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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63화 (163/300)

#   164-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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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의 가냘프지만 강인한 손은 강대한 힘으로 은결을 장악했다. 은결은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생각한다. 어디서 실수한 걸까? 하지만 은결은 아무 것도 실수한 적이 없다. 푸른 이빨이 다른 카미를 잡아먹어 막대한 힘을 얻어낸다는 따위의 사태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질까봐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판단이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졌다. 삶은 그렇다. 은결은 숨을 쉬지 않고도 하루 이상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푸른 이빨의 목표 역시 시시한 교살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손톱이 은결의 목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생살이 헤집어지는 감촉이 섬연하다. 곧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깊이로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짙게 흐른다. 푸른 이빨은 그윽하게 웃었다.

“됐다. 이제 네게는 아무런 기회도 없다.”

은결은 속으로 무슨 터무니없는- 이라고 말했다. 푸른 이빨은 싱그러운 웃음을 선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은결의 몸이, 은결의 기맥이 정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은결의 양 눈이 치켜떠졌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결코 토할 수 없는 것을 토하기 위해 부들부들 떨었다. 그간 잠들어 있던 푸른 이빨의 모든 힘이 유동하며 전략적으로 몰려들었고 은결의 중요한 모든 기맥을 장악해 막아버렸다.

“킥킥킥. 아아, 이 순간을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던지!”

푸른 이빨은 황홀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의 발화에는 자랑스러움이 풍성히 담겨있다. 자랑스럽게, 충만한 자랑스러움이 미소로 흘러넘쳐, 마침내 공간을 장악하는 아우라가 되어버린 듯이, 그렇게 우아하게, 그렇게 부드럽게, 그렇게 저열하게,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렇게 외부에서 네게 개입할 수 있게 된 이상, 아무 것도 너를 돕지 못해. 이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미친 짓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

“끄르륵...”

기맥이 완전히 장악 당했다. 기를 육체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운동시킬 수 없게 된 은결의 능력은, 이제 초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순식간에 뇌가 산소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고통스런 그 갈구는 의식을 잡아먹는 헐떡임으로 변해간다. 긴장하던 근육이 힘을 잃어간다. 다시, 세계의 일그러짐이 은결을 엄습한다. 위기가 심연과 합쳐지며 기묘한 아가리를 벌려 그의 의식을 잡아먹는다. 그는 희미하게 생각했다.

‘-나쁘지, 않을지도.’

그래. 나쁘지 않을 지도. 은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리는 것도, 어쩌면 괜찮을지 모른다. 소흘히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 했고, 지금도 최선을 다 했다. 그러고도 실패했을 뿐이다. 그냥, 그러니까 그냥, 세상은 소금이 되려는 것조차, 침묵하고자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열망은 그리운 정겨움이 되어 그의 꺼져가는 의식을 엄습한다. 은결의 양 눈으로 습막이 피어났고, 이내 무겁게 뭉쳐 물줄기가 되어 흐른다. 그것을 보고 조소하려던 푸른 이빨은, 그러나 웃지 못한다. 은결의 얼굴로 떠오른 만족스런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푸른 이빨에게 그 미소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디 푸른 이빨 뿐일까.

“...너...”

푸른 이빨이 말을 끝내기 전에 은결은 눈을 감았고, 끊어진 의식에 맞춰 고개를 떨구었다. 잠깐 은결을 바라보듯 서 있던 푸른 이빨은 다른 손으로 은결을 잡고 그의 목에 쑤셔 넣었던 손을 빼냈다. 손가락이 뽑히고 상처에서는 피가 뭉클뭉클 솟아났다. 자연치료 되려는 기색은 없었다. 푸른 이빨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힘이 기맥에 잘 고착되었다는 증거다. 다음. 그는 은결을 바닥에 눕혔다.

“뭐, 이 좆병신 꼬맹이 새끼가 미쳤다는 것 정도는 이전에도 알고 있었으니 상관없지.”

그리고 푸른 이빨은 아름답게 콧노래를 부르고 오른쪽 검지와 중지를 마찰시켰다. 파직-! 소리가 나더니 그녀의 양 손가락 사이로 새하얀 플라즈마가 피어났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초 이상 바라볼 수 없는 강렬한 빛이다. 푸른 이빨은 그것으로 은결의 양 손목을 아주 깊게, 거의 절단하는 듯한 감각으로 베었다. 피는 나지 않았다. 플라즈마의 열에 상처는 피를 흘릴 틈도 없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신경이 절단된 은결의 손이 독립된 생명인양 팔딱팔딱 경련했다. 무릎과 대퇴부도 마찬가지 작업을 거쳤다. 사실상 은결은 사지가 절단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푸른 이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준비는 끝났군.”

그리고 푸른 이빨은 양손을 모으며 유쾌하게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출신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어 푸른이빨의 그릇, 세연은 기절하듯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음 순간, 은결은 눈을 떴다. 하지만 눈뜬 은결의 열굴은 전과는 다르다. 그는 오만하고 위험하고, 고귀하고, 저열한, 한 가지로 특정하기 힘든 분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은결의 입술 끝이 위험하게 꺾었다.

“큭큭큭... 됐다. 됐어! 이제 이 좆병신의 자아를 완전히 잡아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 그릇은 내 것이 된다. 이 완벽한 그릇은 내 것이다!”

드러누운 상태로 푸른 이빨은 겔겔거리며 즐거워했다. 곧 푸른 이빨의 표정으로 움찔, 하는 긴장이 지나갔다. “왔구나, 좆병신!” 은결의 얼굴이 온화하지만 고통스럽게 변해간다. “으- 흐- 크...” 어렵게, 아주 어렵게, 은결의 자아가 푸른 이빨의 지배력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쥐어간다. “소용- 없어!”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얼굴은 순간순간 푸른 이빨의 표정으로 변하며 무의미를 즐겁게 역설한다. “허억!” 심장을 찔린 것 같은 숨결을 토해내며, 은결은 고통스럽게 자신을 되찾는다.

그리고 푸른 이빨의 자신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양손이, 양 발이 고통스럽다. 고통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상 절단되어 있었다. 기맥에 기는 흐르지 않았다. 상처는 낫지 않고, 손발은 절단 되었다. 의미하는 것은 간단하다. 은결은 어떠한 술법도 사용할 수 없다. 육체는 기와 세계를 잇는 매개체다. 어떤 강대한 관념의 힘도 육체라는 매체를 거치지 않고서는 세계 속에서 발현될 수 없다. 카미를 쫒아내기 위해 사용해 왔던 술식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은결의 표정은 평안하다. 카미는 바보가 아니다. 이 정도는 해 놓으리라 의식을 잃는 순간 예측하고 있었다.

‘힘을 회복시키고, 몸을 치료하고, 그리고 카미를 쫒아내야 한다는 말이군. 저 관념의 괴물에게 자아를 잠식당하지 않고서 말야.’

은결은 피식 웃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그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푸른 이빨의 즐거운 킬킬거림이 자아를 침식하며 그의 뇌리로 달려든다. 어때? 어때? 어때? 어때? 좋지? 멋지지? 즐겁지? 절망스럽지? 좌절스럽지? 네겐 아무런 기회도 없어. 너는 이대로 내게 먹힐 뿐이다. 빨고, 씹고, 핥고, 갈아가며, 네 영혼을 맛보아 주지. 복수라는 최상의 희열이 더 없는 감미가 되어 그 행위에 곁들여질 것이다. 알겠지? 킬킬킬. 은결은 텅빈 눈으로 천정을 바라봤다. 뇌리를 장악하는 시끄러운 수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하고 큰 소리로 이루어진다. 저항은 길 수 없다. 하지만 남겨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 아니다. 은결은 웃었다.

‘이런 씹-!’

푸른 이빨이 비명을 지른다. 은결이 입을 크게 벌렸다가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자살수단이다. “크- 카-” 하지만 실패했다. 다음 순간, 은결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닫혔던 입을 연다. 앞니가 혀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어렵사리 이빨과 혀를 분리시켰다. 혀에서 피가 몽실몽실 새어나온다. 혀가 고통에 부들부들 저절로 경련했다. 자칫했으면 다된 밥에 재 뿌릴 뻔 했다. 제 놈이 무슨 정조를 위협받는 아낙네라고 혀를 깨문단 말인가! 이 미친 꼬맹이 새끼는 최후까지 개지랄이다.

“휴.”

물론 혀를 깨물어도 다 죽는 것은 아니다. 과다출혈 혹은 질식사의 위험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질식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를 운행해야 하는데, 꼬맹이의 자아가 완전히 먹히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가 힘을 머금으면 자칫 반격의 기회를 줄 수가 있다. 과거 몇 번 체험했듯이 이 미친 꼬맹이의 자아는 다 먹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깨어나기도 하는 미친듯이 끈질긴 지속력을 지니고 있다.

“씨발, 적당히 놀고 이 거지발싸개 같은 좆병신 새끼부터 처리해야겠군. 아, 개지랄 같은 꼬맹이새끼.”

푸른 이빨은 투덜거렸고, 눈을 감았다. 전력을 다하는 호랑이 앞에서 토끼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없다. 전력을 다하는 관념의 괴물 앞에서 은결의 자아는 아무런 기회도 없다. 은결의 자아는 성난 파도 같은 카미의 자아 앞에서 확실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잠식당했다. 바다에 빠진 호수 같이, 무의미하게 은결을 이루던 정보들은 결속력을 잃고 흩어져간다. 시간이 흐른다.

“이제, 됐군.”

푸른이빨은 눈을 떴다. 이어 힘을 해방했다. 막대한 신의 힘이 전신을 휘돌았다. 절단되었던 것 같은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된다. 절단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처였는데, 희미한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푸른 이빨은 상처가 사라진 손목을 만족스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로 비릿하고 황홀한 미소가 떠오른다. 역시 이 꼬맹이의 몸은 최고였다. 믿을 수 없이. 마치 신을 위해 준비된, 아니 육화된 신 그 자체인 것 처럼 최고였다. 인간의 거죽을 썼을 뿐인 신의 껍데기였다. 역시 이런 그릇을 인간이 사용한다는 것은 심각한 자원낭비다.

“으차.”

푸른 이빨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희미하게 남은 은결의 기억을 정리하고, 장악한다. 그때-

더할 나위 없이 뜨거운 열망이 푸른 이빨의 마음을 때린다.

더할 나위 없이 서글픈 좌절감이 푸른 이빨의 마음을 때린다.

하고 싶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주어진 것은 텅 빈 손이나, 그것을 긍정하지 못한다. 주어진 것은 말할 수 없는 입이나, 침묵하지 못한다. ‘이것!’이라고 모두를 향해 말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말할 수 있는 ‘이것!’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모두를 향한 ‘이것!’을 포기한 저들을 용납할 수도 없다. 좌절스런 열망이,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열망과 좌절을 매개하는 사다리는 긍정할 수 없는 해석이다. 피할 수 없는 권력이다. 해소되지 않는 폭력이다. 그것은, 마침내 ‘죽음’이다. 아아, 어쩔 수 없다. 세상을 진정으로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의미이니까.

“이건...?”

이해하기 힘든 잡담의 나열에 동반되는 감정의 폭류. 푸른 이빨은 숨을 헐떡였다. 당혹스러웠다. 고통스러웠다. 그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손등으로 훔쳤다. 뜨거운 액체가 묻어난다. 어딘지 서글픈 눈길로 푸른 이빨은 묻어난 액체를 살핀다. 이 육체는(어쩌면 정신일까.) 모르는 사이에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은, 아마도 은결의 마지막 흔적이다.

*만년음양삼님의 추천에 감사의 마음을~

*서브라임 3권 원고에 허덕이면서도 이렇게 성실연재를 하는데,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 안 하면 별 수 없고. 큼.

*곧 영전6 서드가 발매됩니다. 전반기 여름은 심심하지 않겠군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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