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희망을 위한 찬가 - 아웃사이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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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바캉스 일정을 모두 즐겁게 지내고, 일행은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서 은결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동자 안에서, 일정한 기차의 속도에 따라 풍경은 하염없이 넘어가고 있다. 하염없이, 일순의 정지도 없이. 은결은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기차가 정지해도, 풍경은 그때도 하염없이 변할 것이다. 정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의 본질은 포착되지 않는다. 시간은 끊임없이 과거가 되기에 현재의 본질이 포착되지 않듯. 엄밀하게 따져 정지도, 현재도, 실은 ‘말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다. 단지 인간의 사유가 현재와 정지라는 존재한 적 없는 지반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그 위에 서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모든 엄밀함이, 사실은 그러했다.
연상은 파르메니데스로 이어진다. 그는 그래서 현실을 부정했다. 현실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니 눈앞에 드러난 것은 모두 거짓이다. 세상은 단지 일자(一者)일 뿐이다. 그의 제자인 제논은 스승의 논리에 반대하는 이들을 부정하기 위해 세 가지 역설을 제시한다. 쏘아진 화살은 표적에 가 닿지 않는다. 먼저 출발한 거북이를 아킬레스는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서로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마차는 한 운동이 두 운동이 된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운동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다만 일자만이 있다.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충일하다. 변화는 그래서 모두 거짓말이다. 논리와 현실의 불일치, 감각과 세계의 불일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옆자리에 있던 소녀, 세연이 물었다. 그녀는 어딘가 유감스럽고, 어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기껏 옆 자리에 앉아 이렇게 같이 돌아오고 있는데, 은결이 줄곧 말없이 옆만 바라보다가 이쪽에서 말을 꺼내게 한 것은 유감의 근원이고, 그날 밤 이후로 줄곧 어딘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으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걱정의 근원이다. 은결은 고개를 돌리며, 맑은 웃음을 곁들여 세연에게 말했다.
“잠깐 제논의 역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논인가요? 아킬레스와 거북이라면 아는데, 미적분 나오면서 해결된 것도요.”
은결다운 대답에 이어 세연은 반갑게 말했다. 은결은 여전히 친절한 얼굴로 설명했다.
“수학이 현실과 연결을 가진다는 것은 귀납 경험적인 것이고, 연역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로 온당한지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현실과 수학 사이의 연결에 대한 증명가능성이 괴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한 해결인지 어떤지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받아들인다고 해도 본질적인 것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논의 역설이 제기하는 문제는 운동 자체라기보다는 현실의 근본에 대한 문제니까요. 과연, 감각되는 세계의 실재성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지요. 그는 자기 스승이었던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론’을 변호하기 위해 역설을 내세웠습니다.”
“음, 잘 모르겠네요.”
세연은 얼굴을 붉혔다. 은결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감각하는 세계는 실재인가, 라는 것이 제논의 역설의 근저에 존재하는 문제의식이라는 것이 은결이 말한 것의 요지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은결이 끌어당긴 이야기들은 세연의 이해 범주를 가볍게 넘어서 있었다. 괴델이 누군지 그녀가 알게 뭐란 말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웃으며 은결은 말한다. 웃음에 담긴 것은 호의이거나 자조다. 호의와 자조 사이에 걸쳐진 은결의 미소를 바라보며, 세연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은결의 미소는 거기 담긴 감정의 종류와 강도에 무관하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의 웃음은 계산이 결여된 순결함을 느끼게 한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러한 생각들이 문득, 떠올랐을 뿐입니다. 사실 감각되는 세계를 부정하는 사유의 역사는 길고 창대합니다. 고대 이후 세계를 지배한 사상은 파르메니데스와 같이 감각되는 세계를 부정하는 이들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파르메니데스는 개중에서도 철저하게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그냥 현실에 대해 ‘아니다.’고 선언했지요. 진리의 탐구를 통한 일치의 노력 따위는,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는 현실이 배리(背理)된다는 것을 끈질기고 철저하게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의 ‘일자론’은, 사실 종교적인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세연은 가만히 은결의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연에게 이야기 하면서, 은결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했다. 논리의 극단은 결국 종교적이었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논리의 극단도, 종교로 회귀한다.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감성의 극단이 종교로 회귀하듯. ‘아아, 신이시여. 우리를 긍휼이 여겨 굽어 살피소서.’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세계는 존재로 충만해 있다. 운동은 진공(빔)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존재로 충만한 세상에 운동은 있을 수 없다. 세상은 단지 일자다.’ 그러니 포장을 달리 했을 뿐, 신과 일자는 다르지 않다. 실제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는 플라톤의 이데아로, 이는 다시 플라티누스의 일자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으로 이어지며, 중세신학을 지배한다. ‘존재하는 것은 믿음이다.’
“에, 갑자기 왜?”
세연이 당혹한 목소리로 물었다. 은결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양 볼이 뜨거웠다.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대체 왜?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당혹감에, 답변을 찾기 어려웠다. “어, 이게-” 세연은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은결에게 건냈다. “감사합니다.” 은결은 정중하게 인사하며 얼굴을 닦았다.
세연이 안스러운 얼굴로 은결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차에, 세연은 어깨를 가볍게 치는 손길을 느꼈다. 고개를 돌렸다. 쿠로사카였다. 그녀는 세연에게 쪽지를 하나 건냈다. 거기에는 ‘미안, 은결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바꿔주지 않겠어?’라고 적혀 있었다. 세연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지금 은결이 갑작스럽게 보인 감정의 동요가 ‘그쪽 세계’에 연관되는 것이라면 자리를 바꿔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고마워.)”
쿠로사카는 상냥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며 세연과 자리를 바꿨다. 세연은 애매한 표정으로 그 인사를 받았다. 사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바꾸고 싶지 않다는, 그런 충동이 불쑥 불쑥 솟아올랐지만, 자기 욕심만 내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연애가 일방의 문제가 아닌 한, 지나친 ‘자기’의 돌출은 상대를 멀어지게 만들 뿐이니까. 세연의 자리에 앉은 쿠로사카는 자리에 남은 그녀의 온기를 껄끄럽게 느끼며 은결에게 물었다.
“(괜찮아?)”
“(아아,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
“......”
쿠로사카는 미간을 좁혔다. 웃으며 가볍게 말하는 은결의 대처에, 그녀는 불쾌감을 강하게 느꼈다. 너무나도 예상했던 대답과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쿠로사카가 생각하기에, 이건 상대에 대한 배려(配慮)가 아니라 배제(排除)였다. 외부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가운데로 회귀하며, 자기로서 해결하는, 그래서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강한 벽 같은, 그런 태도를 표상하는 대답이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때 쿠로사카의 불만을 읽은 듯이, 은결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쿠로사카는 얼굴을 붉혔다. 은결과 시선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네, 네가 없으면 피곤해지기 때문일 뿐이야. 네 아버지에게 부탁받은 것도 있고.)”
표면적으로, 쿠로사카의 말은 사실이다. 수행은 떠나는 날, 쿠로사카를 만나 그녀에게 은결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쿠로사카는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마워.)”
은결은 서슴없이 그런 말을 돌려왔다. 쿠로사카는 말문이 막혔다. 이어진 은결의 말은 한결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그리고, 그들과 다시 싸우게 된다면, 내가 좋던가, 나쁘던가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잖아. 그러니 네 호의를 효율의 문제로 받아들이긴 힘들지.)”
“(......)”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가능하면 생각하길 피하려 한 문제지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적은 압도적인 岵?사역한다. 아담의 언어. 만상을 자유로이 조정하는 힘. 언어로서 이루어지는 현자의 돌.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 힘을 사용했다. 만일 그 힘과 다시 대적하게 된다면, 이길 가능성은 없다. 모든 종류의 방어와 모든 종류의 공격이 그 힘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것은 극단의 파괴와 극단의 재생이 한 자리에 모여 존재하는 힘이다. 아담의 언어. 그것은 결국 신의 언어.
“(미즈하라 아저씨가 갔어. 이세에서는, 총력을 기울일 거야. 물론 네 아버지도. 전 세계가 협력할 테니 대처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은결은 묻는다. 서늘한 물음이다.
“(......)”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들의 목적이 우리의 파멸이라면, 일찌감치 모든 것이 끝장나 있었겠지.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 정도야. 여전히 그들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단순한 악당은... 결코 아냐.)”
담담하게 은결은 말했다. 쿠로사카는 그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은, 감히 두 사람이, 아니 세계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이라 할 만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겠지...)”
“(하기야, 단순한 악당이 아담의 언어를 사용할리는 없겠지. 그것은 지고의 사유로서만 산출되는 힘인걸.)”
은결의 자신의 의견에 뒷말을 덧붙인다. 쿠로사카는 그 뒷말을 긍정했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군.)”
그녀의 대답을 듣고, 은결은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타오르는 태양은 하늘을 물들여 본래의 푸르름은 희미하지만 희게 물들어 있다. 유장하게 흐르는 구름이 때때로 그 빛을 막으며 대지에 복잡한 음영을 드리운다. 그럴 때마다 빛은 힘센 황소처럼 강렬하게 뻗어, 새하얀 구름의 속을 들이받는다. 구름은 고통에 찡그리는 것 처럼 검거나 흰 차이의 모습을 쓰리게 드러난다. 그 차이가 구름에게 복잡한 3차원적 질감을 부여한다. 취할듯한 다채로움. 그 아래에, 녹음에 물든 산이 있고, 사람이 세운 무수한 건물이 있다. 단조로운 초록의 강렬함에서 풀내음이 풍겨올 것 같다. 너무나 완연하고 짙은 여름의 한 풍경. 은결은 문득 느꼈다. 그는 투명한 눈길로 그 광경을 담으며,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추악하구나.’
*오랜만에 씁니다. jin_81님, 일천수라님이 그간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이 글은 기본적으로 출판이 고려되지 않은 만큼 여러분의 성원이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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