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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72화 (172/300)

#   173-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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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그러하듯 상쾌한 아침이었다. 한국의 여름은 습기가 적어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목욕은 필요라기보다 이제는 습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돌아오면 매일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오래 지내게 되면 아무래도 매일 목욕을 하는 습관은 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이불을 개어 한 쪽 구석으로 치우고 방을 나갔다. 황폐한 풍경이 그녀를 맞았다. 쿠로사카는 눈썹을 찌푸렸다. 매일 보는 장면인데 오늘은 그 황폐함이 이상하게 뚜렷했다.

“......”

그녀는 얼마 전 마련한 작은 소형 냉장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차가운 형광등의 빛과 함께 냉기가 흘러나왔다. 냉장고의 내용물은 주로 인스턴트다. 쿠로사카는 그 중 적당한 것을 하나 꺼내려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냉장고의 문을 닫았다.

“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지도 오래였다. 영양 자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개 혼자서, 대개 인스턴트, 혹은 사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사 먹는 것도 혼자인데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만족스럽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국에 온 이후로 만족스럽게 먹었던 음식이라고는-

‘-닭 죽, 뿐인가.’

씁쓸 달콤한 결론이다.

오늘도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푸른 이빨은 착실하게 버스에 탔다. 날지도 않았고, 뛰지도 않았다. 하루 이틀 이용할 몸도 아닌데 함부로 굴려서 입지를 좁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꼬맹이의 아비와 같은 인간 같지도 않은 것과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같이 있을 이유가 없다. 위험만 감수하면서 꼬맹이인 척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청소니, 빨래니, 밥이니 하는 잡부에, 애인노릇에, 애(미래)보기까지! 성격에 안 맞고 마음에 안 드는 무수한 일을 해 가며 은결인 척 하고 있다. 아무리 카미라고 해도 수백년간 봉인당한 동안 기른 인내심과, 당면한 적의 강대함, 그리고 그들에 대한 분노의 거대함이 아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웃긴 새끼라니까. 남자 놈이 별 희한한 걸 다해요. 자기 집에서 그러는 거까지야 뭐 그렇다고 치지만 출장 파출부 노릇까지 할 건 또 뭐야.’

푸른 이빨은 좌석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오늘 이렇게 버스에 타게 된 것도 바로 그 꼬맹이의 희한한 짓거리 중의 하나 때문이었다. 오전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던 중에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키리야미의 후계자였다. 용건인즉 요리를 좀 가르쳐 주지 않겠냐는 거였다. 이 연락이 온 것은 그가 기억을 돌이켜 보기에, 과거 이 꼬맹이가 여자애를 간호해주고, 음식도 만들어 주고, 연락하면 도와주러 가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완전한 무료봉사에다가 달리 호감을 사려한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었다. 역시 웃기는 놈이다. 하여간 푸른 이빨은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당연 목표중 하나가 그 여자를 격추시킨 다음에 여하한 수단을 사용해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좋은 기회였다.

‘뭐 덕분에 나는 이런 걸 하나하나 잘 사용해서 좀 놀아보는 거지.’

푸른 이빨은 간결하게 생각을 끊고 속으로 킬킬거렸다. 버스가 멈췄다. 곧 버스 앞뒤의 문이 열렸고, 탈 사람은 타고, 내릴 사람은 내렸다. 멈춰선 풍경의 여기저기로 지저분하게 걸려 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음식점 광고, 다이어트 광고, 어학 광고, 관광 광고, 베트남 처녀 광고. 종류는 다양했고, 현수막의 다양성만큼 욕구도 다양했다. 음식과 육체가, 능력과 사랑과 함께 아무런 차별 없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전혀 다른 것들을 차별 없이 동등한 욕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돈이었다. ‘돈’앞에서 ‘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돈 앞에서 존재하는 것은 ‘양’이었다. 교환 가치라는 가장 강력한 해석의 틀 앞에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음.”

푸른 이빨은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무언가 치밀어 오르려고 했다. 그는 억지로 견뎌 그것을 삼켰다. 곧 진정됐다. 이내 푸른 이빨은 표정을 평화롭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역시 육체의 통제권은 점점 더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며칠 전이었다면 이라도 부수지 않고선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푸른 이빨은 희미하게 웃었다. 버스가 다시 움직였다.

푸른 이빨은 버스에서 내렸다. 그는 은결의 기억을 뒤져 근처의 할인 매장으로 가서 오늘 요리의 재료를 산 다음, 경사로를 따라 쿠로사카의 집으로 향했다. 백천 아파트라고 하는 곳이라고 했다. 올라 갈수록 아파트의 질도, 주차된 자동차의 수준도, 심지어 구성원의 외견에서도 차이가 났다. 푸른 이빨은 참 같잖다고 생각했지만, 같잖은 것들이 같잖게 살겠다는데 뭐 어쩔 것인가. 인간이란 족속들이 같잖다는 것은 수 백 년도 전에 이미 알았던 사실이니 새삼스러울 뿐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잘난척 해봐야 어차피 짐승이 옷 입은 것에 불과한 것들이었으니 불과 수 백 년 동안에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낼리 없었다.

‘변화라...’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몸의 원래 주인이던 꼬맹이는 확실히 특이하고 맛이 간 종자였다. 이 꼬맹이의 육체와 사고는 기존의 인류에 대해서 마치 본질적인 변화라도 이루어낸 것 같다. 물론 꼬맹이와 비슷한 인간은 과거에도 찾아보면 있었다. 가령 자신을 봉인한 인간 역시 인간이라는 종과는 구별되는, 전혀 다른 인류인 것처럼 독특하고 헌신적인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니 아무리 특별해 보여도 결국은 인류라는 같잖은 군체가 품는 다양한 가능태 가운데 하나가 현실화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뭐 세상이 이 꼬맹이 같은 인간들로 득실득실 거리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참 지랄같은 세상일 것 같다만.’

은결같은 인간으로 득실득실 거리는 세상을 잠시 상상해 보고 푸른 이빨은 재수 없음에 혀를 우엑 내밀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던 중에 푸른 이빨은 목적했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쿠로사카의 집 앞의 알람을 눌렀다. 곧 문이 덜컥 열리며 유려한 선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어서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녀는 푸른 이빨을 맞았다.

“(실례.)”

푸른 이빨은 다정하게 웃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두 번째 오는 집이지만. 여전히 썰렁하군.)”

“(음.)”

“(뭐 사는 사람이 워낙 보기 좋으니까 손님된 입장으로서는 썰렁한 집이라도 아무런 불만이 없지만, 당사자로서는 역시 좀 황량하지 않아? 뭐라도 좀 들여놓지?)”

사온 음식 재료들은 부엌의 선반 위에 올려놓으며 농 섞인 어조로 푸른 이빨은 쿠로사카에게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상투적이었다.

“(쓰, 쓸데없는 참견이야.)”

“(어련하실까요.)”

피식, 웃으며 푸른 이빨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료를 봉지에서 꺼냈다. 여러 종류의 고기에 각종 야채, 그리고 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쿠로사카는 곤혹스럽게 물었다.

“(나는 이런 재료 사용하는 음식을 가르쳐달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아, 이건 그냥 만드는 거야. 어차피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본지 오래 됐을 거 아냐. 이왕 온 거 밥이라도 만들어 줄까 하고. 조리법은 밥 먹고 난 다음에 간단하게 가르쳐 줄게. 그것들은 어렵지 않으니까 굳이 내가 실습해 보이지 않아도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거야.)”

“(음. 그쪽 재료비도 낼게.)”

쿠로사카가 냉큼 말했다. 푸른이빨은 손을 휘휘 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아. 좋아서 하는 건데 뭘. 네게는 신세도 많이 지고 있고. 이런 정도는 무료 봉사하는 게 당연하지. 다시 이야기 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집에서도 가사를 해야 하고 하니 너무 자주 부르는 건 곤란하지만, 방학이고 하니까.)”

거기서 푸른 이빨은 부지런하던 손길을 멈추고 불현듯 생각이 났다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쿠로사카에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면 네가 아주 우리 집에 와서 산다거나 하면 좋을 텐데. 그럼 만사 OK잖아. 매일 밥도 해 줄 수 있을 테고, 가사 전반도 내가 맡아서 해결해 줄 수 있어. 너는 몸만 오면 돼. 여긴 그렇지 않아도 혼자 살기엔 넓은 집일텐데, 어때, 생각 없어?)”

“(쓸데없는 소릴!)”

쿠로사카는 버럭 화내며 은결의 말을 잘랐다. 너무나 의외인 말에 심장이 두근, 뛰었다. 수련이 부족했다. 푸른 이빨은 어깨를 움츠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은 생각 같은데. 뭐 화낼 것 까지야.)”

“(흥.)”

쿠로사카는 더 말하지 않고 은결의 말을 막았다. 화제는 거기서 끊어졌다. 곧, 부엌에는 리드미컬하게 칼질하는 소리만이 조신한 잡담과 함께 고요하게 머물렀다. 간소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이 점점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쿠로사카는 스며드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따스함에 대한 감각은 곧장 어떤 아림으로 이어졌다. 어쨌거나 은결에게는 연인이 있다.

*작업 마스터 푸른 이빨.(뻥)

*성원 대환영.

*한 며칠 게임을 하며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1.캐릭터의 성장은 자유도를 가질 것. 정규 성장(흔히 레벨업) 이외에도 품(노가다)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의 여지를 부여하면 좋다.

2.성장은 게임의 전투 등의 직접적인 진행 장면에서 플레이어에게 가능한 확실하게 느껴지는 편이 좋다. 물론 레벨간 밸런스는 고려 할 것.

1번이 결여되면 좀 답답하고, 2번이 안 되어 있으면 성장시키는 보람이 잘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리고 아이템이든 캐릭터든 이런 성장시스템과 결부시켜서 수집의 요소를 집어넣으면 더 좋더군요. 물론 노가다의 보람이 있도록 숨겨진 적이나 시나리오 같은 게 있어야 하겠지요. 제가 열광했던 롤플레잉(혹은 시뮬롤플레잉)게임들은 이런 요소들을 충실히 잘 지켰죠. 발더스 게이트라던가, 폴아웃이라거나, 대악사라던가, 루나틱 돈이라던가. 성장뿐만 아니라 게임 진행 방식 자체의 자유도도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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