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희망을 위한 찬가 - 타자는 주체의 의혹에 머무른다.(2)
#
종이 쳤고, 논술 수업이 끝났다. 뒷문에 가까웠던 여우는 가장 먼저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뜨거운 교실의 열기가 차가운 복도의 대기와 부닥치며 후욱- 하고 긴 바람이 되어 한 순간 날았다. 다른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부산스럽게 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의 뒤로 이리세가 따르고 있었다.
“후- 뭘 그렇게 다들 뜨거워질 필요가 있다고.”
여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토하듯이 말했다. 오늘 논술 수업에 대한 감평이었다. 오늘 수업에서 여우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했다. 주제는 ‘동성애는 인정되어야 하는가?’ 라는 거였다. 그가 있던 교실의 유난히 뜨거운 공기는 그 토론의 결과물이었다. 다들 열렬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아니, ‘의견’이라기보다는 ‘적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됐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동성끼리 연애 좀 하면 어떠냐.’ 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다 좋다면, 근친상간도 인정해야 하느냐’고 어떤 아이가 반박했다. 그것은 ‘길에 쓰레기를 버린 정도의 일을 가지고 살인과 같은 정도의 일로 취급하는 극단론’이라 반대하는 아이도 있었다. ‘쓰레기를 버린 일’이라고 동성애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아이도 있었다. ‘생식이라는 종의 의무’ 운운하며 분노하는 아이도 있었다. 난리법석이었다. 나중에는 반대하는 측의 아이들과 찬성하는 측 아이들이 얼굴이 시뻘겋게 된 채 고함같이 자기 의견을 외쳤다. 서로 자기 말을 할뿐,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여우는 좀 방관자적 입장에서 동성애에 찬성하는 측에 가담해 있었지만, 동성애에 찬성하고 찬성 안하고 이전에 그런 뜨거워진 토론 자체가 마땅치 않았다. 저렇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 까지 자기의 주장을 해야만 하는 걸까? 여우의 불만서린 말에 이리세가 웃었다.
“그래? 나는 도리어 보기 좋던데.”
“그런 게 어디가?”
“원래 정의로움이란 그런 거니까.”
이리세는 웃으며 말했다. 여우는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되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지난주 토요일, 은결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난해한 말이 품던 의도를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흐응-”하고 긴 콧소리를 내며 조금 시니컬하게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연출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학원의 정문을 빠져나왔다. 심야의 도시가 그들을 맞이했다.
“아 참.”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도중에, 이리세가 발걸음을 멈췄다. 여우도 따라서 걸음을 멈췄다.
“응?”
“네게는 사례를 해야 하는데.”
“사례?”
“그래. 네 덕분에 은결과 알게 되었으니까.”
이리세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는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그 정도 가지고-”
“아니야. 나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만남이었어. 그러니까 그냥은 지나갈 수 없어. 혹시 뭔가 원하는 거라던가, 있어? 그걸로 해 주고 싶은데. 좀 무리한 거라도 상관없어. 아니, 좀 무리한 걸로 부탁해 줘.”
이리세는 여우에게 한 발자국 성큼 다가서며 강하게, 부탁하듯이 이야기했다. 여우는 무어라 답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알고 있었지만 역시 이리세는 이상한 아이였다.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음, 지금은 없어.”
“그래? 아쉬운걸. 언제든 좋으니까 원하는 게 생기면 꼭 말해줘.”
강한 뜻을 품던 얼굴을 아쉬움에 흐리며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걸었다. 곧 정류장에 닿았다. 이리세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여우에게서 멀어져 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여우는 이리세의 말을 떠올렸다. ‘중요한 만남이었어.’ 그녀는 은결과 알게 된 것을 그렇게 이야기했다.
“응!”
밝게 답하고 세연은 휴대폰을 끊었다. 그리고 헤프게 기쁜 얼굴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출렁 하고, 침대의 스프링에 몸이 가볍게 떴다가 가라앉았다. 그녀는 그 위를 잠시간 오가며 굴렀다. 방금 전 그녀는 은결과 통화했다. 이번 주 토요일로 결정했다. 결정된 것은, 물론 ‘데이트’였다. 기대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지난주의 불만은 한때의 소나기였던 것처럼 개었다. 무엇을 할까, 라는 기대가 다만 적란운처럼 커져간다.
세연은 뒹굴, 몸을 굴렸다. 아름다운 얼굴이 이불에 반쯤 묻힌다.
하지만 기대에 마음이 부풀며 그녀의 얼굴은 기쁨에서 다시 어둡게 흐려져 간다. 특별히 다른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불만이 사라진 자리에 불안이 서서히 들어서고 있었을 뿐이다. 마음을 조이는 불안이다. 어렵사리 그 불안을 정리해 문장으로 만들면 이러하다. ‘은결이 좋아해줄까.’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아할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으면 마음에 들어 할지, 자신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하면 좋아해 줄지, 알 수가 없었다. 무지는 깊었고, 심연 같은 수렁 위에서 은결은 해석 불가능한 존재였다. 어떤 기호에, 어떤 기호로 답해줄지, 기호와 기호를 엮은 깨끗한 패턴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와 ‘저렇게’가 연결된 게슈탈트가 흐려져간다.
“후-”
그리고 세연은 몸을 굴렸다. 형광등의 빛이 찌르듯이 퍼져 나오는 천정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에 들어찬 불안은 한숨으로 씻겨지지 않지만, 그 불안은, 하지만, 기쁨에 뒤섞여서만 존재하는, 버리거나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세연은 눈을 감았다. 피로했다. 의식이 흐려졌다. 세연은 잠들었다.
“칫!”
세연은 눈떴다. 그리고 튕겨 올라오듯이 상체를 일으켰다. 불만스럽게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푸른 이빨이다. 그는 세연의 고운 손으로, 세연의 고운 얼굴선을 고민스럽게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혔다. 그것은 고뇌하는 인간의 표정이다.
“짜증스럽군. 정말로 짜증스럽군.”
푸른 이빨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 분노는 스스로도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분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깃들어 살고 있는 이 계집이 은결이라는 쓰레기에게 깊은 마음을 품는 것에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계집이 그 쓰레기를 좋아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런 저급한 동물이, 마찬가지로 저급한 동물을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좋고 싫고를 따진단 말인가. 그는 한 번도 그 따위 것에 신경을 쓰고 살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 계집이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좋아하는 것이 싫었다. 다른 인간에게 그런 깊은 마음을 품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이 계집에게 기대고 있는 생각의 정체를 읽기 어려웠다.
“아, 씨발, 진짜, 이 년도 맛이 갔지 싶군. 발정난 원숭이야 세상에 널렸건만 그런 불량품을 굳이 고르는걸 보면.”
푸른 이빨은 거울에 비친 세연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그 원숭이는 발정도 안(못) 하지 않는가! 하찮고 미천한 원숭이들 이지만 찾아보면 나름대로 쓸 만한 녀석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발정도 안 하는 그 원숭이 보다는 나으리라. 그런데 이 계집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불쾌감을 겪어야 하는지도,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짜증이 마음을 그득그득 채운다. 한 밤의 허공을 치달리며 거대한 뇌전을 세상의 쓰레기들을 향해 쏘아내고 싶은 기분이다.
여우는 방의 불을 끄고 이불 위에 피곤한 몸을 누였다.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긴장을 푼 몸은, 흔히 나오는 표현인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하지만 어둠 가운데, 피로는 명료하게 몸을 자각시켜, 도리어 잠들기 어렵게 했다. 몸을 뒤척이며 여우는 참을 청했다. 그러나 몸을 뒤척일 때 마다 생각 역시 뒤척여졌다. 깊게 가라앉은 어떤 덩어리가 덜컹덜컹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특별히 기분이 나쁜 것도, 특별히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닌, 무겁게 칙칙한 덩어리 같았다.
그 덩어리가 무엇인지, 여우는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마음 한 구석에 그런 게 자리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덜컹거리며 무거움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눈 돌리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눈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마주보긴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마음 한 구석을 재촉하기도 하는, 이상한 마음의 찌꺼기다. 여우는 눈을 감고 야속한 잠의 손을 억지로 더듬으며 찾는다.
‘잘 가.’
하지만 더듬으며 겨우 쥔 것은 잠이 아니라 이상하게 뚜렷한 기억의 편린이었다. 웃으면서, 자신을 향해 ‘잘가’라고 말해오는 소녀의 모습. 여우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이름은 이리세라는 독특한 것이고, 다소 귀여운 얼굴이지만 별로 매력을 느낀 적은 없는 용모였다. 한 번도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틀림없이 그녀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틀림없다.
*애리오스 님의 추천에 감사~
*지난 화 이야기는 조조 전략이 승리한다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팃폴탯은 조조전략의 세력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기에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한층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후, 요즘 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