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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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지?)”
성급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푸른 이빨은 물었다. 쿠로사카는 답한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푸른 이빨을 봉인했던 이와사카岩坂를 깨뜨린 자들의 정체가 아마도 이제까지 너를 노렸던 그들과 같은 집단일 거라고 하는 이야기였어. 얼마 전 미즈하라 아저씨가 한국에 온 차에 수거해 간 것들을 조사해 읽어낸 술식 구조를 볼 때 동일한 학파의 논리구조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어.)”
푸른 이빨의 마음으로 벼락이 친다. 어둠 가운데 자유가 찾아들었을 때, 환희가 가슴을 채 메우기도 전에 다른 구속이 그를 향해 덮쳤다. 그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두려워했던가. 그리하여 결국 ‘도망’쳤고, 안정된 육체를 찾아 여기까지 와서 계집을 만났고, 인간 같지 않은 병신을 만났고, 그 병신의 아들이자 정신적인 불구인 쪼다를 만났다.
힘은 언제나 갈구하고 다시 갈구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힘을 갈구하게 되었던 것은, 자유를 느낀 그 순간 다시 찾아온 구속에 대한 공포가 일정부분 작동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공포, 공포, 공포! 푸른 이빨은 모멸감에 마음을 떤다. 공포라니! 공포라니! 그리고 그들이 이 꼬맹이를 노리던 자들과 같은 놈들이라니!
“(동일한 구조라면?)”
“(자세한 정보는 내게도 주어져 있지 않아. 단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푸른 이빨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 전 그들과 연관된 사건에 말려들었기 때문에 주어졌을 뿐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상당히 민감한 정보인 모양이야.)”
쿠로사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닫는다. 추가하려면 한 문장 정도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이 있었지만 그만뒀다. ‘참고로 그들이 구사하는 술식의 구조가 네 아버지의 기호 이론과 흡사하다고 하더라.’ 는 것을 이야기 해 봐야 지금의 은결에게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요즘의 은결이 정신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눈에 드러나 보이는 사실인데, 거기 부담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푸른 이빨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문다. 이것으로 더욱 이 곳을 떠날 수 없게 됐다. 여차하면 꼬맹이의 몸을 놓아두고 도망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의 목적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었던 이상 그럴 수는 없다. 여기서 처리해야 한다. 푸른 이빨이 생각하기에 이 꼬맹이의 몸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힘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 꼬맹이의 아비도 도와줄 것이다. 이 이상의 조건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낮 인간을 두려워해 꼬리를 말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을 농락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 중요했다. 치욕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건 그렇고, 어제는 어떻게 됐어?)”
속으로 이를 가는 푸른 이빨을 향해 쿠로사카는 묻는다.
“(어제?)”
“(푸른 이빨이 깃든 소녀와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잖아.)”
담담한 표정과 어조로 쿠로사카는 물었다.
“(아아, 그거.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어.)”
“(...놀라운걸.)”
약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로 흐르고, 쿠로사카는 말했다. 푸른 이빨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속으로는 낄낄대며 웃으면서 말했다.
“(푸른 이빨을 생각하면 그녀와 얼마든지 지근거리에 있을 수 있는 관계를 확립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전 네게 말했듯, 그녀에 대한 폭력을 반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건, 연애가 아니잖아? 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아. 그건 너는 물론, 그녀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 거야.)”
약간의 다급함을 담아, 쿠로사카는 반론했다. 푸른 이빨은 고개를 흔든다.
“(반대로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냐. 중요한 용무도 엮여 있고. 그러니 이 역시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나는 헤어질 걸 전제하고 사귀려는 게 아냐. 어쩌면 장래 정말로 그녀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연애의 시작이 반드시 서로 좋아하는 것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
쿠로사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발심이 일지 않는 대답인 것은 아니었지만, 전략적인 이유에서라도 은결의 선택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도 매우 짜증스러웠다. 타인의 연애 사업 따위, 그녀가 알게 무어란 말인가. 그래. 알게 무어란 말인가. 그리고 노리듯이, 푸른 이빨은 말을 그녀의 마음을 치고 들어왔다.
“(흠, 정말로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그래. 쿠로사카 너 같은 사람이 좋을텐데 말야. 믿음직하고, 이렇게 같은 장소에 같이 서 있을 수 있고.)”
조용한 어조에 실린 애절함이 마음을 파고드는 말이다. 특히, ‘같은 장소에 같이 서 있을 수 있고’라는 말이 징징 마음의 현을 울리고 드는 것 같다. 그 말은, 솔직하게 ‘기뻤’다.
“(바보 같긴.)”
쿠로사카는 마음을 적시는 감상을 거절하듯, 성급하게 잘라 답했다. 푸른 이빨은 더 말하지 않고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 웃음은 이중의 의미를 담는다.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 웃음이다. 그는 가장된 쓸쓸함으로 도천시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아, 그래.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아.)”
쿠로사카는 은결을 바라본다.
푸른 이빨은 형광등의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이 어딘지 포근하다. 잠을 향해 스며드는 그의 표정이 부드럽다. 오늘은 그럭저럭 만족스런 하루였던 덕분이다. 특히 쿠로사카라는 계집애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정보뿐만이 아니라 놀려먹는 맛도 있는 계집이다. 이대로 잘 가면 가지고 노는 것은 간단할 터였다. 좆병신 꼬맹이의 거죽을 계속 써야 하니 이런 감질맛 나는 방식으로 차차 진행시키고 있지만, 이런 방식도 이런 방식 나름대로 즐기는 맛이 있다. 그는 내일도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의식이 흐려졌다.
의식이 흐려지며 다른 종류의 의식이 흘러든다.
속삭임.
...의 문제와 떨어지지 않는다. 해석이 효율의 문제인 한,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아니고, 때문에 그 해석의 방식은 주체의 편의라는 자의성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의에 따른 효율성이 해석의 기준이 될 때, 인식에 있어 진리가 뒷전이 되듯, 해석되는 객체의 입장 역시 뒷전이 된다. 그래서 오해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소통에는 반드시 끼어들고, 오해는 자의성 가운데 권력을 수반하여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일그러뜨림으로서 ‘고통’을 생산한다. 무엇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가? 현전(現前)의 환상이 파괴된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양손의 이념으로, 인식에 대한 반성을 넘어 새로운 것을 획득할 수 있는가.
물음. 해석에 있어 이기적인 ‘편의’를 극복하면 해석의 문제는 극복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이 오해의 대답일 수 있는가? 이어지는 것은 짤막한 조소.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넘치는 사랑에서 비롯된 해석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정치적인 테러가 벌어졌다. 일단의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가난하고 늙은 노파를 잡아 처형한다. 그녀가 처형당한 이유는 간결하다. 그녀는 그들의 동료가 접혀 있던 감옥의 간수였다. 그녀는 무엇을 했는가? 그저 수인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녀의 애절한 애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그녀를 단죄한다. 그녀는 죄 없고 고통 받는 민중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말단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앎으로서 자신만만하게 그녀를 해석했다. 그녀의 어떤 다양한 삶의 결도 그들에게 그녀를 바라봄에 있어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거되고, 생략되어 마땅한 것이었다. 해석은 언제나 핵심을 간취함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던가. 그녀의 슬픔, 그녀의 울음, 그녀의 공포, 그녀의 표정, 그녀의 간난신고.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뼈대에 달라붙은 찌꺼기. 고로 무시되고, 소거되고, 말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그녀를 자본주의의 한 말단으로 보고 처형한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들의 해석에 대한 그만한 확신을 가지게 했을까? 사랑이었다. 인류에 대한 더 할 나위 없이 거대한 사랑이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없는 사랑이었다. 지고한 선의가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아니다. 지고한 선의와 그 해석은 분리될 수 없었다. 그 해석의 방식과 그 선의의 크기는 등치되어 있었다. 양자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기에,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순결한 사랑으로 자신들의 해석을 세상을 향해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노파는 살해당한다. 그녀가 품고 있던 무수한 다른 가능성과 삶의 양식들은 모조리 무시당한 채 거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실천되던 해석의 결과로서. 고로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은 언제나 세상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어떤 수단과 명분을 담아도, 인식은 저열함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벗어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로캉텡의 선택은 실패할 것이며, 구토는 현재성을 잃었다. 그것은 언제나 오해였고, 오해와 함께 하는 고통의 문제였고, 역사의 끝이었고 아버지의 몰락, 이었다. 고로, 폴 발레리를 거절한다. 해석의 풍요를 거부한다. 텅 빈 손을 긍정하지 않는다. 무한한 잡식의 세계를 두려워한다.
갈망하는 것은, 아담의 언어.
푸른 이빨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화장실에 처박힌다. 얼른 술식을 펼치고 토악질을 시작한다. 얼굴은 눈물로 흥건히 젖은 채, 모든 것을 거절하듯 토악질을 한다. 수면을 튀기며 채 소화되지 못한 음식들이 위액과 뒤섞이며 변기의 고인 물 가운데 흩어진다. 주체가 흩어지듯, 개체가 흩어지듯, 진리가 부정되듯.
다 위 속의 것을 모두 토해낸 푸른 이빨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꿈에까지 침범해서 개지랄이다. 그는 분함에 이를 간다. 드물게 평화로운 하루가 되리라 생각했거늘, 마지막에 와서 망치고 말았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헛소리에도 조금씩 더 익숙해지고 있었고, 이 육체의 지배권을 확립할 날은 머지않았다. 그래. 이 지겨운 짓도 곧 끝난다.
*이거 완결내면 ‘보이 밋 걸’을 한 편 써보고 싶음. 그리고 완결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거기까진 안 갈 겁니다.
*폴 발레리와 해석의 문제가 뚜렷하게 드러난 시점에서 들뢰즈와의 연결고리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파악하고 있으니, 노마디즘이 이 글에 나올 가능성은 이제 매우 낮다는. 클라우스 학원의 경우 ‘자유만이 도덕을 가능하게 한다.’고 이야기하다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칸트가 등장했습니다만.
*각종 성원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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