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희망을 위한 찬가 - 아웃사이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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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았어.”
자기 방 안에서 은결은 낮게 말했다. 미래의 방에서 빠져나온 그는, 지금 쿠로사카와 염파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은결에게 말하기를, 오늘도 사념체가 하나 나오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고 한다. 그때 은결의 할아버지도 도왔다고 쿠로사카가 덧붙여 말했다.
-너는, 괜찮아?
간결한 정보교환이 끝나고, 약간의 망설임을 둔 다음, 쿠로사카가 은결에게 물었다. 은결은 그녀의 말을 듣고 텅빈 기분이 되었다. ‘나는 괜찮은 걸까?’ 솔직히 스스로도 잘 모를 노릇이었다. 그래도, 때때로 치미는 것들이 있지만 견뎌내고 있었다. 은결은 희미한 웃음을 섞어 대답을 돌렸다.
“응.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래.
대답이 돌아왔고, 대화는 끊어졌다. 은결은 고개를 들어 방의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형광등의 하얀 불빛이 공간을 채우는 모습이 보인다. 그 빛살 사이로 떠도는 먼지들이 보였다. 먼지들의 움직임은, 그것들이 허공이 아니라 물과 같은 분명한 질감을 가진 것들의 속을 헤메고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했다.
먼지와 같이 작은 단위의 사물의 세계로 들어가면, 대기는 인간이 접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다. 거기서 대기는 온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강인한 산맥과, 까마득한 절벽과, 느긋한 평지와, 놀라운 상승기류가 공존하는- 복잡한 세계의 얼굴을 지닌다. 그것은 사람이 접하는 세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저항 없는 대기’와 같이 인간이 접하는 세계의 모습은, 어차피 인간이라는 개체의 틀에 맞춰 편의적으로 ‘해석’된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추악’한 세계가 ‘아니’다. ‘어디에도 없는’을 찾아라.
마음 한 구석에서 불쑥, 그런 생각이 다시 솟아오른다. 은결은 그 생각을 억누른다. 그리고 침대에 눕는다. 숨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정지한 시공간 가운데 채칵, 채칵 하는 시계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마음이 평안하게 가라앉는다. 은결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책장을 바라봤다. 무수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아버지에 미치지 못하지만 은결의 방도 책으로 충만해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하지만 은결은 이 방에 있는 모든 책을 읽었다. 그는 쓸쓸하게 그들 책을 바라본다.
-저렇게, 저렇게 많은 책을 읽었지만...
무력감에 아득하던 그의 시선이 멈췄다. 은결의 시선이 멈춘 곳에 있는 책의 이름은 ‘존재와 무’다. 사르트르의 대표저작이다. 한동안 그 책을 바라보던 은결은 시선을 돌려 다른 책을 찾는다. 곧 찾아낼 수 있었다. 이번에 그가 바라보는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다. 하이데거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오해와, 해석... 이라.”
말이 흘러나온다. 은결은 생각한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독해로부터 파생된 저술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와 무’를 읽고 자신은 이 글에 나온 것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존재와 무’를 ‘존재와 시간’의 적자로 인정하기를, 사르트르를 올바른 독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입장에서, 사르트르의 글은 ‘오해’의 산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것일까? 설령 하이데거가 말한 것 처럼 ‘존재와 무’가 ‘존재와 시간’에 대한 ‘오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존재와 무’가 무가치해질 수는 없다. ‘존재와 무’는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20세기의 철학 저술 중 하나다.
“...폴, 발레리-”
은결은 작게 중얼거렸다가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역시 은결은 ‘해석’의 이념으로 ‘오해’를 긍정할 수 없었다. 모든 ‘오해’가 ‘해석’으로서 정당화되는 그 무한한 잡식의 세계를, 은결은 두렵게 생각한다. 어쩌면 경멸하고 있다. 거기서는 모든 인간의 고뇌에 찬 복잡한 언술이 개나 고양이의 우는 소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컹컹”과 등가적인 표현이 되는 세계. “세포란 생명을 이루는 최소단위로서...운운”이 “야옹”과 같이 취급되는 세계. 은결은 그것이 두렵고, 경멸스럽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이미 충분하리만큼 ‘추악’하다.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손으로서 노동한다는 것은, 그 이상이어야만 한다고, 은결은 ‘믿는’다.
“...욱.”
다시 토기가 밀려온다. 은결은 눈을 감고 한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세게 눌러 토기를 억눌렀다. 그러나 눈꺼풀 안에서, 일률적으로 어두워야 할 세계의 모습이 기묘하게 비틀어지고 있는 듯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은결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울에 비친 안색이 창백하다. 그는 근처 의자에 앉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전신을 사로잡던 감각은 점차 옅어졌다.
“하아- 마치 그노시스트 같군...”
씁쓸하게 은결은 중얼거렸다. 오늘도 쉽게 잠들지 못할 모양이다.
“-아버지. 오셨군요.”
수행이 현관에서 할아버지를 맞았다. 집안으로 들어서며 할아버지는 물었다.
“은결이는?”
“잠들었습니다.”
수행은 간결하게 답했다. 두 사람의 표정으로 씁쓸함이 스친다. 지금 은결이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화제를 돌려 말했다.
“오늘 쿠로사카라던가, 하는 그 아이를 만나 함께 사념체를 하나 처리했다.”
“그러셨습니까.”
“확실히 강한 아이였다. 키리야미의 후계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 장래에 일본을 대표하는 술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런 아이가 여기 와 있는 것도, 역시 그들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할아버지가 물었다. 은근히 기대에 찬 물음이었다. 그러나 수행은 고개를 저었다.
“푸른 이빨이라는 ‘카미’만을 문제 삼고 있다고 치기에 이곳에서의 체류가 너무 긴 것 같다고 여겨지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아이가 ‘그들’의 준동에 대비한 이세의 패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키리야미는 놀라운 검이지만, 그들은 다른 차원의 힘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 힘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사실이었다.”
아들이 그렇게 답한다면 틀림없이 정답일 것임을 알면서도 유감을 담아 할아버지는 반문했다.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적의 지닌 패는 너무도 강했고, 지금 가지고 있는 아군의 패는 없는 것과 같았기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희망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수행은 냉정하게 그 희망의 조각을 기만이라 걷어찼다.
“아마도 키리야미의 힘이 아닐 겁니다. 키리야미의 전력을 끌어낸다고 해도 그 힘 앞에서는 가소로울 뿐입니다. 어떤 거대한 힘도 그 힘이 가능하게 하는 법칙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그들의 힘은 에너지가 아니라 법칙을 다루길 목표로 합니다. 그러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힘 자체가 불완전 했었다는 것이겠지요,”
“흐음...”
“정직하게 말해 그들이 그 힘을 완전하게 구사할 때,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만상을 부정하는 자’의 완성된 힘입니다.”
단호한 어조로 수행은 말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처구니없군. 세상을 부정하는 자들이 그토록이나 강할 수 있다니.”
“그들의 부정은 사랑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그토록 무섭습니다. 세상에 넘치는 비극을 그들은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조준점은 비극이 아닙니다. 비극이 가능한 세상이 그들의 적이지요. 육신과 세계는 진정한 하나님과 합일하는 것을 막는 영혼의 감옥이니까요. 그래서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지금 이 곳’에 실현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진짜 하나님과의 만나는 거지요. 추악한 세상을 부수고 거짓된 신을 죽여서. 그러하기에 그들은 이성과 지식을 사랑합니다. 지식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힘을 신뢰합니다. 진실한 지식에서 비롯된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바꾸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지주의자(그노시스트)입니다.”
수행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노시스트.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도리어 만상을 부정하는 자들. 할아버지는 불편하게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과거의 너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겠느냐?”
“글쎄요. 필승은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반반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성공했을 리는 없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수행은 답했다.
“자신만만하구나.”
“그들이 갔던 길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는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군. 너도, 그 길로 갔었지.”
아들의 답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들은, 저 천재는, 인류사를 통틀어 현자의 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괴물이다. 수행은 어둡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성공했더라도 이쪽에는 그 힘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냐?”
다급한 반문과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잠시간 이어졌다. 망설이는 기색을 겨우 거두어내고 수행은 답했다.
“...은결입니다. 은결이가 그 힘과 접속해 있다는 것을 저번 사건을 통해 그들도 알았습니다. 정확한 매커니즘은 저에게도 역시 모를 일입니다만, 자칫 은결이 익힌 현자의 돌 기본 술식이 폭주한다면 그들 역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들 역시 그 정도는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그 힘은 최악의 경우라도 은결이를 향해 사용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은결이는 그들에 대한 최선의 방패일 수 있습니다...”
“......”
할아버지의 얼굴이 슬프다. 수행의 얼굴도 슬프다.
*매우 피로합니다... 감상 댓글을 비롯한 각종 성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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