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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12화 (212/300)

#   213-희망을 위한 찬가 - 타자는 주체의 의혹에 머무른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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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니?”

어색한 톤으로 쿠로사카는 묻는다. 그녀의 앞에는 음식이 차려진 상이 놓아져 있고, 맞은편에 한 소년이 앉아있다. 빨래를 자주 하지 못하는 듯, 다소 추레한 차림의 그 소년은 상에 놓여진 음식을 들고 있었다.

“맛있어요.”

소년은 밝은 얼굴로 답한다. 쿠로사카는 안심한 얼굴로 웃는다. 직접 맛도 보면서 준비를 했지만 내심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요리를 알려준 사람이야 요리의 대단한 달인이고, 그에게 전달받은 요리법도 상세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맛보여 주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었으니까.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 보다 맛있는 것 같아요.”

소년은 그렇게 말한다. 웃으며 쑥스럽게 말하는 소년의 얼굴을 보면서 쿠로사카는 기쁨을 느낀다. 그 기뻐하는 얼굴은 자신의 가슴 한 곳에서 부드럽게 녹아간다. 온전하게 기쁘다. 다른 누가 한 요리가 아닌, 내가 한 요리를 다른 사람이 먹어서 저런 얼굴을 해 준다. 는 것에는 부족함 없는 기쁨이 있었다. 은결이 어째서 가사를 하면서 거기에 소외가 없다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쿠로사카는 사양하는 고개를 젓는다.

“칭찬은, 고맙, 지만, 그 정도로 대단 하지는 않을 거야.”

“헤헤, 우리 엄마도, 요리 잘 하지만 언제나 피곤하니까, 이런 요리 같은 건 만들어 주지 못 하거든요.”

추가된 설명은 쿠로사카의 말문을 막는다. 그녀는 소년에게 무엇을 말해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느낀다. 어떤 말도,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이의, 더 배부른 자의, 고통을 모르는 무의미하거나 무신경한 발언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어떤 면으로 보아도 자신은 상위 20% 내부의, 사실은 그 가운데서도 최상위의 인간이다. 그녀의 선조는 메이지 일본에서 화족(華族)이었고, 당시의 기반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은결이라면, 무어라 이야기 했을까. 쿠로사카는 화제를 돌린다.

“...그러고, 보면, 요즈으믄은, 그 아이, 괴롭히는 거, 안 하고 있지?”

소년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안심한 쿠로사카는 웃는다. 어린 아이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강렬하게 배우는 것이 외부에 대한 증오와 배척이라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 슬픔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것이며, 배달이라는 민족의 것이며, 동시에 인류라는 보편의 것이다. 어린 그들은 언젠가 어른이 된다.

“다행이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은 계속 그 아이 괴롭혀요. 막 놀리고.”

그녀의 웃는 얼굴에 기쁨을 느낀 듯, 소년은 가슴을 펴고 고자질 하듯 말한다. 쿠로사카는 소년에게 무어라 말해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느낀다. 그 태도가 ‘나 잘했지요?’ 라고 하는 물음임은 알 수 있었다.

“다들 안 그러면 조을 텐데.”

하지만 쿠로사카는 그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지만 확실히 걔 조금 이상하긴 해요. 말도 잘 못하고. 가끔 희안한 말도 하고, 음침하고. 그래서 괴롭힘 당하는 거예요.”

소년은 이어서 말한다. 쿠로사카는 놀란다. 그녀는 한국어의 단순한 접속사 가운데 하나일 뿐인 ‘그래서’가 이토록 아득한 폭력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 ‘그래서’는 모든 차이를 자기 안으로 끌어당겨 괴롭힘이라는 사태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어만 그렇지는 않다. 일본어도 영어도, 불어도, 독어도, 중국어도. 인간의 모든 언어는 그러한 폭력을 간단하게 담을 수 있다. 고정된 기표와 기의란 얼마나 가련하고 허황된 생각인가.

“애들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놀리는 거 보면, 좀 불쌍하기도 해요. 나도 그 아이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여긴 우리나라니까. 친구가 전에 그랬어요. 자기 아빠가 해 준 이야기라면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서 우리나라는 지금 큰일이래요. 나쁜 짓 막 하고 다닌다고.”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말한다. 그 말에는 옅은 증오 같은 것이 읽어진다. 쿠로사카는 은결을 생각한다. 그라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소년을 본다. 남루한 차림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직접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소년을 등한시 하게 되었다. 쿠로사카는 자신의 말이 지극히 곤궁하다고 느낀다. 직접적으로 고통 받는 이를 바로 앞에 두고 그러지 말라, 고 입바른 소리를 하기에는 논리도, 체험도 그녀에게는 없다. 그래도-

“음, 상상, 해, 보지, 않겠니?”

쿠로사카는 어색하지만 또렷하게 말한다. 소년은 어색하게 되묻는다.

“어떤 걸요?”

“그러니, 까, 왜 그, 사람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이런 곳에 온 것일까, 라는 거 말야. 그리고, 혹시, 그, 사람들은, 네가 아는, 것 처럼 나쁜, 사람들인가, 아니지, 않을까, 라고,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 들과, 막 싸우지 않고, 다, 함께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 까, 라고 말야.”

“......”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이다.

“내, 친구, 중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거든. 상상해야 한다고. 옳다고 지금 이 순간 믿고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다른 것을 상상해야 한다고. 그렇게 제한 없이 상상해야만,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이매진의 가사를 읊던 은결의 모습이 마음 가운데 떠오른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소년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그녀 자신도 은결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어린 소년에게야.

“그러니까, 너도, 상상, 해 보지, 않겠니?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그래도, 그녀는 웃으며 권유한다. 숙였던 고개를 들고, 소년은 그녀와 눈을 맞춘다. 아직 백색으로 맑기에, 그 어떤 색에도 쉽사리 물들고 말 그 눈동자를 보면서, 그녀는 어렵게 말한다.

“처음에는, 누나도, 그 사람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 누나, 가 사는 나라는, 옛날에, 그런, 상상을 했던,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 그리고, 그런 상상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가, 있었고. 그래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했지, 심지어, 자기 나라 사람들, 에게도.”

천조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신사가 통합되고, 천왕을 중심으로 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완성되고, 욱일승천기가 나부끼며 세계를 향하고, 무수한 민중이 국민이 되고, 마침내, 사쿠라 잎이 지듯, 젊음도 졌다. 땅에 떨어지면 주변을 물들여 버리도록 붉은 사쿠라 잎이었다. 아시아가 그 사쿠라 잎에 물들었다.

“그러니까, 응?”

쿠로사카는 소년에게 부탁하며 소년의 손을 잡아본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

“그 이야기 해 준 사람, 누나 애인이예요?”

“(아, 아아아냐!!)”

쿠로사카는 반사적으로 일어로 답했다.

은결은 영화를 본 뒤에 함께 서점으로 갔다. 서점 데이트라니, 너무 고리타분한 것 같았지만 확인할게 있었다. 다행히 세연은 싫어하지 않았다. 간간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큰 서점을 오다니며, 은결은 마침내 확신했다.

세연 그녀 자신은 아직 잘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녀는 확실하게 변했다. 일부러 난삽하여 읽기 어렵다고 이야기 되는 책을 골라 그녀에게 보여 주었더니, 별 어려움 없이 읽어냈다. 평소 책을 좋아해야 하고, 그 좋아하는 책이 머리에 쥐 내리는 종류여야 한다는 꽤 어려운 두 조건을 충족하지 않고서는 생각하기 힘든 독해력이었다.

이후 은결은 그곳에서 세연과 함께 시간을 좀 더 보내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은결은 세연과 함께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간 다음, 결계를 발생시켰다. 푸른 이빨에게 경고 겸 잔소리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계가 형성되자마자, 푸른 이빨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그는 으르렁 거렸고, 허리를 돌리면서 오른 손으로 어마어마한 전격을 충전시켰다.

“씹새끼야. 이빨 꽉 깨물어라!”

“에?”

은결을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푸른 이빨의 주먹이 그의 ‘아구창’에 작열했다.

-뻐어어억!!!!

자주포 터지는 소리보다 장쾌한 폭음이 터졌다. 은결은 눈앞에 튀어 오르는 엄청난 전격을 바라보면서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서다가 결국 벌렁 넘어졌다. 무진장 아팠다. 눈물나게 아팠다. 하여간에 아팠다. 불의의 기습이라 하기에는 친절하게 경고까지 들어가 있었지만, 살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은결은 채 반응하지 못했다.

“으으...”

은결은 신음을 흘리며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미미하게 말을 듣지 않았다. 전신에 남은 막대한 전류가 신경계를 교란하고 있는 모양이다. 푸른 이빨의 힘을 흡수하기 전이라면 이 한방으로 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의 일격이다. 살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기이하다. 얻어맞은 볼을 한 손을 감싸 안고서 은결은 분노한 얼굴로 물었다.

“미쳤냐!”

“시발, 귓구멍 후비고 처 듣기나 해라. 니가 뭘 묻고 싶은지는 뻔하거든. 이 계집이 갑자기 왜 안 읽던 책 처 읽으면서 헛소리 해 대냐는 거지?”

은결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니 탓이거든. 내 탓이 아니거든. 좆병신 네가 나한테 안 먹히고 도리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내가 다시 이 계집애 몸에 돌아와야 했고, 그때에, 말하자면 네놈 때문에 내 정체성의 경계선이 물러져 있었거든. 그게 이 계집의 정신에 복제된 거야. 그러니까, 네놈의 정보 중 일부가 전이된 거지! 그렇지 않아도 옅게나마 내게 영향을 받던 약한 자아였는데, 내가 나로서 있을지 위태롭던 그 당시라면, 영향력을 피할 도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사태의 책임은 너한테 있다! 알겠냐! 이 개새끼야!”

“그런...!”

따지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푸른 이빨이 말하는 세연의 상태는 심각한 것이었다. 왜 내 탓이냐 따위의 문제를 화제에 올릴 여유는 없었다. 은결은 창백한 얼굴로 손톱을 문다. 자칫하면 세연이라는 인격이 해체될지도 모른다. 푸른 이발은 그나마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가며 말한다.

“뭐, 다행이라면 거의 순전한 정보만이 전이되었다는 거겠지. 네 경험 같은 건 거의 전이 되지 않았어. 정체성 그 자체를 위협할만한 정보전이는 없었다는 이야기지. 그 동안 체크해 보았지만 너 같은 정신병의 자질은 없었으니까, 그 점에서는 안심해도 좋아.”

그제서야 은결도 안심한다. 그의 이야기는 순순히 믿어도 좋을 것이다. 거짓을 말해 얻을 것이 없음으로. 푸른 이빨이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너 말야,”

“왜?”

“---후. 아니 됐다. 말해서 뭘 할까. 씨발, 뭐 이런 개좆같은 정신병자를...”

말머리를 한동안 잇지 못하던 그는 결국 그렇게 애매하게 입을 닫았다. 그리고 은결이 의아해할 사이도 없이 세연이 돌아왔다. 그녀는 갸우뚱 하는 표정을 하더니 걱정스레 은결의 얼굴을 보았다.

“갑자기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세게 맞은 것처럼.”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은결은 서둘러 한 손으로 그 상처를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세연은 그것이 그가 평소 활동하는 세계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은결에게 실망을 느꼈다.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거기서 겪은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자신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그래야만,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아야만, 은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는 무지의 고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은결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의 마음은 모른 채 그저 아픈 볼이나 쓰다듬으면서 은결은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푸른 이빨... 뭘 그렇게 화난거지?’

세연이 변해서 걱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몫이다. 푸른 이빨로서는 그녀의 변화가 실용적인 이유에서 불이익에 연관될 수는 있으니 불쾌해할 수는 있어도, 도구에 불과하니 만큼 이렇게 감정적이 될 이유는 없다.

‘설마, 세연을, 걱정한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챕터 끝.

*수행은 정당 기관지 사설이나 사상지 에세이를 적는 게 아니라 ‘기업 사보 사설’을 적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본적인 사설의 지향점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건강한 민주주의 달성’이죠. ‘자본주의 체제 내’에 밑줄 쫙.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고. 이런 공간에서 러시아 혁명에서 시작하는 장대한 연대론은;;; 그런 면에서 수행의 사설에서 반 신자유주의를 목표로 결성되어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아탁을 내세우는 것이 더 온당합니다. 그리고 한계에 대한 논의를 생각하더라도 아탁이 ‘지금 이 순간’에도 활동하고 있는 연대라는 것도 중요하죠.

*초기 기획에 다르면 세연은 이런 저런 일을 겪어 본래 2부에서 가장 지적인 캐릭터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2부에서는 은결이 기억을 잃고 일본에서 대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는데서 시작하거든요. 무려 명량대학생. 모든 능력과 천재성은 봉인된 상태죠. 아, 참고로 여기서 은결은 본인이 일본인인줄 알고 있으며, 쿠로사카와는 사촌으로 그녀를 되게 무서워 한다는 설정입니다. 1부에서 완전히 완결 짓는 걸로 바뀌었기 때문에 실현될 리 없는 설정이긴 합니다만. 좀 아깝군요.

*설마, 고어데이즈가 참고 되었겠습니까;;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후덜덜이던데.

*성원해 주시는 분들게 감사드리며, 성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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