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69화 (169/300)

#   170-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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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은 버스에 올랐다.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은 덕인지 버스 안은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그는 근처의 좌석에 앉고 시선을 창밖으로 보냈다. 덜컹거리는 버스의 흔들림과 함께 풍경이 흘러갔다. 색색의 건물이 색색의 장식과 함께 흐른다. 색이 뒤섞이며 혼탁을 낳았다. 혼탁 가운데서는 그는 세연을 생각했다. 얼굴을 붉히며 무척이나 기뻐하던 소녀. 바보 같은 계집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찮은 것에 혼을 빼앗기는 것은 인간다운 어리석음이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 숙명에 기대어 행복을 찾는 것이 나쁜 이유는 없을 것이다. 푸른 이빨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그 어리석은 계집애가, 행복한 것도 괜찮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당혹감이 그를 덮쳤다.

이명이 인다. 이건 ‘동정’인가? ‘연민’인가? 어느 것이든 한 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던 생경한 감정이었다. 푸른 이빨은 동정도 연민도 하지 않는다. 그는 힘을 추구하고 힘을 믿는다. 힘을 실현하고, 힘을 성장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동정이니 연민이니라는 것은 그에게는 미지의 감정일 뿐이다. 강한 것이 승리하고, 약한 것이 패배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외의 것은 기껏해야 장식일 뿐이었다. 관심은 없었다. 그러니까 필요한 것은 승리와 패배였다. 지배와 굴종이었다. 주인과 노예였다. 적자생존. 그는 이 미지(未知)의 감정에 짙고도 짙은 불쾌감을 느낀다. 계속해서 이명이 인다. 이명은 점점 더 커지며 현실의 소란을 차단했다.

“크으-”

곧 푸른 이빨은 고요한 이명의 호수 가운데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치미는 토기 가운데 의식은 혼탁했고, 의식이 혼탁한 만큼 시야도 혼탁했다. 혼탁한 세계에서 사태는 모두 혼탁하게 분리, 혹은 합일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순결해서,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눈앞에서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경계의 소멸. ‘이것’과 ‘저것’ 사이의 붕괴. 푸른 이빨은 이를 악물고 버틴다. 양 손을 꽉 쥐고 버틴다. 식은땀이 얼굴선을 따라 흘러, 뚝뚝 떨어졌다.

속삭임.

...진화는 언제나 비용과 효율의 문제였다. 의미 따위는 없었다. 단지, 다만 단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인 행동을 해 내는 것이 남았을 뿐이다. 그것이 진화였다. 아무 것도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없었다. 인식의 구조 역시 이 법칙에 종속되어 있었다.

...개미는 서로 간에 페르몬으로 소통한다. 특정한 곤충은 개미의 페르몬을 흉내내어 그들에게 기생한다. 그 곤충과 개미의 외관은 전혀 다르지만, 그것은 개미에게 무의미했다. 개미의 움벨트는 페르몬을 통해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시각적인 차이는 무의미했다. 그래서 페르몬으로 기생충은 개미에게 개미로 인식될 수 있었고, 그래서 개미와 소통하고 그들에게서 음식을 받아먹었다. 이 소통은 수정되지 않았다. 오해를 수정함으로서 기생충에게 음식을 낭비하지 않게 되어 얻게 되는 이득보다 기생충을 구별할 수 있는 정밀한 인식체계를 발달시키는 쪽이 더 많은 비용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개의 코와, 박쥐의 청각과, 새의 눈. 그들은 각자에게 맞는 각자의 인식을 진화라는 장구한 시간의 대차대조표를 통해 발달시켜, 그것으로 세계를 해석해 자신들의 움벨트를 만들어 냈다. 모든 인식의 구조는 그러했다. 인간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인식은 비용과 결부된 효율의 문제였고, 그래서 언제나 ‘해석’일 뿐이었다. 진리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고, 있더라도 이차적이었다. 추구되어 남아있는 것은 언제나 효율적인 ‘해석’이었다. 진리에 대한 추구는 이들 해석에 대한 지나친 추상화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다. 닿을 수 없는 인식의 유토피아. 인식의 방향은 항상 비용의 문제였고, 진실은 언제나 이차적인 문제였였기에, 진정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의미’였다. 그래서 소통의 중심에는 어디까지나 자아가 있고, 자아의 외부에는 타자가 있고, 타자와의 관계는 자아를 중심으로 한 해석의 문제, 끝없이 아슬아슬한 ‘폭ㄹ....

다시, 푸른 이빨은 이를 악 문다. 이가 입 안에서 박살났고, 박살난 이와 이가 잇몸을 파고들었다. 턱 위, 아래 뼈가 으그적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고, 으득으득 소리를 내며 꽉 쥔 손의 뼈가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고통이 의지였고, 의지가 고통이 되는 과정에서, 푸른 이빨은 의지와 무관하게 맴도는 사고의 조각을 떨쳐냈다. 소리가 스러지며 이명이 스러졌고, 은결이라는 인간의 개체가 만들어내는 주관적 움벨트는 본래성을 회복했다.

“후우... 후우...”

몸은 순식간에 회복됐다. 지금 푸른 이빨의 힘이라면 만월의 라이칸슬로프를 우습게 만들만한 재생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슴의 박동은 진정되지 않는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며 숨을 헐떡였다. 흥건하게 젖은 피부의 땀은 손바닥을 따라 쓸리며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변의 몇 사람이 푸른 이빨은 다소 걱정스런 안색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빌어먹을...!’

기본적으로 푸른 이빨은 관념체다. 관념체이기 때문에 관념 그 자체가 그에게는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 꼬맹이의 경우는 그것이 너무 강했다. 이런 것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었다. 꼬맹이의 관념의 내용 자체도 본질을 부정하는 해체적인 것이기에 효과를 지니고 있겠지만, 아무리 관념체라고 해도 카미는 카미다. 인간의 관념으로 해체에 가까운 위기를 겪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육조 혜능과 같은 진정한 ‘각자(覺者)’라면 모르겠지만, 이 꼬맹이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런 관념들을 떠밀고 있는, 추진하고 있는 힘이 믿을 수 없게 거대했다. 이성이 감성과 떨어질 수 없는 복합체 이듯, 사고도 사고에 수반되는 감정들과 떨어지지 않는다. 꼬맹이의 의식 가운데 편편이 남아있는 사고들이 품고 있는 감정이 바로 그 ‘현자의 돌’의 술식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었다. 무의식이 기억하는 열락. 가장 거대한 것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측정 불가능의 관념. 그래서 한낮 인간의 관념 주제에, 몸은 이미 빼앗긴 주제에, 이토록이나 카미를 괴롭힐 수가 있다.

‘이런 개 같은 새끼, 결코, 결코 이 몸에서 나가지 않는다. 반드시, 이 따위 관념의 설사를 극복하고, 이 몸을 내 그릇으로 사용해 주지!’

푸른 이빨은 눈동자를 푸르게 태우며 의지를 갈았다. 카미인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육체 따위는 있을 리가 없다. 있다면, 없게 만들어야 한다. 이길 것이다. 승리할 것이다. 그것이 푸른 이빨의 의지다. 그는 그릇의 질도 질이지만,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이 몸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평일의 패스트 푸드 점은 꽤 한산하다. 그래도 오가는 이들의 소란은 활달하고, 점내를 장식하는 음악은 상쾌하다. 그런 점내의 좌석 하나에 늑대, 여우, 고릴라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다소 우울한 얼굴로 각자의 앞에 놓여있는 세트 메뉴를 깨작깨작 거리고 있었다. 특히 고릴라가 깨작거림의 정도가 컸다. 덩치에 안 어울리는 짓을 하니 더 튀어 보이는 것이리라.

“...후.”

고릴라가 깨작거리는 햄버거를 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여우를 바라봤다.

“잘 찍었냐?”

“응.”

그러면서 여우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 액정에는 소년이 소녀의 이마에 키스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액정은 작았지만 화질은 선명했다. 소녀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이마에다 작게 키스하는 소년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게도 고결해 보였다. 흰 옷의 소녀가 작은 액정에서도 수줍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희미한 선 안에서도 선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아, 쓰려라.”

우울한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릴라가 중얼거렸다. 늑대가 음료수를 들이키며 말을 받았다.

“음, 나는 바캉스 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어. 바캉스 때 어떤 사이냐고 물었을 때 이 아가씨가 뭐라고 답했었는데! 그러니 뻔 한 거지. 뭐 그래도 보란 듯이 이런 짓을 하니 좀 얄밉기는 하네.”

“그러게 말야. 뭐라고 할까, 좀 뒤처지는 느낌이랄까?”

“응. 딱 그렇지? 배 아파할 일도 아니고, 급해할 일도 아닌데 눈앞에서 먼저 저질러 성사시키는 놈이 하나 있으니 괜히 마음이 급해지네. 아아. 우울해라.”

늑대가 투덜거렸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절실한 것은 아니었거늘 학교에서 같이 놀고 지내던 은결이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만들어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자니 초조한 마음이 든다. 뒤처지고 있다는, 열등감 비슷한 감각이다. 이어 놓았던 햄버거를 다시 물며 고릴라가 중얼거렸다.

“음, 나도 얼른 미래하고 잘 되어 봐야 할 텐데.”

“......”

늑대와 여우는 코멘트 하지 않았다. 미래는 K2내지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피는 꽃이라는 평판인데, 비교하자면 ‘평범한 일반인 모씨’급에 불과한 고릴라가 그곳에 등정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 하여간 이 원한은 개학하면 실컷 뜯어내기로 하고, 지금은 먹던 거나 마저 먹자.”

늑대가 말했다. 고릴라와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문득 여우는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친구가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과연 여자 친구가 가지고 싶은 걸까? 하고. 정말 여자 친구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라면, 누군가 여자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더 가지고 싶어지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누군가 먹고 있다고 해서 그득 찬 배가 꺼지지 않고, 누군가 끔찍하게 여긴다고 굶주린 배에 음식이 안 들어가지 않듯,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누군가 어쨌던 것 따위와는 무관하게 원해야 하는 것일 아닐까? 하고.

“......”

여우는 미간을 좁혔다.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에 은결에게 많이 침식당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논술 공부를 꾸준히 한 성과인 걸까? 여우는 정답이 어느 쪽이든 좀 찝찝하기도 했고, 조금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역시 글을 한 번 날렸다가 다시 쓰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군요. 처음께 글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ㅠㅠ 그러니 각종 성원 받습니다.(...)

*한 며칠 게임에 퐁당 빠져 살았더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모르겠군요. 그리고 영전 서드 끝내면 이번에 나온 슈로대 OG를 해야 할 텐데요. 아, 쌓아놓은 책도 읽어야 되는데.ㅠ_ㅠ시간도 근성도 돈도 없는 서러운 나날이여. 음.

*광고~ 서브라임 3권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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