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희망을 위한 찬가 - 도스도예프스키를 읽는 소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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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교실에 들어가니, 이리세라는 여자아이가 이미 와 있었다. 그녀는 어떤 책을 열중해 읽고 있었다. 어제 이야기도 나눴고, 다른 자리에 앉는 것은 무례한 짓인 듯해서, 좀 석연치 않았지만 여우는 그녀의 옆 자리에 앉았다. 의자의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리세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여우를 보고 방긋 웃었다. 건강하고 보기 좋은 웃음이었다.
“안녕.”
“안녕.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어?”
“까르마조프의 형제들.”
이리세는 여우에게 표지를 보여주며 담백하게 말했다. 까르마조프의 형제들. 여우도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 유명한 도프도예프스키의 대표소설이라고 하니, 이름 정도는 아는 게 당연하다. 그 외에 ‘죄와 벌’이라던가, ‘악령’, ‘백치’가 대표적이라는 것도 안다. 물론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이리세는 어제 가방 안에 웬 책을 집어넣고 있더라니 이 소설이었던 모양이다. 여우는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재밌어?”
“경이적이야.”
촉촉하게 젖어서 돌아온 대답은 어떤 면에서는 특이했고, 어떤 면에서는 당연했다. 눈을 빛내며 답하는 이리세의 모습에 여우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 애는 은결과다.’ 문득 둘이 붙여 놓으면 어떤 진풍경이 연출될 것인지, 궁금하게 여겨졌다. 죽이 잘 맞을까? 그렇지 않으면 불 튀기는 대결이 일어날까? 어느 쪽이든 가능할 것 같았고, 어느 쪽이든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이 아이도 은결에게는 밀리리라. 은결이 그런 부분에서 다른 사람에게 밀린다는 것을 여우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는 약간의 감탄과, 사소한 이죽거림을 담아, 이리세에게 슬쩍 한 마디를 던졌다.
“흐응. 나는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도 못 읽겠던데, 그런 것 까지 읽고 대단하다.”
“어머,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인걸. 도리어 이 소설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주제를 가장 심원하고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인걸. 선생님이 추천해 준 책들은 표피적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야. 그건 ‘힘이 센 사람’, ‘역사(力士)’, ‘장사’를 늘어놓고 있는, 동어반복 같은 거야. 그러니 사실 읽으나 마나지. 가장 중요한 본질의 영역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글과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소설일걸.”
“......”
여우는 까르마조프를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되돌릴 말도 없었다. 아니, 틀림없이 읽어봤더라도 이 아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뭐 수수께끼도 아니고, 아는 단어로만 구성된 말인데 전체를 조합하니 외국어 같았다.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이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내일 학교에서 은결한테 물어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여우가 머뭇거리는 사이 선생님이 들어왔다. 교실에 머물던 조심스런 소란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자, 수업 시작한다. 그 전에, 어제 낸 퀴즈 문제 답 말해볼 사람.”
어제 이기적 유전자라는 글의 논리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끝냈다. 그리고 수업을 끝내기 전에, 선생은 ‘죄인의 딜레마’라고 하는 것을 소개했다. 일시적으로 힘을 합쳤던 두 도둑이 잡혀서 각자 취조를 받는데, 상대는 배신하지 않고, 자신은 상대를 배신하면 2년 형. 반대일 경우는 10년 형을 받고, 서로가 배신을 할 경우 5년형을 받는다. 양자가 배신하지 않을 경우, 증거불충분으로 방면된다. 이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집에 가서 생각해 보라는 퀴즈였다. 한 사람이 살짝 손을 들고는 말했다.
“저라면 배신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지 못하는데, 10년이나 옥살이를 할 위험을 감수하고 신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배신하면 최악의 경우라도 5년이면 충분하고, 운이 좋다면 2년입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손을 들며 이어 말했다.
“저도 배신할 것 같아요. 역시 그 쪽이 위험이 적잖아요?”
“음,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상대도 배신하지 않으면 같이 풀려난다고는 하지만, 그때만 동업한 사람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도둑놈인데.”
다른 학생이 말을 받으며 동의했다. 왁자하게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학생들은 주로 배신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드물게 배신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된다고 설명하는 데는 모두들 실패했다. 이득과 손해의 차원에서 보자면 배신하는 것이 이득이 됨은 명확해 보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우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이야기와 게임이 어딘지 익숙했다. 이야기가 대충 정리되고 난 뒤에, 선생은 말을 이었다.
“그래. 이런 경우 논리적으로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이득이 되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어 보이지. 상대는 상대를 끊임없이 배신해 나가야 할 테고, 상대를 배신자로 전제하게 되는 상황에서 ‘도덕적인 것’은 성립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이런 상태를 타개하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될까?”
침묵이 교실을 지배했다. 학생들은 선생의 질문에 대해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배신을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때 여우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선생은 반갑게 지적했다.
“그러니까... 서로 알게 만들면 됩니다.”
당장 주변에서 조롱 비슷한 반격이 이어졌다. “아는 사이니까 공범인 거지.”, “아는 사이를 어떻게 다시 아는 사이로 만든다는 건지 설명 부탁합니다.” 등등의 짜증스런 말이었다. 갑작스레 여기에 끼어든 불청객에 대한 질시도 다분히 섞여 들어간 의견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흥미로운 듯, 슬쩍 웃을 뿐이었다. 여우는 잠시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알게 한다는 건, 그- 잘 설명하기 힘든데, 그- 뭐랄까, 제가 선생님이 말한 그 게임을 실제로 해 봤거든요. 그런데 상대 이름을 모르고 선택해야 하는 게임에서는 배신하는 쪽이 이겼고, 상대 이름을 보고 게임할 수 있었던 때에는, 배신 안 하는 쪽이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서로 알고, 계속 같이 하도록 하면, 배신하지 않는 쪽이 배신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여우의 설명이 끝났다. 아이들은 혼란스런 얼굴을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그 게임을 해 봤다는 것만 이해할 수 있었다. 배신이니, 배신하지 않니, 는 갑작스런 이야기였다.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선생은 기쁜 얼굴을 하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내쉬 평행’이라고 해서, 우리가 이제껏 공부한 글의 주제지. 서로가 서로의 수를 이해하고, 서로 상대에게 이득을 줄 능력과 손해를 입힐 능력이 있는 상황이라면, 설자 적대적인 상황이라도 ‘협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니까. 행위의 연속성과, 상대의 명료성이 기본적인 조건이지. 유전자의 ‘이기적’성격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더라도, 결코 거기서 ‘이타성’의 탄생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거지.”
“예예...”
여우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쉬가 어쩌고 평행이 어쩌고 하는데, 이게 도통 무슨 말인지. 자신의 이야기는 경험의 결과일 뿐이었다. 이상하게 익숙하다 했더니, 은결 그 녀석이 기차 안에서 하자고 제안했던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였다. 너무 그 녀석 다워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게임도 요상한 것만 제안한다. 하지만 ‘이기성’에서 ‘이타성’이 탄생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꽤 인상적이었다.
“...프린터에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여기에 대해 도킨스는 재밌는 사례를 들지. 세계 대전 가운데 있었던, 전선에서 오랜 기간 한 사람도 죽지 않았던 담합 전투인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쪽 귀로 흘려들으면서 여우는 프린터를 바라봤다. ‘이기적 유전자.’ 인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역시 유쾌하지 않았다. 이타성의 근본이 이기성이라니. 착한 일의 목적도 기껏해야 자기를 위한 거라니. 가슴 깊은 곳에서 칙칙한 불쾌함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여우는 순수한 선함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글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순수한 선은 기껏해야 순수한 이기심의 변형된 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래서야 인간은 이 기분 나쁜 작자가 말하는 대로 유전자의 노예가 아닌가. 그런건---
‘으음.’
여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생각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은결도 아니고 말이다. 그는 수업을 마치면 돌아가는 길에 있는 집 앞 슈퍼마켓의 게임이라도 몇 판 해서 은결균을 떨쳐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
시선이 느껴졌다. 여우는 흘깃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이리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우는 시선을 원래대로 고정시켰다.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감상 남겨주신 테싱님 감사. 꼽사리 추천해 주신 소선재님도.
*지난화의 게임 소설은 쓴다면 그렇게 쓴다는 거지, 쓰기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쓰게 되어도 수정될 가능성도 있고 하니 기대 같은 건 안 하시는 게. 그리고 지금 쓰고 싶은 건 보이 밋 걸의 이계진입 스토리이고.
*무협은 제가 중국 공부하기 귀찮아서 앞으로도 손대지 않을 가능성이 무지무지 높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전문화해야지 더 넓히면 곤란한 입장이라서. 딜레탕트는 벗어나야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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