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희망을 위한 찬가 - 타자는 주체의 의혹에 머무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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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옥상에서 기호를 만지면서 은결은 자신이 다루는 기호의 의미를 생각한다. 기호를 짜아내어 거대한 ‘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텍스트를 작성한다. 기호와 기호와 기호. 그들 기호를 기의를 바꾸지 않은 채 기표를 교환하고, 기표를 바꾸지 않은 채 기의를 바꾸고, 기표와 기의를 모두 바꾸지 않지만 그것들의 연결을 바꾸어 진의 락을 풀어헤친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꾼다. 번역과도 닮은 작업이다.
‘주 예수를 믿읍시다.’
건조하게 손을 놀리던 가운데 아침에 봤던 광경이 떠오른다. 은결은 즉각적으로 사르트르를 연상한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그의 실존주의는 현상학과 떼어놓을 수 없는 연관을 가진다. 실존의 목표가 우선적으로 구조에 함몰됨 없는 ‘자기자신’을 확보하는 일이라면, 모든 ‘당연함’을 괄호에 넣는 현상학은 아주 중요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건 주체를 위한 영구혁명이다. 지금 이 순간을 거절하는 힘.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믿음, 을-
‘모두들 상상력이 부족했습니다.’
벼락같은 문장은 마음을 아프게 파고든다. 은결은 고개를 들어 깊게 숨을 쉰다. 아아, 그래. 다들 상상력이 부족하다. 자신도. 어쩌면 그렇게나 위대한 아버지마저도. 누구나 다 부족했다.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상상력의 문제’에서 상상력이란 눈앞에 없는 것을 뇌리에서 구성해 내는 힘이라고 말했다. 상식적인 의견이다. ‘눈앞에 없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경험을 보좌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상상력의 힘은 그런 상식적인 의견에서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몇 개 되지 않는 원자를 통해 세상의 그 다양한 것들이 모두 만들어 지는 것처럼, ‘상상력’이란 경험에서 추상된 것들을 사물의 원자와 같은 요소로서 뇌리에 품고, 그것을 조립해 경험하지 않은 사태를 경험한 것 처럼 끌어당길 수 있으니까. 가령 위대한 물리학자는 사고실험만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
‘상상력.’
그렇다면, 상상력의 부족은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비트겐슈타인이 생각난다. 언어의 한계를 지적해 현실의 한계까지도 지정해 버린 악마적 천재. 그는- 아아,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은결은 한숨을 쉬고 잡념을 끊었다. 그는 진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린다. 수련에 열중해 있는 쿠로사카가 보였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은 키리야미, 신성을 품고, 심성을 구현해, 신을 상대할 수 있는 영검이다. 생각이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못하도록,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건낸다.
“(쿠로사카.)”
“(응?)”
“(궁금한 게 있는데, 키리야미 말야, 완전히 힘을 해방하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은결은 물었다. 푸른 이빨의 힘을 흡수 하고서 느낀 것인데, 그 힘을 상대하기에 키리야미라는 검의 힘은 지나치게 작았다. 그 정도의 힘으로 완전한 상태의 푸른 이빨이 봉인 당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푸른 이빨의 힘은 은결의 몸에 깃들임으로서 원래의 힘에 비해 몇 배나 더 강해졌으니까. 그러나 그걸 고려해도 그녀가 보여준 키리야미의 힘은 작다.
“(글세. 신뢰할만한 기록들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것들인데,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완전히 칼의 힘을 해방했다고는 기록되지 않았어. 그럴 필요도 없었던 데다가, 다들 기량이 모자랐다고 해. 나도 마찬가지지.)”
쿠로사카는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 온 이후로 키리야미의 힘을 부쩍 많이 해방할 수 있게 된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메이지 유신 이후 키리야미의 사용자 가운데 가장 검의 힘을 많이 개방한 사용자가 될지도 모른다. 어째서 이런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잘 모른다.
“(음.)”
“(하지만 칼의 힘이 완전히 해방된다면, 아마 푸른 이빨을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되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 검으로 그 괴물을 봉인하기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쿠로사카는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푸른 이빨을 봉인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푸른 이빨의 이 검에 대한 적대감을 볼 때, 키리야미로 인해 그가 봉인 당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건, 무시무시한걸.)”
변수를 고려한다고 해도, 은결은 푸른 이빨의 힘을 용해한 덕분에 중력탈출속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무지막지한 힘일 뿐이다.
“(그렇지? 만일 키리야미가 완전히 해방된다면 그 사용자는 아마 전성기의 너희 아버지에 비길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거야.)”
쿠로사카는 왼손으로 키리야미의 칼등을 길게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은결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 고개를 젓는다. 아들이라서가 아니고, 전성기 수행에 비길만한 힘을 은결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고보면, 어째서 이세에서는 굳이 한국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푸른 이빨에 대한 추적을 비밀리에, 독자적으로 수행했던 거지? 지금 협회 대표로 있는 진경이란 사람, 그때 이세의 대응에 꽤 화를 냈었는데.)”
"(그야, 너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쿠로사카는 껄끄럽게 답한다. 결과적으로 좋게 해결되었다고는 해도 목숨까지 노리고 은결과 싸웠던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일 뿐이니까. 하지만 은결은 앙금없는 태도로 말한다.
"(그것만이라 보기엔, 지금도 이세의 공식적인 협력 요청이 한국에 도착한 적이 없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역시 체면 때문이 아닐까? 카미의 봉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니까.)”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쿠로사카는 이어서 조금 쓸쓸하고, 그렇지만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당부분은 너희 아버지 때문이기도 할 걸. 이세는 신도와 불교의 연합세력이야. 모두 종교인이지. 하긴, 종교인이 아니면서 이 세계에 활동하는 것은 전세계를 뒤져봐야 너희 집안뿐이지만. 그것도 네 아버지와 너. 그러니 어느 쪽이든 네 아버지의 기호이론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입장이었지. 자연히 네 아버지를 껴안고 있는 한국협회역시 무척 마땅치 않았을 테고.)”
“(......)”
은결의 얼굴이 우울해진다. 그는 간지러운 듯이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한다. 그의 모습을 보고 쿠로사카는 마음이 조이는 느낌을 받는다. 저 침묵 이면에서 어떤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까? 그녀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그에게 던지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폐쇄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 다들 조금만 더 마음이 넓었다면, 우리는 네 아버지와 같은 거인을 잃어버리지 않아도 좋았을테니까.)”
“(고마워.)”
은결은 자상하게 웃었다. 짙은 쓸쓸함과, 희미한 따스함이 한 곳에 어울려 있는 그 미소는 아름다웠다. 쿠로사카의 가슴이 뛰었다.
“(너, 너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가 아냐! 나는 정말로...)”
“(알아. 그러니까 고마워.)”
은결은 다시 말했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고, 중단될 수 없는 고마움이,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는 듯한, 그런 말이었다.
“(흥!)”
쿠로사카는 고개를 돌렸다. 은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제 다시 진의 해석하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눈이 기호를 담고, 손끝이 기호에 닿자, 다시금, 떨치고자 했던 생각이 부글거리는 마그마의 거품처럼 떠올랐다. ‘상상력.’ 기호를 다루는 한, 현상학이 은결이 공부한 기호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축의 하나인 한,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외면하고 싶었다. 상상력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일한 주체를 거부하듯, 마음의 한 편에서는 생각을 뇌리를 향해 밀어냈다.
‘하지만 상상력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슬픈 일이라는 점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기분이다.
‘은결은 놀랍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는 길에 여우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오늘 은결과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봤다. 그는 동성애가 굳이 토론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그것이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어지는 논의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성애에 대한 일반적인 적대감은 정당한 이유가있다기 보다 그저 ‘싫은’ 것인 경우가 대부분 인데, 그 그저 싫은 것에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흔한 근거가 ‘종의 의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이유지만, 정말로 끈질기고 강력하게 지금도 살아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은결 말로는, 심지어 칸트 같은 사람조차도 ‘그것은 자신을 짐승 아래에 놓고 인류를 능욕하는 짓이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론은 이러한 주장들을 그들의 규칙 내부에서 붕괴시킬 수 있다. 적의 규칙에 따라서 적을 패배시킨다는 말이다.
그 논리는 간단해서, 동성애 행위 역시 종의 성공적으로 번식시키는 뛰어난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동성애에 열중하는 이는 아이를 낳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만큼 자신의 가족을 위해 투자해야할 자원의 양이 적기 때문에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를 그의 조카를 비롯한 형제들의 자식에게 투자하게 된다는 말이다. 많은 투자를 받은 아이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유전자의 차원에서 보면 자기 친자식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확실하게 유전자 풀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게 된다. 이를 은결은 ‘친절한 게이 삼촌’ 이론이라고 소개하며 ‘딘 해머’라는 학자가 주장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은결이 덧붙여 말하기를, 이렇게 된다면 ‘종의 의무’를 주장하던 이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친절한 게이 삼촌’ 이론은 동성애가 종의 번식전략의 하나임을 밝힘으로서, 동성애의 자질이 ‘문화적’이기보다는 본능에 의해 타고나는 것임을 이야기하게 되고, 이는 ‘타고나는’ 것임으로 말하자면 ‘종의 의무’에 합당한 행위가 되고,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동성애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도리어 그들을 인정해야만 하는 처지에 빠지기 때문이다.
“......”
하지만 여우가 은결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랍다고 느낀 것은 동성애에 대한 그의 의견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부차적이었다. 여우가 은결에 대해 놀랍다고 생각한 것은 그는 모든 것을 종합해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야 가운데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은결의 눈을 거치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얽혀있는 것으로 바뀐다. 벤야민, 도스토예프스키, 프레이저, 도킨스, 성경- 하나도 남김없이, 그는 하나로서 그것을 이해해낸다.
하나로.
은결은 대단하다. 과거에도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은결의 대단함은 아득한 절벽처럼 다가온다. 앞으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면, 그의 대단함은 계속해서만 들어날 것 같다. 그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던 걸까? 자신은 낮은 마을의 담장 사이를 오가며 허덕이고 있는데, 그는 높은 산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은결은 놀랍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풍경은 어떠한 것일까? 아름다울까? 장엄할까? 두려울까? 막막할까? 은결과 같은 시야를 가지지 못한 자신은 은결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와 대등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리세도, 마찬가지로 놀랍다.
*가끔 글이 쉬우면 독자 분들이 실망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일 수학과 친구가 있는데, 그놈이 여러분한테 나는 너보다 수학 잘해! 라고 자랑하면 어쩌시겠습니까? 저라면 ‘이놈이 미쳤나;’ 하고 한 대 세게 때려주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것저것 많이 아는 축에 속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수학과 다니는 놈이 수학 잘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 뿐입니다. 하물며 글 팔아 돈도 버는데 이 정도 가지고 ‘많이 안다’니! 그저 가소롭지요.
*연재를 꾸준히 따라 읽으시는 훌륭한 독자분들은 완결이 나면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이 장치해놓은 많은 것들은 완결이 되어야 의미가 명료해지기 때문입니다. 연재 따라서 읽으시면 앞에 해 놨던 장치들 다 잊으셨을테니까요. 만일 연재 따라 읽어도 다 기억한다는 놀라운 분은 두 번 읽을 필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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