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희망을 위한 찬가 - 타자는 주체의 의혹에 머무른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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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학교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은결과 다른 일당들은 이미 적당히 자리를 잡고 잡담을 하며 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쿠로사카가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상적인 풍경이다. 여우는 자신의 자리에 가방을 가져다 놓고 의자를 가져와 그들의 사이에 끼었다.
“무슨 실없는 얘기 하고 있어?”
“실없다니! 고담준론을 나누시고 계시는데!”
민성이 버럭 화냈다.
“아, 그러세요? 그래서 무슨 고담준론?”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 중 어느 쪽이 더 훌륭한 음악가인가!”
민성은 콧방귀를 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우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고 판단하게 은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약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은결, 너 이리세와 계속 연락하고 있어?”
“응. 계속하고 있어.”
은결은 푸근하게 웃으며 답했다. 여우는 이리세를 말하는 은결의 얼굴이 편안하다고 느꼈다. 그 웃음에는 껍질이 없는 것 같았다. 때때로, 은결의 표정에서는 껍질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지금의 미소에는 그런 의혹이 없다. 여우는 덜그럭, 하는 자신의 마음을 느낀다.
“그런데 너 전에 기게스의 반지던가 이야기 했잖아. 그건 뭐야?”
서둘러 화제를 돌리고자, 여우는 질문을 꺼내본다.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에 관련해서 한번 이야기 될 뻔 했던 이야기지만, 적기를 놓치고 나니 주변의 방해도 있고, 자신이 잊어버리기도 해서 해서 의외로 물어보기 쉽지 않았던 이야기다.
“기게스의 반지? 그러고 보니 이야기 해 주기로 했었지. 그건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글라우콘의 이야기인데, 요컨대 진정한 정의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의지.”
은결이 담백하게 말했다. 여우는 가슴이 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이리세에게 진정한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여우에게 진정한 정의를 우리가 알게 된다면, 그때 다양성이란 처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여우는 반론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생각과 그녀의 말에 반론할 수 없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뒤엉켜, 다만 마음이 복잡했다.
“어떤 이야긴데?”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질문해. 기게스라는 자가 우연히 반지를 얻어 악행을 하면서 여왕과 통정하고 마침내 왕을 죽인 다음 왕위에 까지 오른다. 자, 이와 같이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대로 쾌락과 재산과 권력과 여자를 얻을 수 있지만, 아무도 그를 처벌할 수 없다면, 그는 왜 선해야 하는가? 하고. 한 마디로, 절대적인 정의의 존재를 증명해 보라는 거지.”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뭐라고 답해?”
“소크라테스는-”
“-씨앙! 이것들이 또 좋던 판 깨려고 하네!”
여우가 끼어들며 화기애애했던 판이 골치 아픈 고통의 장이 되는 것에 늑대가 분노한다. 그는 분노하면서 요즘엔 맨날 분노밖에 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서글프게 생각했다.
“-뭐, 이것저것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주변의 반발이 심하니까 간단히 말할게. 그는 글라우콘의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지 못해. 국가라는 작품 내에서는 설득하는데 성공하지만. 국가를 읽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사실 그 질문은 사상사 전체의 문제의식이도 하지.”
다들 저러는 걸, 어쩔 수 없잖아? 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시작한 은결은, 마지막에는 다소 쓸쓸하게 이야기를 끝냈다. 플라톤의 글 내에서, 일체의 이유 없는 정의를, 소크라테스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재 까지 단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한 가지는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이 보여주었던 순결한 믿음을 통한 ‘구원’과, 다른 한 가지는 이기적 유전자가 드러내는 것과 같이, 그 모든 선행조차 ‘이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차갑고 쓸쓸한 세계에 대한 담담한 긍정이다.
첫째는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고, 둘째는 그런 경우 ‘악’한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하게 된다. 두 답은 같은 현상에 대한 해석의 양 극단이다. 그러므로 은결은 생각하게 된다. ‘초월’을 상정하지 않고서 그 자체로 절대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가? ‘아버지, 글라우콘의 질문은 답할 수 없는 것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은결은 엄습하는 쓰라림을 느낀다- 아버지. 아버지. 그 답을 할 때, 아버지 당신은 이미 몰락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근데, 플라톤의 ‘국가’라면서 소크라테스가 왜 나와? 플라톤이 적었으면 플라톤이 말하는 거 아냐?”
갑자기 고릴라가 물었다. 주변이 싸늘해 졌다. 은결은 싸늘해지기보다 말문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플라톤의 저작은 대부분 ‘대화록’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다른 이들과 토론하는 것을 받아 적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게 철학저술이 지금과 같이 정착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일로, 플라톤의 대화록 같은 경우는 ‘의외로(중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대화록 형식의 철학적 저술은 이후에도 드문드문 이어지긴 한다. 대표적으로 흄이나 쇼펜하우어의 저술이 있다.
“...책 좀 봐라.”
민성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한 손을 고릴라의 어깨에 올렸다. 드물게 늑대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읽어보진 않더라도 어떤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인 모양이다. 확실히 플라톤의 ‘국가’라 하면 인류의 가장 중요한 100권의 책, 이런 걸 만들어도 당당히 들어갈 만한 저술이긴 하다. 은결은 당황을 지우고 대화에 참여했다. 고릴라를 돕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본인이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것도 아닌걸 뭐. 그리고 책 많이 읽어봐야 별 푼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조적인 싸늘함을 담고, 은결은 말했다. 쿠로사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은결의 말을 쓰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너는 책을 읽겠지.’ 그녀는 속으로 은결에게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렇지? 역시 책 많이 본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너희도 좀 보고 배워라! 진정한 교양이란 은결 같은 거야. 니들처럼 쬐끔 안다고 다른 사람이나 알량하게 까고 다니는 게 아니고! 알겠냐? 쯧, 무식한 것들.”
은결의 지원사격에 고릴라는 기뻐하며 포문을 열었다. 졸지에 까인 두 사람은 또 분노해서 무어라 입을 열려 했다. 은결은 얼른 중재에 들어가지 않으면 시끄러워 지겠다고 생각하고 설명을 겸해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여간 플라톤의 대화록은 그 저술방식의 독특함으로 인해 단순한 논리적 저술을 넘어서 최상급의 문학작품이기도 해. 소크라테스도 자주 즐겼다고 하는 ‘비극’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니까. 명백한 천재의 작품이지. 물론 코러스 같은 건 없지만.”
“(그거, 좀 의외일지도.)”
시선이 쿠로사카에게로 돌아갔다. 은결은 속으로 ‘네가 이 대화에 참여하는 게 더 의왼데;’ 라고, 본인이 들었으면 최소한 한 대는 때렸을 생각을 했다.
“(뭐가 의외야?)”
“(나는 그 시절 그리스의 예술은 ‘시’라고 총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은, 그러니까 예술 추방론이기도 한 거잖아. 그런 주장을 한 본인은 위대한 문학작품의 저자이고, 그런 주장 자체도 그 문학 작품을 통해 등장했다니, 어쩐지 역설적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플라톤이 시인추방론을 통해 배격한 예술은 영감에서 비롯한 예술이었어. 말한 자들이 정작 자신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작품 말야. 그런 건 플라톤의 입장에서 보면 광기의 산물이었지. 현실의 모방임으로, 이데아에서 한층 먼 저열한 것이라는 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다른 해석도 여럿 있어. 순수한 논리의 문제라기보다 철학을 위한 헤게모니 싸움이었다고 보는 사람이 있기도 했고.”
주변을 고려해서 은결은 한국어로 말했다. 사정을 이해한 듯, 쿠로사카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고려해서 은결은 한글로 말했다지만, 주변에서는 무슨 말인지, 하고 의아할 뿐이었다. 전후맥락이 다 붙은 이야기라도 알아들을지 자신이 없는데, 은결 말 밖에 못 알아듣고 있는 형편에 사전지식이 부족한 주변에서 그 대화를 이해하기는 역시 어려웠다. 살작 웃으며 쿠로사카가 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플라톤이 신화도 아이들에게는 읽혀선 안 되는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고 있어. 신들은 살인하고, 강간하고, 바람을 피며, 근친을 범하고, 싸우고, 질투하니까. 일본서기도 비슷하지만. 논리나 헤게모니 보다는 윤리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그리스신화나 일본서기뿐만이 아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길가메시는 최악의 폭군이고, 구약의 야훼는 무수한 이들을 별 것도 아닌 일로 주저 없이 쳐 죽인다. 문명이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의 숨김없는 발현은 많은 신화의 중요한 특성이다. 신화에서는 신의 탈을 쓰고서 욕망하는 인간들이 두렵게 뛰논다.
“사실이야. 그는 제약받지 않는 욕망을 마음껏 행하고 다니는 신들로 가득 찬 신화를 싫어했지. 그런 면에서 그의 예술론은 윤리적인 것을 위한 것이기도 했어. 하지만 이건 또한 논리적인 것이기도 했어. 그는 세계가 ‘선의 이데아’에 맞춰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예술은 그래서 윤리적인 것일 필요가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진정 윤리적인 예술은 전혀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서 플라톤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다고 여겨.”
“(아리스토텔레스? 그가 스승의 예술론에 반대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세한 논리는 잘 모르는데. 어떤 거지?)”
“그는 예술이란 현실의 모방이 아니라 이데아의 모방이라고 생각해. 그의 용어를 따르자면 ‘현상’의 모방이지. 그래서 예술은 현실을 베껴 재현하는 게 아냐. 예술작품은 현실보다 이데아에 좀 더 가까워.”
“음, 그게 왜 전혀 윤리적이지 않은 예술이란 거야? 모르겠는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릴라가 물었다.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윤리적이지 않은 것이 윤리적이라니? 역설이다. 은결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은결의 답은 짤막했다.
“상상력을 해방하거든.”
그리고 늑대는 문득 생각한다. 아아, 결국 판은 깨졌구나.
*광염소나타 님의 감상에 감사~ 자자, 다른 분도.
*때때로 자신의 글이 결점으로 충만해 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이럴 때 캐우울. 그래서 지금 캐우울. 뒹굴뒹굴뒹굴-
*성원성원성원성원...
*바이오쇼크 하고 싶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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