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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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칸 슬로프의 손톱이 공간을 갈랐다. 쿠로사카는 키리야미를 들어 그것을 막았다. 캉!! 격한 쇳소리가 나며 검과 손톱이 서로 튕겨나갔다. 동시에, 라이칸 슬로프의 다른 쪽 손톱이 쿠로사카를 노렸다. 쿠로사카는 몸을 최대한 젖히며 피했다.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쇄골 약간 밑으로 라이칸 슬로프의 손톱이 스치고 지나갔다. 화끈했다. 피부가 깨끗하게 절단되며 붉은 핏줄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후우-”
마음과 몸을 진정시키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쿠로사카는 시선을 라이칸 슬로프의 섬전 같은 동작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저 야생의 괴물은 빠르고 강했지만, 상대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라이칸 슬로프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저 기괴한 괴물 뱀파이어는-
-이길 수 없었다.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패배에 대한 명백한 현실인식은, 쿠로사카에게 그러한 의문을 이끌도록 했다. 질 것이 명백한데, 나는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그때, 쿠로사카의 눈망울에 라이칸 슬로프의 손톱이 짖쳐들어오는 장면이 깨끗하게 담기고 있었다.
“(저 계집을 죽이지마! 전설의 아들과 함께 데리고 간다.)
뱀파이어가 무언가 외쳤다. 순간적으로 라이칸 슬로프의 동작이 무뎌졌다. 쿠로사카는 뒤로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검날에 담긴 힘의 흔적이 검의 궤적에 따라 허공을 누볐다. 반원을 닮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라이칸 슬로프의 가슴이 쩍 갈라지며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 상처는 이내 스물스물 봉합되고 말았다.
“후우- 후우-”
그 상처의 봉합되는 모습은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을 가리키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이 다시금 무게가 되어 쿠로사카를 짓눌렀다. 이토록이나 절망적인 싸움을 어째서 계속해야 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라이칸 슬로프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뱀파이어는 어떤 믿기 힘든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키리야미의 신성마저도 간단히 능가한다. 푸른 이빨에게 몸을 내어준 은결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힘들 것 같았다. 한가지-
쿠로사카는 뛰었다. 그녀의 몸놀림은 탄환처럼 쾌속했다. 라이칸 슬로프는 겔겔거리며 방어동작을 굳혔다. 그것은 공격동작이기도 햇다. 한데 그녀의 몸이 라이칸 슬로프의 앞에서 갑자기 멈췄다. 엄청난 열기가, 라이칸 슬로프를 덥쳤다. 쇠라도 녹일 듯한 열기였다. 기습적인 기술에 라이칸 슬로프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 그의 전신에 불이 붙었다.
“크오오오오!”
라이칸 슬로프는 비명을 질렀고, 손을 아무렇게나 휘둘러 그녀를 쫒아내려 했다. 쿠로사카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빛이 번뜩였고, 불길에 휩싸인 라이칸 슬로프의 팔이 중력에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쿠로사카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종으로 검을 휘둘렀다. 늑대인간은 허망하리만치 쉽게 두 동강이 되어 대지에서 꿈틀거렸다.
쿠로사카는 검을 꼬나 쥐고 뱀파이어를 노려봤다. 늑대인간은 이렇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뱀파이어는 쿠로사카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불타오르는 늑대인간에게로 다가가 패를 또 한번 꺼냈다. 그가 무언가 ‘말’같은 것을 했다. 한번에, 늑대인간을 감싸던 불길을 사라졌고, 몸은 회복되어 있었다. 하지만 라이칸 슬로프는 정신은 차리지 못한 듯,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쯧. 머리가 나빠지면 기습에 약한 것도 문제야.)
패를 품에 넣으며 뱀파이어가 무언가 말했다. 쿠로사카는 긴장에 침을 삼켰다.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이길 수 없었다. 만일 그를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힘이라면, 쿠로사카가 아는 한에서는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은결이 푸른 이빨을 상대하기 위해 그렸던 그 현세의 것이라 믿기 힘든, 아름답고 완벽한 진식이다. 그 힘과 이 괴물이 패를 꺼내 행사하는 힘은 본질적인 분위기 같은 것이 흡사했었다. 뱀파이어가 쿠로사카에게 말했다.
“내가 상대해주지. 아담의 언어에 저항해내는 여자의 피맛은 어떨지 궁금하군.”
쿠로사카는 긴장과 안정 사이에서 자신의 육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호흡을 반복했다. 이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확실히 은결이 당시 보여주었던 그 힘이 아니고선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은결은 이미 저 힘에 구속당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문득, 쿠로사카는 다시 자신을 향하는 자신의 물음을 느꼈다.
청해도의 하늘로 세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노인이었다. 그는 하늘에 마치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깔린 것 처럼 신속하게 달렸고, 한 중년의 남자를 업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른 노인이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뛰어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옆의 노인을 쫒았다. 그들 세 사람의 표정은 모두 다급했다.
-소리는 이제 들려오지 않았다.
지속되는 아득함 가운데서, 은결은 ‘아담의 언어’라는 말을 들었다. 자신을 구속한 이 힘은 아담의 언어인가? 은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담의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힘인 것은 틀림없을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이 힘은 폭력적이었다. 분명히 기표는 기의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았지만, 그 미끄러지지 않는 방식은 압도적인 기의로 기표를 포섭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한 의미에서 아담의 언어라 말할 수 없었다. 기표와 기의, 어느 쪽에도 치우쳐지지 않는 완전한 개념. 그것만이 아담의 언어라 불릴 자격이 있으니까.
-머리가 징징거리며 아팠다.
은결이 생각하기에 압도적인 기의로 기표를 잠식해 밀착시키는 것은, 감히 아담의 언어라 불릴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세계 가운데 기표와 기의가 밀착된 기호를 드러낼 방법은 없었다. 모든 빗방울이, 모든 눈송이가, 모든 먼지가, 모든 세포가, 모든 같아 보이는 것들이 결국에는 지울 수 없는 개체성을 지닌 ‘개체’이듯이 세상은 완전한 일대일의 대응관계를 이루는 평등한, 대등한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권력의 불균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것은 아담의 언어라기보다 단지 강대한 주술의 한 가지였다.
-눈이 시큰거렸다.
그러니까 진실한 아담의 언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침묵일 뿐이다. 침묵을 벗어날 때, 아담의 언어조차도 사실은 아담의 언어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은결은 그것을 안다. 그래서 부처와 가섭은 말없이 미소만으로 소통했고, 플라톤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적었고, 레지널드 블라이드라는 신비체험가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글을 쓸수록 우리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갖게 된다.”는 탄식을 남겼다. 도덕경의 시작이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는 절망적인 선언 일 수밖에 없던 것은, 세상이 결국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야에 담긴 세상의 모습이 점차 다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과거의 모든 이들이 깨달았던 것처럼 침묵 이외에 아담의 언어를 구현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침묵만이 아담의 언어가 세상에 드러나는 유일한 방식이라면, 그것은 절대다수의 인간에게 아담의 언어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언어는 언제나 해석을 담고, 해석은 언제나 권력을 담기에,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주인과 노예라는 인정투쟁을 영원히 반복하게 된다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손은, 손의 이념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침묵만이 진리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타자와 소통될 수 없을텐데. 소통될 수 없을텐데. 은결은 짙은 갈증을 느꼈다. 그러면, 타자의 자유로서 자신의 자유를 이룩하는, 인간의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것은- 슬픔이 은결의 가슴을 다시 매우기 시작했다.
-은결은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봤다.
그의 모든 생각은 거기서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인식의 확장이 은결을 덥쳤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감각에 휩싸였다. 은결은 시선을 돌렸다. 세상이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것처럼, 짙은 흥분 가운데서 드러나는 환상처럼 기묘하게 보였다. 세상의 모습은 몽롱했다. 하지만 그 어릿어릿한 세상은 이제까지 은결이 보아온 그 어떤 세상의 모습보다도 명료한 실재성을 동시에 띄고 있기도 했다. 그것은 무수한 개체였지만 결코 개체 아닌 하나이기도 해서, 은결은 절대적인 통일감을 느꼈다. 시야에 들어오는 그 어떤 것도 자신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게슈탈트. 가장 크고 거대한 게슈탈트에 대한 인식. 가장 크고 위대한 한 가지 원리를 통해 모든 것이 해석되어 버린 세계의 모습. 은결은 멍한 얼굴로, 희미하게 남은 한 조각의 정신을 사용해 중얼거렸다.
아아-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
*요즘 글쓰기 참 힘드네요. 할 일도 많고; 시간은 별로 없고; 체력도 딸리고; 으으음; 잠이나 자야지. 후;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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