는 쿠로사카에 대해, 은결은 괜히 코밑을 긁으며 답을 늦춘다. 그러다가, 겨우, 쑥스러움을 채 감추지 못한 태도로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그래.)”

은결의 주저주저하지만, 그 가운데 결국에 넘쳐흐르는 포근함 같은 것을 담고 있었다. 막 완성된 보드라운 털실의 옷처럼 따스하지만, 간지러운, 그런 느낌이다. 돌아온 대답에 쿠로사카는 만족한다. 이어서 은결은 쿠로사카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방금 전의 따스함을 그대로 담은 채로,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고마워.)”

“(가, 갑자기 왜?)”

명료하고 직설적인 우애의 표현에 쿠로사카는 도리어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은결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아니, 그냥.)”

아니, 그냥. 은결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또렷한 ‘고마워’의 어디에서, ‘그냥’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 ‘고마워’에는 결코 ‘그냥’으로 정리될 수 없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음을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었다.

“(실없긴.)”

쿠로사카는 그렇게 은결의 말을 받아넘긴다.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기에, 그녀 역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은결이 방금 이야기한 ‘고마워’의 명확한 목표가 어디인지. 사고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서 감히 되새김질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모른다고 이리저리 자신을 향해 이야기해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도, 은결이 방금 보여주었던 간지러운 뜨거움 같은 것으로 부풀었다. 때문에 한층, 또 마음의 다시 아래의 마음 같은 곳에서, 뜨겁게 치솟으려는 짜증 같은 것이, 은결을 향해, 때리고 싶다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추천해 주신 텔러님 캐감사~

*때려 박아 넣어야 할 이야기가 좀 많아서, 이번 챕터는 좀 길수도 있습니다.

*성원성원성원성원...

*서브라임 4권도 열심히 적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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