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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82화 (182/300)
  • #   183-희망을 위한 찬가 - 그 꿈의 이름은 무엇인가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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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행사장을 나오며 소녀는 생각했다.

    ‘아, 이런 걸로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가면 화제도 끊어지지 않을거고, 호감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응. 그럴 꺼야.’

    뻑뻑한 마음으로 소녀의 뒤를 따르며 소년은 생각했다.

    ‘아, 이런 걸로 계속 이야기 해 나가면 지루함에 못 이겨 교제를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그럼 세연양 쪽에서 교제를 끊자고 해 올지도 몰라. 응. 그럴 꺼야.’

    ...상대에 대한 잘못된 예상이 서로 간에 종합되어 이루어낸 동상이몽이었다.

    행사장을 나온 두 사람은 느긋한 걸음으로 동물원 순회를 시작했다. 철장 너머로 느긋하게 하품을 하는 여러 동물들의 모습이 보면서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은결이 이야기 하고 세연이 듣는 구도였다. 현재 화제는 생물의 형태에 대한 것이었는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세연이었지만, 은결은 끈질기게 그 화제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물의 형태는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복잡한 원리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피보나치수열의 복잡한 교차가 다양한 현상으로서 나타날 뿐이지요.”

    “헤, 그럼 왜 하필이면 피보나치수열인가요?”

    “피보나치수열을 따르면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식물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나뭇잎의 모습이나 나뭇잎이 공간에 펼쳐지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그것은 모두 피보나치수열을 따르고 있고, 그때 식물은 가장 많은 표면적을 가지게 됨으로서 많은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동물도 그런가요?”

    “물론입니다. 식물뿐만이 아니라 동물, 사람 역시 몸의 모든 구성에서 피보나치수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앞니에서 송곳니까지의 폭은 일정하게 1.618대 1의 비율로 줄어듭니다. 손끝에서 손목까지의 길이와 손목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 비는 1대 1.618입니다. 머리 꼭대기에서 목덜미까지, 그리고 목덜미에서 허리까지의 비율이 또한 그러하며, 머리에서 허리까지의 길이와 그 아래 길이의 비율 역시 같습니다.”

    하지만 진실의 영역에서는 동상이몽이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화기애애한 대화가 조성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띄웠다. 기의의 엇갈림이 꼭 기표의 엇갈림이지는 않았다. 도리어, 기의의 엇갈림이 기표의 맞물림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기묘한 역설이었다. 덕분에 은결은 이상하게 잘 이어지는 대화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반대로 세연은 대화가 잘 이어지는데 즐거움을 느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동물에게 있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뭔가요? 식물은 햇빛을 받아들인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만 동물은 잘 모르겠는데.”

    “동물에게 있어 피보나치수열, 흔히 황금비라 불리는 수학적 도식이 적용되는 방식은 대개 몸을 불리는 방식입니다. 황금비에 따라 몸을 늘리면 원형을 잃지 않고도 몸의 크기를 불릴 수가 있습니다. 자주 아르키메데스의 원이라 불리는 등차나선으로는 그러한 안전한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자연에서는 등차나선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보편적인 것은 등각나선입니다.”

    세연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결의 이야기는 익숙해지기는 어려운 편이지만 익숙해지면 꽤 재미있다. 그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연의 반응이 나쁘지 않자 도리어 은결은 조금 초조함을 느꼈다. 점수를 까먹으려고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는데 상대는 도리어 흥이 오른 다니!

    “많은 이들이 이러한 보편성에서 ‘신’을 느꼈습니다. 플라톤과 뉴튼, 데카르트와 같은 최고의 지성들이 수학에 매혹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기서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는 최고의 원리, 말하자면 ‘신’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그 수열에 따른 구조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미감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황금비를 잘 구현한 구조물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여기게 됩니다. 가장 경제적인 것이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지요. 가령 저는 세연양의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세연양의 외모가 그러한 황금비를 훌륭히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결이 지적한 것 처럼 균형미가 뛰어난 세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은결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도 조금 붉어졌다.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한 이야기였지만, 돌이켜 보자니 상당히 부끄러운 말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은결이 세연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다. 물릴 생각ㅇ느 없다. 당황과 쑥스러움을 떨치며 은결을 말을 이었다.

    “큼. 물론 사람에게 있어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많은 부분 문화적이기도 하니, 꼭 그러한 황금비의 문제만은 아니지만요. 하여간, 사실 그러한 보편성은 ‘신’의 개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화론은 단지 그것이 생물에게 있어 가장 ‘경제적’인 에너지의 운용방식이었던 것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장구한 시간 가운데 가장 경제적인 방식을 우연히 타고난 것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위대한 존재가 개입해 통일시킨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생물들 간의 생화학적 통일성을 비롯해서 생물이 보여주는 복잡성과 다양성에서, 도무지 위대한 존재의 개입을 설정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은 질서 가운데서 신을 읽어내려는 모든 시도는 언제나 우리가 신이 개입하지 않고도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인류의 부모는 신이 아니라 우연인 것 같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좀 유감인걸요.”

    안타깝게 세연이 말했다. 그녀는 특별히 신앙심이 강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집안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가깝다. 인류의 탄생에 신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은결의 이야기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은결은 점수를 깍아낼 수 있겠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인류를 비참하게 만든 지적 발견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고, 다른 한 가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마지막이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인류에게 던져준 것은 틀림없이 진화론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단지 눈 가린 우연의 날개 끝에 걸려든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과거의 인류는 나쁜 꿈을 꾸고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비참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더러운 꿈에서 깨어났을 뿐입니다.”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러운 꿈... 인가요?”

    드물게 세연은 은결의 말에서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세연의 말에는 불편함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에서 읽혀지는 거부감에서 은결은 약한 당혹감을 느꼈고, 그 당혹에 다시 당혹했다. 그는 세연에게 나쁜 인상을 주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건만 정작 세연이 거부감을 보이자니 불편한 기분이 들다니. 은결은 속으로 혀를 차며 마음을 모질게 먹고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꿈이었습니다. 신을 설정하고, 그 신에게 자신들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믿음 위에서 다른 모든 타자를 경멸하고 비웃으면서 자신의 정의로움을 확신합니다. 그 확신은 결국 타자의 모든 것을 부정합니다. 그들이 우리가 되지 않는다면 살 가치가 없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거나 심지어 더러운 저들은 절멸시켜야 한다고 정의와 사랑에 가득 찬 열망으로 뜨겁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진보와 정의의 이름으로, 올바름을 확신하는 발걸음으로 타자를 향해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것을 더러운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을 더러운 꿈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

    세연은 가슴이 조이는 것을 느낀다. 은결이 말하는 것은 분명히 ‘더러운 꿈’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그런 ‘더러운 꿈’을 꾸었던 무수한 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은결이 말하는 꿈을 ‘더럽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훨씬 고귀한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싶었다. 설령, 그래 설명,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하더라도. 하지만 은결은 그녀의 희망을 짓밟듯이 잔인하게 말했다.

    “흑인이 아무 것도 아니듯, 백인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흑인이 검은 것은 그들이 적도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피부가 검은 쪽이 훨씬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더욱 검은 이들이 적응에 성공할 결과일 분입니다. 백인이 흰 것은 그들이 북부로 올라가면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지역에서 비타민D가 중요해진 탓에 피부에 빛을 받음으로서 합성하기 위해서는 흰 피부를 가지는 것이 더 좋았고, 그래서 흰 이들이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놓았던 것이 겹쳐진 결과일 뿐입니다.”

    세연의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낀다. 은결의 이야기는 반박할 길 없이 옳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를 되뇌인다. 그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인정해 버리고 나면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가 훼손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는 지금 이야기를 하는 은결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고 느낀다. 그녀는 은결의 슬픈 이야기가 자신이 버리지 못한 ‘그래도-’를 그는 버린 결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흰 피부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검은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흰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추악한 차별이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을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흰 것도 검은 것도, 목적 없는 우연의 겹쳐진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다윈이 더러운 꿈을 깨어버린 다음에도, 더러운 꿈의 조각을 끈질기게 쥐고 있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윈의 이름으로, 그 더러운 꿈을 한층 잔악하게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다윈의 이름으로 성립되었던 더러운 꿈의 이름은 ‘우생학’이다. 말을 해 나가며 은결은 자신의 말에 자신의 가슴이 찔리는 것을 느낀다. 기대하지 않았던 감정이다.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인간은 목적이 없는 곳에서 목적을 읽어낸다. 그 목적은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이다. 그 목적으로 구성된 현실의 모습은 진실이라기보다 꿈이고, 그 꿈은 언제나 타자에 대한 억압을 통해 자신을 높이 일으켜 세운다.

    저열하다.

    하지만 그러한 저열함은 뻔히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인데, 그래도 견디기 힘들게 가슴이 아프다. 자신의 말은 어느 한 조각 남김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 그 이유를, 은결은 잘 알고 있다. 그는 괜시리 손을 쥐락펴락 한다. 아아- 마음은 재 처럼 하얗게 식었다고 생각했거늘. 그러했거늘. 거기까지 이야기 하고 두 사람은 침묵한다. 그리고 소란 가운데 동물원을 조용히 걸으며 다양하고 다양한,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몇 가지 원리로 다 같이 이해할 수 있는 동물들을 바라본다.

    “...그거 아세요?”

    한동안을 걷고, 문득 은결은 발걸음을 멈춘다. 은결의 리듬에 맞춰 멈춰서며 세연은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은결은 우리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연도 그 안을 바라본다. 그 우리 안에는 침팬지가 있었다. 육중한 체구의 침팬지 두 마리가 안에서 서로의 털을 골라주고 있었다. 한 마리가 다른 침팬지의 등을 손으로 훑으며 기생충을 골라내는 모습은 무척 능숙해 보였다. 마치 사람의 손길처럼.

    “뭘요?”

    “침팬치와 인간의 유전자는 1%밖에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과 굉장히 비슷하지요. 손도 있고, 말도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차이 때문에 침팬지는 엄지를 가지지 못했지요. 엄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러운 꿈을 꾸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수하게 선량하거나 순수하게 잔인합니다...”

    은결은 그 자신이 더러운 꿈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런 은결을 바라보며 세연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던 마음이 한층 싱숭생숭하게 되었다. 안타까워서, 그에게 무언가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말이 그에게 가 닿을지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은결은, 그러나 먼 곳의 어딘가에서 날개 짓을 하는 아득한 사람 같았다. 세연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은결의 손을 잡아 봤다. 은결은 잠시 움찔, 하고 손을 떨었지만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침팬지를 침묵하고 바라봤다.

    *추천해 주신 루이카네와 달의 수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쓰면서 행복이 달리 있겠습니까. 뭐 이런 추천이나 감상 받는 게 행복이지. 껄껄.

    *지난 화 은결의 이야기가 목적론적으로 들렸다면 제 실수입니다. 진화는 아무런 목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언어를 구사하는 관념체는 모두 인류의 탄생 이후 구성되었습니다. 카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은 영혼, 신, 천국과 지옥 같은 개념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합니다. 저들 개념을 사실로서 글에 끌어들이면 이 글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의식은 붕괴합니다.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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