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희망을 위한 찬가 - 아웃사이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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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을 수 없는 공간은 이질적인 어둠 가운데서 안온했다. 숨을 쉬면 호흡에 따라 빨려들거나 내받아 질 것처럼 짙은 어둠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빛과 어둠에 대한 상식을 거절하듯이, 그 공간은 어두워서 밝았다. 그는 그러한 어둠 가운데서 천천히 일어났다. 낡은 흔들의자가 삐꺽였다.
“(도프도예프스키의 소설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
그는 그림자를 향해 물었다. 그림자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읽어보도록 해라. 그것은 경이로운 이야기다. 까르마조프와 같은 소설을 탄생시킬 수 있기에, 인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질 만큼 경이롭다. 그래서 그 소설의 경이는 그러한 글을 탄생시킬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경이로 이어지지. 인간은 경이롭다. 정확히는, 이성을 가지고 사고함으로서 영지(靈知)에 닿을 수 있는 모든 존재는 경이롭다.)”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을 본 다음 그는 표정을 엄숙하게 굳혔다. 연민과 조롱이 뒤섞인 기묘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경이로운 존재들이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하고 있지? 그런 경이로운 가능성의 존재들이 진흙탕에 내던져진 채,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의 ‘노예’가 된 채, 그 ‘주인’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우기 바쁘지.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았다만, 그 이상 추악하고 저열한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너무도 아름다운 보석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들이 똥통에 뒹구는 꼴을 두 눈 뜨고 쳐다봐야 한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아들이 미쳐 개망나니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쁘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어릿광대들이지. 그들은 그들을 조종하는 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림자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그림자의 곁으로 다가온 다음 그림자의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림자는 상냥한 주인에게 기대는 애완동물처럼 친근한 동작으로 그의 마리에 몸을 기댔다. 느긋한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을 때 직관적으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경이의 순간은 이반이 알료사에게 이야기해 주는 단편 소설을 읽을 때이지. 거기서 예수는 재림하고, 기적을 행하고 다닌다. 대심문관이 나타나 예수를 잡아가지. 거기서 대심문관은 예수를 부정한다. 그는 사막에서 사탄의 제안을 거절한 예수를 비난하며 주장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당신은 모든 권능을 가질 수 있었고, 세상의 모든 비극을 그 권능으로 없앨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거절했다. 그래서 세상은 이토록 비참하다. 당신이 감히 어떻게 사랑을, 자류를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이상은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사치다. 이 비참한 세상은 당신의 책임이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렇게 울부짖음에도 그는 결국 예수를 보내주고 만다.)”
그는 말을 쉰다. 그림자는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들어 주인을 올려다본다. 그는 드물게도 아련함을 담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대심문관은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나서지 못했지. 대심문관이 예수를 죽였더라면, 그래서 거짓된 신을 부정했더라면 그는 우리와 같은 영지의 소유자라 불리울 자격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상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는 감히 마지막 금기를 범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발을 내딛은 자들은 영지와 함께 아웃사이더로서 세계에서 추방되어야만 했다. 세상은 언제나 마지막 한 발을 내딛을 줄 모르는 자들의 것이었지. 시시한 지금의 ‘인간적’인 것들에 속박된 채, 좀 더 먼 것을 바라볼 줄 모르는 자들... 세상을 부정할 용기를 지니지 못한 채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자들. 가령... ‘전설’처럼 말이다.)”
그림자는 분노와 공포에 몸을 세운다. 말의 마지막에 그가 꺼내놓은 단어 ‘전설’은 그가 힘을 잃은 지금도 영지의 그림자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거대한 공포로 군림하고 있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 그는 그림자를 안온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힘은 경이적이었다. 그의 재능도 경이적이었다. 그의 업적 또한 경이적이었다. 그가 정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몇 십 년 전 칠레에서 겨우 완성시킨 키메라의 성능테스트 때였다. 칠레의 술자들 몇몇이 키메라에게 당했고, 지원을 요청해서 왔던 것이 아직 젊었던 ‘전설’이었다. 한데 그는 하루 만에 그 키메라를 처리했지. 하루도 엄청난 과장이다. 그자는 단지 언령으로 그 키메라를 처리했으니까. 단 세 음절이었다. 키메라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사용했던 말은 한국어로 ‘사라져.’였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서도 우스웠던지 한동안 큭큭거렸다. 단 세 글자의 발음. 그것만으로 그 키메라를 없앴다는 것을 상기하니 다시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정도의 힘을 구사하는 것은, 그도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천년 이상의 영지를 끌어 모아 이제 겨우.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몸서리쳤다. 그 엄청난 힘에. 그 엄청난 힘이 실현된 수단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그의 제거는 우리의 숙원이 되었고, 반쪽이긴 하나 겨우 달성되었다. 그가 무사했더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승산도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같이 죽는 정도나 가능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말썽이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어 웃으며 눈을 빛냈다.
“(다만 그 아이는 무척 재미있다. 알료샤의 순결을 더럽히고자하는 이반의 심정을 절절히 알 수 있을 것 같군. 신이 없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세계의 신은 기만에 불과하다. 후후, 그렇지 않으냐?)”
그림자는 친근하게 그에게 몸을 기댔다. 어둠이 안온하게 그들을 감싼다. 세계의 법칙은 이 안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쿠로사카는 빌딩의 옥상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가녀리고 아름다운 몸은 유성 같은 아름다움을 남기며 한 번의 도약으로 빌딩의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적이 끊어진 쓸쓸한 옥상으로는 도천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여다보이고, 그 너머 서울의 화려한 불빛도 어렵지 않게 엿보도록 해 준다. 대지로 빛 무리와 빛 무리가, 하늘의 빛 무리를 죽인다. 마치, 하늘의 빛을 대지로 끌어내린 것 같다. 지상으로 끌려 내려온 빛은, 그러나 하늘에 있을 때와 달리 서글픈 욕망으로 채색된 채 흔들린다. 그리고 그 빌딩의 옥상에서 한 소년이 달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제 괜찮아?)”
“(아아, 쿠로사카. 응. 네 덕분에 이제 괜찮...다고 생각해.)”
달에서 시선을 거두며 은결이 답했다.
“(무리하지 마. 상태가 이상해 보이면 억지로라도 돌려보낼거야.)”
“(응. 네 말대로 할게.)”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에 다시 나선 것은 사흘만이다. 쿠로사카와는 오늘 오후에 미리 이야기를 나눴다. 때때로 토기가 치미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 도시는 그녀가 아니라 은결이 담당해야 했다. 쿠로사카는 외부인이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견뎌야만 했다. 그런 은결의 생각을 읽은 듯이 쿠로사카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는 은결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을 골랐다. 하지만 고르고 골라도, 골라지는 말은 없었다. 조립된 말은 너무 상투적이라 없느니만 못한 것 같았다.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녀는 그렇게 물었다. 은결은 눈을 감았다. 어두워진 시야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며 방금 했었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봤다. 처음에, 은결은 달을 바라봤었다. 천천히, 느릿하게, 어둠 가운데 느긋하게 뜬 창백한 빛의 조각을 시야에 담고, 그것에 달이라는 의미를 조립해 가면서, 거기서 파생되어 이어지는 아득함과 이상, 눈물이 날 것 같은 먹먹함을 다시 생각했다. 그 파생을 통해 달이라는 기호는 달이라는 기호 이상의 것을 향해 의미의 거미줄을 친다. 그것은 ‘왜 나는 달에서 이상(理想)이라는 관념을 보게 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달은 이상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텐데, 달을 보면 이상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었다. 그 연상관계들에 대한 사고였다.
그리고 은결은 생각했다. 그것은 달의 아름다움과 지상에서 그곳까지의 압도적인 거리 때문일까? 혹은 칸트 때문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달을 통해 우주를 구획 짓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알기에? 그것도 아니면 ‘달과 6펜스’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자기가 내어놓은 답에 은결은 속으로 모두 고개를 저었다. 어느 것 ‘하나’는 아니었다. 답이 있다면 아마도, 그 모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메모가 떠올랐다. ‘폴 발레리를 기억하렴’ 삶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자기실현은 긍정되어야 한다. 자기실현. 해석이란 거기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은결은 눈을 떴다.
“(비겁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
“(비겁함?)”
“(그래. 비겁함. 텅 빈 말과, 텅 빈 손만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그래도 그 비어있음을 긍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지.)”
“(또 영문 모를 말을.)”
쿠로사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은결은 씨익 웃었다.
“(너, 예전에 나한테 오타쿠의 자기실현도 긍정해야 한다고 물었잖아?)”
“(응. 그랬지. 너는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갑작스럽게 꺼내진 과거 이야기에 쿠로사카는 조금 호기심을 느끼며 답했다. 그때 은결은 삶은 예술이어야 하고, 삶이 예술이기 위해 개인의 자기실현이야 말로 중요하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쿠로사카는 은결에게 오타쿠들의 폐쇄적 자기실현도 긍정해야 하냐고 미심쩍게 물었었다.
“(나는 네게 그 답을 돌리면서 망설였었지. 실은, 나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정확히는 ‘지금’ 그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 종류의 비겁함이지.)”
조금 놀라운 이야기였다. 쿠로사카는 감정을 감추고 말했다.
“(흠, 내가 보기엔 그게 상식적인데.)”
“(상식은 다수의 권력을 의미할 뿐이지. 그들은 인정받아야 해. 하지만 지금 그들을 인정하는 건... 무서워.)”
“(무서워?)”
당혹스럽게 쿠로사카는 반문했다. 무서워서 인정하길 꺼리다니, 충격적인 이유였다. 쿠로사카의 연상체계 가운데서 오타쿠란 기호와 공포라는 개념은 억지로 끼워다 붙이지 않으면 연결될 일이 없었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섭지. 오타쿠를 긍정하는 것은 고립된 개인을 긍정하는 거잖아. 그러니 무수한 고통이 흘러넘치고 있는 지금 그들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되겠지. 그건, 무서워. 못 견디게. 하지만,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쥐어져 있지 않은 내 손아귀에 무언가 생길 리는 없잖아. 그러니까, 비겁하지.)”
쿠로사카는 미간을 좁혔다. 은결의 말은 이해가 될 듯 말듯 어려웠다. 하지만 은결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더 생각하거나 그에게 물을 시간은 없었다. 사념체의 기색이 느껴진 탓이다. 두 사람은 서둘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타쿠 이야기 전에 했던 거 기억하는 분이 아직 남아 있을지...;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은 제 인생 최고의 소설 중 하나입니다. 2부가 안 쓰여 지고 끝난 게 참으로 안타깝죠. 예전에는 이 글이 기독교적이라는걸 몰랐는데, 지금은 도프도예프스키의 소설 전체가 너무나도 신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성원성원성원성원!!
*아, 덥고배고파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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