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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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문을 열었다.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기름이 튀어 오르는 소리도 한창이었다. 짙은 기름의 열기가 끈적하게 냄새의 입자를 잡아 무겁게 대기 가운데 침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저녁을 먹고 오질 않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래는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물론 문이 닫히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 설령 났더라도 기름이 튀어 오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몸을 숙이고 조심스레 걸어 부엌으로 갔다. 요리에 열중해 있는 목표물이 보였다. 미래는 씨익 웃으며 소리를 죽여 걸어 은결의 등 뒤에 섰다. 이어, 까치발을 들어 양 손으로 은결의 양 눈을 가렸다.
“누구게?”
“그야 미래지.”
자연스러운 대답이 은결에게서 흘러나왔다. 미래는 입술을 삐죽이며 손을 풀었다. 은결은 프라이팬 위에서 섬세하게 놀리던 젓가락을 떼어내고 접시를 꺼내 안에서 요리되고 있던 음식들을 능숙하게 옮겼다. 뜨거운 기름을 흘리며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음식들 사이로 열을 담은 향기가 진하게 뻗어 나오며 공복을 자극했다.
“시시하게 그게 뭐야. 이런 건 원래 다 알고서 장단을 맞춰줘야 재밌는 거야. 뭐야 그게. 그러다간 오빠 여자 친구 못 만든다.”
“하하. 뭐 못 만들면 못 만드는 대로 살지 뭐. 하여간 오늘 친구들이랑 시간은 잘 보냈어?”
무심한 듯 흘린 은결의 대답이 미래를 만족스럽게 했다. 그녀는 이내 기분을 풀고 “응.” 하고 기운차게 답했다. 그러나 이내 오늘 회합에서 들었던 기분 나쁜 이야기가 뇌리에 떠올랐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를 화제에 올렸다.
“그런데 오빠, 오늘 친구 만나러 갔잖아. 누구였어?”
“쿠로사카 유리에. 아무래도 혼자 살면 이것저것 불편할 테니까 가끔씩 도와주고 있어.”
은결은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이 미래에게는 벼락이 되어 내리쳤다. 아니,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지, 남의 집 장남에게 웬 봉사활동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들이 미래의 뇌리 가운데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며 충돌하고, 뇌전을 뿌리며 다른 생각들을 흡수해 강렬하게 주변으로 되튕겼다. 하지만 뇌리에서만 강렬했고, 겉으로는 강렬할 수 없었다.
“그, 그래?”
“자, 저녁 준비 다 됐으니 가서 아버지 모셔 와.”
은결은 접시를 식탁으로 옮기며 미래에게 이야기했다. 미래는 당황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으, 응.”하고 말했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웅- 소리가 들렸다. 거실의 소파 쪽에서였다. 소파에는 은결이 갈아입고 놓아둔 듯한 윗옷이 있었다. 미래는 수행 방으로 가기에 앞서 그의 옷을 뒤져 휴대폰을 찾아냈다. 작은 플라스틱 재질의 기계는 그녀의 소담한 손 안에서 웅웅 걸리며 떨리기를 계속했다.
“오빠, 문자 왔어. 드문 일이네 오빠가 휴대폰 문자를 다-”
미래는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호기심에 액정을 열어본 그녀는 놀라운 것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귀여운 이모티콘이 첨부된 몇 줄의 문장이었는데, 애교가 섞인 그 내용은 지극히 달콤했다. 더구나 발신인은 무려 ‘세연’이었다.
“아아. 고마워.”
은결이 물에 젖은 손을 털며 미래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문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잡어 품안에 넣었다. 생각지 않게 뒤통수를 가격당한 미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은결을 바라봤다.
어둠 가운데 몸을 누인 푸른 이빨은 파리하게 빛나는 액정의 화면을 바라보며 열심히 패널을 누르고 있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잠들기 전에 세연이 보내준 문자에 대해 답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일체의 연애 감정 없이, 그리고 앞으로 그런 종류의 감정이 생길 아무런 전말도 없이, 장래를 생각한 보험으로 계집애를 묶어두기 위해 사귀고 있는 터라 이런 종류의 작업을 하는 것은 좀 귀찮았다. 다만, 그의 답장은 귀찮아하면서도 매번 성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는 했다. 미묘한 갈등의 중심부에서, 행위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선택의 종합으로 완결되곤 했다.
“됐다.”
푸른 이빨은 작게 중얼거리며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리고 펼쳤던 휴대폰을 닫았고, 방은 완전한 정적과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푸른 이빨은 내일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의식은 흐려졌고, 무뎌졌으며, 끈적끈적해졌다. 꼬맹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으며 타자를 괴롭히던, 울며 타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자의 얼굴이었다.
불쾌감.
푸른 이빨은 감각을 절단하듯 감상을 잘라내고, 짐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흐려진 의식을 날카로운 칼이 쑤시고 들어오는 것 처럼 다른 사고가 점차 장악해 들어갔다. 마그마에 달구어진 날 같은 의식이었다. 태양을 벼려낸 칼 같은 의식이었다. 뜨겁고 예리하고, 빛나고 아득했다. 다시 꼬맹이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그 가라앉음에 교대하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크고, 압도적인 것이었다.
속삭임.
-전진의 꿈은 아름다웠다. 사랑의 꿈도 아름다웠다. 전진을 위한 사랑이었고, 사랑을 위한 전진이었다. 그들은 사랑을 품고 전진했다. 지금에 와서, 사랑은 어떠한 빛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두는 알았다. 사랑을 등불삼아 걸었던 이들은 같은 장소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그래. 진보는 없었다. 그러나 사랑조차 아니라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푸른 이빨을 이를 악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으... 아...” 죽음이 새어나오듯 신음이 새어나온다. 이명이 잉잉 거리며 귓속을 맴돌고, 어둠조차 흐트러지며 본래적인 면모를 잃어갔다. 검은색. 하지만 검다는 것은 무엇인가? 검음이란 어떤 규정됨의 종체일까? 알 수 없다. 검은 것을 새로이 인식하기. 아주 검은 것에서, 옅게 어두운 것 까지는 읽어내고, 손끝의 감촉으로 그 검은 심연의 촉감을 느껴보기. 식은땀이, 물처럼 흘러 옷을 적신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소외된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위대함으로 인해. 하지만 아버지를 소외시킨 이들은 악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세계를 바라봤기에, 아버지를 더욱 우려했고, 멀리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떠받치는 가장 거대한 동기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들은 모두 불행한 사람이 없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해석하는 세계를 그들의 사랑을 통해 절실하게 믿었고, 실천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손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손을 거절했다. 그들은 내려찍히는 손바닥에 끔찍한 오만을 느꼈다. 아버지에게 그들을 부정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에게도 아버지를 부정할 방법은 없었다. 양자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믿음일 뿐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주장을 ‘믿을’수 있을 뿐이었다. 소통은 언제나 오해이고, 질곡은 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보다 크고 절실한 속삭임. 마치내 응축되었던 모든 것이 한 지점을 향해 치밀어 올라 할퀴고 두들겨 파낼 수 없는 것들을 파내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을 향해 도달하고, 멈출 수 없는 것을 멈추게 만들려는 듯한,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본능이 속삭였다. 푸른 이빨은 알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존재하는 것은 텅 빈 손이다. 존재하는 것은 짓뭉개진 혀다. 사르트르는 진보하는 인간을 주장한다. 실존하여 전진하라. 앙가주망. 사회적 구속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 하지만 그의 실존주의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침몰한다. 친족의 기본구조. 우리는 모두 구조의 노예. 우리는 각자가 생활하는 사회의 구조가 찍어낸 결과물. 끈에 매달린 피에로. 그러니까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인간도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없다. 슬픈 열대. 그러니 오만한 진보의 이름으로 타자의 문화를 평가하고 뜯어고치려 하지 말라. 어설픈 무지와 사랑의 결합은 그 틈에 스며든 욕망과 함께 타자를 괴롭힌다. 차라리 침묵하고 존중하라. 그것만이 정답이다. 구조주의. 그래서 그것은 선험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 존재하는 것은 텅 빈 손이다. 존재하는 것은 짓뭉개진 혀다.
푸른 이빨은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들이 킬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도 정식화 되지 못하고 떠돈다. 개념은 개념이 된체 주체에 닿을 수 없다. 언어의 틀어 걸러지지 않는 세계. 인식의 틀에 걸러지지 않는 세계. 해석되지 않는 세계. 그것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이런 게 아닐텐데.’ 푸른 이빨은 말할 수 없는 이미지로서 거기에 동의한다.
-해석은 존재의 필연이고, 권력은 해석의 필연이고, 폭력은 권력의 필연이다.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 세상에서, 소통은 언제나 해석의 대결이고, 권력의 쟁투이고, 폭력의 발현장일 수밖에 없으니까. 사랑은 해석과, 권력과, 폭력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아무런 대답이 될 수 없었다. 아,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진보의 이름으로 타자에게 개입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의는 증명된 적이 없고, 진보는 실현된 적이 없다. 실현되지 못한 기준으로 세상을 잣대질하고, 옳음과 그름을 나누어, 감히 타자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지 마라. 침묵하라. 그들은 너와 다를 뿐이다. 다른 것 앞에서 침묵하라.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오만한 가치평가를 그만두라. 정답은 없고, 해석만이 있다. 해석만을 긍정하라. 차라리 시두리를 긍정하라. 그녀의 노래만이 진실이다.
푸른 이빨을 자신의 목을 뽑아내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천정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어둠. 그러나 기이한 어둠. 기이함 가운데 떠도는 음영과 이명과 속삭임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을 헤집는다. 그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근저를 향해 망치를 내려친다. 인식의 기초를 파괴한다.
-그러나, 그렇지만, 전세계 인류에게 하루 3500칼로리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8억명의 사람이 굶주리는 것을,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일 년에 영양실조로 죽는 어린아이의 숫자가 육백 만에 달하는 것을, 상위 400명의 재산을 모으면 하위 25억명의 재산을 모은 것과 같은 규모가 되는 것을, 10억 이상의 인간이 하루 1달러 이하의 금액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감히 어떻게, 바로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가치평가 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고, 옳음을 따라 타자를 재단하고, 그 재단을 따라 그들에게 ‘고치라!’ 는 ‘진보’에 대한 그 노력을 포기할 수 있을까? 존재하는 것은 그저 ‘해석’뿐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러한 개선을 위한 선의가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진다. 정답은 없음으로, 거짓된 공리 위에 세워진 모든 계획은 사상누각.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침묵하라. 침묵해야 하는 걸까? 만연한 비극을 앞에 두고서도, 저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의 성립을 우리는 감히 꿈꾸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가? 텅빈 손을 긍정하지 못한다. 말할 수 없는 입을 긍정하지 못한다.
푸른 이빨은 울고 있었다. 그의 울음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것은 은결이다. 오열. 그는 가슴의 고통을 느낀다. 생살을 그대로 쥐어뜯어 지워버리고 싶은, 그러한 고통이다. 푸른 이빨은 그 뜨거운 감정의 역류에 지독한 압박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휩쓸려 버릴 것만 같다. ‘이런 게 아닐 텐데.’ 아아, 이런 게 아닐 텐데. 이래서는 안 되고, 이런 것도 아닐텐데. 그런 만연한 고통이 사라진 세계가 틀림없이 있을 텐데. 나는 그런 세계를 안다. 목젖의 끝에, 머리칼의 한 올올에, 손톱의 까끌까끌함에, 그 세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 그렇기에 꿈꾸는 것은 아담의 언어. 해석에서 권력이 배제되고, 그래서 폭력이 사라진 세계. 그러나 모든 생성은 결국 차이. 그 차이가 해석을 통해 개체에게 접해질 수 밖에 없다면, 결국 차이는 해석의 틀을 통해 차이를 담지 못하는 기호 가운데 포섭될 것이고, 그 억압, 혹은 돌출을 통해(그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통해) 권력과 폭력을 재생산된다. 고로, 현세에 아담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담의 언어가 존재한다면,(혹은 했다면) 그것은 언제나 침묵.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염화미소(拈華微笑) 침묵하는 이들만이 아담의 언어에 가 닿는다. 침묵은 생성하지 않고, 무생성은 변화하지 않고, 무변화는 정지해 있음이기에. 그것은 끝없는 정적과 평행으로 이루어지는, 현세에 남은 마지막 아담의 언어. 나는 그 세계를 안다. 침묵 이상의 침묵. 기표와 기의가 일치된 세계. 그곳에서 견딜 수 없었던 침묵은 완전한 일치의 이상과 함께 열락이 된다.
꿈꾸는 것은 아담의 언어.
아담의 언어는 침묵.
침묵은 정지.
정지는 죽음.
그렇기에, 열망하는 것은 ‘죽음.’
절대의 관념이 푸른 이빨을 덮친다. 그 관념의 이름은 ‘죽음’이다. 그는 공포에 휘말린다. 그 절대의 관념은 푸른 이빨을 무심하게 ‘해체’한다.
*앙그라 님의 추천에 감사를. 좀 놀려다가 추천도 받고 힘을 내어 씁니다. OGS는 어느 천 년에 엔딩을...-_-;
*이번 챕터도 거의 끝났습니다. 슬슬 뿌려뒀던 떡밥들이 거의 정리가 되어가는군요. 처음에는 언제 다 정리 하냐 싶었던 이야기들도 거의 통합지점에 와 있고. 저런 이야기 왜 나오냐, 하는 말 들어가면서 연재하던 시절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림. 그래도 아직 통합되어야 할 게 굵직굵직한 걸로 좀 남아 있습니다. 후. 그러니까 앞에 깔아놨던 떡밥이 얼마나 한 군데 모여 있나, 하는 걸 체크해 봄으로서 이 글의 진행상황을 체크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기야 떡밥 깔아놓은 거 일일이 기억하시는 분도 없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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