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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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슨 짓을 했지?”
은결은 가장 중요한 용건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른 사항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지금 은결의 몸 안에 남아있는 카미의 힘이 사실은 그가 장치했던 함정의 일부였듯이, 푸른 이빨이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지금, 은결의 몸 어딘가에 비슷한 종류의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할만한 일이다.
“내가 왜 답해야 하지?”
분노를 담아, 세연의 얼굴로, 푸른 이빨은 말했다. 은결은 태연하게 그 말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세연 양을 해치고 싶지 않으니까.”
푸른 이빨의 등골로 오싹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은결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면, 세연에게 위해를 가하게 되더라도, 설령 그녀가 죽게 되더라도 자신을 소멸시키겠다는 말이다.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몸이 다시금 푸른 이빨에게 이용당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결단. ‘저 꼬맹이라면 하고도 남음이 있다.’ 푸른 이빨은 순간적으로 확신했다. 꼬맹이의 미쳐버린 정신세계는 충분히 맛보았다. 그는 필요하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이 미친 새끼는 말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서 있지만, 결국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만 하는 순간. 그것은 고통일 지라도 필요한 순간이다. 이 미치광이는 명료하게 이를 직시한다.
“씨발 정신병자새끼.”
그래서 그의 선택과 감상은 간단명료했다.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침을 받듯이 말하는 푸른 이빨은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은결은 그의 선택을 이해했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한국어로 가능한 천박함의 종류나 극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냐. 묻는 질문에 답해. 내게 무슨 짓을 했지?”
“아무 것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무언가 할 생각이었다면, 그냥 네 몸을 가지고 있는 쪽이 훨씬 더 나았겠지.”
“......”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는 푸른 이빨을 보며 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심 푸른 이빨의 말이 옳을지 어떨지 가늠했다. 따지고 본다면 확실히 푸른 이빨의 말 대로였다. 은결은 자신의 정체성이 압도적인 정보 가운데 용해되어가던 순간을 기억한다. 푸른 이빨이 그렇게 자신의 몸을 차지했다면, 굳이 나와야할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은결의 몸에 무언가 함정을 설치하고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기껏 목적을 달성하고서 뒤로 후퇴하는 꼴이다. 그래서 질문은 다른 방향의 것으로 바뀌었다.
“왜 내 몸에서 나왔지?”
“큭큭...”
푸른 이빨은 은결의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상체가 격하게 흔들렸다. 구멍 뚫린 주머니에서 물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그의 입에서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은결은 그 웃음을 감싸도는 분위기를 무어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뜨겁고 검은 아우라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한동안 대답 없이 푸른이빨은 그저 웃었다. 한 동안 그는 그렇게 웃다가, 고개를 들었다. 은결은 그의 눈동자를 직시하고 움찔, 몸을 떨었다. 분노에 충만한 눈길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해야 하는 것은 도리어 은결 자신 쪽이 아니던가.
“대답에 앞서, 이쪽에서도 한 가지 물어보지.”
“뭐지?”
“미치광이야, 너는 왜 살아있지?”
푸른 이빨은 말했다. 그것은 강하고 단정적이었다. 그 물음의 이면에는 ‘너는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폭력적인 확신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가슴을 길게 관통하는 관념의 추위를 느끼며, 은결은 침을 삼켰다.
“갑작스런 철학적 질문이군. 어울리지 않게 철학에 흥미라도 생겼나?”
돌아온 대답에 푸른 이빨은 웃었다. 그는 이 대답이 ‘회피’라는 것을 이해한다. 은결은, 저 미치광이는 왜 이런 질문을 자신이 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 밖에. 그 엉망진창으로 범벅이 되어있던 논리와 감정은 다른 누가 아닌 미치광이 자신의 것일 테니까. 그리하여 그 결론에 이르러 마침내 ‘죽음’을 갈망하던 것은 다른 누가 아닌 정신병자 새끼 그 자신이었으니까. 푸른 이빨은 신탁을 내리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너는- 움직이기를 갈망하며 멈춰선 자다. 굶기 위해 먹는 자다. 죽기 위해 사는 자다. 기뻐하기 위해 자학하는 자다. 현실을 위해 꿈꾸는 자다. 지식을 위해 책을 불태우는 자다. 사랑하기 위해 헤어지는 자다. 만들기 위해 부수는 자다. 숨쉬기 위해 폐를 도려내고, 생각하기 위해 뇌를 찢어발긴다. 네가 염원하는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아. 그리고 너는 네가 염원하는 것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알고 있지. 미친 새끼.”
“......”
“처음 네 몸에 들어갔을 때도 알았지. 모순 덩어리였다. 이번에 한 동안 네 몸을 점거하며 확실하게 이해했다. 웃기기 짝이 없는 건, 그 모순을 네놈은 스스로 직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는 이상한 생물이야. 엉터리지. 너는 자신의 이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로 짓밟는다. 인간을 위해 일하면서, 인간을 가열차게 경멸하고, 그런 주제에 다시 사랑하듯이. 염원하면서 비웃는다. 그러면서 염원하길 그만두지 않는다. 갈망은 더없이 높고, 그 높은 갈망은 아무런 희망 없이 직시하며, ‘불가능’함을 이해한다. 그런 불가능 앞에서도, 갈망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너는 아무 것도 아냐. 너는 그저 쓰레기야. 그러니까 나는 궁금하다. 너는 왜 살지? 네게는 삶에 대한 이유도 읽혀지지 않아.”
“......”
은결은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무덤덤하게 푸른 이빨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답을 되돌리지도 않았다. 무엇을 위한 침묵인가? 푸른 이빨은 입술 한 끝을 저열하게 끌어올린다.
“왜 나왔냐고? 그래. 나는 네 비틀어진, 쓰레기 같은 생각을 견딜 수 없었다. 네 사고는 내가 거주하기엔 너무 더러워. 아무리 좋은 땅도 그 위에 쓰레기 매립장이 세워져 있어서는 쓸모가 없는 법이지. 너 같은 경우는 쓰레기도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똥오줌을 모아놓은 웅덩이였다. 진심으로 충고하지. 죽어라. 너는 살 이유가 없어. 삶은 너를 위한 단어가 아니다. 너는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네 앞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어. 아니, 너는 희망하지 않는다. 희망을 비웃고, 짓밟고, 능멸한다. 네게 희망이란 단어는 조롱거리 이상이 될 수 없어.”
저주처럼 푸른 이빨은 말을 끝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은결은 한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침묵. 그리고 은결은 숨을 들이켰다가 길게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메말라 바스러지는 목소리로 그는 결론을 내었다.
“그렇군. 너 역시 전일성에 대한 감각을 견딜 수는 없었군. 너는 관념체니까 그걸 견뎌내기는 나보다 훨씬 어려웠겠지.”
힘겨운 저항 같은 대답이었다.
“그런지 어떤지는 네 스스로 잘 알고 있겠지.”
“어쨌거나 좋아. 그럼 나를 압도했던 그 힘은 어디서 얻은 거지? 네 힘은 모두 내 속에 있었을 텐데? 세연 양의 몸은 청결하지만 그 이상은 아냐. 청결함 자체로 그만한 힘을 이렇게 단시간 내에 쌓을 수 있을 리 없어.”
은결은 질문을 바꿨다.
“어디였을까? 그건 알아서 상상해 봐.”
“내 경고를 잊은 건-”
푸른 이빨은 은결의 말을 잘랐다.
“협박은 그만둬. 가장 중요한 위험이 해소된 네게 이 계집애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까지 나와 싸울 용기는 없다. 나는 네 속에 들어갔다. 내게 그런 시시한 허풍이나 위협이 통용되리라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죽을 생각이 없는 너라면 두들겨 패면서 놀려먹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 이 씹새끼야!”
그리고 푸른 이빨을 앉은 상태로 은결을 향해 몸을 내밀었다. 세연을 가녀린 양 손은 막대한 힘을 품고 은결을 향해 날았다. 얼마 전, 그의 목을 죄였고, 한 순간에 패배시킨 그 손이다. 은결은 긴장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다. 꾸웅-! 힘과 힘이 충돌하며 결계내부 공간이 진동했다. 푸른 이빨의 손과 은결의 역장이 충돌한 부위에서는 막대한 에너지의 충돌로 인해 데워진 대기가 일그러지며 요동쳤다. 푸른 이빨의 표정이 불쾌하게 변했다. 그가 아는 한, 은결의 힘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정신병자 새끼야, 너야말로 어떻게 이 힘을 막아내는 거지? 어디서 이런 힘을 얻었지?”
“생각해봐.”
은결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곧장 푸른 이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씹-!”
푸른 이빨은 이 정신병자 꼬맹이의 몸에서 죽을 위기를 겪으며 빠져나오면서 자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3할 정도가 해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지극히 고통스런 경험이었다. 강력한 죽음의. 해체의 관념이었다. 그러니 꼬맹이의 내부에 있던 이절적인 힘 역시 그 앞에서 완고하게 버티고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즉, 이 꼬맹이의 힘은 본디 자신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은결은 역장을 거두고 푸른 이빨의 손목을 강한 힘으로 쥐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힘으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의미해. 기습 역시 무의미해. 지금의 나는 정말로 강하니까.”
“이익....! 뭐 좋아. 널 골리는 방법은 여럿 있으니까.”
푸른 이빨은 분하고 당황한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싱긋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은결은 이어질 다음 공격에 대비하려 했지만, 푸른 이빨이 다음 순간 선택한 것은 그의 품 안에 파고드는 것이었다. 공격이 아니었다. 그저 무방비하게, 아무런 힘도 펼치지 않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무슨?”
은결은 당황하면서 품안에 파고드는 푸른 이빨을 받았다. 세연의 머리카락이 날리며 향긋한 삼푸 냄새가 그녀가 몸에 뿌린 부드러운 향수 냄새와 어우러져 애절하게 맡아졌다. 그 결과, 마치 연인을 다정하게 감싸안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이 미친놈이 왜 이러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아...”하는 놀란 목소리가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연이었다. 푸른 이빨은 다시 세연의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갑자기 은결의 얼굴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에 놀랐던 그녀는 이제 지금 두 사람이 취하고 있는 자세를 인식하고 얼굴을 붉혔다. 세연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은결과 만나면 종종 시간의 짤막한 결락이 생기곤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아마 은결이 신기한 일을 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하여간 당황한 은결은 퍼뜩 잡고 있던 세연의 손목을 놓으면서 세연과 거리를 두더니 말했다.
“음, 죄송합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여, 여, 연인 사이인 걸요 뭘.”
세연은 용기를 짜내어, 수줍게, 겨우겨우 그렇게 말했다. 은결의 뇌리로 벼락이 쳤다.
*미이상씨의 추천에 감사! 이런 추천에 힘입어 열심히 글을 씁니다!
*겨우 og1끝내고 2로 돌입했는데 돈 빼고는 하나도 전승이 안 되네염.(ㅠ_ㅠ)
*저는 때때로 이공계 분들을 부럽게 여깁니다. 가령 이 글의 캐릭터들은 굉장한 에너지를 다루지요. 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어림짐작이 많습니다. 가령 은결이 주먹만한 돌을 쥐어서 날렸을 때, 그것이 100m도 가지 못해서 다 타버리거나 파괴될 정도의 속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에너지로 추진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경우 충격파는 어디까지 퍼져나가며 파괴력은 어떠할지에 대해 엄밀하게 계산할 수 없습니다. 뭐 그렇게 서로서로 장단이 다 있는 거죠.
*참고로 제가 아는 한 저런 종류의 묘사에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은 만화 이그젝션이었습니다. 세주가 망한 탓에 완결권이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아 저는 일어로 봐야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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