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94화 (194/300)

#   195-희망을 위한 찬가 - 도스도예프스키를 읽는 소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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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가르는 한 줄기 빛을 역장이 막는다. 쿠웅! 중저음의 충격음이 주변을 울리며 역장이 뒤로 밀린다. 역장을 내려쳤던 빛은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한 바퀴 돌아 다시 역장을 내려친다. 쩡! 역장의 중앙으로 선명한 선이 생겨나며 스러진다. 은결은 맨몸이 된다. 이어, 그의 목 끝을 노리고 빛이 날아든다. 은결은 다급한 표정으로 상체를 뒤로 젖힌다. 날아드는 빛, 그것은 잘 단련된 검의 궤적이다. 검끝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은결은 몸을 일으키며 날아든 빛의 외곽을 주먹으로 쳐낸다. 쿠앙! 주먹 끝에 응집된 에너지가 빛의 외곽을 쳐내며 폭발이 일어난다. ‘됐다!’ 이걸로 약간의 틈은 벌었으리라 생각하며 은결은 속으로 안심한다. 오늘은 평소보다-

-뻑!

은결은 왼쪽 관자놀이로 날아든 막대한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얻어맞고 시야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평소보다 격렬한 공격이라 했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예민해진 오감은 이미 다음 공격을 읽고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몸이 충분히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짧은 시간의 혼란이지만, 들이닥치는 공격의 속도는 그 혼란이면 충분하다. 물론 막으려면 막을 수 있다. 사실 지니고 있는 힘의 1/10도 사용하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역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힘의 출처를 밝히는 일은 그냥 얻어맞아 주는 것 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결의를 굳힘과 동시에 쿠로사카의 공격이 이번엔 옆구리 쪽으로 도달했다. 헉! 소리가 나온다. 은결은 몸을 꺾으며 옆으로 굴러 다음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시간을 벌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이미 안다는 듯, 쿠로사카는 은결을 쫒는다. 이상하게 끈질기다! 은결은 오늘 자신이 그녀에게 뭐 잘못한 게 있는지 기억을 되새겨봤다.

하지만 그런 거 없었다!

-퍽!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밟혔다.

“(음. 좋은 대련이었어!)”

쿠로사카는 맑은 날 아침의 이슬처럼 상쾌하게 웃는 낮으로 은결에게 말했다. 은결은 아직도 지끈지끈 아픈 복부를 부여잡고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불편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은결로서는 전혀 좋은 대련이 아니었다. 굴러다니면서 밟혔는데 좋을리가! 쿠로사카는 그 시선을 눈치 채고 아름답게 웃는 얼굴을 보내며 물었다.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시치미를 뚝 떼는걸 보니 물어도 답해줄 리가 만무했다. 은결은 속으로 불평을 정리하고 몸을 폈다. 아직 점심시간은 꽤 남았으니 해석 작업에 좀 더 집중해도 좋으리라 싶었다. 은결이 속으로 투덜투덜대며 작업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쿠로사카가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느 쪽이지?)”

“(어느 쪽이냐니?)”

“(도프도예프스키의 주장에 대한 네 대답 말야. 네가 순순히 예. 그렇습니다. 하고 그 할아버지의 말을 긍정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에, 듣고 있었어?)”

“(어, 어쩌다 보니. 옆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굴면 싫어도 귀에 들어오는 거야!)”

쿠로사카는 버럭 화내며 말했다. 은결은 어깨를 좁히며 그러면 그런거지 화는 굳이 왜 내냐고 속으로 불평했다. 어쩌면 쿠로사카는 칼슘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은결은 다음에 그녀가 요리를 만들어 달라거나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칼슘이 듬뿍 들어간 걸로 가르쳐 주리라고 결심했다.

“(...이성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고 생각해.)”

“(너무 담백한걸.)”

쿠로사카는 약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종교는 이성의 한계를 인정할 때만 진정으로 필요하게 되니까. 하지만 은결은 종교인이 아니다.

“(사실이니까. 도프도예프스키가 까르마조프에 마련한 반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성의 한계처럼, 우리의 이성은 삶을 구하기엔 불충분한 것 같아. 일례로, 오스트레일리아 케이프요크 반도에는 일요론트족이 살고 있었어. 20세기 초기에 선교사들이 그들을 찾아가지. 그리고 선교사들은 그들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로 돌도끼가 사용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선교를 위해, 그리고 그곳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근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쇠도끼를 전해주지. 일요론트족은 어떻게 됐을까?)”

“(평범하게 본다면, 좋은 도구를 손에 넣고 그들은 행복해 졌다, 일 것 같지만, 이야기의 맥락상 그렇게 좋게 끝났을 것 같진 않군.)”

“(그래. 그 부족은 해체돼. 돌도끼는 일요론트족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었거든. 부족의 어른은 그 돌도끼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음으로서 권위를 유지하고 연하의 부족원들을 이끌 수 있었던 거야. 특히 어린이와 여자는 돌도끼를 그들에게 빌려서 사용해야 했거든. 그런데 쇠도끼가 들어온 거지. 선교사들은 물론 어린이와 여자들에게도 쇠도끼를 주었어. 기술적으로 우월한 쇠도끼는 돌도끼를 간단히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고, 부족을 유지하던 모든 시스템은 연장자의 권위가 완전붕괴되면서 같이 무너지지. 가치의 혼란과 이로 인한 윤리와 도덕의 붕괴, 경제 시스템의 파괴. 일요론트족은 몰락해. 무지와 선의가 결합되어 이루게 되는 나쁜 결과의 훌륭한 사례지.)”

“(흐응...)”

쓰게 웃으며 은결은 사례를 더했다.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냐. 세상은 일요론트족의 사례와 같은 것들로 충만해 있지. 가령 르완다는 어떨까?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확신한 미국은 그들 시스템을 거기 심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경제적 양극화가 야기한 증오가 폭발한 제노사이드였지. 더 나가볼까. 그럼, ‘산업화’는 어떨까? 한때 검은 공장연기야 말로 진보의 상징이라며 모두들 자랑스러워하던 때가 있었어. 그들은 공장을 짓고 생산력을 향상시켰지. 아무도 거기에 나쁜 점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결과는... 지구온난화라는 파국적인 환경재난으로 대표되는 환경오염이지. 옳다고 확신한 행동이 이후에 악몽이 되는 일이 너무 많아. 이성은, 우리를 꿈에서 깨어나게 해 주지. 하지만 꿈에서 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 진실일까? 그걸 확신할 수가 없어. 이성은 우리를 구하는데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쿠로사카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계몽의 변증법’을 떠올렸다. 미즈하라가 그녀에게 이야기 해 준 책 가운데 하나다. 계몽, 이성의 자기 파괴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저작. 미즈하라는 그 책을 통해 결국 인간이 돌아가야 하는 곳은 신이라고 이야기 했다. 겸손한 이성과 건강한 신앙만이 진정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그러나 은결은 신을 믿지 않는다. 그가 사용하는 기호술법의 최고 기호는 사람의 ‘손’이라고 한다. 신에 기대지 않는 그의 갈 곳은 어디일까? 그래서 쿠로사카는 그가 ‘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기다린다.

“......”

하지만 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약간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거지?)”

그래서 약간 주저하면서 쿠로사카는 다른 것을 묻는다. ‘그래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해변에서, 은결이 그녀에게 사과하면서 했던 말이다. 뜨거움을 눈물로 쏟아내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은결은 쓰게 찌푸렸던 얼굴을 부드럽게 펴고 웃는다. 이어, 여전히 쓸쓸함이 깃든 말로 답했다.

“(응. 읽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아...)”

그 쓸쓸하면서도 굳건한 대답을 듣고, 쿠로사카는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묻지 않았다.

“저기-”

“왜?”

자신을 돌아보는 이리세의 얼굴을 보면서 여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다. 다짜고짜 이야기하면 마치 소개팅을 권하는 것 같지 않은가. 뚜쟁이 노릇 같아서 싫었다.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듯이, 이리세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욥 이야기는 반응이 어땠어?”

“아, 아- 반응은 좋았어. 무척 놀라던걸. 그리고 요셉이야기야 말로 까르마조프의 핵심이라면서 내게 설명해 줬어.”

“후후, 괜찮은 반응인걸. 이야기한 보람이 있어.”

반갑게 여우가 설명하자 이리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여우는 은결의 부탁을 화제에 올리고자 했다.

“아, 그래서 말야-”

“혹시 괜찮으면 그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

여우의 말을 끊고 이리세가 요청했다.

“에?”

“욥기를 까르마조프의 핵심이라고 말한다면, 나와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서. 어때, 중간에 다리를 좀 놓아주지 않겠어?”

놀라는 여우에게 이리세가 설명했다. 여우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불편함과도 약간은 닮아 있는 기분이다.

“아, 아- 뭐... 괜찮겠지.”

“고마워. 이번 주 토요일로 어때?”

이리세는 새하얗게 웃으며 물었다.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물어볼게.”

“그런데 하려던 말이 뭐야?”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여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은결이 이미 신청해 왔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그랬다간 정말 뚜쟁이 노릇을 하게 될 것 같아 거북했다.

*신재민님의 감상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름의 마지막을 불태우며 투닥여 봅니다.

*완결내는 것도 문제지만, 완결내고 수정할 거 생각하면 그것도 아득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글은 출판하지 않게 돼서 얻은 중요한 이득이 있는데, 그건 조기종결의 위험 따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겠죠. 덕분에 전체의 구성은 완전히 계획했던걸 지킬 수 있었습니다. 완결 후 수정도 재량껏 할 수 있고.

*확실히 반지군주도 굉장히 신학적인 글이죠. 그 글에서 스미골은 라이프니츠적 변신론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선을 위한 악의 존재이유, 즉, 더 큰 선을 위한 악의 존재죠.(충족이유율) 뿐만 아니라 절대반지 자체가 기게스의 반지, 즉 신이 없다면, 선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고. 물론 톨킨은 이런 해석에 반대할 겁니다. 톨킨은 자기 작품 해석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고 하죠.

*성원, 댓글, 감상 하여간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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