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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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은 사념체를 때린다. 에너지는 집중되어 허공에 방벽을 형성해 그의 몸을 받친다. 에너지는 주먹에 모여 휘황한 빛을 발한다. 에너지로 지지되고, 에너지로 작렬하는 충격은 검은 사념체의 무정형한 몸을 관통한다. 바스러지고, 찢어지고, 오그라들고, 불타오르고, 경련한다. 푸른 이빨은 파괴의 쾌감에 웃는다. 그때 무언가가 뇌리를 침투한다.
희끄무레한 속삭임 같은 것들이다. 수천, 수만의 시선(視線) 같은 것들이다. 상사의 꾸짖는 시선이다. 반 아이들의 비웃는 시선이다. 모멸하는 부모의 시선이다. 경멸하는 아내의 시선이다. 자부하는 오만의 시선이다. 시선과 시선과 시선과 시선이다. 마음의 한 편에서 어둠이 차오르며 짙은 점액질의 호수 같은 것을 만든다. 사고의 덩어리들이 거기 걸려 질척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한다. 속삭임이, 속삭임이-
“후.”
푸른 이빨은 은결처럼 숨쉬며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린다. ‘쓸데없는!’ 모여든 사념은 한 순간에 박살난다. 강대한 자아의 관념은 외부의 질척거림을 허용하지 않는 거인의 발걸음이다.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허공에서 도약한다. 그의 몸은 높게 떠올랐다가 중력을 받아 떨어진다. 그는 허공에 역장을 형성시켜 발로 박찬다. 떨어지는 푸른 이빨의 몸은 이미 마하의 영역을 넘었다. 대기의 비명은 에너지의 작열이 되어 주변을 찢어발긴다. 푸른 이빨은 전신을 휘감는 열기를 유쾌하게 느끼면서 사념체의 위에서 몸의 방향을 돌린다. 속도가 약간 늦추어 지면서 그의 양 발이 사념체를 노린다. 그리고 양 손으로 역장을 만들어 손바닥으로 걷어친다. 그의 떨어지는 속도에 다시 가속이 붙는다.
-퍽!
소리가 따라올 수 없는 침묵의 다음 순간에 짤막한 관통음이 난다. 이어지는 쿠콰콰콰콰콰쾅! 소리는 지금의 파괴를 찬양하는 때늦은 찬가처럼 매혹적이다. 사념체는 괴롭게 일렁이다가 흩어지듯 박살나고 만다. 푸른 이빨은 좋은 구경을 방해한 값으로 깨끗한 징벌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상쾌했다. 그는 느긋하게 역장을 밟으며 근처 건물 옥상으로 내려온다. 쿠로사카가 그의 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고했어.)”
“(너도.)”
“(그럼 돌아가자.)”
“(그래.)”
그리고 쿠로사카와 푸른 이빨은 옥상에서 몸을 날린다. 그러나 몸을 날린 것은 쿠로사카 뿐이었다. 푸른 이빨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언가가 그를 엄습한다. 압도적인 무언가가, 그를 엄습한다. 세계에 대한 다른 관념. 거절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신의 관념을 비웃고 침범한다. 어떤 강대함도, 어떤 정보도 이 절대성 앞에서는 무력하다.
“으---”
그것은 방금 접한 치졸한 인간의 모든 사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시선과 시선과 시선들. 고통 받는 정신들. 손은 뭉그러지고, 시선만이 나를 바라본다. 나 역시 그들을 바라본다. 바라봄과 바라보임 사이에 흔들리는 것은 무엇일까? 고통만이 잉잉거리며 실존한다. 명료한 것은 그래서 고통일 뿐이다. ‘이런 게 아닐텐데.’ 말 없는 부정이 가장 거대한 부정이 되어 세계에 대한 모든 종류의 관념을 조각조각 해체해 나간다.
“크---”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의심하지 않았던 현상들에 물음표가 붙는다. 저 현상은 어떤 현상인가? 저 현상에 대한 주체의 해석은 올바른 것인가. 치우고 거절하라. ‘이런 게 아니다.’ 아니니까 모두 거절되어야 한다. 세계의 모든 것을 괄호에 넣기. 언어가 매개되지 않는 세계의 절절한 모습. 달은 달이 아니고 밤은 밤이 아니고 빌딩은 빌딩이 아니고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서 그저 인식되는 세계. 해석을 거절하는 모습. 경계는 흐려지고, 경계는 사라진다. 언어란 경계 짓기. 언어란 구획하기. 구획이 사라진 세계에서 경계는 짙고 옅은 스펙트럼의 발현에 불과하다. 적정선은 잡아지지 않는다. 모든 전체는 개체. 모든 개체는 전체. 확장과 축소를 반복한다. 그리고 다시 압도적인 것이 떠올라 마음을 압박한다. 가장 큰 환희와 닮았고, 가장 거대한 파괴와 닮았고, 가장 큰 소란과 닮았고, 고막을 찢어내는 침묵----
“(은결! 왜 그래?)”
당혹한 쿠로사카의 말이 들려온다. 그러나 푸른이빨은 그 말을 해석할 수 없다. ‘은결’은 무엇이고, ‘왜’는 무엇이며 ‘그래’는 무엇인가? 그 이전에 ‘ㅇㅡㄴ’는 무엇인가? 무엇이 ‘ㅇㅡㄴ’를 ‘은’이라고 만들도록 하였을까? ‘ㅇ’은, ‘ㅡ’은, ‘ㄴ’은, 어디를 향하는 기호인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다. 그래.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다. 시야가 어두워진다.
속삭임.
...현실을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의미이다. 진실은 가소롭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생각한다. 그 아이들은 어째서 나를 노예라고 해석했을까? 어째서 나를 모멸해도 좋은 대상이라고 여기게 되었을까? 그들은 왜 나를 때리면서 웃을 수 있었을까? 나를 향해 오줌을 누면서 웃을 수 있었을까? 나의 어떤 기호가 그들에게 나를 그렇게 해석하도록 했을까? 직접적인 물리력이 되돌아갔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가련하고 나약하고 추잡한 그 생명들은, 어떤 기호를 어떻게 해석해 나를 ‘노예’로 해석했던 것일까?
...새끼를 낳은 개는 사람의 손때가 묻은 새끼를 물어 죽이기도 한다. 왜 그럴까? 동물학자 웩스쿨은 1934년 크리사트와 함께 쓴 ‘동물과 인간 세계로의 산책: 숨겨진 세계의 그림책’을 출판한다. 그는 거기서 진드기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진드기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하는 지를 말한다. 진드기는 눈이 없이 때문에 전신의 피부에 있는 광감각을 사용해 빛으로 인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감지해 행동한다. 이런 해석의 틀에서 진드기에게 유의미한 것은 포유동물의 냄새와 체온과 피부의 접촉자극이다. 다른 모든 종류의 외부 자극은 그들에게 무의미하고 그렇기에 감지되지 않는다. 그것이 진드기의 왜소한 세계이며, 그러나 가장 효율적인 세계이다. 다른 해석은 쓸모가 없기에 무의미하고 그래서 버려졌다. 그는 이것을 ‘주변세계’라는 의미에서 ‘움벨트umwelt’라고 불렀다.
“집어....!”
...개개의 동물은 각자의 해석의 틀을 가지고 그러한 틀로 세계를 구성한다. 그것을 넘어선 정보로 세계는 충만해 있지만 인식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객관세계라는 의미의 ‘벨트welt’는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있더라도 주체에게는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진실’은 무의미하다. 웩스쿨은 중요한 것은 움벨트이며, 움벨트의 입장에서 동물을 바라볼 때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새끼를 낳은 개가 사람 때가 묻은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것은 그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냄새이며, 사람이 눈을 믿듯 그들은 냄새를 신뢰하기에,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새끼에게 남아있는 사람의 냄새에 과민반응을 보여 물어죽이고 마는 것이다. 개와 인간의 해석의 틀이 다르기에, 개의 기호와 인간의 기호는 이렇듯 다르다.
"...치워..."
...스피노자의 말처럼 실체의 속성은 무한일 수도 있지만, 다시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사유와 연장’과 같이 제한된 방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해석은 ‘제한’되어 있다. 아니. 제한되어 있기에 ‘해석’이다. 이런 제한은 왜 이루어 졌을까? 비용의 문제 때문이다. 효율의 문제 때문이다.
...진화는...
“집어치워!”
신력을 담은 시메나와しめ縄를 끊어내는 것 처럼 푸른 이빨은 외친다. 거대한 고함에 세계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변을 보호하는 결계가 잉잉거리는 것만 같다. 이어서 그는 헉헉거리며 바닥에 손을 대고 무릎을 끓는다. 전신이 땀투성이다. 심장은 터질듯이 박동치고, 속은 지금 당장이라도 놀라올 듯이 메스껍다. 견딜 수 없이 불쾌하고, 당장이라도 울 것 처럼 슬프다. 압도적인 감정의 격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원하지 않는 곳을 향해 모든 사유를 돌려버린다. 사유하고 싶지 않은 것을 사유하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게 된다. 푸른 이빨은 신적인 정신력으로 그런 격류를 겨우 헤쳐나왔다. 고개를 든다. 땀이 머리카락을 타고, 이마를 타고, 볼을 타고, 콧등을 타고, 입술 언저리를 따라, 뚜욱뚜욱, 떨어진다. 세계의 모습이 서서히 회복된다. 쿠로사카의 걱정스런 얼굴이 눈앞에 있다.
“(괜찮아?)”
“(괘, 괜찮아.)”
사실은 괜찮지 않다. 누군가의 가슴을 빌려 눈물을 쏟아내고 싶은 기분이다. 좌절과 슬픔과 분노가 한 곳에 혼용되어 해석할 수 없는 혼탁한 감정의 여울을 만든다. 그 감정을 쏟아버릴 하수구는 보이지 않았다. 푸른 이빨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정신을 침범한 것은 대체 무엇인지. 그러나 푸른 이빨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따위 관념의 침범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신의 후들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집까지 배웅할까?)”
쿠로사카는 걱정스런 얼굴로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푸른 이빨은 고개를 젓는다. 이따위 것을 버티지 못해 인간 따위에게 손을 내민다니, 카미인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굴욕이다. 은결이라는 꼬맹이는 이 영문 모를 관념의 습격을 줄곧 버텨오고 있었다.
“(그러면... 조심해서 가. 그리고 내일은 쉬도록 해.)”
“(그렇게 할게.)”
간소한 대화가 교환되고, 쿠로사카는 걱정스런 안색을 떨쳐내지 못한 채로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가는 도중에 그녀는 다시 은결(푸른 이빨)을 돌아본다. 은결은 언제나처럼 위태롭게 서 있다. 단지 서 있을 뿐인데 위태로울 리 없건만, 그는 위태로워 보인다. 언제나 그러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강인하게 일어서면서, 그는 가장 평화로울 때 가장 위태롭게 보였다. 쿠로사카는 은결의 그 위태로움을 옆에서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음.’
어쩐 일인지 내일 그가 만나기로 했다는 세연이라는 소녀가 떠오른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 같다.
*각종성원 대 환영. 서브라임도.
*이 글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합니다만,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이토록 한심하고 처참한 방식으로 확실하게 찾아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ㅠ_ㅠ)
*NTR이 뭔가 했더니 에로게 용어였군요.(...) 저도 전국란스를 마지막으로 에로게 안 한지 꽤 됐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국란스도 NTR... 아놔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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