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99화 (199/300)

#   200-희망을 위한 찬가 - 타자는 주체의 의혹에 머무른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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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있는 미래는 은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체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시원했다.

“...어제 악세사리 사러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연예인 안 해보겠냐고 어떤 사람이 명함 주는 거 받았어. 어때, 미래 대단하지?”

“그런 거 사기꾼이 많다더라. 연예인 되게 해 줄테니 돈 내놓으라는 거. 속으면 안 돼.”

“진짜야! 몸만 오면 된다고 했는걸!”

미래는 펄쩍 뛰며 은결의 모욕에 대응했다. 그 기세에 눌려 은결은 더 그녀의 말을 의심할 수 없었다. 더 의심하면 삐질지도 모른다. 미래가 삐지면 그날은 종일 피곤하다.

“음, 그렇다 치고, 그래서 대답은?”

“물론 적당히 둘러서 거절했지. 그런 거 별로 관심 없는 걸. 후후, 하여간 재색겸비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있는 말이겠지? 이런 동생 둬서 행복하지 않아?”

미래는 뻐기며 말했다. 확실히 그녀 정도의 용모와 0.3% 이내의 성적이라면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미래의 말하는 투는 자랑스러워한다기 보다는 ‘칭찬해줘! 칭찬해줘!’라고 짹짹거리는 병아리 같았다. 은결은 미래가 귀엽다고 느꼈다.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은결은 이어서 고소를 지으며 ‘얼굴과 성적에는 성격이 나오지 않는다.’고 놀림조로 한 마디를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자전거가 학교 가는 길 가운데 있는 큰 도로를 지나게 되었고, 압도적인 소음에 은결의 말이 묻쳤다.

“...믿읍시다!”

회단보도와 지하철이 근처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몇 사람이 서서 ‘예수님을 믿읍시다.’라고 선교를 하고 있었다. 중년의 남녀로 구성된 그들은 종이와, 화장지, 선전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확성기로 높게 예수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길바닥에는 버려진 선전지가 볼품없이 날려다니고 있었다. 선명한 색조로 인쇄된 그 선전지에는 협박에 가까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광경이었다. 미래는 짜증을 담아 말했다.

“저번 주말에 서울에 친구들이랑 놀러갔을 때, 지하철에서도 저런 사람들 만났거든. 나하고 친구들 뿐 아니라 그 칸에 있던 사람들이 다 싫어하더라. 싫어하는 거 뻔히 보이는데도 왜들 그러는지 몰라.”

“그러게나 말야.”

은결은 건성으로 답하며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무성의한 그 대답이 메마른 상처를 품고 있음을,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자전거가 속도를 더하며 유쾌하게 앞으로 나갔다. 흘러가는 풍경을 무성의하게 시야에 담으며 은결은 깊고 아픈 한 마디를 기억했다.

‘다들 상상력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웃으며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은결은 이를 악물어 그것을 말을 억지로 부수고 흐트러뜨린다. 폐부를 향해 스며드는 그 말이 뚜렷한 상을 잃고 스러져 가는 가운데, 그의 귓가로 다시 열 오른 선교사의 외침이 들려온다. “주 예수를 믿읍시다!” 심장이 두근, 뛴다. 은결은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상상력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저 허락되지 않을 뿐인 게 아닐까, 하고.

“은결균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이 교실을 배회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신성동맹(Heilige Allianz)을 맺어야 하지 않겠냐?”

엄숙한 얼굴로 민성이 말했다. 고릴라, 여우, 늑대는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느냐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물론 제일 황당하게 민성을 바라봤던 것은 은결이었다. 민성은 그들의 시선을 받고 예언자가 신성을 가리키듯 손가락을 움직여 여우를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은결과 이야기를 나누던 여우는 황당한 얼굴로 민성에게 되물었다.

“에? 내가 왜?”

“여기 완벽한 침식사례가 있잖아.”

민성이 말했다.

“오오!”

“오오오!”

늑대와 고릴라가 목소리를 높이며 지극히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은결과 여우, 둘이는 퍼스트 콘텍트에나 쓸만한 말을 쫑알대며 노는 때가 많다. 두 사람의 호응에 힘입어 민성은 주장을 드높였다.

“진정한 신성동맹이었던 ‘우정의 오각형(solo's pentagon)’은 어떤 배신자 때문에 파괴당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예상되는 참극을 막아야 하는 거지! 다시 말해서, 니들끼리 놀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민성은 냅다 여우의 머리를 잡아다 꾸욱꾸욱 조였다. 여우는 민성 품에서 끅, 끅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은결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이미지에서는 연상하기 힘들지만, 은결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싸움을 잘 한다. 어쩌면 전교에서 가장 잘 할지도 모른다. 그는 굉장히 강하다. 은결이 민성을 말리며 말했다.

“야야, 그만해. 그리고 뭐 우리끼리만 놀길 뭘 우리끼리만 놀았다고. 그냥 여우는 논술 수업도 있고 해서 도와준 것 뿐이야.”

은결은 여우가 어제 동성애 관련 토론이 있었다고 해서 몇 마디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은결이 생각하기에 그 수업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어지고 있는 수업이었다.

“쳇! 그리고 여우 저 녀석은 거기서 여친도 겟! 했고 말야.”

늑대가 불만스레 말을 더했다. 주변의 공기가 음울한 분노를 품었다. 여우와 은결은 동시적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여친’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다른 세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신성동맹을 맺도록 한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다음에 어딘가로 놀라갈 때 틀림없이 비용을 두 사람에게 다 대도록 강요할 것이다. 여우가 서둘러 빠져나왔다.

“나, 나는 아냐! 그 아이, 도리어 은결에게 관심이 있을 걸? 저번 주에 만나게 해 줬더니 그날 당장 핸드폰 번호도 교환했는걸.”

“뭣! 은결주제에 바람까지 핀다고!”

늑대는 분노했다. 민성은 분노했다. 고릴라는 분노했다. 세 사람이 한층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세연’이라는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격도 아주 좋고, 부자집 아가씨이기도 하다. 부잣집 착한 미소녀! 만화도,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무얼 더 바란단 말인가? 은결 주제에 그런 여친이 있다면 세상에 감사하고 그녀에게 봉사하며 살 일이지, 한눈을 판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늘이 용서해도 그들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험악한 분위기에 은결은 서둘러 변명했다.

“아냐. 그냥 친구야.”

“바람 피는 놈들은 들키면 처음에 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연애도 해 본 적 없는 주제에, 아주 시니컬하게, 동시에 현실적으로 민성이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은결은 딱 잘라 말했다.

“아냐. 정말로 그 아이와는 단순한 친구야. 아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이상은 결코 아냐.”

진지한 태도에 민성은 더 추궁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쿠로사카도 불쾌한 안도감을 느꼈다.

“음, 하지만 다리 놔 줘서 고맙다고 내게 선물해 주겠다고 까지 말했단 말야. 아무래도 네게 마음이 없으면 그런 행동까지 하긴 힘들지 않겠어?”

납득할 수 없었던 듯, 여우가 약간 조심스럽고 껄끄럽게 말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여우는 이상한 마찰을 느낀다. 은결의 의견을 부정하기 위한 자신의 말은, 사실 긍정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기대에 응하듯 은결은 살짝 웃었다.

“그건 도리어 나보단 네게 더 마음이 있단 뜻이겠지. 나한테 관심이 있으면 나한테 그런 걸 이야기해 오지 않겠어? 나는 이리세에게 그런 소리 못 들었단 말야.”

“그런가...”

듣고 보니 은결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이리세는 ‘선물을 꼭 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저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의미심장한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심장이 뛰었다. 여우는 혼란스러웠다. 이리세는--- 여우의 생각을 이어질 수 없었다.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릴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이 썅! 이것들이 어디서 염장질이야! 없는 사람 앞에서 유세떠냐!”

“그래! 꺼져라!”

늑대가 동조했다. 민성은 두 사람에게서 떠나 쿠로사카 옆으로 갔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대담하게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저래서 솔로는 안 된다니까. 쿠로사카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으면 같이 영화라도 보러 가지 않을래?”

노골적인 데이트 신청이다. 쿠로사카는 피식 웃고는 은결에게 몇 마디를 건냈다. 은결이 그걸 해석해 민성에게 전달했다.

“신성동맹 맺었던 거 아니냐는데.”

“아니, 아니, 그런 거 안 맺었어.”

민성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듣고 분노한 늑대와 고릴라는 이번에 표적을 민성으로 바꿨다. 은결에게 부탁해 놓았던 것은 언제 될지 기약도 없는데, 사람을 놀리다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은결은 여우에게 말했다.

“알아서 저렇게들 잘 놀면서 괜히 난리야. 그렇지?”

“으, 으응.”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제가 우울할 때는 보통 저 자신의 찌질함에 직면할 때입니다. 뭐, 스스로가 무식하고 찌질하단건 평소에도 알고 있는데, 가끔씩 이게 무척 크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찌질함이라고 할까. 그럴 때 우울해 집니다.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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