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희망을 위한 찬가 - 그 꿈의 이름은 무엇인가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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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장 위에 올라선 은결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은 보이지 않는다. 달이 보인다. 경이로운 별들이 사라진 밤하늘이다. 은결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발아래가 휘황하게 빛났다. 역장은 두터워지고 강해지며, 선명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했다. 그 뚜렷해진 사각형의 위에서 은결의 양 발의 중심에서 다른 빛이 퍼져나가며 복잡한 진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원이거나 마름모이거나, 삼각형이거나 사각형이거나. 그런 도형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기호로 충만해 있었고, 운동하고 있었다.
“후우-”
은결은 들이켰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진의 운동이 격렬해졌다. 은결은 무릎을 가볍게 구부렸다. 진의 운동은 한층 속도를 더했다. 그 격렬한 율동에 기호와 도형은 모두 원래의 모습을 잃고 단지 하나의 원으로만 보였다. 무수한 것들이 뒤섞이고 상호하며 결국 만들어내는 것은 그렇게 하나의 원이었다. 은결은 무릎을 펴며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돌이킬 수 없는 에너지의 흐름이 한 곳에 모여들었다. 아우성치며 튕겨 올라갔고, 아우성치며 파고들었다.
-우르릉!
주변이 가볍게 떨었다. 은결이 만들었던 역장은 방금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박살났다. 은결이 몸을 날림과 동시에 원형으로 율동하던 진은 사라졌다. 그리고 은결은 높이, 높이, 다시 높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인류가 만든 그 어떤 탈 것 보다도 빠르게-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중력의 속박을 무시하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생신이 닿을 수 없는 권역을 향해, 날았다.
시계가 아득해 졌다. 도심이 점차 작아지며 빛의 무더기가 되었고, 그마저도 희미해지며, 하나의 점 같이 되었다. 그리고 어둠이 시야를 감쌌다. 대기는 한층 강렬했고, 산소는 희박했지만 주변은 뜨거웠다. 몸이 점차 가벼워졌다. 그러나 은결은 멈추는 일 없이 높이- 그리고 높이- 날았다.
어느 순간, 마침내 한 숨의 산소조차도 느낄 수 없어 그저 참아야 했을 때, 희미해지던 마지막 속박마저 사라졌고, 아득하던 세계의 경계가 둥글게 드러났다. 잔인한 빛에 젖은 지구의 외곽이었다. 그곳에서, 거대한 구름은 새하얗게 드러나 그 아래의 대륙과 바다를 가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밤은 커다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선명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스러지고, 마침내 지구와 우주의 경계가 스러지는 지점에, 은결은 날고 있었다. 그 빛의 너머로, 어둠이 옹알대고 있다.
“......”
은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우주였다. 처음으로 푸른 이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의 힘이 아니었다면, 은결은 감히 이런 곳에 올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발밑에 역장을 형성해 박찼다. 저항 없는 우주에서 그는 한층 가볍게 날았다. 달이 멀지 않았다. 지구가 점점 작아졌다. 마침내 은결이 멈춰 섰을 때, 그는 한 눈에 지구를 다 담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별이었다. 어떤 빛도 끝에 닿을 길 없는 어둠 가운데서, 보석처럼 빛나는 별이었다. 은결은 주변을 둘러봤다.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을 거쳐, 마침내 이곳에 닿은 별빛이 우주의 곳곳에서 보였다.
아아. 정말로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저 먼 곳에 저들 별은 있었다. 그 모든 반짝임은 무한으로 속박된 별들 사이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무한으로 격리된 소통. 그것은 마치 기표와 기의 사이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 이곳의 빛이, 지금 저곳의 별들을 가리키지 않듯이 아득한 시간과 아득한 공간으로 단절된 무수함들. 은결은 다시 지구를 바라봤다. 그 아름다움에, 그리고 쓸쓸함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은결은 오른손을 들어 펼친다. 그리고 그 손을 지구에 겸친다. 달을 잡아 보려 했던 것 처럼, 이번에는 지구를 잡아 보려 한다. 그러나 역시 한 손에 지구는 쥐어지지 않는다. 완전한 허공만이 손아귀에 들어온다. 은결은 허공을 쥔 자신의 손을 눈앞에 가져와 바라본다. 꽉 쥔 주먹의 모습이 이상하게 생경하다.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은결은 엄지를 바라본다. 이 엄지가 있음으로서, 겨우 쥔다- 라고 하는 행위가 가능해졌다. 그것이 가능해 짐으로서, 우주에는 하나의 기적이 탄생했다.
은결은 손을 펼친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지구를 가린다. 우주조차 가린다. 그래. 이 손바닥은 지구만큼이나, 우주만큼이나 커다란 기적의 산물이다. 기적 같은 우연이 여러 개나 겹쳐져서, 마침내 이 손이 탄생했다. 그러한 손을 얻음으로서 인간은 노동했고, 언어를 가지게 되었고, 세계를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이념을 실현함으로서, 그 반복되는 즉자와 대자의 관계 가운데서 뇌라고 불리우는 회백색의 경이를 얻어냈다.
그러니까
이 손이 성립함으로서, 우주에는 아름다움과, 추함과, 악함과, 선함과, 즐거움과, 지루함과- 그 모든 가치에 대한 질문과 갈망들이 생겨났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인식하는 자가 탄생함으로서, 세계는 만들어진다. 고로, 인류가 탄생하고서, 우주는 우주로서, 세계는 세계로서, 가치는 가치로서- 마침내 탄생되었다. 사실 그런 것은 없는데. 우주는 한 번도 아름다움과 추함과 악함과 선함과 즐거움과 지루함을 설명하거나 증명한 적이 없는데. 단지 손을 가지고, 생각하게 된 이들만이, 그들의 갈망을 세계에 담아 세계가 그러하기를 원했고, 그러한 절망적인 가치의 문제를 탐구한다.
아니다. 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저 옛날 옛적에 문명을 만들어 운영하던 최초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두리는 넘어설 수 없는 현재를 노래했고, 길가메시는 허망하게 죽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우연을 긍정할 수 없고, 무의미를 긍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길가메시는 시두리의 노래를 듣고도 영생을 갈구했고, 시두리는 길가메시를 위해 노래했고, 수메르 사람들은 신화를 남겼다. 무의미하게 단지 사라질 것을 그토록이나 잘 알고 있었음에도.
‘......’
그러했기에, 그들은 신을 갈구했고, 모든 현상을 통일하는 하나의 원리를 찾아헤매었고, 결국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동시에, ‘꿈’을 넘어선 위대함의 추구를 위해 그들은 그 꿈을 넘어서서, 다른 ‘더러운 꿈’을 꾸었어야했다. 그렇게 이들은, 꿈을 넘어서서 만나는 것이 결국에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긍정할 수 없는 불쌍한 족속이 되었다.
‘......’
45억년이다. 45억년의 참혹한 우연이 겹쳐, 여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우연을 긍정하지 않고, 의미를 통해 세계를 바꾸어 나가려는 하찮고 오만한 돌출점이 나타났다. 그들은 세계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선의와 사랑으로 세계를 자신들이 바꾸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런 자유와 능력을 양손에 품었다. 하지만, 이 오만한 돌출점은, ‘더 나은’을 향한 그들의 걸음은, 결국 슬픈 실락(失樂)의 대지에 닿았을 뿐이다.
꿈을 넘어섰을 때, 그들은 맞이한 것은 다른 꿈에 불과했다. 꿈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무참한 비극의 반복과 더불어 알았을 때, 그들이 꾸는 꿈의 이름은 ‘역사의 끝’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인류를 마침내 탄생시킨 우연만이 긍정된다. 인간의 기획이 감히 닿지 못하는 위대한 시장의 힘만을 긍정한다. 다른 이름의 우생학이다. 한 마리 바다사자가 모든 암컷을 차지하듯, 소수의 인간이 모든 부를 차지하는 것이 허락되는 체계. 그것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비웃고 억압하는 대지. 카프카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세계. 혹은 모든 오만과 선의와 진보의 추구를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기도하는 것만이 남은, 도그마의 세계.
‘......’
은결은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인다. 그렇듯이 자신이 바라보는 것 역시 ‘더러운 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자신도 아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움직이기를 갈망하며 멈춰서고, 기뻐하기 위해 자학하며, 현실을 보기 위해 꿈을 꾸며,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불태우며, 사랑하기 위해 헤어지고, 만들기 위해 부수며, 한 소녀를, 그녀를, 규정하지 않기를 갈망하며 결국은 규정하고 만다.
‘후-’
손을 들어 눈가를 훔친다. 눈물은 둥근 방울이 되어 속박 없는 허공을 떠돈다. 나약한 생의 보석 같은 모습이다. 그래도 그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시두리가 길가메시를 위해 노래했듯이, 길가메시가 영생을 원했듯이, 수메르 사람들이 신화를 남겼듯이, 이 위대한 꿈의 속삭임을 간직하고, 마침내 실천하고 싶었다. 세계가 그에게 소금되기를 허락하지 않더라도, 소금이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이카로스의 어리석음일지라도. 시시포스의 허망함일지라도.
은결은 다시 지구를 눈에 담는다. 파리하고 쓸쓸하고, 아름다운 별이다. 저 고요한 아름다움 가운데 얼마나 많은 욕망이 들끓고 있는가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을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이 쓸쓸하고 청정한 아름다움을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었다.
*박치기만 해도 박살나지 않는 게 없겠군요. 개먼치킨 은결.
*더운 여름 열심히 글 쓰는 작자에게 성원성원성원!
*그리고 지난화 첫 문장은 시적인 표현인게 맞습니다.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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