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64화 (164/300)

#   165-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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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보자...’

은결을 몸을 빼앗은 푸른 이빨은 왼손으로 오른팔 팔꿈치를 받치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치면서 생각에 열중해 있었다. 그의 발밑에 정신을 잃은 세연이 쓰러져 있을 뿐, 방은 모습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마치 은결과 푸른 이빨 사이에 있었던 투쟁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모습이다. 결계로 방안의 소란이 외부로 전달되는 것 역시 막았으니 진상을 아는 이는 푸른 이빨 뿐이고, 그래서 없었던 것과 다름없기도 하다. 현실은 인식의 한계에서 구성될 뿐이니까.

‘역시 이대로 떠나는-’

푸른 이빨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는 이후의 행로에 대해서다. 좆병신 꼬맹이의 몸을 손에 넣고 막대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이 땅에 있을 필연적인 이유는 없는 셈이다. 그는 이대로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문득 그는 한동안 쓰러진 세연의 모습을 바라봤다.

“흥.”

푸른 이빨은 무의미한 시선을 털고 하던 생각에 집중했다. 그가 판단을 정리해 결론으로 이으려는 순간 정보가 그를 급습했고, 푸른 이빨은 벌레 씹은 얼굴을 했다.

“이 무슨 개 같은-?!”

신음 같은 말이 푸른 이빨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다. 이 몸의 전주인, 그러니까 은결이 알고 있는 정보들 가운데는 ‘아담의 언어’에 대한 것이 있었고, 그 힘의 막대(莫大)를 넘어선 ‘절대(絶大)’함에 대한 것이 있었고, 그런 힘을 사용하는 놈들이 이 꼬맹이를 어쩌면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있었다.

“아담의, 언어란 말이지.”

푸른 이빨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푸른 이빨을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힘과 같은 종류의 힘이다. 확실히 그 힘이라면 좆병신 꼬맹이의 몸을 손에 넣은 지금의 자신이라도 이길 수 없다, 고 푸른 이빨은 생각했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힘이다. 다행이라면 이 꼬마도 그쪽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 힘을 통해 설혹 그놈들이 이 꼬맹이를 노리고 쳐들어와도 대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푸른 이빨은 그렇게 생각하고 은결의 정보를 뒤졌다.

“칫.”

이내 푸른 이빨은 혀 차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꼬맹이는 순순하지 않았다. 그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술식의 대부분을 봉쇄했다. 기호술법에 관련된 기본적인 부분들까지는 어쩌지 못했지만, 고도의 술법으로 갈수록 그 봉쇄는 튼튼했다. 아담의 언어와 같은 뿌리를 가지는 그 힘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손도 댈 수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그들이 정말 이 꼬맹이를 목표로 한다면 지금의 푸른 이빨은 맨몸이나 진배 다름없다. 푸른 이빨은 화를 내며 발을 굴렀다.

“니기미 개씹좆 같은! 이런 좋은 몸을 얻고도 힘이 없어서 숨어 지내야 한다고! 하, 힘이 없어서?!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증발시켜 버릴 힘을 가지고 힘이 없다고?!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딨어!”

유감이지만 여기에 있다. 은결도 도무지 예상하지 못한 사태로 푸른 이빨에게 몸을 빼앗겼다. 푸른 이빨 역시 예상치 못한 장애로 기껏 얻은 몸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을 뿐이다. 본디 삶은 그러하다. 한동안 펄펄뛰며 화내던 푸른 이빨이 화를 진정시키고 은결의 방안을 돌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역시 한 동안 이 꼬맹이 행세를 하며 수단을 강구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 꼬맹이의 아비는 정말 굉장하니, 틀림없이 대처 수단을 마련해 놓았을 테고, 여차하면 이 껍데기를 가지고 비루한 인간 놈들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

푸른 이빨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이 꼬맹이인 ‘체’ 하는 것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꼬맹이의 아비라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들키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사실 그 외에 다른 선택지도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은결을 노리고 있는 이들에게 협력하는 것인데, 푸른 이빨로서는 애당초 선택 외였다.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주제에 그 놈들에게 협력한다는 것은 ‘항복’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니까. 푸른 이빨은 잠시 동안 바닥에 쓰러진 세연을 바라봤다. 이어 그는 세연을 안아 올리고 침대 위에 누였다. 이것이 은결다운 행동이다.

덜컥, 문이 열렸다.

“어?!”

시점을 뒤로 당긴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때문에 가녀린 마음에 상처를 입은 미래는 방안에 틀어박혀 베개머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맑고 큰 두 눈동자에 머금은 그녀의 모습은 여성과 전투성을 연결 짓기 거부하는 성 본질론자들의 어리석음은 비웃는 듯 했다.

‘바캉스 때부터 수상했어!’

그래. 미래는 세연이 불청객 주제에 갑자기 끼어들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아니, 뭐 미래가 세연을 마음에 들어 한 적이 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별장 좀 빌려줬다고 유세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불청객이 바캉스 가운데 끼어든 것이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예의범절이 부족한 여자 같았다.

‘예절을 모르니 그렇게 뻔뻔하지!’

그래. 또 미래가 보기에 세연은 뻔뻔했다. 그녀가 얼마나 뻔뻔했냐 하면, 바캉스 때 세연은 오빠에게 끊임없이 접근했다.(했었던 걸로 보였다.) 미래가 생각하기에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괜히 외간 남자에게 접근하고 하면 못 쓰는 법이다. 물론 접근대상인 외간남자가 오빠가 아니었다면 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여자는 조신해야 하는데, 세연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조신하지 못하게 오빠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고, 두 사람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미래는 그 모습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오빠도 그래! 사람이 좋아선 거절도 못 하고!’

미래의 화살이 이번에는 은결을 향한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은결이 대화를 걸어오는 대로 웃으며 다 받아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집에까지 찾아오지 않는가. 오빠는 사람이 좋다보니 꾹꾹 누르고 들어오는데 약한 것 같았다. 따지고 볼 때 은결이 세연에게 매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물론 미래의 논리 구조 가운데서 빠져 있었다. 그런건 무의미한 정보, 단순한 이레귤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칫!”

툴툴거리며 속으로 신경질을 내던 미래는 안고 있던 베개를 침대 바닥에 내던지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고 게임기의 전원도 올렸다. 디지털 화면에 잘 만들어진 영상이 화려한 음악과 더불어 떠오른다. 미래는 스타트를 눌러 게임을 시작했다. 화면에 비행기가 등장했고, 적들이 쏟아지듯 나타났다. 미래는 버튼을 눌러 학살을 개시했다. 그렇게 소녀는 양의적으로 작은 가슴 속에 분노의 불을 품고 그것을 활활 태웠다. 물론 여전히 첫 스테이지를 컨티뉴 없이 넘기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렀다.

“아- 재미없다.”

결국 컨티뉴도 다 잡아먹고 게임오버 당한 미래는 지루한 얼굴로 패드에서 손을 놓았다. 시계를 문득 바라봤다. 그래도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미래의 얼굴이 굳었다. 한 시간이나 조용하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연이 떠나갔다면 틀림없이 미래도 알았을 것이다. 특별히 집중해서 게임을 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아직도 그 두 사람이 방안에 콕 박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좀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미래는 방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은결의 방문 앞에 다가가 귀를 대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미래는 귀를 떼고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철저하게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는 것은 이상하다. 미래는 다시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역시 이상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기라도 한 것일까? 미래는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쉽사리 덜컥 열렸다. 역시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미래는 보았다. 은결이 세연을 안고 있는 것을. 그리고 침대에 누이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덜미가 피에 젖은 것을. 또 윗옷도 일부 피에 젖어 있는 것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해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단지 비현실적인 장면이라 미래는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충격적이었다.

“어?!”

“소란에 말려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대로의 그늘가로 걸으면서 푸른 이빨은 세연에게 사과했다. 그의 태도는 완벽한 은결의 그것이다. 푸른 이빨은 특정한 자아의 형태에 구속됨이 없기 때문에 정보만 충족된다면 원하는 형태의 인격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은결의 몸을 탈취한 만큼 그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얻었기 때문에 푸른 이빨이 구현하는 은결은 모습은 은결 본인과 거의 동일했다. 그의 옆자리를 고개를 숙인 채 걷던 세연이 그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했다.

“아, 아니요. 저야 말로 갑자기 잠든 탓에...”

세연은 목덜미까지 붉었다. 방금 전 소란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탓이리라. 미래는 푸른 이빨이 세연을 침대에 누이고 있는 장면을 보고 패닉에 빠졌다. 덕분에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두 사람 모두 상당히 진땀을 빼야 했다. 피는 은결이 코피를 흘린 것으로, 침대에 누인 것은 세연이 잠들었기 때문이라 설명해 어떻게 정리를 하긴 했지만, 미래는 여전히 뭔가 의혹이 남아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여간 지나간 소란은 지나간 소란이다. 지금 세연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내일, 시간 있으신지 물어 봤던 것은...?”

“아, 그건-”

푸른 이빨은 빠르게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일단 그는 세연이 이용가치가 있는 계집애라고 생각했다. 꼬맹이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만큼 뛰어난 몸을 가진 인간은 정말 드물다. 잘 대해줘서 근처에 놓아두는 것도 좋으리라. 인간들의 개념으로 ‘보험’이다. 이것이 은결다운 판단인가 하면 그건 애매했다. 이 부분에 대한 꼬맹이의 사고는 난해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은결인 척 하는 게 중요하지 은결이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푸른 이빨은 다시 세연을 바라봤다. 긴장되고 수줍은 얼굴로 그녀는 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있습니다.”

푸른 이빨은 웃으며 답했다. 그것은 완연한 은결의 미소다. 세연은 꽃이 피듯 웃었다. 담이 그려내는 그림자 안에서, 세연의 얼굴은 여름의 태양이 무색하게 찬란했다. 그 밝은 웃음은, 하지만 전적으로 ‘은결’을 향하는 웃음이다.

*마셜님의 감상문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ㄷㄷㄷ한 글입니다. 캄사~ 이 글은 그런 걸 받는 데서 힘을 얻어 계속 적히고 있는 글이죠. 서브라임은 그런 걸 못 얻게 되어서 열심히 써도 좀 재미가 없습니다. 흑.

*이글을 개인지를 낸다면 폴라리스 랩소디처럼 한 권짜리로 묶어서 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읽기도 힘들 테고, 분량도 그러기엔 많을 것 같습니다.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하여간 어느 쪽이든 서브라임이 잘 팔려서 여유가 좀 생겨야 가능한 것이니 홍보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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