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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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 푸른 이빨은 집을 나서 도천시의 가장 높은 빌딩의 옥상에 내렸다. 꼬맹이가 중요한 술식은 모두 봉쇄했지만 기초 술식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역장은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역장이라는 기술은 무척 독특해서 푸른 이빨도 익혀두고 싶었다. 물론 자유롭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기본 기호 술식에 연계되는, 봉쇄된 핵심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는 봉쇄된 정보 가운데 몸이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 해결되었다. 결국 은결의 몸에서 빠져나갈 경우 푸른 이빨은 역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옥상에는 쿠로사카라는 무척이나 재수 없는 계집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키리야미가 걸려 있다. 여기서도 서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저 검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확 나빠진다. 마음 같아서는 계집은 두 조각으로 찢어버리고, 검은 스무 동강 내어 똥통에 내다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푸른 이빨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쿠로사카를 불렀다.
“(쿠로사카.)”
“(응. 오늘도, 알지?)”
쿠로사카는 은결을 보자마자 매서운 얼굴로 말했다. 푸른 이빨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이 꼬맹이는 세계의 ‘일그러짐’ 같은 것을 체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꼬맹이의 행동은 불안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여자는 꼬맹이의 몸을 걱정해 위태로울 것 같으면 빠지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일그러짐’이라니, 한심한 노릇이라고 푸른 이빨은 생각했다. 정신이 썩어문드러진 꼬맹이이긴 해도 뼈대는 나름대로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겨우 관념의 일그러짐 정도에 현실을 잃어버리다니. 생각했던 것 보다 허약한 자아였다.
‘그나저나-’
푸른 이빨은 쿠로사카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무감동하게 바라봤다. 여름의 밤 바람이 쿠로사카의 옷깃을 휘날린다. 그녀의 검은 머리칼은 바람을 부풀어 안으며 어둠 가운데 어둠을 겹친다. 겹쳐진 어둠은 생동감으로 양자의 구별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푸른 이빨은 침을 삼켰다. 인간이 아니기에 푸른 이빨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특별한 성적 욕망을 품지 않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모든 아름다운 조형물이 품고 있는 균형과 비례미가 쿠로사카의 모습에는 있다고 느껴진다. 그러하기에, 푸른 이빨은 한층 이 계집을 파괴하고 괴롭히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뭐 좋은 수가 없을까?’
푸른 이빨이 끙끙대며 생각하고 있던 차에, 쿠로사카가 그의 시선을 눈치 챘다. 그녀는 푸른 이빨을 바라보며 약간 눈썹을 꺾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실없긴.)”
그리고 쿠로사카는 시선을 원래대로 돌렸다. 푸른 이빨도 시선을 돌렸다. 먼 곳의 달이 보인다. 쿠로사카는 그 달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달’이라는 기호는 푸른 이빨에게는 애잔한 감흥을 전해온다. 그것은 푸른 이빨의 감흥은 아니었다. 그는 달에 대해 별반 의미를 부혀하지 않는다. 이것은 꼬맹이의-
그때 어떤 장면이 푸른 이빨을 덮쳤다. 그것은 밤의 장면이다. 그것은 단절된 장면이다. 그것은 절망의 장면이다. 그것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장면이다. 그때, 그는 쿠로사카와 함께 있었다. 마음은 슬펐고, 그래도 슬픔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무지는 오해를 낳았고, 오해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해변에서 무의미를 곱씹으며 그 폭력을 사과했다.
‘우-’
시계가 어지럽다. 흔들리고 일그러진다. 그는 주변을 바라본다. 손이 손이라는 개념과 희미하게 떨어져 나가고, 달이 달이라는 개념과 희미하게 떨어져 나간다. 밤은 밤이라는 개념과 떨어져 나가고, 빌딩은 빌딩이란 개념과 떨어져 나가려 한다. 사태는 단지 사태로서 인식된다. 거기에 개념은 끼어들기 어려워진다. 모든 사물이 개념과 분리되는 것 같은 그런 철저한 불일치의 감각- 을 푸른 이빨은 한 번에 청산한다.
“흥.”
뭔진 몰라도 시시했다. 신을 구성하는 관념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만 이 감각이 정신을 엄습하기 전에 압도적인 무언가가 잠깐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의 정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푸른 이빨은 은결을 흡수했지만 그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은결’로서 존재할 수 있을 정도 정보를 최근 것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완전히 ‘은결’의 정보를 흡수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특히 이 꼬맹이는 뭐가 뭔지 모를 요상하고 어려운 정보를 무진장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푸른 이빨의 얼굴로 야릇한 미소가 떠오른다. 방금 뇌리를 치고 들어오는 장면들 가운데 재밌는 정보가 있었다. 이 정보를 통한 자신의 예상이 옳다고 하면 꽤 재밌는 일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쿠로사카.)”
“(왜?)”
“(음, 저기, 내가 내일 세연양과 만나기로 했거든.)”
“(...그, 런데?)”
쿠로사카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푸른 이빨은 속으로 킬킬댔다. 그는 평정을 가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음, 사실 만나기로 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같은 여자고 하니 네 충고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일본인이야. 이곳에 대해 몰라. 그러니 내게 그런 건 묻지 마!)”
쿠로사카는 버럭버럭 화내며 말을 끊었다. 푸른 이빨은 찔끔, 하며 어깨를 좁혔다. 그녀의 선명한 분노에 푸른 이빨은 압도되는 듯한 외양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무척 즐거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낄낄 거리며 웃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좆병신 꼬맹이는 웬 요상한 생각에 집중한다고 이런 뻔해 보이는 문제를 완전히 무시, 내지는 모르고 지나간 모양이지만, 푸른 이빨은 그런 ‘좆병신’ 꼬맹이와 틀렸다. 그는 간단히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큭큭, 이런 생각지도 못한 횡재도 굴러들어오는군. 역시 이 꼬맹이의 몸은 최고야. 잘 이용하면 저 계집을 가지고 노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
푸른 이빨이 평정을 가장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장밋빛 미래에 대한 망상에 잠겨 있을 때, 쿠로사카는 차갑고 매서운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뭘 하든 자유야. 하지만 약속한 기한이 그렇지 많지 않다는 것은 염두해 두도록 해.)”
약속? 푸른 이빨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뒤져봐도 꼬맹이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정보였다. 그러나 저 계집의 태도를 볼 때 모른다고 하면 기이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마도 꼬맹이가 자아가 잠식당하기 직전 여러 정보를 봉쇄할 때 같이 봉쇄당한 정보중 하나이리라. 여기서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럼 됐어. 하지만 왜 갑자기 그렇게 마음을 바꾼 거지? 너는... 그녀를 이전에 한 번 거절했었잖아. 그것도 겨우 얼마 전에.)”
쿠로사카는 조심스레 물었다. 푸른 이빨은 속으로 키득대며 웃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모르는채 하며, 능청스럽게 은결의 가면을 쓰고 말했다.
“(그야 세연은 아름다운 아가씨니까.)”
“(음.)”
쿠로사카의 말문이 불쾌하게 막혔다. 물론 세연은 여자인 그녀가 보기에도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이유라면 이전에 은결이 그녀를 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을 알기에 쿠로사카는 지금 은결의 대답이 농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푸른 이빨은 가볍게 웃으며 제대로 답했다.
“(농담이야. 그저, 내가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을 뿐이야. 나는 그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해. 그런데 나는 그녀를 재단해 판단했고, 그 판단 위에서 그녀를 거절했지. 그것은... 옳지 않아. 그러니까 다시 시작해 보려는 것 뿐이야.)”
그것은, 사실이다. 좆병신 꼬맹이의 심층 사고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세연이 오늘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 그가 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푸른 이빨은 완벽하게 은결다운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쿠로사카는 약간 쓰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푸른 이빨은 아주아주 즐겁게 뒷말을 이었다.
“(그런 면에서, 쿠로사카 네게는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 나는 네게도 같은 종류의 폭력을 행사했고, 그날 밤에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지.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같은 과오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건...)”
어둠 가운데서 쿠로사카의 얼굴이 붉어진다. 푸른 이빨의 시선은 어둠 속에서도 그런 변화를 확실하게 감지한다. 그녀는 뒷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은결은 어딘기 약간 이상한 것 같았지만,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더구나 요즘 은결이 이상한 것은 일상적인 것이니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세연이라는 여자와... 쿠로사카는 고개를 털어 마음을 씻어낸다. 상관없는 일이다. 그녀의 태도를 바라보는 푸른 이빨의 마음은 유쾌함에 젖어나갔다.
“아.”
쿠로사카는 퍼뜩 고개를 든다. 푸른 이빨도 그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쪽으로부터 사념체의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자.)”
쿠로사카는 서둘러 말하고는 바닥을 박찼다. 그녀의 몸은 하늘을 향하는 번개처럼 빠르고 치솟는다. 하지만 그 서두르는 모양은 쫒는다기 보다 도리어 쫒기는 것처럼 보였다. 푸른 이빨도 역장을 형성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부드럽게 역장을 밟으며 그는 좋은 순간에 등장한 사념체를 어떻게 씹어죽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재수 없는 계집이 안 어울리게 창피해하는 꼴이 얼마나 웃겼는데, 하필이면 이 순간에 나타나서 이 좋은 구경거리를 방해한단 말인가.
판결은 당연히 사형이다. 물론 좋은 구경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해도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사형이다. 다른 길은 없다.
*팔자 좋은 푸른 이빨.
*서브라임은 3권까지 출간한 이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조기 종결을 해야 합니다. 고로 거기 맞춰서 따로 플롯을 준비해야 하겠지요. 사실 조기 종결해야 한다고 하면 감당이 안 되는데, 조기 종결을 피하도록 홍보 부탁.(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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